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밉지만 사랑스럽다 말하는 윤을 향해 그녀는 한쪽 눈만 살짝 감아 윙크를 해보였다. 아무렴, 누구 애인인데, 라고 말하듯이. 곧 윤이 고개를 끄덕였을 땐 그녀도 턱을 들어 윤의 볼에 입맞춤 해주려 하며 말했다. 동시에 속으론 안도의 숨을 삼켰다는 건 비밀이었지만.
"고마워요. 내 사랑. 그런 점도 정말 좋아해요."
이제 윤의 기분도 좀 풀린 듯 보여 축제에 대한 얘기나 할까 했었다. 윤이 하나 가르쳐 주겠다며 소리를 막는 주문을 쓰는 걸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가 잠자코 바라보고 있으니, 주문을 외운 그가 말했다. 일전의 가짜에 대해서. 그녀는 그새 호기심의 빛이 감도는 눈동자로 윤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머,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먼저 얘기를 해주려는 걸까요? 물론 궁금하긴 했지만."
오늘은 딱히 뭔가 묻거나 듣을 생각은 없었는데, 그가 직접 말해준다 하니 사양할 이유는 없었다. 지금은 아니어도 나중엔 묻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기도 하니. 동그랗게 뜨고 있던 눈을 다시금 곱게 휘어 웃고 이미 안고 있던 윤의 팔을 조금더 제게 가까이 안는다. 보드라운 드레스 너머 말캉함이 꾹 눌릴만치. 그리고 마주 잡은 손을 잠시 꼼지락거리며 고쳐 잡곤, 애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들을 준비는 다 되었으니, 얼마든지 얘기해줘요. 달링."
어차피 이번에도 전부를 알려주진 않을거 같았으니까. 듣다가 궁금하면 물어볼 생각으로 그렇게 말하곤 윤의 얘기를 기다린다.
현생 중 짬내서 잠깐 들렀다! 집에 보내줘...0)-( 주양주 레스는 확인했으니 천천히 써달라구~~ 그리고 늑대인간 스베타...이건 된다! 너무너무 분위기 있고 잘 어울리겠다.....땃쥐는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사라질지 가챠확률이기 때문에 인사는 안해줘도 괜찮아:) 모두 좋은 밤 보내고 있길 바래.
본가에 있을 때도 가시방석이지만 본교로 돌아왔다 해도 가시방석이다. 어차피 수감된 매구는 가짜다. 그가 그 사실을 모를까? 그 당시 우연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잘 매복해있다 나타난 양반탈도 그렇고, 장관이라기엔 지나치게 집요했던 추궁도 그렇고, 추종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는 사실은 매구가 가짜임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그도 그 사실을 깨달은 소수의 인원중 하나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백정을 곁에 둔 이상 깊게 말려버렸다. 다시는 인간에게 관심 주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운명이 그를 한대 세게 치고 갔다. 그는 결국 공범이 됐고, 지금은 이 가시방석 위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감도 안 잡히는 미래만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는 수업이 없는 날 동안 요양한다. 말이 요양이지 좀이 쑤셔 어둠의 마법 방어술 책을 정독해 요점을 싹 정리하기도 했고, 천문학 과제는 진작 끝냈고, 그는 잠시 고개를 내려 책상을 쳐다본다.
『맨드레이크의 안전한 접근』 - 맨드레이크의 위험성과 인간의 상관관계
Ⅰ. 서론 Ⅱ. 『맨드레이크』양식에 사용된 기존 방식 Ⅲ. 인간과 맨드레이크간의 접근 방식 Ⅳ. 결론: 『공존』의 가치
그는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양피지를 보지 않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슬 추운 현궁이 더 추워질 시기가 다가온다는 자기합리화 뒤로 꾸물꾸물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좀 쉬는게 좋겠다. 아무리 할 일이 없어도 저런 일은 그만 둬야 한다. 그의 남은 삶은 적었고, 이런걸 쓴다고 해서 오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명이 깎인다면 모를까. 그는 허공을 가만히 노려본다. 손을 뻗어 백정에게 곁으로 다가오게끔 한다. 한 자리라도 내어줘야겠다 몸을 뒤척이려다 급히 허리를 세웠다. 드디어 그의 코어가 일을 했다. 칼 교수의 의미심장했던 그 표정을 왜 잊고 있었지? 어째서 그 순간에 환히 웃을 수 있었을까. 왜, 굳이? 눈치챘다면 왜 말을 하지 않았을까. 벌떡 허리만 일으켜 침상에서 일어난 그의 머리가 바삐 돌아갔다.
"아가. 나랑 잠시 갈 곳이 있다. 따라오겠더니."
그 표정을 캐물어야 할 것 같다. 과연 이 모든게 우연일까. 쥐덫에 걸린 건 아닌가? 교장도 대처를 늦게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 거지? 펠리체와 매구에 대한 관계, 그와 백정의 관계를 지킨다 생각만 했지 정작 주변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아직 어리고 어른보다 영악하지 못하다. 어리기 때문에 모든걸 알지 못하고, 최악의 결과로 가는 길만 잘 알고 있다. 아, 이 멍청한 발렌타인.
