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날 게이트를 공략하기 위해 대구에 들린 적 있어. 그곳의 게이트는 언데드가 컨셉이었던 모양인데 파티에 위관급 가디언 셋이 포함되어선 생각 이상으로 게이트를 빠르게 공략해나갔지. 그러다가 게이트의 보스를 마주하게 되었는데 보스가 좀비였던 거 있지? 좀비가 왕관을 쓴 채로 근엄하게 왕좌에 앉아있는 거야. 그 장면을 보곤 웃음이 나와서 경배하듯 손을 들어올리고 말했지.
화창한 날씨다. 하늘에는 한점의 구름도 없어 맑고 적당하다. 사람들또한 오늘만큼은 다들 편안한 마음으로 일과를 시작하겠지. 지금은 그저 적당한 곳에서 끼니를 때우고 다음 할 일을 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수많은 인파속에서 홀로 서있는 아이를 봤다. 처음에는 부모를 기다리고 있나-하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가려 했다. ...도저히 신경이 쓰여서 그러지 못했지만,
"...야,"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여자 아이가 이쪽을 바라봤다. 멀리서 봤을 때도 엄청 커다란 인형을 들고있구나 했건만. 곰인형이었나. 나잇대답구만. ...솔직히 귀엽긴 하지만. 들고다니기엔 부담스러운 크기가 아닌가싶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자.
"무슨 일이 있던건데? 나한테 애기해봐."
도대체가 말야. 부모는 어디서 뭘하고 있길래 아이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거냐고? ...어라? 조금 울려고 하고 있지않아? 어라-? 아차...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걸 보고 놀랐을지도. 으음. 어떡하면 좋지...아, 뭡니까. 거기 지나가는 사람 쳐다보지마시고 그냥 가시죠.
수련도 했고, 수업도 들어야 하지만... 나중에 듣지요. 지한은 이 수업을 복습하지 않았던 걸 태호와 함께 뼈저리게 후회하게 되지만 그건 나중의 일. 수많은 인파가 움직이는 것이 마치 커다란 강물이 흘러가는 듯한 물결이 보이는 것처럼 일렁거리는 것에 피로감을 느껴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면 명백히 이질적인 소리가 들립니다.
"우는 소린데요.." 그것도 어린애. 라고 생각하면서 그 쪽으로 물살을 거슬러올라가는 것처럼 사람들의 소리를 헤쳐나가면 갈색 머리카락의 여성과 아이가 보입니다. 주위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보는 데에 무리는 없었고.. 특별반 입학식에서 본 것 같은 사람입니다.(*특별반 입학식은 전원 참석했다는 걸 들었음)
"길을 잃어버렸나요?" 아이에게 고개를 숙여 나름 다정하게 말해보는 지한입니다. 지한의 눈매나 외형은 우는 아이를 진정시키기엔 괜찮은 느낌이니까요. 섬세한 속눈썹이 살짝 처진 눈매로 아이를 달래듯 말하고는 말없이 진정하는 걸 기다리는 동안 연희를 흘깃 보고는 특별반이죠? 라고 입모양으로 물어보려 하네요.
누군가가 다가온다. 머리카락은 특이한 것이, 흑색이였지만 끄뜨머리가 하얗게 점차 물들여져 있는 것이다. 별개로 풍기는 분위기는 편안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 여성이 아이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태도또한, 자신과는 다르게 어느정도 요령이 있었다. 요령이랄까, 그저 다가와서 남들에게 하듯이 뭘하고 있냐 물어보던 나와는 다르게 달래는 모습이 놀라웠달까. 나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 특별반이었나.'
나는 전혀 몰랐지만 상대방은 자신에 대해서 알고있던 모양이다. 입학식이야 하긴 했었지만, 딱히 주변 얼굴을 기억하진 않았는데 말이지. 아이는 조금 진정했는지 눈물을 뚝 멈추곤 힘겹게 길을 잃었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여 긍정한다.
"너 굉장하네.."
순수한 감탄사였다. 진정시키기는 커녕 울려버렸는데, 이 사람은 한번 말을 걸자마자 달라졌다.
