그는 내게 말했다. "인간은 독선적이야. 자기가 하고싶은데로 움직이고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화를 내곤 하지. 자신이 왜 실패했는지보다 일단 자신이 기분 나쁜 것에 분노를 해. 그리고 뒤에야 그것을 알고 움직이는 듯 하지." 그는 꽤 심각한 인간 부정에 빠진 듯 보였다. "그래? 그렇지만 모든 인간이 그렇다면 그런 이들이 나타날 수는 없었을거야. 모든 인간의 죄를 뒤집어 쓰고, 언덕을 오르며 죽을 길로 걸어간 인간도 있거든.", "그건 거짓말일거야. 분명 인간놈들은 그런 희생따위 신경도 쓰지 않았을거야."그는 내 말에 투덜거리면서도 꽤 관심이 있는 듯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런 인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인간들도 천천히 달라지고 있는 거겠지. 난 인간을 싫어하는 너를 이해하면서도 인간의 좋은 점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그는 내 말을 끝가지 들어주었다. 그러곤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터무니없는 박애주의자 같으니라고." 별로 다른 것은 없었지만 나는 그의 말에 웃어주었다. 마지막에는 인간성애자같은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이 어디냐고 생각하면서. - 필립 헨딜, 수정구 속 세상
학교가 끝난 뒤, 웨이는 막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겨울이 되면 거리의 한 구석씩을 차지하여 늘어서곤 하는 주황색, 혹은 노란색의 포장마차들은 늘 웨이의 관심을 끌었다. 흔히 팔곤 하는 떡볶이 따위의 분식이 웨이에게 있어 생소한 문화 중 하나였던 덕도 있었다. 어쨌거나 외국인이므로.
"강산아!"
그러니까, 웨이는 손을 흔든 강산 쪽으로 쾌활하게 달려갔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묻는 목소리가 명랑하다. 아마 포장마차에 대한 관심 반, 반가움 반일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냄비, 그 안에 채워진 따뜻한 국물과, 어묵이 구불구불하게 주름져 꽂힌 채로 국물에 담겨진 꼬치들. 그 앞에는 받침대와, 어묵을 찍어먹는 간장이 든 통, 종이컵, 어묵 국물을 떠먹을 수 있게 놓아든 작은 플라스틱 국자들도 있었다. 강산은 딱 그 앞에 서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이 힘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였고 마도의 영역으로 끌여들이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그것들은 번번히 실패하였습니다. 선언. 그것은 위대한 13영웅 중 하나이자 모든 창조물을 이해할 수 있는 마스터 마이스터에게만 허락된 권능입니다. 무엇이라도 스스로가 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길 유도하는 힘. 선언은 곧 지배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선언이 발동하는 순간 수많은 규칙들은 선언의 지배 영역 하에 놓이고 선언자는 그 영역을 자유롭게 지배하고 다룰 수 있습니다. 이 힘에 대해 많은 비밀이 있지만, 마스터 마이스터는 자신의 권능에 대해 이리 얘기했다고 합니다.
" 내가 뭐라고 하던 그럴싸하게 말할 수 있음 되는 거지.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상관 없잖아? "
아직도 선언에 대해선 많은 부분이 미지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정말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 세계에는 새로운 규칙의 주인이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요?
때때로 세계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때가 있습니다. 게이트가 열리고, 의념이 나타나고. 수많은 각성자가 태어나는 등. 그것에 대해 평하건데 개변이라는 언어가 가장 어울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희귀하게, 세상에는 특별한 일을 발생시키거나 몰고오는 인물들도 있었습니다. 사과의 떨어짐과 함께 물리학의 지표를 새로 열었던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거대한 쇳덩이가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하자면 그것들은 엄청난 강운의 결과물이었고, 다시 없을 천운의 결과물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을 바꿀 기적을 몰고다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다시 등장한다면 우린 어떤 결과를 맡게 될까요? 이 세상은.. 어떤 변화를 맡게 될까요?
지금까지 밝혀지고 토벌되었던 초대형 게이트의 주인들은 신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존재였습니다. 영국에 문을 열어 디스토피아로 이루어진 산업 혁명을 발생시킨 빅 브라더, 수많은 대형 게이트의 주인들을 이물질처럼 토해내던 붉은 피의 바다의 여왕. 마도의 탄생과 규칙을 내린 상살마경의 구도자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한 차원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들에게도 죽음이란 존재했고, 후계를 남기지 못한 신의 어울리는 이들은 이름만을 남긴 채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진혈이란 한 차원을 다스리는 위대한 왕의 핏줄을 얘기합니다. 비록 진정으로 피가 이어진 존재이진 않으나 오직 같은 차원에서, 차원의 주인에게 인정받아 추후 게이트의 주인으로 설 자들을 부르는 이름이 바로 진혈입니다.
이들을 만난다면 적대하려 하지 마십시오. 한 차원을 넘어, 그들의 피의 부모들마저 적대하고 싶지 않다면. 그 무엇보다도 진한 피를 상대하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그렇게 정한 강산은 웨이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포장마차 주인에게 오뎅 꼬치 8개의 값을 치렀다. 종이컵 세 개를 들어 착착착 내려놓았다. 한 개는 자신의 앞에, 또 다른 한 개는 웨이 앞에, 또 다른 한 개는 가운데에. 그렇게 놓고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가운데의 종이컵에 양념간장을 덜었다. 그러고는 자기 앞에 놓인 컵을 앞접시 삼아 오뎅꼬치 하나를 집어 간장에 찍어 먹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