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의 수수하고 겸손한 그것보다는 좀더 화사한 인사. -라고 의식한 미요루는 순간 스스로에게 흠칫하고는 속으로 반성해라 미요루, 라고 되뇌었다. 자기야말로 아가씨 학교에 다니는 주제에 아가씨와는 거리가 먼 몰골을 하고 있는 판에 다른 사람을 수녀라는 편견에 끼워맞추려 했다. 수녀님이라고 저렇게 산뜻하게 인사하지 말라는 법 있나. 예쁘면 됐지. 물론, 그렇게 생각한 덕분에 주디가 제대로 된 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에는 한 발짝 멀어졌다. 뒷편의 고양이는 그 상황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눈치없는 자기 주인(주인인지 숙주인지)과 주디를 번갈아보며 웃고 있을 뿐이다.
"-안녕하세요. 나리메 학원 1학년생 미야우치 미요루입니다."
뒤에서 그 고양이가 신나게 비웃고 있는 건 눈치를 못 챘는지, 미요루는 조금 머쓱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주디의 소개에 대답했다. 오일 질문에 미요루는 "글쎄요..." 하고 얼버무리며 다시 스쿠터 쪽을 돌아보고 허리를 숙이다가, 그제서야 그 괴상망측하게 생긴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다. 미요루가 '뭘 웃고 있어.' 하고 입으로 핀잔을 주자, 고양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스쿠터 뒤편으로 설렁설렁 몸을 피한다.
"오일은 매 4천 킬로미터마다 교체해주고 있어요."
엔진오일 바꾸어 주는 건 어머니를 도와서 해본 적이 있기에 기억하고 있는 미요루였다. 다만 그 외의 대부분에는 문외한이라는 게 문제였다. 시동 자체가 걸리지 않으면 카뷰레터 쪽 문제겠지만, 미요루는 카뷰레터가 뭔지도 모르고 있으니. 설령 알았더라도 공구가 없으니까 그건 그것대로 쩔쩔매고 있겠지만.
"그런데 정말 간단한 정비 말곤 해본 적도 없고, 이렇게 고장난 적도 없어서 어디가 문제인지를 모르겠네요. 내 스쿠터도 아닌데, 맙소사 인생."
이대로 가족에게 전화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아빠의 요녀석 요럴 줄 알았다 하는 능청맞은 미소와 엄마의 헬파이어 등짝스매싱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미요루는 한쪽 관자놀이를 손으로 짚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688 뭐, 누구한테 이래라저래라 뭐가 어떻다 하는 건 아니고, 비라의 경험상 그렇다는 거야!」 「화기애애한 어장이 딱딱한 어장보다 훨씬 오래 간다고나 할까, 서로 편안한 파트너 같은 관계를 형성해야 좋다는 게 지론이거든」 「상판에서는 그런 게 글자로 보이는 말투에서 출발하는 거니까 말이지. 다들 으샤으샤 하자구」
"아. 그쪽이라면 꽤 소문이 많지 않나요? 자주 허브티라던가 좋아해주는 학생들이 많아서."
교복을 보고 이미 알고있기는 했지만, 실제로 알려진 사실을 강조함으로서 좀더 경계심을 덜두게 하려고했다. 거짓은 거기에 없기도 했다. 의도적으로 그런 일부 푼게 자신이기도 했고. 다만 상대는 내 인사법에 조금 의외였던것 같다. 하기야 수녀에 대한 선입견이라면 조금더 수수한 느낌을 상정했을지도 모른다. 뭐 실제 수녀는 아니니 상관없지만.
"비슷한 또래들과 이야기하는건 좋아해요. 그래서 오는 사람은 환영하고 있어요."
또한 여고생사이의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네트워크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수집하기에도 그 포지션은 나쁘지않다.
"오일문제는 아닐테고 오늘 고장나기전에 엔진소리가 멀쩡했다면 더더욱 그 가능성은 낮아질테니 거의 캬뷰레터의 이물질이 들어가 막혔을가능성이 높을거에요. 시동이 갑자기 꺼져버리고 들어오지 않는다면. 당신은 우연으로 발생한 운이 좋네요. 저는 그것을 고칠 도구를 가지고 있답니다."
분명 수녀로서는 의외의 지식과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오히려 그 부분이 평범한 수녀는 아니다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적당히 적은 정보의 이야기를 섞어주는 법이다. 적은 정보는 거짓말과 비슷한 효과를 가진다. 상대가 해석하기 나름의 적은 정보를 얻는다면 사람은 전체적인 정보를 알게 되었을 때 마치 적은 정보의 내용이 거짓처럼 들리게된다. 쉽게 말해서 나는 거짓말은 하지않았지만 상대의 해석에 의해 그것은 거짓된 정보로 혼동되어 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수녀로 거둬지기전에는 가정사가 조금 복잡해서 이런저런일을 많이 배웠거든요."
실제로 수녀로 거둬진 적은 없지만 그 요람에서 나는 수녀, 정확히는 현인신적인 역할이지만 아무튼 성직자를 하지않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지금의 수녀로 가장한것은 달리말하면 수녀로 거둬진척 하는것과 같다. 그 부분에는 시간적으로 다른 정보가 있을뿐이다. 다시 수녀로 가장하기 전까지 이런 저런일을 전전한 것은 사실이니까.