아마 머리카락을 자른다면 흰 부분이 사라지겠지만. 머리카락이 더 긴다고 해서 흰 부분이 늘어나지도 않겠지요. 언뜻 본 것 같은 느낌이라서요. 라는 말을 입모양으로 천천히 말하머 아이를 마저 달랩니다. 입모양으로 대충 통성명도 했을 듯.
"굉장하다고 하기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좀 진정하자. 연희가 하는 말에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부인합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아이를 울리신 건가요. 라고 물어오는 목소리는 느릿했지만 아이는 아직도 좀 무서워하는 것처럼 눈을 피하고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언니는 언니의 일행이에요." "정말이에요. 그렇죠?" 최소한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여자아이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려 합니다. 눈치를 주는 듯 힐끗 바라봅니다. 길을 잃어버렸으니. 경찰서로 가는 거에요. 라고 말하려 하네요. 그치만 이 근처에 경찰서가 조금 걸어야 하는 거리에 있으니. 가벼운 음료수라도 먹이고 데려가는 게 좋으려나.
"아-응...뭐...보다시피 인상이 썩 좋은 편은 아니라서," 자각은 하고있는 편이다. 게다가 자주 얼굴을 찡그리는 편이라 오해를 산다.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은 타이밍이 좋았다. 나 혼자였음 울음을 그치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혹여나 주변에서 오해하고 이쪽을 나쁘게 바라보고 일이 커졌을지도 모르니까, 응. 정말 다행이구만.
"그으..래. 같은 학교 동창이니까 말이지."
방금 안 사실이지만 말이야. 거짓말은 하지않았다. 그 말에 아이는 동창의 얼굴을 바라보곤, 다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찡그리지않는다...찡그리지마라...휴, 또 울상이 되진 않았다. 뭐 이럴땐 상식적으로 행동하는게 좋겠지. 경찰서로 가도록 할까... 정말이지. 나도 너무 생각없이 아이에게 다가갔다. 이럴때만은 머리가 냉정하게 돌아가지않았다.
"그렇게 저도 인상이 좋다고 하긴 그러니까요." 거짓말은 아닌데 그렇다고 안 좋은 것도 아닌데.. 지금 연희 앞에서 그런 말을 하기엔 기만이라고 보일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그 얘기는 지한은 그만뒀고. 아이를 조금 더 진정시키고. 경찰서로 데려가려고 하려면..
"그렇죠.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까요?" 연희의 말에 맞장구치듯이 말하며 연희에게 조금 가까이 섭니다. 팔짱이나 손을 잡는 건 지한에게는 아직 레벨이 부족하고요. 그래도 같은 일행이라는 신뢰성을 주려면 가까이는 서야 하니까요.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나요? 라고 물어보는 지한입니다. 헌팅 네트워크 쪽에서 지도를 검색하면 경찰서의 위치가 보일 거라고 생각해서..
"경찰서를 한번 검색해주실 수 있나요?" 연희에게 물어봅니다. 자판기에서 음료수 라는 말을 꽤 진정되었는지 하는 여자아이의 손을 붙잡은 지한입니다.
하하하, 농담도. 그러면 나는 얼마나 안좋은거야? ..라는 걸 굳이 입밖으로 내진 않는다. 지금은 아이가 있으니깐. 사실 인상은 그리 신경쓰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헌터 사회에선 첫인상으로 사람 판단하면 큰일나니까 말야. 겁나게 잘생긴 사람들이 실은 연쇄살인마라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해선 안된다. 물론 아이들은 예외다. 그런 것을 구분하기엔 아직 너무 순수하니까.
그런 의미에서지만 저 여성은 인상도 좋은 편인데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첫인상은 좋다고 할 수 있다. 말없이 아이의 손을 잡았는데도 별다른 저항은 없었으니까, 나는 그걸 보며 양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핸드폰을 꺼내 경찰서를 검색하기 위해서였다.
하긴.. 헌터 사회에서 첫인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능력과 인맥이 좀 더 비중을 두게 되는 것으로 옮겨가는 게 아닐까요. 갑질하는 헌터도 있을 거고.. 그런 면에서는 지한이나. 연희나. 매우 뛰어난 능력으로 경계받기엔 충분합니다. 아이야 그런 사정은 모르니까 첫인상으로 판단했겠지만.
