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날 게이트를 공략하기 위해 대구에 들린 적 있어. 그곳의 게이트는 언데드가 컨셉이었던 모양인데 파티에 위관급 가디언 셋이 포함되어선 생각 이상으로 게이트를 빠르게 공략해나갔지. 그러다가 게이트의 보스를 마주하게 되었는데 보스가 좀비였던 거 있지? 좀비가 왕관을 쓴 채로 근엄하게 왕좌에 앉아있는 거야. 그 장면을 보곤 웃음이 나와서 경배하듯 손을 들어올리고 말했지.
조심스럽고 다정한 표정을 쓰고 있는 지한은 흐릿한 편에 속하는 인상이긴 했지만.. 아이에게 어느 정도의 신뢰감을 주었던 듯. 아이가 입을 열기 시작합니다. 인형을 꼭 안고 있다거나. 고개를 숙였다가 드는 등 망설임은 있었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지요. 의념 각성자라서 부드럽게 한 쪽 무릎을 꿇은 자세를 오래 유지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랬구나." 그런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아이의 어머니와 아이를 번갈아 보며 그들의 껴안음. 즉 이해를 잠깐 보며 물을 홀짝입니다. 말을 너무 많이 했어.. 라는 생각에서? (잠깐의 해후 끝에) 그.. 뭐라고 해야하지. 저는 그렇게 친절하지도 다정하지도 않은 사람인데. 이런 감사를 받기에는 매우 곤란한데요. 같은 생각을 하던 지한은 그래도 겉으로 표현해내지는 않는 것에 성공합니다. 사실 경찰서에 들어온 뒤로 일어난 일들은 지한의 예상에서 벗어난 일이 대다수였으니까요.
"일반적으로 물어볼 것을 물어본 것 뿐이지만. 감사하다고 한다면 받을 수 밖에 없네요." 부모 실격이라는 말에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말을 고릅니다. 그리고는 연희에게도 한 말씀.. 이라는 듯한 눈을 흘깃 쳐다보네요.
그야 지한이 말을 골라도 부모 실격인 것은 맞지만 많은 부모들은 자신이 실격인 줄도 모르기 때문에 실격인 걸 깨달으면 어쩌구 정도의 말 밖에 안 나올 거니까요. 그리고 지한은 다행스럽게도 그런 말이 묘하게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든다는 것 정도는 알아요..
"그러면...뭔가 사례라도..." "아, 그건 됬어요. 딱히 뭔가 보상을 바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정말로 그렇다. 이건 의뢰도 아니였을 뿐더러 자신이 하고싶어서 한 것이다. 자신이 무언가를 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가요."
수긍하는 듯 여성은 고개를 끄덕이곤 작별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런 광경을 천천히 바라보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 다가와 커다란 인형을 건넸다. 응? 나 주려고? 하지만 이건... 아이의 어머니도 그걸 보더니, 의도를 깨달은 듯 했다.
"괜찮은거야? 비싸보이는데..."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어머니쪽을 바라봤지만 받아도 괜찮다는 눈치였다. ...여기선 거절하는게 오히려 아이에게 좋지않으려나...마지못해 손을 뻗어 인형을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우왓, 역시 커다란데. 전혀 무겁지는 않지만. 선물을 받자 아이는 그제서야 가족의 곁으로 가 길을 걸었다. 이번엔, 제대로 손을 잡고서 걷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잊었던 것이 떠오른다.
"어...응. 여러가지로 민폐를 끼쳤네..."
한 손에는 인형을 든채로 볼을 긁적인다. 결과가 좋긴 했지만, 그 자리에 우연히 만난 동창이 없었다면 경찰서에서 같이 있지않았다면. 일이 더 커졌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는 편이었다.
사례를 말하는 것에 지한 또한 괜찮다는 표현을 했을 겁니다. 아이가 인형을 연희에게 건네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제 인형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형의 추억을 건넬 수 있는 걸까.. 알기 어려운 일입니다.
"폐..는 아니었습니다." 모른 척 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으나. 다가간 것은 엄연히 저의 선택에 의한 것이므로..(이하생략) 을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리고 인형을 보다가 연희 씨가 인형을 안고 있는 것도 어울리는군요. 라는 말을 건넵니다. 지한이 안고 있어도 어울렸겠지만 지한의 취향은 아니었을 듯.
"아이와 어머니가 같이 가는 게 잘 해결되어서 다행입니다." 아이와 어머니가 걸어나가는 것을 보며 연희에게 말을 건네며 저희도 이만 나가죠. 라고 말하려 하네요. 경찰분들도 흐뭇하게 보던 걸 멈추고 업무로 복귀하려나요.
모르는 척 넘어갔다면 저기! 도와줄 수 있을까! 같은 상황으로 넘어갔을지 조금 궁금해지는 게 있지만 이건 뒷사람의 쓸데없는 호기심이므로.. 지한은 어울린다고? 라는 말에 연희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네요. 안타깝게도 지한은 연희와 10센치는 차이나니까요. 게다가 오늘 신은 신발도 굽은 거의 없는 거였고.
"네. 어울립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사실 그런 쪽 미학이 부족하지 않아서 그게 은근히 설득력은 있...나?(그 부족하지 않음을 이해시키는 데에 더 큰 설득력이 필요하기에 그냥 넘어갑시다)
"그렇..네?" 이름을 묻는 말을 하는 것은 입모양의 통성명이 부족했다..는 생각이었을까요? 오해일지도 모르지만. 지한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저는 신지한이라고 합니다. 연희 씨.' 라고 통성명을 하면서 악수를 한 다음, 경찰서 문을 열고 같이 나갔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