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 선배조차? 그녀는 이어질 말이 궁금하긴 했으나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건 아닌가보다하고 넘겼습니다. 그리고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고 말할거란 당신의 설명에 곰곰히 생각하다. '아 그건 확실히' 하고 납득했죠. 딱히 나쁜 상사라는건 아니지만 이런 면에서는 웬지 그렇게 말할거 같기도 합니다. 여러가지 의미로요.
"음..? 뭐... 고마워요?"
어라라. 그녀는 갑자기 손뼉을 치며 쇼핑백을 칭찬해주는 당신의 모습에 갑자기 왜 저러지 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곧 산거 자랑한거 맞죠? 하는듯한 당신의 물음에 아~ 하고 납득한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당신에게 내밀었습니다.
"병문안 선물이에요. 병문안이라고 하기엔 너무 늦었지만."
당신이 습격당해서 짧지만 병원에 있었던 일. 아무리 그래도 그런걸 잊을 정도도 그냥 넘어갈 정도의 인간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직접 찾아가는 용기까진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표면상으로도 동료인걸요. 쇼핑백의 안에는 직접 만든 초코쿠키와 젤리와 같이 일하면서 먹기 쉬워보이는 간식류들이 들어있었습니다. 쿠키 말고는 뭔가 하나같이 이름있는 브랜드인거 같지만 넘어가죠.
점심 시간이 끝나고 다시 업무에 들어간지 한시간 정도. 평소처럼 필요한 서류들을 정리하고 장비를 점검하던 나에게 한통의 문자가 왔다. 이 시간에 문자 보낼 사람은 거의 없는데, 스팸이 아닐까 싶어 열어본 문자는 내 예상과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내용을 보고 한숨을 크게 내쉰 나는 외투를 챙겨들고 건물 옥상으로 향한다.
" 에휴. "
옥상에 올라와 크게 한숨부터 내쉬고선 외투 주머니에서 익숙하게 전자담배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연초를 태웠지만 담배냄새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전자담배로 바꿔버렸다. 이것도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연초 특유의 냄새와는 거리가 멀었고, 향이 나쁘지 않은 것도 있었으니까. 한번 깊게 빨아들인 담배는 폐부를 한번 훅 돌아서 다시 코로 뿜어져나온다.
업무가 지나치게 재미없을 때 추구해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A, 순찰 또는 심부름을 빙자하며 바깥나들이 나가기. ...는 방금 했고. B, 모니터 한 구석에 떳떳하게! 카톡을 띄우고 아무 상대로 아무 말 메시지 보내기, 는 지금 당장 큰 재미를 보지 못하는 중이고... C, 팔짱 끼고 푹 의자에 기대 인간미 찾아볼 수 없는 우리들의 삭막한 사무실 관찰하기. 이조차도 큰 빛을 보지 못하는 중이었다. 머릿속 매뉴얼 아닌 매뉴얼 A부터 Z, 다시 A-2부터 Z-2, A-N부터 Z-N까지를 여러 번 부질없이 훑던 신은 끝끝내 팔짱을 풀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 아무곳에 던져둔 갑을 움켜쥐고 "아이고오, 왜 머리가 아프지~ 일을 너무 열심히 했나..." 중얼중얼 옥상으로 향하는 길을 밟은 것이었다. 비척비척.
"그러고 보니까 누가 먼저 일어났던 거 같은데... 아닌가, 기분탓인가... 기억력이 드디어 퇴화하나..."
꼬리 잡힌 쥐처럼 힘없이 흔들리는 넥타이에 단추 몇 개 헤친 셔츠, 한술 더 떠 머리에 푹 덮어쓴 밝은 회색 오버핏 후드는 빈말로도 성실한 경찰의 표본이라 부를 수 없다. 관자놀이를 짚으며 꿍얼거리던 신은 머지않아 제 기억력이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옥상에 발을 내딛고 유진을 발견하고 아, 하는 탄성. 신은 무심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시 한번 탄성을 질렀다. 아아!
"아, 그러니까, 나 아까까지 네 생각하고 있었거든."
?
"그-러니까. 동료로서! 생각하고 있었다. 담탐 하러 올라오는데 문득 나보다 먼저 일어난 사람이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 거야. 지금 생각해보니까 너네. 아하, 아하."
아이홀 깊은 기운 없는 눈으로 턱을 짚곤 혼자 아하 아하. 뭐가 좋다고 조금 웃음기 도는 놈은 "그쪽도 담탐?" 뻔히 보이는 질문을 하곤 갑을 제껴 열었다. 툭 흔들어 궐련을 뽑곤 그대로 물어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