"자. 그러면 다녀올까요? 바로 저기 있네요." gp를 넣고 음료수를 뽑아주는 게 바로 근처에서 보여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연희가 검색할 무렵에는 곁으로 돌아왔고요.
"그런가요? 어디 대중교통을 타고 가야 할 거리였다면 힘들었을 텐데요." 고개를 끄덕이며 뭘 좋아할 지 몰라서 이온음료로 사왔어요. 라고 말하면서 아이에게 여아에게 인기인 애니메이션 그림이 그려진 음료수를 쥐여준 지한이 연희에게 이온음료를 내밉니다. 본인 건.. 없네요. 딱히 목마르진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이는 애니메이션 등장인물이 그려진 음료수를 마시며 달달하고 맛있는 것에 표정이 풀립니다. 눈물자국을 물티슈로 살짝 닦아주고는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그런가요.." 공평하다는 말에 맞다고 긍정하고는 받습니다. 그것을 부담스러워한다면 그걸 존중하는 겁니다. 길잃음이나 길치라... 불행히도 그런 일이 가끔 일어나는 게 세상이지만(ex:게이트 터졌으여!, 수많은 사람들의 인파에 휩쓸려 떨어져버림, 졸아버려서 내릴 곳을 까먹음 등등등) 적어도 이 셋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입니다. 의념 각성자고, 걸어서 갈 정도니까요.
"미아를..데려왔으니까요.. 들어가야 하는 거 맞지요.." 길을 잃었으니까 미아 맞지.. 경찰서에 들어가야죠. 그치만 어쩐지 미묘하게 들어가기엔 거부감이 있는 건. 지한이 그런 곳에 들어갈 일이 적었던 거나. UHN에 등록하지 않았다면 가출소녀였다는 것도 영향이 있을지도.
경찰서와는 인연이라고 해야할까... 초등학교때 의념을 각성한 줄도 모르고 친구를 크게 다치게 만들어서, 그와 관련된 일로 부모와 함께 찾아갔던 적이 있다. 뭐어 친구에게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같은 건 없었으니 정말 천만다행이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쪽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의 어머니였었다. 먼저 경찰서에 가서 아이를 찾으려하던 모양이다. 정말 다행이라며 안심하는 순간, 부모의 기색이 조금 이상하단 걸 깨달았다.
"정말이지 도대체 어디로 갔던 거니? 항상 틈만 나면 딴 길로 새고...!"
그건 걱정한다기보단, 어쩐지 화를 내는듯한 태도였다. 아무래도 평소에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났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꾸중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부모의 말을 듣는 아이의 모습도 익숙한 듯 하였다. 하지만...그렇게, 고개를 푹 숙이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있게 만들면 안되잖아. 아이의 표정이 보이지않는거야?
"...저기요. 먼저 멀쩡한지 확인해야하는거 아닌가요?"
상대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다. 그렇기에 예의상 존댓말을 한다. 물론, 상대에 대한 '존중'을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저희가 경찰서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줘서 다행이지. 무방비한 아이에게 누군가 해를 끼쳤어도 그런 말이 나왔을까 싶네요."
최근에는 뉴스에서도 범죄율이 올라가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 그런만큼 더더욱 아이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런데..어째서, 이 부모라는 사람은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는거지? 내 말을 들은 여성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되려 화를 내는듯 하였다.
"...아이를 찾아주신건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지 말아주셨으면 하는데요."
하아? 남의 가정사? 그러니까 아이의 표정이 안 보이는거야? 지금도 저렇게 어깨를 움츠리고 있잖아? 무슨 말을...하는거야 이 사람..?
경찰서에 가본 적 있음에도 경찰서. 하면 조금 평범한 사람처럼 별로 갈 일이 없는 듯 행동하는 지한입니다. 경찰서로 들어가자.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부르는 것이 들립니다. 다행이라 생각하고 인도하면 이대로 끝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를 나무라는 것에 연희 양이 조금 끼어들 것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아이의 표정이 매우 어둡고 낮은 소리처럼 들리는 것 같았지만.
"연희 씨?" 글쎄. 지한의 속에서는 약간의 냉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 자체는 이해했으나. 끼어들기에 애매합니다. 연희 양이 끼어든 이상 말리긴 하겠지만.. 조심하도록 합시다.
