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날 게이트를 공략하기 위해 대구에 들린 적 있어. 그곳의 게이트는 언데드가 컨셉이었던 모양인데 파티에 위관급 가디언 셋이 포함되어선 생각 이상으로 게이트를 빠르게 공략해나갔지. 그러다가 게이트의 보스를 마주하게 되었는데 보스가 좀비였던 거 있지? 좀비가 왕관을 쓴 채로 근엄하게 왕좌에 앉아있는 거야. 그 장면을 보곤 웃음이 나와서 경배하듯 손을 들어올리고 말했지.
빈센트는 지도가 가리키는 건물 앞에 섰다. 벗겨지고 까진 벽에서 페인트 너머의 추한 모습이 드러나고, 벽에 달라붙은 이끼는 이 건물의 내력을 말해주었다. 하지만 빈센트는 그런 건 신경쓰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분명 3층이라고 했던 건물은, 3층이 아니라 2층까지만 세워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2층까지만 남아있었다. 빈센트가 본 사진에서는, 분명 건물이 낡긴 했어도 3층까지 있었는데.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 사진에 있던 건물은 지금보다 훨씬 깨끗했고, 사진의 화질도 훨씬 좋았음을 상기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는 적어도 십 년 전에 갱신이 멈췄구나.
빈센트는 탄호동이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이들을 지나쳤다. 예측치안 시스템조차 이곳은 신경쓰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이들을 기억하기를 거부했다. 시대가 이들에게 영원한 망각이라는 보금자리를 주었다.
태양보다 밝은 스포트라이트가 유찬영을 비추고, 밤과 싸우는 수많은 조명들이 영웅과 준영웅들을 비추고, 자애로운 불빛이 이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이들을 내려본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불빛은 없다. 이들은 그 누구도, 어떤 것도 비춰주지 않는다. 이들을 비춰줄 불빛은 태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니, 빈센트의 생애에 그 불빛이 켜지는 일은 볼 수 없으리라.
"헤... 아흐... 에..."
옆에서 들려오는 가쁜 숨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한 여자가 주사를 흘린 채, 풀린 눈으로 빈센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머리칼은 푸석푸석해졌고, 눈동자에는 수많은 혈관들이 눈동자를 포식할 기세로 달라붙어서 눈을 붉게 칠했다. 그 눈동자를 받치는 눈가는, "마약"이라는 선택을 한 그녀의 검은 죄악으로 칠해졌고, 이를 벌리면 하나 둘 빠져서 무너진 이빨들이 보였다. 빈센트는 손바닥을 뻗어 그 중독자를 조준하고 고뇌했다. 사람들은 어디에서 안식을 찾을까.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과, 누군가는 성취에서, 누군가는 평생을 먹고 살 돈을 벌고 나서 남국의 무인도를 사서 여생을 보내며 안식을 찾는다. 하지만, 이 세상의 가장 비천한 이들에게도 공평한 안식이 있었으니, 죽음이었다.
빈센트가 손가락만 튕기면, 이 여자는 죽음에서 안식을 찾으리라.
"..."
하지만 빈센트는, 안식을 거두기로 했다. "재미"를 위해 선을 넘을 수 있다고 자신한 빈센트지만, 저 여자에게는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정말로 들지 않았다.
내가 길바닥에서 죽어갔으면 짓밟고 가실 양반들이! 맨날 당신들 옆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해놓고. 그럼 걔네들한텐 왜 그래? 토머스 웨인이 TV에 나와서 애도해 줬으니까?
옛날에 보았던 영화의 한 구절을 생각한 빈센트는 한숨을 쉰다. 이 세상의 모든 훌륭하신 영웅들과, 성직자들과, 정치인, 그리고 제일 악의적인 악당들까지. 그들이 죽으면 그들은 신격화되고, 그들의 삶은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비극이 된다. 가장 끔찍한 악당조차, 유명해지면 어쩌닥 그가 그렇게 됐는지 사람들은 생각하고, 그를 동정한다. 하지만, 이 밑바닥에서, 그저 밑바닥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가는 이들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다. 그들은 그저, "매 1분마다, 11명의 사람이 굶어죽고 있습니다."라는 무미건조한 통계를 위해 존재하는 이들이었고, 그들의 죽음은 소위 "행복도"와 "빈부격차"를 논할 때 나오는 통계수치에 불과했으니. 빈센트는 이 여자도 얼마 가지 않아 "통계"가 될 운명이라 생각하고, 짧게 애도했다. 빈센트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녀의 삶을 불태우는 쾌락으로 가득찬 마약을 없애는 것이 유일하리라.
