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야는 잠시동안 미요루를 아무 말 없이 응시했다. 상황을 정리하고 이해하려는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 이해가 끝났을 때 사야는 다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 그러면 안돼. 오토바이는 위험해. 너를 보호해줄 수 있는 장치가 하나도 없잖아. 사고라도 나면 그냥 맨 몸으로 바닥에 구르는 셈이야. "
오토바이를 빌렸다거나,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사야가 생각하는 잘못된 점이라면 오토바이를 타는 것. 그 자체였다. 기우일수도 있고 지나친 일반화일지도 모르며 선입견일수도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어찌됐던간에 사야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다. 그것이 사야가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이니까.
" 그리고 미요루. 오토바이 타는거.. 남들이 보기에 좋지 않아. 아직 미성년자잖아? 그러니까 안돼. 이제부터 타지마. "
사야는 직설적이다. 필터링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한다. 그것때문에 안좋은 이미지가 쌓이더라도 사야는 그렇게 말한다. 그게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었으니까.
미요루는 어깨를 으쓱하며 헬멧을 툭툭 쳐보였다. 그리곤 얼굴에 얄팍한 미소를 나른하게 띄웠다. 그렇잖아도 감정이 희박한 미요루의 얼굴은, 작년 이맘때쯤에 미야우치 가를 덮친 비극 이후 더 차갑게 메마른 것이 되어갔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이따금 미소를 짓는 순간이 있었는데, 사야가 잔소리를 따따 쏘아댈 때도 가끔 그랬다.
"자전거랑 별다를 거 없잖아? 자전거와 마찬가지로 충분한 안전장비를 갖추고, 신호와 법규를 준수하면 괜찮아."
미요루는 얼굴에 보일 듯 말 듯한 웃음을 띈 채로 테이블에 팔꿈치를 괴고는, 턱을 받쳐 사야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쿡쿡 웃는다.
"그리고 조그마한 스쿠터일 뿐이고, 타고 다니면 편해서 말야. 너 내가- 다른 일 할 때 타는 오토바이 안 봤구나."
다른 일- 그게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사야도 익히 알 것이다. 눈앞에 있는 이 늘씬한 소꿉친구와 도무지 겹쳐볼래야 겹쳐볼 수 없는 그녀의 다른 모습. 그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 그러나 그렇기에 그 모습과 미요루의 지금 모습을 분리해도 좋을 텐데, 미요루는 딱히 그런 걸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그 소름끼치는 자줏빛의 불길이 사야가 알던 미요루를 조금씩 물들여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 실질적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난 올바르게 살기보다는 나답게 살래."
그러나 올바른 자세에 올바른 정신이 깃든다는 사야의 말에 돌아오는 대답은 미요루가 늘 하던 것과 똑같았다.
" 달라. 자전거랑 오토바이는 같지않아. 속도도 차이나고 거기서 사고가 나면 다치는 정도도 달라. "
사야는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눈 앞의 친구가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대충대충 넘어갈 것도 알고있었고 언제나 그렇게 끝난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럼에도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맞는건 맞다고, 틀린건 틀리다고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사야는 다른 오토바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 미요루, 오토바이가 또 있어? "
사야는 뿌- 하고 볼을 살짝 부풀리고 바라보다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자기대로 살겠다는 말에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 이기적이야. 그러다 미요루가 오토바이로 다치면 남은 사람들은 어떡해. "
같이 있는 사람들에대한 실례다. 주변 사람들을 아낀다면 자기 스스로도 아낄 줄 알아야한다. 항상 바른 자세로 그리고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살것. 궁도에서 강조하는 것도 그런 부분이었다. 걱정해주는건 기쁘다는 말에 사야는 흠.. 하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생각보다 그렇게 차이나지 않는걸- 시내 도로에는 제한속도가 걸려있어서, 과속하다가 중상을 입는 건 바보같은 폭주족들 아니면 재수없게 내 눈에 걸린 엑시트들뿐이야."
미요루는 메뉴판을 집어들고 이리저리 뒤적였다. 물론 미요루가 카페에 처음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주문하는 메뉴는 정해져있고, 마스터가 돌아오면 '탄자니아 원두로 내린 아메리카노 있나요?' 하는 질문을 하겠지만. 그러다 사야의 질문에, 미요루는 웃는 얼굴인 채로 어깨를 으쓱하면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변신' 하면 하나 생겨. 그런데 그걸 그냥 타면 무면허운전이 되니까, 얼마 전에 면허를 땄어. 면허 딴 김에 평소에도 좀 타고 다니는 거야."