"화가 나신 건 이해합니다만.." 지한은 둘의 사이로 살짝 끼어들어 둘 사이에 거리감을 주려 합니다. 화가 나신 것..이라는 말은 연희에게도, 아이의 어머니에게도 해당되는 중립적인 말이었을까요. 가정사에 참견말라는 것은 지한도 좋아하지 않는 말이지만.
마음속에선 점점 불이 붙으려 하자,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그건 머리카락이 조금 특이한 여성. 불과 방금전까지 같이 아이를 도와준 학교 동창이다. 나와는 다르게,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나와 아이의 부모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아 진짜...또 이런다...알고 있다. 저쪽의 일은 저쪽의 일이다. 이쪽이 참견할 건 없다. 무엇보다, 장소가 나빴다. 경찰서에서 이런 일을 저지르면 경찰들만 피곤해지겠지.
...머리를 식히자. 항상 하던 것처럼, 참는 것이다. 아버지또한 화를 낼 때를 아셔야한다고 하셨다. 지금의 내가 화를 낸 타이밍은, 그다지 좋지않았다. 꾸중이 끝난 뒤에 슬쩍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그것을, 난 아이의 얼굴을 보고 참지못하여 끼어들었다.
"...미안합니다."
내키진 않지만 사과를 한다. 이건 아이의 부모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며, 동시에 이 자리에 민폐를 끼친 사람들에게 하는 사과이기도 했다.
"아,아뇨...딱히 그쪽이 미안할만할 일은 없으니까요..."
상대방도 머리를 식혔는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답하였다. 아이의 표정은 조금전이랑 여전히 다를바가 없었다...
"가볍게 물이라도 마시는 것도 좋겠네요." 정수기가 어디 있나요? 라고 물어보며 아이의 어머니에게도 물을 건넵니다. 미안하다거나. 괜찮습니다.나.. 그런 말을 들으며 진정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일의 발발에 대한 원인은 건재하고, 해결이 된 게 아니니까요. 아이를 힐끔 쳐다보았습다.
좀 당혹스러운 상황이 지나가고 나서, 지한은 어떻게 이들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히 있는 것이나. 아마도 표정을 보고 끼어든 듯한 연희 씨라던가..
"얘. 너는 어째서 길을 잃어버렸던 거니..?" 지금 들려오는 말로는 자주 그런 것 같아서. 아이의 손을 잡고는 다정스러움을 꾸며내어 물어보려 합니다. 지한으로써는 매우매우 최선을 다한 다정스러움이지만 묘하게 딱딱해보이는 감도 없잖아 있었을지도.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돌아다니는 것이라면 꾸중을 들을 만한 일이긴 합니다. 사실.. 긍정-부정보다는 부정-긍정이 효과가 좋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물을 마시며, 아이의 어머니는 진정을 되찾았다. 도대체 아이가 매번 미아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그건 분명히 있다. '그냥'이라는 이유는 없다. 아이에게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한은 그것을 최대한 다정하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순순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엄마는 항상 날 챙겨주니까...언제나, 힘들어보이는데도 집에서도 밖에서도 아빠의 몪까지 나를 위해서 힘내주니까,"
그....건, 아이의 아버지는...지레짐작이라고 생각하고싶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이 가정의 가장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혼자서 힘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내가 잠시라도 사라지면...엄마가 편해지지않을까 싶어서..."
ㅡ그런가. 어째서 아이의 얼굴이 그리 우울했었는지, 나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꾸중을 들어서가 아니라...아이는 걱정했던 것이다. 다시 자신때매 어머니가 힘들어질까봐. 아이다운 걱정이다. 그렇다고 해도 곁을 떠나는 것은 조금, 아니 엄청나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너...그런 생각을 했었니...?"
정말로, 처음 들었다는 듯이 아이의 엄마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모르게, 아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점과 어쩌면 그 생각을 가지게된 것이 자신 때문은 아닐까라는 후회가 섞인, 표정이었다. 어떤 말을 해야할까. 고민하는 듯 했다. ...어머니가 한 것은 '말'이 아닌, 행동이였다. 조심히 아이를 안아주었다. 그것이 정답이였는진 모른다. 그래도 그건, 최선이었다. 잠시간 모녀간의 포옹은 계속되었다.
