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날 게이트를 공략하기 위해 대구에 들린 적 있어. 그곳의 게이트는 언데드가 컨셉이었던 모양인데 파티에 위관급 가디언 셋이 포함되어선 생각 이상으로 게이트를 빠르게 공략해나갔지. 그러다가 게이트의 보스를 마주하게 되었는데 보스가 좀비였던 거 있지? 좀비가 왕관을 쓴 채로 근엄하게 왕좌에 앉아있는 거야. 그 장면을 보곤 웃음이 나와서 경배하듯 손을 들어올리고 말했지.
브레스 이터를 적용시킨 지한이 창을 내지르는 순간, 충격파가 퍼지면서 허수아비의 중앙에 커다란 구멍이 뚤려버렸다. 충격을 일점에 집중해서 내지르는 것이 정말 가능하구나 하고 감탄하며 지켜보았고 지한이의 창술은 찌르기에 특화되어있는 것으로 보였다. 휘두르기, 내려찍기, 창대를 이용한 무술은 보이지 않았다. 돌진과 찌르기에 능함..이라고 헌팅 네트워크에 있는 메모장앱에 적어두고 다시 지한이를 살펴본다.
"그럼 의뢰가자..물론 ..의뢰는 아직 결정하진 않았찌만, 네 말대로 채집이나 간단한걸 찾아볼게"
그런게 있으면 말이야, 아무튼 테스트는 끝났다, 내 식 대로 말하자면, 눈 앞에 있는 지한이의 쓸모를 찾기 좋은 시간이었다고 해둘 수 있겠지 창수는 언제나 중위와 전위 둘 중 하나를 고정하는 식이었지만, 지한이와 같은 케이스면, 중위와 전위의 위치를 스위칭 시켜서 응용하는 것 역시 가능할 것 같다. 물론 전투라는게 언제나 순항하는것은 아니지만.
헌터 생활을 하면서 일찍 죽길 바라는 녀석은 없다. 대부분의 목표는 큰 돈이었고, 돈이 기반이 되면 안정적인 삶을 바란다. 그리고 안정적인 삶이 마련되고 나면 명예를 추구하게 되고 명예마저 얻게 되면 권력으로 눈을 돌린다. 결국 손에 하나가 쥐여쥐면 더 큰 것에 욕심을 부리니 의념 각성자 사이에서도 헌터를 들개라고 부르는 것이다. 단지 조금 큰 길드라는 족보가 있으면 품종을 쳐줘 그럴싸한 취급을 해줬고 그런 이름마저 없으면 품종 없는 잡종. 결국 족보 없는 천것이 되어 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를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현은 둥근 얼음이 담긴 잔을 들어 얼음을 천천히 회전시켰다. 원을 그리며 얼음과 잔이 부딪쳐 청아한 소리를 내는 것을 한참을 듣고 있었다. 아까까지는 이 잔에 독한 게이트산 명주들이 가득 차있었는데 지금은 얼음만이 살짝 녹아 잔 아래 남은 술들과 뒤섞였고 남은 물기를 삼키며 바깥을 바라보았다. 서울이라는 지역은 한때는 구 대한민국의 수도로써, 현재는 신 한국의 수도로써 그 가치를 달리 했다. 과거에는 모든 유행과 편의가 서울에 집약되어서, 현재는 게이트라는 폭탄에서 누구보다 안전한 유찬영이라는 이름 때문에 여전히 서울의 집은 비쌌다. 그런 서울에 집을 마련했다는 것은 곧 성공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운이 좋았다지만 그만한 재능도 있었다. 일성의 제 2공략팀장. 그것이 성현의 직함이었다. 아무리 헌터가 가디언보다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중에서도 일부. 가려지고 가려져 뽑히는 것이 일성 길드의 헌터였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모아 게이트를 공략하는 2팀의 팀장. 누가 보더라도 성현의 인생은 성공을 말하고 있었다. 괜한 감정에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성현은 창가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곤 몸을 돌렸다. 단정한 검은 슈트에 어울리지 않는 트레이닝 팬츠를 입은 독특한 패션 센스의 소유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술병을 들고 비척거리다가 소파에 그대로 쓰러지면서도 한손에는 '필마운'에서 구한 최고급 포도주를 주스처럼 벌컥거렸다. 그 모습에는 교양이라곤 조금도 없었지만 성현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렴. 일성 길드의 헌터는 기본적으로 예절과 예의, 규칙 같은 것들을 따져가며 교육을 받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것이지 그들의 실제 모습마저 다를 거라곤 기대하기 힘들거다. 그러니 최고급 와인을 포도주스처럼 벌컥거리는 부팀장에게 성현은 걱정스런 말을 건넸다.
생각을 해서 힘드니까. 부팀장의 나발은 계속됐다. 마침내 1리터 가까이 차있었던 병이 완전히 비어버리자 그는 기분 좋은 딸꾹질을 했다. 불그스름한 얼굴로 병을 적당히 던져버리자 각성자의 힘을 버티지 못한 술병이 산산히 부서졌지만 여기 조각에 다칠 사람이 없기도 했고 건물에 각인된 마도문자에서 힘이 흘러나와 깨진 유리병을 집어삼켰다. 조각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병에서 튀어버린 와인방울조차도 말이다. 대신 부팀장은 성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같이 풍경을 바라봤다. 인천의 옥탑방에서부터 시작됐던 인연은 서울의 고층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와 다르지 않은, 그러나 많이 다른 풍경을 둘은 눈에 담았다.
