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앗, 사민은 울상이 되어선 입을 다물었다. 천씨보다야 훨씬 낫긴 하다만야...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복잡한 심경을 표한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한국어에 서투른 것 같으니 자신이 배려해줘야지'라고 자기합리화를 해본다. 절대 여기서 더 말싸움을 이끌었다가 질 것 같아서 이러는 게 아니다.
"으음, 그렇지만 후배취급에 익숙해져서..."
사민은 존댓말이 편하다는 입장이었다. 원래 한국의 유교사회에서 나이 어린쪽, 그것도 사민처럼 얼빵해보이는 사람한테 존댓말 써주는 젠틀한 사람은 사회에 몇 없었다. 나이가 많을 수록 그런 경향이 커지는데, 체슬리는 29살로 아슬아슬하게 합격이라고 해야할까. 그가 외국인이라는 점도 어느정도 작용했다. 아무튼, 다 재껴두고서라도 사민이 후배를 자처하는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딱히 저보다 나이 많고 귀엽지도 않은 사람 챙겨주고 싶지는... 후배는 적당히 일해도 넘어가주니까요."
어떻게든 대충대충 일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잘보인다. 이 정신으로 공부를 했다면 하버드대를 가지 않았을까. 상대가 워낙 날티나는 탓에 이쪽도 조금 풀어진 모양이다. 아마 체슬리가 좀 더 번듯한 인상이거나 엄해보였다면 사민은 알아서 입 다물었을 것이다. 제갈량도 울고갈 강약약강 전술이라 할 수 있겠다.
"풉,"
넷플릭스 아니냐는 말에 사민은 지레 놀라 기침을 해댔다. 바늘로 누군가 심작을 콕 찌른 느낌이 들었다. 남을 속였다는 죄책감이 발휘해서인지, 단순히 사실을 들켜서 멋쩍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사민은 곤란해보였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작게 말하기를 "죄, 죄송..." 체슬리에게 들렸을지는 모르겠다.
"아, 큐브요? 이거 멋지죠! 번쩍거리면서 변하니까 마법봉 같고 있어보이는 느낌? 근데 사실 저도 한번도 안 써봤어요."
헤헤, 후레의 얼굴이다. 그러다 번뜩 떠올린듯 "맞다, 선배는 큐브 웨폰 뭘로 할 생각이에요?" 체슬리를 따라 작게 물어봤다.
" 직업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른 법이니까요. 누가 맞고 틀리다를 논할 수는 없으니. "
그녀가 하는 말도 맞다. 경찰의 본분을 가지고 남의 시선에 상관없이 주어진 일만 하는 것. 그게 경찰이라는 직업 뿐만 아니라 다른 일들을 대하는 좀 더 올바른 태도일지도 모른다. 사이드 메뉴로 나온 어니언링과 감자튀김이 섞여있는 박스를 열어서 아무거나 하나 입에 넣는다. 그래도 일하는데 보람이 있으면 더 좋다는게 내 생각이니까. 말했듯이 누가 맞고 누가 틀리는건 아닌 문제다.
" 그냥 대다수가 비슷하다면 그게 일반적인게 아닐까요? 외눈들이 사는 마을에 가면 우리가 두눈박이가 되는 것처럼. "
일반적인게 항상 옳을수는 없겠지만 일단 일반적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나는 그렇게 하고 있었다. 있을수는 없겠지만 살인이 일상인 마을에서 살인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 간다면 그땐 살인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 이상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뭐, 점심시간에 이런걸로 말하는게 더 어이가 없기는 하지만. 햄버거를 한번 더 입에 가득 문다. 여기 진짜 맛있네.
" 사실 아이들을 마냥 좋아하기는 힘드니까요. "
싫어하진 않는다, 라는 애매한 반응.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애들을 보는건 좋아하지만 돌보는건 싫다던지 ... 사실 애들 보는건 귀엽지만 막상 돌보려고하면 피곤하니까 어쩔 수 없기도 하고.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선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 30명이 좀 넘어서 한번에 보는건 좀 피곤하니까요 ...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몇명 정도는 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
너무 어린 아이들은 힘들고 좀 큰 아이들이 청해시로 놀러오게 된다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경찰서에 데려가지는 않겠지만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팀원분들을 만나면 인사 정도는 하지 않을까?
" 유동환씨인가, 그 분도 꽤 잘먹던데요? 카페에서 항상 가득 드시는 것 같고. "
식사하시는 모습은 본 적이 없지만 카페 음식은 항상 많이 드시는걸 본 기억이 있다.
" 여기 진짜 배부르네요. "
햄버거의 마지막 조각까지 다 입에 넣고서 손을 물티슈로 한번 닦아낸다. 아직 콜라는 반 정도, 튀김 박스도 반 정도 남아있었지만 입가심용으로 콜라를 한번 쭉 빨아먹자 더이상 위에 공간이 없는지 위장이 아우성이다. 위는 엄청 늘어난다던데 내 위는 해당사항이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