(잠시 후)
"그...정말로 실례했습니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존중'과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여 사과하였다. 지금은 그러고 싶었다. 사과해야만 하는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그쪽이 미안해할 일은 없다고 했는데...그래도,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상대방도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한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난듯 누군가에게 다가간다. 그건, 말다툼이 일어날뻔 한걸 말려준 사람.
"방금 전은, 정말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조금, 딸에 대해서 안 것 같아요..."
자신에게 했던 것보다, 더욱더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아이가 그런 생각을 했다니, 그런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저는 부모 실격일지도 모르겠네요."
원래라면 의념 활용쪽 교관이 직접 맡는 게 낫겠지만.. 일단은, 의념 파장과 잔향 역시 게이트의 영향이니. 제가 설명하게 되었네요. 다들 저번 수업 이후로 죽은 사람은 없어보이고, 사라진 사람들은 몇몇 있는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은.. 아쉽게 되었네요. 어머. 왜 다들 표정이 좋지 않네요? 설마 제가 죽이기라도 했을까봐요? (가벼운 웃음 소리와 함께 살짝 눈이 휘어지는 모습) 걱정하지 마세요. 적어도 지금은 여러분을 제 손으로 죽일 일은 없을거랍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깨려는 듯 박수를 친다) 자. 수업을 시작하도록 하죠. 흐음.. 여기서 의념 파장을 살피는 법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있나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갤 젓는다.) 맞아요. 여러분에게 의념 파장이란 실생활에 존재하는 공기처럼 의념과 함께 방출되고, 그 힘에 따라 강해지는 척도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거예요. 실제로 연구 결과에서도 고레벨의 의념 파장과 저레벨의 의념 파장이 다르다는 것을 관측하기도 했고요. 다들 아마 여기까진 들어본 바 있을 거예요. 실제로 미리내고등학교의 교육 과정에도 이런 교육은 있었거든요. 하지만 누군가가 말한 적 있어요. 모두가 의념이 같진 않은데 의념 파장의 절댓값은 어떻게 구하냐고 말이에요. (화면에는 두 개의 파장 형태가 보인다. 하나는 매우 안정적인 파장을, 하나는 매우 변칙적인 파장이 찍혀있다.) 이 화면은 기본적인 형태의 발생 게이트 파장을 보여주고 있어요. 게이트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의념 파장은 매우 안정적인 형태를 그리고 있죠. 다들 잘 모르지만 중형 이상의 게이트들은 통하는 공간 파장이 일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소형 게이트들은 일정한 경우가 많아요. 왜인지 아나요? 역시. 이에 대해선 모르는 학생들이 많네요. 소형 게이트는 대부분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인위적으로 발생된 게이트인 경우가 대다수에요. 즉, 내부의 공간에 대해 추측하기 어려운, 자연 발생의 형태의 게이트라는 이야기가 되죠. 그래서 이런 소형 게이트를 통해 출입한 대다수는 여러분을 적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누가 내 침대 앞까지 갑자기 들어오면 싸우려고 하는 게 당연하잖아요?(살짝 농담이라는 듯 웃음소리를 흘린다.) 이렇게 발생하는 의념 파장의 형태를 기본 파장이라고 하고, 이 형태의 수치를 1이라고 해요. 그러니 '소형 게이트의 파장'을 절댓값으로 삼아 그 기준으로 의념 파장을 살피는 거죠. 그리고 역시 게이트를 클로징하는 과정에서 이 문을 부수는 파장 역시 균등한 1의 의념을 써야하는 것이랍니다. 게이트 초창기에는 이와 같은 지식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보스를 잡으면 당연히 게이트가 닫힐 줄 아는 경우도 있었어요. 