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흐리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지만, 구름이 가득 껴서 하늘이 회색빛이고 집에만 있기 뭐해서 밖으로 나온 의미가 퇴색되어버리는 느낌이다. 큰 사건이 있고서 맞은 비번날인만큼 아무것도 안하고 쉬려고 했지만 집안일이라는게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는다.
' 기왕 나온거 마트나 들렀다가 갈까. '
하늘색 머리와 붉은색 눈이라는 너무 눈에 띄는 얼굴이라 가면을 쓰고 다녔지만, 오늘은 비니를 눌러쓰고 알없는 안경을 써서 어느정도 인상을 무마시킨다. 가면은 경찰복을 입고 있을때 쓰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그렇게 길거리를 걸어다니던중 시선 끝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근무표에서 오늘 같이 비번이던 사람이 몇 있었는데 ...
" 안녕하세요? "
빠른걸음으로 다가가서 놀라지 않게 적당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일할때와 다른 복장은 그녀에게서 신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굳이 오늘이 아니더라도 마트에 갈 수 있는 날은 많았지만. 하지만 평소와 같은 미소는 없는 표정이라 낯선 기분이 들기도 했다. 역시 회사와 일상은 다른 법이라는 사람들의 말은 틀린게 없는듯하다. 많은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회사에서의 표정을 일상에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을테니까.
" 요 근래 바쁘긴 했으니까요. 이것저것 일도 많았고. "
경찰이 되기로 결심했을땐 정말 사명감에 넘치고 있었지만 경찰이 된지도 꽤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는 조금의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거기다가 일반적인 경찰이 아닌 대 익스퍼팀에 들어오고 큰 사건을 벌써 두개나 겪었다보니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도 사실이고. 정부의 입장도 이해는 가고 있었지만 한편으론 아직 시기상조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 이 근처에 공원이 있던데 괜찮으면 같이 가시겠어요? 호수공원이라 생각없이 앉아있기 괜찮더라구요. "
나조차도 자주 가는 곳은 아니지만, 바람 쐬러 간다면 이런 사람 많은 길거리보단 차라리 그런 곳이 나을지도 모른다.
대형마트? 대형마트란건 마트랑은 또 다른걸까요? 그녀는 눈을 가늘게뜨고 뜬금없이 마트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밖에서 나와서야 안건데 그녀는 평소에 잔 움직임이 많나봅니다. 몸이 갸웃거린다거나,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알수없는 살랑거림이 많았습니나. 일할때는 의도적으로 주의하고 있는거려나요.
"자주 가시나봐요."
나중에 아주머님한테 데려다 달라고 해볼까. 그녀는 대형마트에 대해 인풋해놓고 눈을 깜박이며 또 다시 고개를 좌우로 추마냥 살짝 흔들었습니다.
"그러면.."
원래라면 적당히 거절했을터. 그러나 그녀는 무슨 변덕인지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이고 스스슥 바닥을 미끄러지듯 움직여 당신의 사선 뒤쪽에 섰습니다. 뭐 그냥 보폭이 좁아서 그렇게 보인거 뿐이지만요.
경찰이 되기로 결심한 것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역시 공무원이라는 이유도 크게 작용했다. 흔히 말하는 철밥통, 엄한 짓만 하지 않으면 절대 잘리지 않는다는 그 안정성은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큰 메리트였다. 거기에 청해시로 오면서 주거용 오피스텔도 지원금을 받아서 들어왔으니 보육원을 나오면서 독립자금만 받은 나에겐 단비와도 같았다.
" 산책하는걸 즐기거나 하는게 아니면 가볼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네요. "
외진 곳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흔히 다니는 동선에 있는 곳은 아니라 알기는 힘든 곳이었다. 그래도 막상 가면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했지만.
" 제 옆에 서시는게 좋지 않을까요? "
공원으로 가려다가 내 뒤쪽에 서는 그녀를 보고 말했다. 물론 두명이 나란히 가면 길을 막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여기 길이 넓어서 그럴 걱정은 없어보였다. 그래도 어디에 서든 그녀 마음이니까 한번 권하는 것으로 끝내고 어깨를 한번 으쓱해보인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편은 아니란걸까. 저번에 동생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녀는 답지않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가는 너무 깊게 관여하지 말자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가 떴습니다. 괜히 참견해봐야 저쪽도 달갑지 않을테니까요.
"아.. 하긴, 저 집에만 있으니까요."
