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모래알로 떡 해놓고 조약돌로 소반 지어 언니 오빠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이라고, 출근길에 놀이터에서 본 아이들이 노래했던 것 같기도 했다. 하루를 시작하는 노동요로는 참으로 시의 적절하기 짝이 없었는데, 오늘의 날씨는 정말로 참으로 실로 대단히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높은 가을하늘 아래 태양은 너무 뜨겁지 않게 딱 적당한 온도로 거리를 밝히고 있었고, 바다는 유리처럼 빛나며 피곤에 찌든 직장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게다가 시원한 바람도 솔솔 부는 것이 정말이지―
"놀러가고 싶다아―"
이런 말을 절로 나오게 하는 상황이었다. 안타깝게도 황금 같은 점심 시간은 이미 끝나 버렸고, 식후 커피까지 비워 버린지 오래였다. 아마 이맘때가 하루 중 제일 일이 눈에 안 들어오는 때 아닐까. 어찌 되었건 경찰도 사람이었고, 지금만큼은 그저 퇴근을 바라는 평범한 직장인 A일 뿐이었다. 그건 비단 케이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업무 만족도가 낮거나 한 건 아니고, 오히려 거의 최상에 가까웠다. 하지만 말이야, 사실 일하기 싫어하는 것까지도 전부 업무에 포함되어 있는 거란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고, 누가 물어보았다면 그녀는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요컨대, 괜히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아껴 마시면서 미루고 또 미루다 기지개 한 번 켜 주고 다시 하던 일을 손에 잡는 것까지 전부 한 세트라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이걸 성실하다고 해야 할지 불성실하다고 해야 할지.
그런데 오늘은 이 완벽한 날씨가 페이즈 3, 업무 모드로 돌아가기를 계속해서 방해하고 있었다. 그치만 각 잡고 집중하기에는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너무 새파란걸? 이런 자연광 아래서라면 막 찍어도 끝내주는 사진이 나올 터였다. 목 좋은 카페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시원한 음료수 한 잔... 생각만 해도 행복했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서 탕비실로 향했다. 냉수라도 한 잔 마시고 정신을 차릴 생각이었다. 탕비실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반갑게 말을 붙였다.
옥상에서 담배를 피며 느낀 점인데, 며칠 전까지는 소매가 조금이라도 긴 옷이라곤 엄두도 못낼 정도로 푹 찌고 더웠던 것 같더니 벌써 날씨가 선선하니 적당해졌다. 그 뿐만이랴? 가을하늘은 바다만큼 새파랗고, 태양은 따스하다. 난간에 기대며 저멀리 철썩이는 파도를 넋놓고 쳐다봤다. 바다도 어쩜 저렇게 예쁠까! 칙칙한 인생에서 이렇게 완벽한 날은 손에 꼽을 것이다. 아, 이런 상황을 방지하고자 출근 룩을 완벽하게 일하는 사람처럼 바꿨는데! 그는 다리를 흘끔 내려다봤다.
오늘은 셔츠에 슬랙스를 가볍게 입었다. 범인을 추격하느라 단추가 터졌던 기억 때문인지 셔츠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전 말했던 이유와 더불어 아침에 불었던 바람에 덜덜 떨며 일어나보니 지금이 아니면 입지 못할 것이란 예감이 강하게 들었던 것도 한 몫을 했던 것 같다. 이대로라먼 다음주부터는 코트를 입고 다니겠지! 그런데 느슨한 일상에 큰 긴장을 주었다 해도 일하기 싫은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젠 온 정신이 저기서 속도 모르고 철썩이는 바다에 쏠렸다. 사실 바다를 한번 정도는 보고 싶었다. 적당히 선선한 때, 적당히 시원하고 따뜻한 백사장을 걷고 싶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며 여운도 즐기고 싶다! 그는 한숨과 연기를 같이 뱉었다.
"아..일하기 싫다."
평소에도 일하기 싫었지만 오늘은 특히 더 싫다.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아무것도 안 했지만. 평소엔 그냥 그랬는데 지금은 시간 가는 걸 늘어져서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 반 하고도 조금 더 피운 담배를 비벼 끈 그는 휴대용 재떨이에 담배를 넣고 소맷단에 대충 꽂아둔 칫솔에 치약을 짰다. 이대로 들어가긴 싫고 담배 냄새 뺀다는 핑계로 양치 하고나서 미적미적 탕비실에서 냉수나 마시고 들어가야지. "어머, 자기야. 좋은 오후!"
느릿느릿 양치를 끝내고 탕비실에 들어와 한방울씩 물을 받아야 하나 고민하던 그는 결국 소파에 앉아 늘어지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은 대기근무지 않은가. 대기근무니까 이렇게 늘어져도 되는 거라고 자기합리화를 했다. 그런데 이 타이밍에, 정말 딱 좋게, 아주 좋게! 그의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은 케이시가 등장하지 않았는가. 눈치 빠른 그는 케이시의 어조와 이 타이밍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단박에 깨달았다. 자기 일하기 싫구나.
"그러게. 1층 말고 어디 카페라도 가서 쉬고 싶은데.."
그는 살살 돌렸다. 일하기 싫다는 의사를 두루뭉실하게 표현하곤, 배시시 웃었다. "자기 오늘 순찰 있어?" 하고 은근히 묻는게 그는 오늘 일하기 싫음 게이지를 꽉 채운게 분명하다. 대기근무나 순찰 좋다는게 뭔가. 사건 없으면 몰래 나가서 상황 본답시고 잠시 걷다 오는 거지.
당연히 케이시에게도 소파에 늘어져 있는 상대를 보고 무슨 상황인지 파악할 눈치 정도는 있었다. 이 시간대에 탕비실 소파를 차지한 사람 중 지금 당장 열심히 일하고 싶어 미칠 지경인 사람은 없다. 사실 이맘때 탕비실을 찾는 사람들의 목적은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너도? 나도!
"그치? 이런 날 바다 쪽으로 놀러나가면 딱인데!"
오늘 순찰 있냐는 질문에 부러 으음, 하고 고민하는 제스쳐를 취하다 이내 상큼하게 대답했다. 방금 생겼어! 이렇게 써먹으라고 만들어진 제도는 아니지만, 뭐 어떻단 말인가. 가끔은 농땡이도 쳐 줘야 일할 맛이 나는 법이다. 이건 전부 오늘 날씨가 지나치게 좋은 까닭이었다. 게다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도로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오늘 하루 정도는 괜찮잖아? 이렇게나 날이 맑은데! 이렇게나!!
"그럼, 어디 한번 나가 볼까? 열심히 일하러?"
일하기 싫어하는 것마저도 업무에 포함되는 것이라면, 농땡이 역시 결국 업무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그리고 생각해 보면 마침! 딱! 이렇게 좋은 날에! 바닷가에 있는 뷰 좋고 감성 좋은 카페에서 무슨 일이 터질 수도 있는 거잖아? 뼛속까지 글러먹은 생각이었으나, 기실 현대 사회의 직장인 대부분이 같은 꿈을 품고 있고 그녀는 그저 그걸 실행에 옮길 여건이 되었을 뿐이니, 너무 그녀를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