물론 초대형 게이트의 경우는 조건을 만족한 상황에서 게이트의 주인을 잡는다면 클리어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과거에는 이러한 수치를 직접 계산하고, 클로징에 필요한 파장을 맞춰야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여러분의 안구에 이식된 나노 머신을 통해 계산을 하기 때문에 클로징이 편리한 축에 들어요. 물론 나노 머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관측' 뿐이라서 직접 의념 파장을 보신 분들은 없겠지만요. 하지만.. 여러분도, 의념 파장의 형태가 어떤지 궁금하실 수는 있겠네요. (곧 메리는 손을 뻗는다. 손 끝에서 한방울씩 맺히기 시작한 핏방울들이 순식간에 학생들에게 흩뿌려져 들어가고, 모두가 잠시 눈의 통증을 느낀다.) 걱정하지 마세요. 실명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의념 파장의 형태는 어떻게 보면 바람을 눈으로 그려내는 것과 비슷했다. 모두의 파장이 같지도 않았고 허공에 움직이는 파장들도 있었으며 교관에게선 강력한 파장의 형태가 눈에 보이고 있었다.) 지금 여러분들이 보는 것이 바로 의념 파장의 형태에요. 원래라면 특별한 수련을 통해 직접 깨우쳐야겠지만. 이번에는 제가 강제적으로 눈을 뜨게 했으니까. 이번만이랍니다? (곧 파장이 천천히 흐릿해지고 원래의 시각으로 돌아온다.) 어떄요. 꽤 신비롭지 않나요? 이렇듯 의념 파장의 고유함은 오직 소형 게이트의 발생 직전에만 통용되고 있어요. 발생 이후, 관측이 시작되면 그 파장값이 시시각각 변하기도 하죠. 특히 이런 파장값이 급격한 변동을 겪는 경우에는 의념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하곤 하죠. 물론, 대부분은 그런 일이 발생하면 재현형이나 사건형인 경우가 많겠지만 말이에요. 정리해볼까요?
1. 의념 파장의 기준치는 발생 직후의 소형 게이트를 기준으로 하며, 이 때 수치는 상수 1을 기준으로 한다. 2. 의념 파장은 모두에게 고유하지 않으며 각각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 3. 게이트를 클로징하기 위해서는 게이트만의 의념 파장을 맞춰 의념을 방출하여야 하고, 이 때의 관측은 나노 머신이 대신한다. 4. 급격한 파장값의 변화가 발생하는 경우 의념 사용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4-1. 보통의 경우는 재현형, 사건형 게이트에서 발생한다.
(수업 종이 치는 소리) 아쉽게도 여기까지만 수업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교육해야 할 분량이 남아서요. 설마 일찍 끝내주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진 않겠죠? 해도 문제는 없지만 나중에 이걸 몰라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제 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요. 종은 쳤으니 나가도 괜찮아요. 이 이후는 헌팅 네트워크에 업로드하지 않을 생각이니까. 게이트의 파장이나, 세계에 관측되는 파장과는 다르게 의념 각성자가 사용하는 의념을 그 잔재를 남겨요. 이걸 '의념 잔향'이라고 하죠. 의념 잔향은 그 의념 각성자의 파장과 동조하여 그 사람을 대조하거나 확인하는 것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해요. 왜 의념 범죄자들이 범죄 현장에 난잡하게 큰 사고를 벌이는지 궁금했던 사람이 있나요? 바로 의념 잔향을 어지럽게 해서 관측을 어렵게 하기 위해서예요. 의념 파장을 살필 수 있고, 그를 통해 관측된 의념 잔향을 살필 수 있다면 그 지역의 의념 파장과 같이 흐름을 읽어 기억을 읽을 수 있죠. 맞아요. 이 방법이 가디언의 포지션, 그중 서포터의 심화인 '셜록 홈즈'가 사용하는 '사건 구상'이에요. 괜히 범죄 방식이 더욱 난잡해지고, 가디언들이 바보라서 못 잡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건 구상'을 흐리게 만드는 방법들 역시 같이 고안되기 시작했죠. 이런 시대일수록 폭력의 가치는 올라가겠지만, 폭력의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피가 튀지 않는' 방법들을 동원하기 시작했고, 아직도 각국에는 스파이나 요원들이 숨어들어 있고, 뭐 이런 얘기까진 하지 않아도 되겠죠? 그럼 정리해보도록 하죠.
1. 의념 잔향은 의념을 사용한 곳에 남아 특정한 파장과 같이 검출된다. 2. 이렇게 발생한 의념 잔향을 통해 의념의 사용자를 유추할 수 있다. 2-1. 의념 잔향에는 의념 각성자의 의념 속성 역시 같이 관측된다. 3. 이러한 의념 잔향을 '특수한 방법'을 통해 관측한다면 그 지역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