보통 집에서 공부를 하거나. 정말 가끔 친구를 만나거나. 그 외에는 어머니 곁에 있는게 전부였던 그녀입니다. 사실 공원만 아니라 가는곳 아니면 다 모른다고 봐도 됩니다. 완벽하게 모른다기보단 그냥 순찰 다니면서 여기에 이게 있다는 알지만. 그것이 특정 장소로서 기억되는게 아니라고나 할까요.
"옆이 편하신가요?"
상대는 그런 의미로 말한게 아니겠지만, 그녀는 잘 모르므로 살랑 살랑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본가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쉬는날엔 집에만 있는게 가장 좋은게 아닐까 싶어요. 서에서 순찰 갈때마다 바깥은 많이 보니까. "
친구들은 다 서울에 있어서 만나러가는 것도 일이다. 비번날에 서울에 다녀오려면 아침과 저녁을 꼬박 희생해야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느낌이라 휴가가 주어졌을때나 갈 수 있었다. 그래도 항상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어제도 만났다는듯이 살갑게 대해줘서 즐겁게 놀다오는 편이다.
" 본가가 근처라니 그건 부럽네요. "
본가라고 할만한게 나한테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성인이 된 시점부터 보육원은 집이 아니니까.
" 지금도 자취하고 있는걸요? 사실 보육원에서 자라서, 따로 본가 같은건 없어요. "
예전에는 그 사실이 부끄러워서 숨기기도 했지만 이젠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다. 내가 창피하게 여긴다면 밑의 동생들도 마찬가지로 창피하게 여길 것이고, 힘들게 우리를 돌봐주셨던 원장님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정적인게 좋을때도 있는 법이다. 원래 사람이란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 부러움을 느끼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게 좀 덜한 편이긴 하지만, 그건 내 감정선의 한계라 어쩔 수 없다.
"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죄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저도 아이들한테 항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항상 강조하니까요. "
그저 자라온 환경만이 다를 뿐이고 독립하면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다 똑같은데, 심지어 부모가 멀쩡히 계셔도 우리보다 못한 사람도 존재하는데 우리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당당해져야지 사람들의 인식도 바뀔테니까. 그녀가 무안하지 않게 웃으면서 얘기한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 혼자 살아요. 스무살때부터 쭉 혼자 살았는걸요. "
셰어하우스 같은 것도 생각해봤지만 적어도 쉴때는 혼자인게 좋았다. 남 때문에 시끄럽고 그런건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했고.
" 저는 따뜻한 차 종류로 부탁드려요. 음 ... 유자차? "
커피는 평소에도 많이 마시니까 오늘만큼은 안마시는게 좋겠다. 카페인은 많이 먹어봤자 좋을 것도 없고 ... 이미 몸의 절반이 카페인으로 이루어져있는 느낌이라 여기서 더 들어가는건 별로다. 주문을 넣고 기다리면서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 근데 사복차림은 감회가 새롭네요. 평소에도 이렇게 입고 다니시는건가요? "
팀원들이 제복이 아니라 다른 옷을 입고 다니는걸 보는건 감회가 새로웠다. 다들 비슷한 경찰복을 입고서 근무하니까, 각각의 개성이 담긴 사복을 보는건 뭐랄까, 다시 보인다고 해야할까?
그녀는 자신이 활동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그런가? 싶기도 했기에 쉽사리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밖에 나가는걸 싫어하는건 아닌데. 참~ 애매하네요.
"...."
부끄러운게 아니다라. 그녀는 그 말을 속으로 되내이다가 멋진 마인드라고 미소지은뒤 직원에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습니다. 뒤이어 유자차도 주문을 넣고 잠시 기다리면서 혼자 사는게 어떤 기분일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편한건 없나요?"
장도 봐야하고 밥도 해야하고, 청소도 해야하고. 그녀는 하루가 바쁠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쉬는날에도 쉬기 힘든거 아닌가.. 하고 중얼거리기도 했죠.
"내 대체로 이렇게 입기는한데, 이상한가요..?"
가디건에 셔츠, 바지. 아니면 원피스. 이런 느낌이기에 확실히 제복과는 많이 다르긴 했습니다. 그녀는 당신의 질문에 뭔가 별로인가.. 싶어서 자신의 옷깃을 슬쩍 들면서 살폈습니다.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거나 한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그녀도 여성이므로 패션에 신경이 쓰이는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