그는 겉옷을 주섬주섬 입고 기숙사 문을 나서,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로 향했다. 그는 분명 이곳에 있으리라. 그는 망설임 없이 문을 두드렸다.
머리가 빙빙 돈다. 당신이 불만을 토로하듯 볼을 살짝 부풀리자 그는 손가락을 들어 당신의 볼을 찔러보려다 이내 그만뒀다. 더 삐졌다간 오지도 않겠다. 달링은 횃대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 지금 나가면 딱일 것 같다. 그는 날갯짓 하여 다가오는 당신을 아예 안고 가기로 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보이는 광경에 아무것도 못 봤다는듯 능숙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시선을 휙 돌렸다. 머리에서 학사비리라는 생각이 계속 빙빙 맴돌았지만 이걸 입밖으로 꺼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전에 가차없이 점수를 깎던 칼 교수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단태 그 능글맞은 녀석.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그가 개처럼 발로 뛰어 다시 점수를 얻었으니 됐다.
"……."
그는 칼 교수를 보며 저 사람이 미소를 지을 일이 없을 거란 선입견을 가졌다. 대충 동류인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 칼 교수는 웃으면 두가지 상황이 있는 사람일 것 같았다. 아마 그는 화가 났거나, 자신을 떠보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예, 천문학 과제 때문에 여쭐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만……."
그는 보기에 돌려 말하는 것에 재간이 없어 보였지만 그건 또 아니다. 비록 직설적으로 형편 없느니 그렇게 사는 꼴을 보아하니 같은 숨을 쉬는 것조차 괴롭다느니 하면서 얘기하는 타입이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었다. 이 집안에서 배워먹은 것이 테이블 뒤엎기였고 불효자가 최고의 칭찬인 장의사는 그 또한 명백히 순혈 가문의 자제였고, 그냥 귀찮아서 안 할 뿐이었다.
"교수님께서 저번에 구름의 움직임에서 맹수는 길들이는 과정이 여간 힘들고 숨기어서는 아니된다 해석하셨는데, 그 뜻이 궁금해 찾아왔습니다. 제 명석하지 못하고 아둔해 빠진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지라."
그러면서 품에 안은 백정의 부리 슥 손가락으로 간지럽힌다. 발언과 몸짓으로 미루어보아 쉽게 해석하면 그 뜻이었다. 다 알고 계시는 것 같은데 왜 고발하지 않습니까? 말이 쉽게 해석하는 것이지, 그가 알고 있는 사교계의 화법으로 속내를 모조리 뒤집어 까보면 너 뭐하는 새끼냐? 정도 되겠다. 그 또한 마찬가지로 미소지었다. 부드럽고 순진한 미소로 '자신은 지금 순수하게 교수님께 질문하는 모범생'인 척 질문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그녀는 윤이 얘기하는 내내 오롯히 그에게만 온 신경을 기울였다. 둘의 대화가 누군가에게 들리진 않아도, 주변에 적잖은 잡음이 있었기에 제대로 들으려면 그래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리를 옮기고 얘기하자고 할 걸. 문득 든 생각을 얼른 밀어내고 다시 귓가로 들려오는 윤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그렇게 들은 얘기에 의하면, 현재 마법부 장관은 과거 전쟁 시절의 그를 이용해 현재 자리에 앉은거고, 그는 그런 배신자를 그냥 두지 않았고 뭔가 조치를 취했다는 듯 하다. 그녀는 미간을 찡그리는 윤을 보고 그러지 말라는 듯 그가 내민 손에 제 볼을 스스로 부볐다. 조금의 여유가 있었다면 고개를 돌려 그 손등에 입맞춤도 했을 것이다. 짧고 갖은 애교를 부리곤, 그의 물음에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잠깐을 그렇게 보낸 뒤 약간의 장난기 어린 말투로 재잘댄다.
"...흠.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요. 모르는 척 답을 구하는게 좋을지, 영민하게 정답을 말하는게 좋을지. 그게 고민이네요."
킥킥. 작게 웃기까지 하는 걸 보면 답을 모르는 건 아닌가보다. 그야 그럴 수 밖에.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 그의 얘기를 합쳐보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녀가 고민한 건 그걸 그냥 말해버리면 재미 없지 않을까 였던거다. 그래서 모르는 척을 해볼까 싶다가, 영민하다 해준 윤의 말에 부응하기로 했다. 그녀는 일부러 고개를 들어 그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해 소곤소곤하게 말이다.
"굳이 그 모습을 씌운 의도가, 배신의 대가만을 위해서는 아닌거 같은데, 제가 틀렸을까요?"
그녀의 대답은 그 가짜의 정체만이 아니라 굳이 그의 모습을 씌운 것에 다른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니냐고, 한발 앞선 물음까지 더해져 있었다. 윤이 거기까지 알려줄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녀는 알려달라는 듯이 속삭이던 귓가에 입술이 스치게 했다. 깃털이 지나간 것처럼 가볍고도 간질하게. 그러곤 시선을 마주치고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