사야의 볼 한 쪽이 뿍 부풀어오르자, 미요루는 손을 뻗어서 사야의 부어오른 뺨을 꾹꾹 눌러보았다. 그리고 작게 키득키득 웃었다. 미요루가 처음으로 오토바이 핸들을 잡아본 것은 더 퍼지가 된 이후였다. 난생 처음 잡아보는 것이라 두려웠지만- 더 퍼지라는 존재에 남아있던 선대 퍼지들의 사념과 기억에 남은 감각들을 읽어들여, 미요루는 마치 바이크만 몇십 년은 탄 프로 레이서라도 된 것처럼 오토바이를 몰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이며 감각은 원래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 미요루에게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것이 미요루가 자신의 운전에 자신감을 표하는 이유였다.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조심하고 있어. '책무'를 수행하다 보면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할 때가 많은데, 오토바이가 있으면 편하거든."
하며 메뉴판을 탁 덮던 미요루는 사야의 뜻밖의 말에 사야에게로 시선을 들었다.
"정말?" 선뜻, 아니 호기롭게 승부를 걸어오듯 말하는 사야를 마주보다가 미요루는 눈을 가늘게 뜨며 싱긋 웃었다. "그럴래?"
변신이라던가 책무라던가 하는 마법소녀적인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사야는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토바이가 위험해봐야 이 일보다 위험할까. 오토바이는 스스로가 조심하면 된다지만 엑시트가 연관된 일은 혼자서 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사야도 잘 알고 있었다.
" 그건 잘했네. 무면허운전은 범죄야. "
그 와중에도 자기 생각이라던가, 옳고 그른 것에 대해서는 꼭 짚고 넘어가는 사야였다. 사야로서는 나름의 도전을 하겠다고 오토바이를 태워달라고 한 것이니 이제와서 뒤로 무르기도 좀 힘들겠다 싶어 우물쭈물 하다가 이내 답을 내었다.
" 대신에 제한속도는 꼭 지켜. 무조건이야. 그리고 너무 빠르지 않게. "
혹시라도 떨어진다거나 사고가 난다고 하더라도 속도가 느리다면 그만큼 덜 다칠 수 있고 만의 하나라면 이나리가 지켜줄 것이니 괜찮을 것이다. 사야는 마시던 녹차가 바닥을 드러내자 후- 하고 심호흡을 했다.
무면허운전은 범죄야, 하고 따박따박 짚고 넘어가는 사야를 보며 미요루는 한 모금 더 웃었다.
"그래, 네가 그럴까 봐 땄어."
그리곤 손끝으로 사야의 뺨을 쪼물거려보다가 놓아준다. 삶의 태도라던가 하는 거창한 이야기까진 아니더라도, 항상 딱부러지게 잔소리를 하는 사야의 모습에 미요루 스스로의 삶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기에, 확실히 사야라는 친구가 없었더라면 미요루는 퍼지 노릇을 하면서 오토바이 면허를 따야겠네- 하는 생각은 안 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그걸 좀 엉뚱한 아이디어로 치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야의 가볼까? 하는 말에, 미요루는 재밌는 장난을 제안받은 것처럼 느른하게 감았던 눈을 조금 치떴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헬멧이 내 것 하나뿐이고, 마스터와 인사라도 나누고 커피라도 한 잔 마실까 했는데."
미요루는 비어있는 카운터를 한번 힐끔 돌아보고는 다시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띄며 사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지만 지금은 마스터가 자릴 비운 것 같고, 지금 잠깐 한 바퀴 가볍게 드라이브하고 오면 마스터가 돌아올지도. 지금 타고 싶다고 한다면 내가 금방 가서 예비 헬멧을 가져올게. 5분 정도면 될 거야. 어떻게 할래?"
" 그 말은 뭐야? 내가 잔소리만 한다는거야? 미요루... 너한테 듣기 싫은 소리라고 다 잔소리라고 생각하면 안돼. 결국은 다 맞는 이야기잖아. "
어쩌면 이런 성격탓에 사람을 대하는 법이 서툴렀는지도 모른다. 사야는 남들이 자신을 인식하는 시선에 대해서 잘 알고있다.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과 차가운 외모가 더해져 쉽게 다가가기도 힘든데 말수도 적고 남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도 적으니 실력만 믿고 거만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아주 잘 알고있다. 그럼에도 사람을 대하는 법은 알지 못해서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해버리곤 했다.
