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좋아합니다. 귀엽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고, 무엇보다 순수한 느낌이 있거든요."
자신의 인상을 생각해보면 정말 안 어울린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나 예성은 분명하게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밝혔다. 다른 이가 뭐라고 하던지 자신이 좋다는데 뭐라고 할까. 괜히 말 없이 자신의 무릎위에 올라온 강아지의 머리부터 시작해서 몸까지 일직선으로 쭈욱 쓰다듬으면서 그는 미소를 그대로 유지하며 반대편 손에 든 음료를 입에 담은 후, 테이블 위에 다시 올렸다.
"실제로 개를 키우는 이들이 많이 가는 곳이에요. 넓은 공간에서 같이 뛰어놀면서 힐링하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며 추억을 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저도 괜히 키워보고 싶어지더라고요. ...물론 셀린도 있고, 개를 키우기엔 아무래도 환경상 힘들기에 키우진 못하지만요."
말을 마치며 예성은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가만히 바라봤다. 지금이야 아무 것도 없었으나 서에선 셀린이 횃대 다음으로 가장 많이 쉬는 곳이 바로 그의 오른쪽 어깨였다. 그래서일까. 텅 비어있는 어깨가 괜히 아쉽다는 듯이 조금 더 길게 오른쪽 어깨를 바라보며 예성은 다시 음료를 천천히 빨아들였다. 그러다 딱히 한 것이 없다는 그 말에 예성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하게 눈으로 본 것은 아니었으나 케이시 씨도 이런저런 조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것은 필시 어떤 곳이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아니기에 이 이상의 코맨트는 힘들긴 합니다만."
뭔가 말을 하려고 해도 직접 조사를 하는 모습을 눈에 담은 것은 아닌만큼 예성으로서는 조금 진부할지도 모르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허나 그것으로 끝내긴 애매햇는지 말을 조금 더 고민하던 그는 조용히 덧붙이듯 말을 조금 더 이었다.
"애초에 다 한 팀이잖습니까. 어딘가에서 월급 루팡을 한게 아니라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몫은 다 한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쉬우면 다음에 조금 더 노력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모니터 앞에서 한참 머리를 싸맸다. 케이시의 조언대로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서다. 호기롭게 책상에 앉긴 했지만 막상 모을 자료가 너무 많았다. 고작 추측성 보고에 불과하지만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당연히 필요한 법이다. 헛소리만 줄줄 늘어두면 누가 관심을 가질까! 그래서 저번 사건의 녹취 기록도 빌려 들었고, 사건 당시 읽었던 기억도 모두 시간별로 빼곡하게 서류에 적어뒀다. 그렇게 70% 정도 완성했을 때가 바로 며칠 전이다. 이제 결론만 쓰면 되는데, 그러면 끝인데. 어제 또 새로운 사건이 들어왔다. 그는 새로 싹 정리해야 할 서류를 보고 참을 인을 새겼다. 그렇지만 결국 그는 인내심에 지고 말았다. 며칠간 함께 한 한글 프로그램은 야근을 감당할 수가 없었고, 자동저장이 켜져있어도 결국 새하얀 창을 띄우고 응답 없음 표시가 떠버렸다.
"Ah-! 미쳤어?!"
자동저장마저 없었더라면 피눈물을 흘렸겠지만 어찌됐든 이게 뜬다는 사실 자체에서 화가 났다. 그는 비록 욕설을 내뱉긴 했지만 책상을 내려치지는 않았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백업본을 클릭했다. 아..써뒀던 이번 사건과 신의 관계성이 싹 사라졌다. 그는 터덜터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젠 다시 쓸 의욕도 없으니 니코틴이 필요하다. 가급적이면 진한 걸로. 오래.
그렇게 멍하니 카페 뒤 골목으로 향했다. 머리는 정갈하게 땋았지만 조금 헝클어졌고, 옷차림은 편했다. 날이 슬슬 쌀쌀해져 하얀 터틀넥과 슬랙스 위로 코트를 걸쳤다. 골목으로 들어가며 그가 탄식하듯 "Verdammt." 하고 뱉었다. 절대 그럴 것 같지 않던 그의 입에서 걸쭉한 욕설이 한번 튀어나오고, 두번째로는 골목에 깊숙하게 들어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담배를 꺼내며 입에 물더니 라이터에 불을 몇번 당기다 불이 몇번 일렁이고 담배 가까이 대기도 전에 픽 꺼져버리자 한번 더 욕을 뱉었다. 이번엔 F로 시작하는 욕이라 그런지 조금 더 강도가 세고 예민했다.
"맙소사."
그리고 이미 골목에 들어온 선객을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독일에 있을 적부터 편지를 주고받던 작은 꼬마. 이미 성인이 된 지 오래지만 어릴 적부터 편지를 주고받았기 때문인지 그의 머리에서는 이미 정서적으로 나쁜 말을 하면 어떡해! 하고 자신을 혼내고 있었다. 그는 헛기침을 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자고로 옛말에 강아지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고 했다. 물론 그게 아니어도 지금까지 봐온 그의 모습은 말수가 적을지언정 나쁜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게다가 이렇게 귀여운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확실히, 셀린이 있으니까 개는 키우기 힘들겠네요. 그러고 보니 셀린은 집에 있어요?"
