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페를 주문하는 유진의 모습은 상당히 자신 있는 것이었다. 저렇게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 걸 보면, 그야 이쪽에서도 자연스레 기대를 할 수 밖에 없어지고 만다. 근데 왠지 유진이 티스아흐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묘하게 정수리 부근에 머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티스아흐는 잠시 그 시선의 의도를 파악한 후, 분개하여 귀가 파르르 떨렸다. 곧장 버럭 호통을 쳤다.
"어이, 애 취급하지 말라고 했잖아. 잊어 먹었냐!"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겠으나, 유진의 멱살은 저 닿기 힘든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저걸 잡으려면, 힘껏 도약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크으윽...."
일단 적당히 유진의 상의의 끝자락을 잡아 당기는 것으로 타협한다. 물론 이 자세로 더 이상 화를 내도 전혀 먹혀들 것 같지는 않아 보였기에, 티스아흐는 유진을 홱 놓아주곤 고갤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냐."
조금 부아가 난 투로, 꼬리를 책상 위로 내들고 휙휙 흔들었다. 이건 필시, 기분 나쁜 티를 내고 있을 것이리라. 허나 그러다 보니 어느새, 땅커땅 파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귀가 쫑긋, 꼬리가 번쩍, 눈이 번뜩 뜨이는 달콤한 향이었다.
라고 중얼거리며 자신의 처우에 대하여 조금 불평해보지만, 역시 크게는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유진이 건넨 땅커땅 파페의 모자가, 너무 맛있는 자태로 유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불평하는 척이라도 한 것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는 녀석일 것이다. 때마침 띄워주는 발언을 유진이 건네자, 파리채처럼 움직이던 꼬리가 살짝 멈추었다. 단 것 앞에 납작 수구리고 있던 자존심이 살짝 고갤 들이밀었다.
"이봐, 유진. 이제 와서 그런 말 해 봐야, 아무 소용 없는 거 알고 있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조금 우쭐해진 느낌을 티스아흐로선 감출 겨를이 없다. 자존감으로 범벅된 귀가 움찔거리는 게, 아까와는 분위기부터가 딴판이다. 곧장 잔뜩 풀어진 표정으로, 방금 얻은 모자부터 한입에 털어 넣었다. ...충격. 한참 굳었다가, 곧 자리를 박차고 유진을 마주한 채 단 맛에 취한 소리를 낸다.
호기롭게 자리에서 일어난 것까진 좋았으나, 역시 앉을 때엔 주위의 시선을 살피게 된다. 수치심을 감지한 눈매가 약간 가늘어진다.
"끙.... 암튼 인정. 이건 알레프 신의 축복이라 불러도 도통 부족함이 없는 맛이야."
아까보다 텐션은 내려갔으나, 아무리 봐도 잔뜩 흥분을 억누르고 있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곧장 유진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이미 티스아흐 앞에 놓인 파페는 절반 정도가 날아가고 없었다. 그렇게 차가운 것을 입에 잔뜩 밀어넣고도 괜찮은 건지, 볼태기찜을 하고선 말거는 유진을 살짝 귀찮은 듯 바라본다. 물론 땅커땅 파페는 유진이 사준 셈이니, 딱히 그거에 대해 불평할 수도 없었지만.
"음, 뭐, 그렇지...? 동물이나 가축 같은 건 있지만, 지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 건 우리 '납손인'들 뿐이야."
왠지 자랑스런 투로 가슴을 한껏 내밀며, 그리 말한다. 어지간히 자긍심 넘치는 종족이다. 그러다 귀와 꼬리를 가만 살피는 유진의 시선을 보고 잠깐 생각하는가 싶더니, 곧 입가에 미소가 드리운다.
"아하, 역시 너도 이게 신경 쓰이는 거지? 쿠흣-, 너 말야. 지구인 주제에 꽤 보는 눈이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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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된 칭찬에, 자신만만하게 흔들리던 꼬리의 움직임이 살짝 소심스레 변해 안쪽으로 스르르 말려간다. 칭찬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계속 장단을 바꾼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면서도 묘하게 부끄러워지는 건, 꽤나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그러니 일단, 헛기침을 한 번 하여 칭찬에 무너져 내린 마음을 다잡는다.
"암튼! 그거 칭찬 한마디해 줬다고, 좋아서 꼬릴 흔드는 건 아니라고. 조금 마음에 든 건 사실이지만."
그러곤 남은 파페를 전부 입에 털어 와앙하고 한번에 먹어버리는 것이다. 그것들을 입 안에서 우물우물 씹으며, 잠시 달아오른 열기를 살짝 식혀본다. 천상의 맛이 스르륵 녹아 온 입으로 가득 스미듯이 퍼진다. 하지만, 이내 그것은 꿈이었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티스아흐는 아쉬움에 입맛을 쩝쩝 다신다.
▶ 벨의 별호가 심심한 감이 있는데, 더 멋진 이름이 생각나면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안전 장비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탈환 작전 도중 티스아흐는 혼자 적진에 뛰어들어 소규모 스파크멜트를 일으켰습니다. 쓰러진 티스아흐를 구출해온 것은 27인 중 하나인 천무월입니다.
자신조차 뭐라 설명해야 좋을지 모를 기분인지라, 겨우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다 먹었으니 슬슬 일어나야 하려나 싶은 찰나에, 유진이 입을 열었다.
"어, 어...? 다른 거?"
"땅커...."
"에, 으에-?"
정신 없이 돌아가는 티스아흐의 눈동자, 갑작스레 휙휙 급변하는 대화의 화제를 따라가지 못한다. 마치 봇물이라도 터진 것처럼 쏟아지는 유진의 말에 휩쓸려 정신이 아득하다. 완전히 떠내려가기 직전, 티스아흐는 간신히 고개를 휘휘 저었다. 정말 못 봐주겠네....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먼저 탁자를 양 손바닥으로 세게 내리쳤다. 그리곤 한껏 성난 이빨을 보이며, 잘 부탁한다는 유진의 면전에다 대고 돌연 소리를 치는 것이다.
"한 가지씩만 말하란 말야-! 너 때문에 헷갈리잖아, 멍청아!"
후 소리가 나게 짓는 한숨. 풀썩 앉아 스파크웨어인 팔로 턱을 괴곤, 유진이 아닌 다른 곳을 쳐다본다. 거긴 벽이다. 암튼 괜스레 치미는 부아 때문인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자신도 모르게 신경질적인 말투로 쏘아붙인다.
▶ 금서라고는 하지만 특수한 허가를 받으면 읽을 수 있습니다. 단, 도서관 밖으로 반출은 불가능합니다. ▶ 2명인 이유는 간단한데, 한 명이 쓰러지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은 등 자리를 비울 때를 대비한 겁니다. ▶ 소실 계파에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실체 없는 것과 관련된 마법이 속해 있습니다. 흔히 정령이라 불리는 것도 소실 계파로 들어갑니다. 이쪽은 나중에 12계파에 대한 설명을 한꺼번에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 얄랜즈는 3차 아스타니아 방어전에 참가했습니다. 전면으로 나서지는 않고 활을 주로 사용했으며, 인원 배치에도 관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