" 그럼 안돼. 헬맷은 두 개여야해. 내가 안 쓰는것도 미요루가 안쓰는 것도 안돼. "
허울좋은 핑계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싶었다. 마스터와 인사라도 나누고 싶었다는 말에 사야는 고개를 돌려 카운터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는 카운터. 아무도 없는 것은 비단 카운터 뿐이 아니라 카페도 마찬가지였다. 한산하고 여유로운 분위기. 이 분위기를 지키려면 어쨌든 마법소녀들은 엑시트와 싸워야한다. 더 옳은 세상을 위해서 그리고 더 정의롭고 완벽한 세상을 위해서.
" 5분.. 응. 기다릴게. "
하기로 했으면 해야한다는게 사야의 생각이었다. 어차피 차도 다 마셨고 이제 더 할 일도 없는데다가 오토바이라는건 위험하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은 좋은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 사야는 다녀오라는 말과함께 자신의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걱정에서 나오는 잔소리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걱정 자체도 너무 많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참 애매하고 복잡한 태도. 남들보다 Yes와 No가 분명한 사야와는 정반대로, 미요루는 Yes와 No가 애매하거나 복잡하게 섞여있는 회색 구간이 남들보다 넓었다. 그래서 미요루가 오히려 사야의 직설적인 성격을 무던하게 받아줄 수 있는지도 모른다. 헬멧은 두 개여야 한다는 말에 헬멧을 가져오겠다고 말하고, 사야가 응,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미요루는 다시 외투와 헬멧을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망할 고양이가 헬멧으로 변신할 줄도 알면 참 좋을 텐데- 그건 무리려나?"
깊이 없는 농담을 던지고, 미요루는 외투를 걸치고 헬멧을 손에 쥔 채로 금방 갔다올게. 하고 자리를 떠났다. 어차피 곧 돌아올 거 일부러 거기 놔둔 건지, 미요루의 가방이 자리에 놓여있다.
부르릉 하고 오토바이가 떠나고, 정말로 짐 잠깐 정리할 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서 다시 오토바이가 카페 앞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미요루는 헬멧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쥔 채로 카페로 돌아왔다. 찬바람이 헝클어놓은 긴 머리카락에 가을이 한가득 배인 느낌이다.
"자." 하고, 미요루는 풀페이스 헬멧을 내밀었다. ...가격표가 붙어있다. "일단 맞는지 한 번 써봐. 좀 조인다 싶으면 잘 맞는 거야."
사야는 가방에 달려있는 키링처럼 보이는 작은 대나무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가방을 챙기고 짐을 챙긴다. 사야는 마셨던 컵을 쟁반에 고이 담아 카운터로 가져가고 밖으로 나오면서 또 다시 작은 대나무 키링에 속삭였다.
" 지켜줘 이나리. 무슨 일이 생기지 않게. " 『 서로가 없으면 곤란한건 비즈야뿐만이 아니야. 걱정하지마. 엑시트도 아니고 이 정도는 내가 해줄 수 있어. 』 " 응. 고마워 "
사야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자 가방을 내려놓았다. 바람이 불고 치마자락이 한 차례 휘날렸다. 사야는 바람에 눈을 살짝 감았다 뜨곤 오토바이를 보며 숨을 다잡았다. 인생 첫 오토바이 경험인데 그 동안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도 많아서 걱정되는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사야는 손을 내밀어 헬멧을 받았다.
" 응. 맞겠지. "
이리저리 돌려보고 손으로 통통 쳐보고 하면서 튼튼한지와 제대로 만들어져있는지를 보던 사야는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 머리에 대고 꾹 하고 헬멧을 눌러썼다. 머리카락이 앞을 전부 가려 불편한지 다시 벗어 머리를 정리하곤 다시 눌러썼다. 미요루를 보며 '어때?' 하고 물어본 사야는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제법 무게감이 느껴지는게 안전하다고 느껴졌다. 사야는 바이저를 내리려 했으나 뭐에 걸렸는지 툭, 툭, 하는 소리만 나고 내려오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내려오고 어떻게 해야 고정되는지 알겠지만 한 번도 만져보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일 아닌가.
" 미요루. 이거 안내려와.. "
할 줄 아는걸 붙잡고 있는것보다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는것이 훨씬 이상적인 일이겠지. 사야는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 '이거 내려줘' 하고 말하며 바이저를 톡톡 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