이런 데 오면 셀린이 질투하는 거 아니에요? 가볍게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자신을 두고 애견 카페에 다녀온 차 경위를 부리로 콕콕 쪼아대는 셀린이라. ...음, 이건 이거대로 귀여운걸? 물론 쪼이는 입장에서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휴가가 끝나고 출근할 때 셀린을 위한 비스킷을 잊지 말고 잔뜩 챙겨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주니 앞으로도 더 힘써야겠단 생각이 드는걸요?"
뭐, 상대의 말마따나 확실히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조사에 임했다면 그걸로도 이미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한 것이겠지. 다급한 사안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괜히 농땡이를 피우는 사람이 세상에 수두룩하다는 것은 이미 순경 시절에 깨우친 진리 중 하나였다. 강아지를 아예 무릎 위로 올려 쓰다듬던 그녀는 곧 마침 떠올랐다는 듯이 질문했다.
"여기에 데리고 올 수도 없기도 하고, 집에서 여동생이 잘 놀아주고 있을테니까 질투하는 일은 없을걸요."
물론 돌아가는 길에 비스킷 하나는 사서 들어가야겠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예성은 자조적인 웃음소리를 약하게 냈다. 물론 사지 않아도 별 상관은 없었으나, 그래도 역시 직접 기르고 있는 동물이 조금 더 신경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은 특별히 고추도 몇 개 사서 가지고 갈까. 생각을 하며 예성은 자신의 다리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강아지를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휴가 중인데 일 이야기인가요?"
지난 번 범인. 아마도 저번 콘서트 사건의 범인이자 매니저였던 김신호를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예성은 어쩔까 잠시 생각을 하다가 물음에 대답하는 것을 선택했다. 휴가 중이긴 하나, 그렇다고 일에 대한 이야기를 아예 하지 말란 법은 없었고, 알고 싶다는 것을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많이 말해줄 수 있는 사안은 거의 없었다.
"저는 '신'이라는 존재는 그다지 믿지 않습니다만, 이 청해시에서 벌써부터 '신'을 거론하는 이가 셋이나 나왔습니다. 그리고 셋 다 범죄를 저질렀고요. 대충 예상하셨겠지만 이번에 범죄를 저지른 그 사람도 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대충 중요한 포인트로 찝을 수 있는 것은 세 개입니다."
하나. 자신은 '신'의 축복을 받아 더욱 강한 융합을 할 수 있었다. 둘. '신'에겐 인상착의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니까. 셋. '신'은 자신의 행복을 누구보다 바라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이번 일도 각오를 다지고 행할 수 있었다.
"골치 아픈 건, 세뇌 흔적도, 정신이 개조된 흔적도 없다는겁니다. 즉, 자신의 의지로 그런 말도 안되는 대형 테러를 저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정말로 '신'을 마주한다고 해도 잡아넣을 수 있을진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 '신'이라는 작자가 범행을 지시했다면 모를까. 저번도 그렇고 이번도 그렇고 자신의 의지로 목적을 가지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니까요."
단순히 그 신이라는 작자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나마 낫겠으나, 자신의 의지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면 그건 엄연히 말해 단독 범행이 되고 그 뒤의 신이라는 작자에게 책임을 묻기는 힘들 수밖에 없었다. 신이라는 작자가 범행을 지시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저 연결고리를 억지로 만들자면, 범행을 저지른 그 범인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정도로는 엮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허나 그것만으로도 역시 체포하기엔 힘들어요."
하늘이 노랗다. 누군가 담배 한 대만 줬으면 좋겠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슬슬 들어가자고 생각하던 차에 저 멀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첫 목소리는 모르는 언어기도 하고, 너무 갑작스러워 잘 들리지 않았지만 두번째 목소리는 아주 잘 들렸다. 자신의 고향에선 거의 숨 쉬는 것과 같은 빈도로 쓰이던 F-Word가 들렸으니까. 조금 그리운 기분이었다. 이런 곳에서 그리움을 느끼는 것은 어떨지 싶지만.
"..포상 감사합니다?"
그는 일부러 순진한 척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애쉬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애쉬를 놀리려는 목적이었다. 조금 죄책감 비슷한 것도 심어줄 겸..?
애조씨 입장에서는 꽤나 충격적이었을(어렸을 때부터 봤던 애가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말을 한 후에, 그는 태연하게 애쉬의 인사를 받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애쉬. 땡땡이 겸 니코틴 보충하러. 정작 니코틴이 없지만."
어색하게 웃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그는 속으로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빈 담배곽을 보여주었을까. 담배를 피고 싶었는데 담배가 없어서야...
"...혹시 담배 피러온 거면 한대만 줄 수 있어?"
꽤나 익숙한 듯 담배를 줄 수 있냐며 부탁하는 알데바란. 애쉬 입장에선 이것도 꽤나 충겨적인 모습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꽤나 평범한 일이었다. 사실 평범한 일이 아니어야 하긴 하지만, 그가 담배를 놓고 오는 일이 워낙 잦았으니...
>>685 사실 신이란 단어가 주요 떡밥인 걸 보고 일부러 캐 이름 '신'을 더 고수한 것도 있으니..... 따지자면 자업자득이랍니다😏 후타바신이든 독고신이든 신(神)이란 이름을 중심으로 비설이 돌아가서 신 떡밥이 나오는 날이면 어쩔 수 없이 웃참 챌린지하게 되어버리지만요. 그래서 비설은 언제 다 정리한담......(다 정리하는 건 이미 포기하고 매우 핵심만 채워넣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