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슬슬 독립해서 따로 살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조금 더 돈을 모아서 제 명의로 된 집을 하나 살까 생각 중이어서. 그리 큰 곳은 아니겠지만요."
그렇다고 작은 곳도 아니겠지만 일단 거기까진 굳이 언급하지 않으며 예성은 의외라는 듯이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 말을 마치자 그의 눈에 작은 검은색 강아지 한 마리가 이곳저곳 눈치를 보면서 어디로 가야 할 지 알 수 없어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남아있는 간식을 조금 뜯어 살며시 흔들자 마치 피리부는 사나이에게 이끌리는 쥐마냥 바로 뛰어오는 것이 너무 귀여워 예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역시 이런 곳에 오면 힐링이 된다고 생각하며 예성은 능숙하게 간식을 강아지에게 먹이며 자신의 품으로 오도록 유도했다.
이내 강아지가 자신의 품에 안기자 조심스럽게 두 팔로 안아주며 정말로 가깝게 머리부터 시작해서 등, 꼬리까지 유연하게 쓸어내리면서 예성은 시선을 강아지 쪽에 고정시켰다. 물론 그러면서도 대화중인 케이시의 말에 집중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저는 물론이고 소라 선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그게 아니라면 일이 더 커지기 때문에 가능하면 모두 한 라인으로 이어졌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신이라고 지칭하는 이들이 최소 두 명 이상이 된다는 이야기고, 생각 이상의 사태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예성은 제발 한 라인으로 엮여있기를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하나도 대처하기 힘든데 최소 둘 이상이라니. 말이 좋아 둘이지 그 뒤에 있을지도 모르는 인원까지 생각하면 청해시가 범죄소굴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나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휴가중이잖습니까? 강아지에게 집중해도 별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시기까지 일을 하라고 하진 않으니 마음껏 즐기셔도 됩니다."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예성은 강아지의 눈망울을 바라보다 살며시 시선을 돌려 근처에 있을 케이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말을 망설이다가 자신의 흉터를 손으로 괜히 긁으면서 이야기했다.
"아니면 그런 이미지가 있는건가요? ...이래보여도 연차 때는 급한 전화가 아니면 직장에서의 모든 연락을 다 받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믿거나 말거나지만요. ...쉴 때까지 일 생각은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니, 지금은 서로 강아지나 즐기죠. 방금 말씀하신대로 말이에요."
>>214 일단 안녕하세요! 애쉬주! 그리고 웹박수는 확인했어요! 전문을 공개해도 좋다고 했으나 일단은 저만 알고 있도록 할게요. 조금 프라이버시적인 내용도 있으니. 일단 다행이라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캐릭터는 애쉬주가 편하신대로 하시면 될 것 같아요. 물론 여러모로 고민이 되는 것은 있겠으나 여기는 놀고 쉬기 위한 공간이니 애쉬주가 즐거운 쪽이 베스트라고 생각하거든요.
결론은 저는 그에 대해서 뭐라고 할 생각이 없고 그저 편하게 행복한 상황극을 즐겨주셨으면 하고 바래요.
진심이었다. 비록 독립은 상대보다 먼저 했다 하더라도, 서른을 목전에 두고 월세 오피스텔에서 사는 입장으로서는... 음, 그만 생각하자.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다는 것과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는 것 사이에는 오십만 광년 정도 되는 거리가 있었다. 눈 대신 검정콩을 박아놓은 것처럼 깜찍한 강아지에게 간식을 주며 쓰다듬어 주었다. 너네는 좋겠다, 집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서. 다음 생을 결정할 수 있다면 무조건 팔자 좋은 집 강아지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해야지.
"하긴, 신 셋보다는 하나가 백 배 나으니까요."
무슨 다신교도 아니고 여기서도 신, 저기서도 신 타령을 해대면 경찰 된 입장으로서 상당히 곤란해지기 마련이었다. 지금 질문한 것도 사실상 전에 애쉬에게서 들었던 말을 확인하기 위한 것에 가까웠으니까.
"FM스러운 이미지가 아예 없었다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그래도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그야, 일단 근무 시간에 성실하게 임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그렇다고 해서 뭔가 널리 알려진 취미생활 같은 게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하지만 평소의 모습만 봐도 이 사람이 매사에 냉정하게만 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셀린을 대하는 태도라던가.
