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보통은 식사하고 있을 시간이지만 그녀는 웬일로 오늘 카페에서 시간을 떼우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던건 아니고 식욕이 없어서 적당히 샌드위치와 음료로 식사겸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던겁니다.
살짝은 구석진 자리에서 주문한 샌드위치와 라떼를 기다리는 그녀. 그런 그녀의 눈에 당신이 들어왔습니다. 사람이 복작복작 했다면 못본척 지나갔겠지만 아무래도 너무 한산하네요..
"안녕하세요, 선배."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가 자연스레 인사를 하며 미소지었습니다. 카페에 커피라도 사러 온걸까요? 일단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그녀에게 당신은 꽤 인상깊게 남은 사람이었습니다. 외형도 그렇고 익스파도 상당히 특이하며. 큐브웨폰도 눈에 띄다보니 이야기는 안해봤어도 절로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었죠.
先輩. 무리에 앞서다. 어떤 분야에 있어서 자기보다 앞서 있는 사람을 뜻한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에게 있어서 '선배'라고 할 만한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경력면에서 선배가 되는걸까. 드물게도 조금 이르게 카페로 내려와 점심을 주문한 것이 선배인걸까. 아니면 죽음을 먼저 접한 부분이 선배인걸까. 그건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상식 바깥의 이야기 보다도, 자신이 아는 '선배'란,
"안녕하세요, 선배..."
이 땅, 대한민국에 먼저 살고있었으며 자신보다 3년을 먼저 태어나고 일찍이 경찰 일을 하고 있던 사람을 이를때에 쓰는 호칭이라고 생각했기에. 묘하게도 선배 소리에 선배로 응수하는 진풍경을 만들어 버리고만 것이었다. 유우카의 느릿하면서도 고요한 목소리가 안개처럼 흘러나왔다. 점심으로 바쁜 카페의 기세에도 지지않고서.
연우의 응수가 무색하게도 유우카는 진심으로 의문스러운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말하는 것이다.
"선배...였나요, 저...?"
어라. 후배가 생겼다는 얘기. 그런 얘기, 듣지 못했는데... 키로 보아도, 나이로 보아도, 그러니 자연스럽게 경력도 이쪽이 선배.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본에서도 변두리의 직장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선배가 된 것은 거의 몇년씩이나 지난 뒤의 이야기였다. 한국에선 이리도 빠르게 후배가 생기는구나. 과연 신속의 나라, 라고 생각하고 있던 유우카가 연우의 말에 "네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많이 먹지를 못해서... 자주, 신세지고 있어요..."
에스프레소에 샌드위치 하나면 배가 가득 차버리는 몸이다. 살지 않았으니 식(食)이 필요 없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니라 먹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선배였냐고 묻는 말에 이건 당황한걸까? 아니면 분위기 좋게 장난치는걸까? 하고 의문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으음 아직 성격까진 파악된게 아니니 섵불리 말할 순 없습니다.
"이곳에선 경력이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근무만 오래했다뿐 실적이 높은것도 계급이 높은것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다들 선배님이란겁니다. 그녀는 참신한 소리를 설득력있게 했습니다. 그 태연하기 짝이없는 표정이 오히려 설득력을 부풀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튼 그녀는 성실한 사람이란 평가는 따라붙지만, 실적은 그리 많지않고 계급도 몇년동안 진급도 얼마 안한 사람이긴 했으니까요. 그렇기에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다가 곧 샌드위치와 커피가 나왔다는 진동벨의 알람에 사뿐사뿐 픽업대로 걸어가 트레이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고보니 어떤 샌드위치 시키셨어요?"
상당히 소식하는구나. 그녀는 당신의 말에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몸이 큰편도 아닌거 같고.. 그래도 현장에선 상당히 앞선이었던 기억이 있지만..
연우의 얼핏 설득력 있는 말에 유우카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있었다. 그 잠깐동안이나 그러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도 같다가도 아예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도 보여 상대가 답답하게 느껴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마도 그렇게 되기 직전, 그 끝에 이렇게 조용히 입을 여는 것이었다.
"그럼... 연우씨가, 선배여도...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러고서는 다시 연우쪽에게로 시선을 준다. 훤히 뜨였으면서도 생기란 없고 흐릿하게 번져있는 눈망울이 -아마도 다녀왔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저는, 햄에그..."