" 예쁘네. 빌어먹게도. " " 그러게. 이 풍경이 이리 예뻤었나. "
평범한 밤하늘인데도 두 사람은 괜히 얼굴이 뜨거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잠깐의 의념을 끌어올리면 오른 취기마저도 사라지겠지만 그러면 이때의 풍경이 사라질까, 두 사람은 가만히 바깥을 지켜보았다.
" .. 우리 성공했지? " " 어. " " 하.. 시X.. 왜 행복한데, 이리 빈 것 같냐. " " 취했냐? " " 어. 맞아. 취한거야. " " 중화제 있어. " " 그게 아냐. 그냥.. 이 취기가 가시면, 이 풍경들이 사라질까봐. 그냥 우리는 뭣도 아닌 헌터지망생이고 너는 검 F랭크, 나는 분석 F랭크일까봐. 그게 존나 무서워서 의념을 못 올리겠어.. 이 풍경이 다 날아갈까봐.. "
성현은 슬쩍 눈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외모에는 노화의 흔적이 조금도 없었지만 그때의 그와는 다른 느낌이 났다. 과거의 그가 순수하고도 순박한 시골 학자의 느낌이 났다면 지금의 그는 노회한 정치인의 느낌이 있었다. 성현도 갓 검을 잡고 휘둘러 행복해하던 그는 없었고 이제는 바디워시의 향보다 각종 피냄새로 찌든 역거운 비린내가 더 익숙해졌으니 그에게 변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단지 의념을 끌어올려 자신의 취기를 잊게 하고 친구의 어깨에 손을 올려 실없는 말을 할 뿐이었다.
" 새끼야. 그때로 돌아가면 이득이지. 너 말고 유명한 헌터들 데려다가 가르치면 되겠네. 신지한이나 한태호, 태명진. 이런 애들로 말야. " " 걔네가 일성이 눈에 차기나 하겠냐? 신지한만 해도 서산 신가가 자기 거에 한태호는 명예 가디언, 태명진은 UHN 의원이잖냐. 애초에 그런 원석들이 모여있던 특별반이 존나 돌아버린 공간이었다니까? " " 특별반.. " " 그래. 누가 알았겠냐고. 쟤네들이 ------------ 할 줄은. "
부팀장의 얼굴에는 결연한 표정이 남아있었다. 우리와, 쟤네는 확연히 다르다는 차별점. 그 차별점이 얼굴에 쓰여 있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재능이 넘쳤다던 특별반과, 각성 몇년동안 F등급 기술 얻었다고 좋아하던 성현의 격차는 한참이나 벌어져 있었다.
" 새꺄. 과거로 돌아가면 다른 거 다 필요없어. 너 특별반에나 들어가. 지금 실력의 반의 반만 있어도 그땐 먹혔을 거 아냐. 특별반도 처음에 뜬소문 존나 많았다며? 가디언 수준이니 어쩌니. "
결국 걔네들도 다 X밥 시절이 있었을테니까. 그때 확! 그물을 던지듯 손모양을 하던 부팀장이 시원하게 웃었다.
" 낚아버리는거지. 야. 걔네들을 다 모으면 그것도 불가능이 아니겠지? " " 야. 설마.. " " 일루니티. "
전설도 꿈이 아니잖아? 하고 시원한 웃음을 터트리는 부팀장에게, 성현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불가능은 아닌 것이다. 그들을 모으고, 하나가 되게 한다. 저 과거. 전설이라 불리던 일루니티처럼. 그러나 불가능하기에 꿈은 아니라고,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313 파필리오는, 조에게 거둬지지 못한 IF일 경우 최소한의 인간성도 배우지 못하면서 겨우겨우 살아가다 비틀렸을 거 같습니다. 의념 속성은 아마 '폐기' 자신을 폐기물로 칭하며 질투에 가득찬 녀석이지 않았을까아 존댓말도 없고 웃지도 않고 정령들만 소중히 하지만 그나마도 거부당할 것 같은 인상이다요
준혁이의 빌런 if는 자신의 삼촌 처럼 열망자에 투신할 것 같네요 불로서 세상을 정화하자가 아닌, 그렇게 노력해도 자신을 봐주지 않은 아버지와 자신의 방해물인 형에 대한 증오를 불로 태워 지워버린다 라는 느낌일 것 같아요 형의 제자인 일반반 학생들을 독재의 의념으로 조종해서 형을 습격하려나요
>>313 태호가 빌런이 되었다면.. 빌런 단체들처럼 이념이나 신념같은건 없고, 단순히 본인의 만족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빌런이 되었을 것 같네 서로 친한 사람들을 습격해서 한 명의 목숨을 인질로 잡고 선택을 강요한 다음,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걸 비꼬면서 사람들 사이의 유대를 비웃는 싸이코 느낌? 의념 속성은 비난? 양비? 그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고!
>>307 성현이가 회귀하기 전에도 미리내고 특별반이 있었군요... 회귀 전 세계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위에서 빌런썰 얘기가 나와서 생각해본 거지만... 강산이 빌런 IF는...뭔가 잘 상상이 안 가는데, 얘가 흑화하거나 하면 그냥...뭐 어디 조직에 안들어가고 지 혼자 저 좋을대로 떠돌아다니면서 망나니짓 하면서 살 것 같달지 그렇네요. 미리내고 오기 전의 빈센트랑 비슷해지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