되새겨보자면 기억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모 성당의 수녀님을 찾아가면 어주 향긋한 허브티를 대접해준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기야 난다. 그게 뒷산의 이 외딴 성당이라는 것은 방금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게 이 성당이었구나. 그런데 전 드립커피가 취향이라서요-"
하고 가볍게 농담식으로 대답하다가, 미요루는 문득 그와 함께 들었던 또다른 별난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럼 카드점을 봐주시는 수녀님이라는 것도...?"
보통의 수녀복보다 조금 더 화려한 수녀복과, 카드점과, 이런저런 일을 배웠다며 카뷰레터 클리너를 꺼내어주겠노라고 선선히 말하는 수녀.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이상하다' 는 생각이 먼저 들지도 모르겠지만 미요루는 그것을 '이 수녀님 힙한데' 라는 특유의 그 나른한 사고로 치부해버린다.
"수녀님 멋지네요."
미요루는 스쿠터를 들여다보던 허리를 일으켜서, 창고로 발길을 돌리는 주디를 대뜸 따라오기 시작했다. 컴프레셔며, 공구통이라는 게 보통 무거운 것은 아닐 테니.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그러나 미요루가 그러건 말건, 주디가 쏘아보건 말건 그 고양이는 이 상황을 아주 재미나게 관망하고 있는 구경꾼의 자세를 흩뜨리지 않고 오히려 그 눈빛이 재밌다는 듯 얄궂은 얼굴과 자줏빛 눈을 한 채로 주디와 미요루의 하는 양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한 고양이는 스쿠터 뒤에 드러누웠던 몸을 일으켜 이상할 정도로 길고 깡마른 팔다리로 주디와 미요루를 따라왔다.
"마법소녀는 엄청나게 먹는다! 활동량 자체가 평범한 여학생들보다 배는 늘어나기 때문이지. 그러나 마스코트가 밥을 먹을까? 그것은 의문에 싸여 있다."
비라의 날개가 희한하게 지팡이를 감싸쥐고 칠판을 가리켰다. 칠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맛있어 - 스테이크, 파르페, 간장게장]
"왜냐면 마스코트도 거의 엑시트 수준으로 생태가 다양하기 때문이굴. 대부분의 마스코트는 저 통통병아리처럼 바보인가 하면, 나처럼 스마트한 마스코트도 있다굴. 또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사념 비슷한 마스코트도, 군체의 형태인 마스코트도 있어굴. 그러니까 마스코트 별로 습관도 제각각 달라서, '모든 마스코트가 밥을 먹는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굴."
안경을 쓱 치켜올린 너구리가 팡, 하고 과자 봉지를 뜯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대부분의 마스코트는 밥을 먹는다굴. 굶는다고 죽는 구조는 아니라지만, 배고픈 건 어쩔 수 없으니 말이다굴." 와작와작. "세상에는 그런 말이 있지! 일을 이루는 것은 밥심이라고⋯⋯ 우리도 마법소녀의 꿈을 응원하는 존재니까 마법소녀처럼 먹을 필요가 있는 거야. 프록, 감자칩 하나만 주라-." "싫다굴."
김이 피어오르는 엑시트의 잔해 사이에서 부서진 물건 하나가 나타났다. 삑, 삑 하는 소리를 내면서. 가운데에 강한 충격을 받아 액정이 깨진, 다마고치나 디지바이스 같은 그런 종류의 장난감이었다. 엑시트에 잡아먹힌 상태에서 레몬 거너의 집중 사격을 받느라 회로가 엉망으로 망가져서 오작동하는 것 외의 기능은 남아 있지 않았다.
미약하게 일렁이는 거부의 기운. 그러나 되살아나지는 않는 검은 연기. 외진 뒷골목으로 여자아이 하나가 뛰어들어 온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는 것처럼 말이다. 무언가를 애타게 찾는 듯, 그러나 지레 포기해 버린 듯 절박하지만 터덜거리는 발걸음.
그런 발걸음이 고장난 장난감 앞에 와서 멈추었다.
"여기 있었어! 어라⋯⋯?"
장난감 기계를 들어올린 소녀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정말⋯⋯ 망가져 버렸어⋯⋯! 소중한 건데⋯⋯."
여자아이는 글썽이는 눈으로 울상을 지었다. 소중히 찾아 헤매던 장난감이 만신창이가 된 모습에 무척이나 속상해 보였다. 생각해 보자면 엑시트에 잡아먹혀 어디론가 사라진 물건을 이렇게 되찾은 것만 해도 기적이지만⋯⋯.
헤어지기 싫어⋯⋯.
마법소녀가 될 만큼 강한 염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골목 저편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마스코트가 모습을 감추었다.
"어떡하지⋯⋯ 안 켜져⋯⋯ 이상한 소리만 나구⋯⋯. 히잉⋯⋯."
떨어지기 싫어⋯⋯.
주저하는 소녀의 뒤편에서, 잦아든 줄 알았던 검은 불꽃이 파직파직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엑시트의 전조였다. 소중히 해 왔던 것과 헤어지기 싫다는 강한 부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연 그것뿐인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