클래식하지만 이쪽 카페의 햄에그 샌드위치는 계란이 특히 달고 두툼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이른바 스테디셀러와 같은 물건이였다. 다만 유우카는 어차피 다 먹지 못하는 바람에 의미 없는 메리트가 되었지만. 덕에 그녀의 햄에그는 일반적인, 혹은 더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져 있는 주문 된 샌드위치였다.
"좋아해서요... 토마토도 넣은 걸로..."
사소하지만 확고한 취향이다. 썰어놓은 샌드위치를 포크로 가져가 그 작은 입에 넣고는 오물오물 삼킨다.
사실 호칭이야 어찌되든 상관없는게 그녀의 기본 스탠스였습니다만. 뭔가 요근래 그냥 이게 재밌어서 말도 안되는 논리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뭔가 당신의 느릿한 움직임이라거나. 작은 행동들이 뭔가를 떠올리게 하고 있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어디서... 본듯한 느낌인데.
"햄에그인가요. 나중에 한번 먹어볼게 생겼네요."
어차피 뭐든지 가리지않고 먹는 그녀였지만, 그래도 겉치레 답해주고 자신의 샌드위치를 확인한 그녀였습니다.
"저는 BLT에요, 뭔가 기억에 남는 샌드위치거든요."
어렸을때 BLT가 대체 무슨 약자일까 처음보자마자 고민했던 메뉴라 기억에 박혀있다고. 그녀는 부연 설명을 하면서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당신의 샌드위치를 시야에 넣었습니다. 보통것보다 조금 작은듯한 느낌이네요. 카페 직원분한테 따로 부탁한걸까요 아니면 저 메뉴는 원래 좀 작게 나오는걸까요..
"...."
토마토 이야기와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당신은 묘한 익숙함에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오물오물거리는 모습이 뭔가 어디서..
자신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은 각각이 다 다른법이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힘든 일이 많아질텐데 벌써부터 약해지는 마음을 가지면 곤란하다, 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지치는 것을 막을 방도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 회복을 어떻게 하느냐의 차이일뿐. 사실 이렇게 털어놓기만 해도 괜찮아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쉽사리 할 수 없는게 아쉬울 따름이다.
" 상관으로써는 그런 사람이 훨씬 나으려나요. 사실 주기적인 멘탈케어가 정부 차원에서 필요하다곤 생각이 들지만요. "
두번의 사건으로 경험해봤을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할 것 같았다. 우리들이 실수하면 대량의 사상자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 너무나도 막중한 책임감이 쏠려버리기 때문이다. 전쟁터의 군인이나 작전에 다녀오는 특수부대원들처럼 우리에게도 그런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기까지 요구하기엔 아직까지 실적이 너무 적은게 아닐까.
" 팀에 와서 꼭 만나야하는 사람이 있어서 무르기는 힘들 것 같네요. "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이는 다른 이를 지키지 못한다라 ... 너무 정석적인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걸 잘 알고 있었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나 자신을 버려가면서까지 남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겐 좀 실례가 아닐까 싶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을테니. 뒷말에 대해서는 구태여 답을 하지는 않았다.
" 그렇기에 우리의 어깨가 더욱 무거운 것도 있겠네요. 신이라 ... 저희 보육원이 가톨릭 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어서 어릴때는 믿었는데, 지금은 딱히 믿지 않네요. 신이란 존재가 있다면 취향이 상당히 고약하시지 않을런지. "
갑자기 그런건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네. 신이라 ... 하지만 최근 잇달은 두건의 사건에서 용의자 모두가 신을 부르짖었다. 약간의 광신적인 측면에서 봤을때 우리가 아는 흔한 종교는 아닌것 같은데. 마치 우리가 모르는 신흥 종교가 익스퍼들 사이에서 짙게 퍼져나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당시엔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소라의 물음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긴 하네.
" 그러고보니 최근 사건에서 둘 다 신을 언급했네요. 어느 신인지는 모르겠지만 능력 하나는 좋으신것 같네요. 교주의 말빨이 좋다던가? "
그렇게까지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다면 정말 세뇌수준이 아닐까 싶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렇게 힘이 주어진다고해도 하기 힘든 일을 그 사람들은 망설이지 않고 해버렸으니. 판단력이 흐려지는 수준이 말도 안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