"경위님 말씀대로 일은 잊어버려야겠어요. 어떤 강아지를 제일 좋아하세요?"
그녀로 말하자면, 소형견부터 대형견 그리고 시고르자브종까지 아우르는 올라운더였다. 개는 사랑이야!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터벅터벅 다가와 무릎에 머리를 턱 얹는 리트리버를 쓰다듬어 주었다. 언젠가는 꼭 마당이 있는 집을 마련해서 개와 뛰어다니며 교감할 테다.
맙소사, 진지하다니! 저렇게 진지해도 되는 걸까? 한번만 더 진지했다간 온 세상이 뒤집어질 것이다. 그는 잠시 숨을 가다듬고 연초를 입에 물고 짧게 호흡했다. 그 와중에 또 웃음이 비죽 튀어나와 사레 들릴뻔 하여 애써 입술 한쪽 살을 자근자근 물었다. 이제 웃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어린 친구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그래, 진지했겠지."
그렇지만 가슴팍에 손 닿자 눈 커지는 모습이 마냥 재밌다. 간만에 이렇게 놀려보니 감회가 새롭다. 강력반에 있을 때도 이렇게 재밌게 반응하던 건 옆부서 신입밖에 없었는데. 그는 살살 눈웃음 치고는 "8살 차이니 아저씨는 애 취급 해도 된다 생각했지요." 하고 짧게 도발해본다. 이로써 평생이고 어린아이로 생각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는 지그시 눌리는 힘에도 살살 웃다, 벽에 등이 닿자 그제야 눈 동그랗게 뜬다. 젊은 날의 객기란 이리도 대단하다. 확신에 찬 시선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짓던 입꼬리가 천천히 일자로 내려갔다.
재밌네. 그의 금빛 눈동자는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그런 뜻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었다. 한참이고 입 다물던 그가 시선 마주치곤 느릿하게 눈 깜빡이며 입술 벙긋인다.
"우리 알데 자존심이 이렇게 강해서 어쩐담."
이러다 아저씨가 쇠고랑 차겠는데. 하고 덧붙이곤 고개 살짝 돌려 연초를 마저 들이마시고 뱉는다.
"그럼 다행이로군요. FM느낌은, 어쩔 수 없는 성격이다보니. 그쪽은 케이시 씨에게 양해를 부탁할게요."
대충 일을 하는 것보다는 역시 제대로 원칙대로 하는 것이 타고난 성품에 가까운 무언가였기 때문에 그것만은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예성은 쓴 웃음소리를 냈다. 대원들 중에선 아마 자신의 눈치를 보는 이도 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괜히 자신의 흉터를 무의식중에 세 번 정도 왼손 검지로 긁적이다가 예성은 다시 강아지를 품 안에 안으면서 시선을 강아지 쪽으로 돌렸다.
"크게 가리는 견종은 없습니다. 다들 귀여우니까요. 그래도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제 기준에선 조금 더 귀엽게 느껴지긴 하네요. 뭐라고 하면 좋을까. 순한 느낌임과 동시에 뭔가 멍뭉미가 제일 느껴져서 그런건지. 아무튼 귀엽습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저 웃음이 터져나오는지 괜히 웃음을 내뱉다가 예성은 괜히 더 안고 있는 강아지를 한 번 더 쓸어내리다가 조심스럽게 품에서 놓아주었다. 그러자 강아지는 껑충 뛰어올라서 그의 품 밖을 빠져나가더니 근처에 있는 다른 친구로 보이는 강아지에게 다가가 가볍게 장난을 치면서 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괜히 귀여운지 핸드폰을 꺼낸 후 예성은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러는 케이시 씨는 어떻습니까?"
자신에게 질문이 들어온만큼 그녀에게 가볍게 질문을 던지며 예성은 남아있는 자신의 음료를 다시 천천히 마신 후에 비어있는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호기심을 가진 작은 강아지가 테이블 위로 올라가려는 듯 낑낑거렸으나 안된다는 듯이 확실하게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예성은 테이블에 올라가지 못하게 두 손으로 살며시 막아섰다.
"사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냥 귀여운 동물은 다 좋아하는 편이라서. ...덕분에 학교에 다닐 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어쩌겠습니까. 좋은 것을 부정할 이유도 없고, 부정하고 싶지도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