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전화. 그는 낮에 충분히 잠을 자둬 깨는 것에 문제가 없고, 시차 때문에 그러려니 싶어 받는다. 차분한 목소리, hello? 소리에 그는 몸을 작게 뒤척인다. "hello." "아! 리리, 안 자는구나. 전화 해서 미안해요." "아니야. 무슨 일이니?" "그게요- 나 드디어 다 읽었어요." "벌써 다 읽었니?" "응. 리리는 천재야. 나 왜 이걸 이제 읽었을까요? 나, 기억에 남는 문단도 있어요." 흥분된 목소리에 그는 작게 웃었다. 꼭 개구리를 처음 본 어린아이처럼 들뜬 목소리였다. 그는 아이를 어르듯 "어떤 걸까?" 하고 물었다.
"4권 148p요." "아무리 내가 작가라도 잘 모른단다. 읽어보렴." "어디보자… 에스더는 더 완전해졌다. 그의 대담한 살인행각은 두각을 드러낸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젖는다. 그는 자신이 우월하다 생각했다. 수많은 천사의 목을 꺾었다 생각한다. 오늘도 죽은 여성은 호수에 둥둥 떠 그 짧았던 순간의 공포를 얼굴에 온전히 드러낸다. 그는 이 상황을 보고 자신이 선지자라 생각했다. 나는 종말의 인도자고, 사냥꾼이며, 선지자다." 짧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는 떨리는 숨을 가다듬는다. 이게 누굴 놀리나. "그게 마음에 들었구나." 그의 속을 뒤집듯 청년은 재잘재잘 떠든다. "당연하지! 더 있어요."
"더?" "멍청한 어린 양아, 들어라. 나는 너희를 인도할 선지자이며 이 피는 거룩한 길을 위한 피일지니, 너희는 두려움에 젖지 말고 다가올 메시아를 환대하라. 그는 믿는 자 해치지 아니하며 사랑할지어다." 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쐐기까지 박는다. 수화기 너머로 책을 덮는 소리가 들렸다.
"아, 말 많이 했더니 목 마르네." 부스럭대며 뭔가 포장을 뜯는 소리도 들린다. 그리고 코르크 마개를 따는 소리. 이 아들놈은 오늘도 끝내주는 음주를 벌일 예정인 듯 싶었다. 그는 긴장이 풀리자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퍼지, 통화중에 음주는 자제하라고 몇 번을 말하지?"
"부모가 자식의 거울이라는데 내가 이것까지 닮은 거죠, 뭐. 건배! 10달러 남짓의 싸구려 와인을 위해!" "진짜 자식도 아니면서 무슨 소리니. 그리고 누가-" "아, 몰라요. 응애 할게요, 응애, 퍼지는 응애야." 이윽고 호쾌하게 병나발을 들고 삼키는 소리. 또 잔에 따라 마실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익숙한 일이니 그는 골머리를 앓듯 끙 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이불을 그러모으고 팔을 뻗어 침대 한구석에 놓인 커다란 쿠션을 등에 가져다놓고 기댄다. "그래. 할 말 있니?" "아! 그게요, 리리. 있잖아요." "응." "나 여기 지긋지긋해서 그만 둘까봐요?" "뉴욕의 영웅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다시금 들이키는 소리. 그는 이 아들놈의 음주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고민했다.
"리리, 나 질문 있어요." 취기 어린 목소리에 그가 눈을 감는다. "마음껏 하렴."
"내가 거기 가서 익스퍼 팀에 소속되면 어떨 것 같아요?" "무슨 소리니." "얘기가 좀 긴데 요약해줄까요?" 침묵은 짧지 않다. 그는 안경을 주섬주섬 쓰며 한숨을 쉬었다. 기어이.
"너마저 이 가혹한 운명에 빠지면 어떡해. 어쩌면 좋아." "리리?" "그 새끼가 일을 쳤구나. 그렇지?" "응, 그 새끼가 아니면 누구겠어요?"
그는 심호흡을 했다. 호흡이 가빠지자 수화기 너머로 "리리?" 하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그는 심호흡 이후로 무심하게 병나발 부는 소리에 결국 이마를 짚었다. 얘는 대체 얼마나 마시는 거지? 거기다 대체 왜 내게 이걸 고백하는 걸까. 그리고 그 사이의 연결점도.
"리리. 지금 머리 굴리는 소리 다 들려요." "무슨 소리람." "술 마신건 난데 왜 취한 건 리리람?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줘요. 그럼 내가 기대에 부응해볼게." 침묵. 그는 쐐기를 박기로 했다. "하나 부탁해도 되겠니?" "뭐든지." "…퍼디난드. 여기로 오지 않을래?" "대부님 말씀을 어떻게 거절할까요? 술 깨면..알아서 가겠죠 뭐. 비행기 표 아까워서라도 내가 갈 걸요?" "내가 오지 말라 해도 왔겠구나." "당연하죠! 딸 얼굴 보고 싶다며. 거기 딱 기다려요." "그래, 고마워. 고맙구나. 술김에 하는 얘기는 아니지?" "아니에요. 내가 이건 내 동생 걸고 얘기할 수 있어. 그럼 이만 끊어요. 좋은 오전!" "그래, 좋은 오전 되렴..잠깐, 오전?" "아! 음주가무는 시간과 장소를 구애받지 않죠! 진짜 끊어요, 리리!"
이번에도 먼저 끊어지는 전화와 함께 그는 한참이고 어스름한 새벽빛 속에서 생각에 잠겼다. 생각이 복잡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한잔 마시고, 베란다로 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편지를 써야겠다. 여러장. 그리고 휴가를 신청할 것이다. 후임을 데려온다고 하면 될 것이다. 그는 몇모금 태우지도 못하고 서늘한 눈으로 저멀리 허공을 일정한 간격으로 번쩍이며 지나가는 비행기를 봤다.
>>571 음. 앞으로의 프롤로그 같은 느낌일까요? 일단 웹박수로 관련 설정을 받은 저로서는.. 뭔가 흥미로운 느낌이네요. 드라마의 시작인걸까 싶기도 하고요!
>>573 솔직한 심정으로 제가 뭘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네요. 사실 일상은 다들 구하고 있긴 한데 맥스주와 타이밍이 안 맞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고... 진행은 제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정말로 힘들다면 맥스주 말대로 시트를 내리는 것도 방법 중 하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조율을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사실 제일 좋은 방식은 맥스주에게 있어서 가장 편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으니 저는 이 정도로 이 이야기에 대해선 말을 하지 않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