두건을 쓴 남자는, 그런 건 여기 없다며 시치미를 뗐다. 이걸로 세 번째, 빈센트를 보자마자 경계하던 사내는, 빈센트가 대뜸 마약을 요구하자 무슨 큰일 날 소리를 하냐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빈센트는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 이미 예측했다. 허우대는 멀쩡한 녀석이, 옷도 멀쩡하게 차려입고서는 대뜸 와서 마약을 달라 한다면... 빈센트가 마약상 입장이라도 시치미를 뗄 것이다. 빈센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곳에서 조용히 놀 생각은 없었고, 잠시 떠봤을 뿐이다. 빈센트는 돌아서서,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자신의 손을 가디건 속에 넣은 채 손가락을 튕겼다.
빈센트의 두 다리를 감싸는 폭발과 함께 빈센트를 이 땅에 잡아주던 바닥 겸 천장이 사라지고, 빈센트의 몸을 중력이 잡아끌었다.
"으아악!"
"뭐, 뭐야 씨발!"
부서진 콘크리트가 회색 먼지를 내뿜고, 바닥을 구르는 이들의 비명 소리가 망가진 벽을 대신해 신음했다. 빈센트는 그렇게 지하로 내려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사방에서 노기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격적인 싸움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뭐, 의념 각성자만 없다면 상관 없다. 빈센트는 느긋하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빈센트의 바로 앞에는 수많은 플라스크와 구체가 놓여있었고, 거기에는 온갖 불길한 색깔로 빛나고 온갖 독한 향기로 코를 찌르는 화학 물질들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감옥 같은 곳에 수많은 흰색 가루들이 투명한 포대에 잠든 채 쌓여있었다. 빈센트는 그 뽕쟁이가 틀린 말을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교육은커녕 당장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동네다. 이 동네에서 고작 애들 화학실험이나 하자고 퀴퀴한 지하에다가 화학 작업대를 갖다두지는 않았으리라. 그리고, 저 흰색 가루들은... 다른 곳이었다면 빈센트의 뇌에 자리잡은 오컴의 면도날이, 저건 마약이 아니라 밀가루 봉지라고 최대한 선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가장 깊은 심연인 탄호동에서는, 오컴의 면도날조차 저것이 마약이라고 단정했다. 이제 시작해보자. 빈센트는 양 팔을 쭉 뻗고, 누군가의 칼이 빈센트의 옆구리로 날아왔다.
"이야아아아아악!!!!"
슬쩍 허리를 아래로 숙이자, 찌를 곳 잃은 칼은 허공으로 자신의 주인을 인도하고, 칼을 든 사내는 빈센트의 몸에 걸려서 땅을 굴렀다. 그 칼잡이에 발이 걸린 몽둥이 사내도 꼴사납게 넘어졌다. 누군가 칼을 던지지만, 의념 각성자의 청각이 바람 가르는 소리를 구분하고,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그 칼은 빈센트의 얼굴에 난 솜털 하나 베지 못한 채 반대편에서 총을 들고 뛰어오던 다른 이의 목에 꽂혔다.
"꺼허억!"
컥, 크허억, 어억... 바닥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있던 빈센트. 그 빈센트에게, 넘어진 채 엉켜있던 두 사람이 일어나 칼과 몽둥이를 휘둘렀다. 두 명, 복도를 채운 그 모습을 보고 빈센트는 더 이상 피할 수 없겠다고 느끼고 두 주먹을 들었다. 하지만 그 때, 뒤에서 칼을 던지던 친구가 한번 더 빈센트의 아군이 되어주었다.
"으아아악!!! 내 눈! 내 눈!"
빈센트의 뒤통수에 꽂혔어야 할 칼이 칼을 든 남자의 눈에 정확히 꽂히고, 빈센트는 칼잡이가 달려오던 방향으로 슬쩍 몸을 틀어 몽둥이 사내를 피했다. 몽둥이 사내는 슬쩍 회피하려는 빈센트를 눈에 담으려다가, 빈센트의 다리에 걸리는 자신의 발을 미처 보지 못하고 화학 작업대 위로 넘어졌다. 쿠당탕! 쨍그랑! 파삭! 화학 작업대가 부서지고, 플라스크들도 함께 박살났다. 빈센트는 수많은 화학물질들이 무질서하게 사내의 몸으로 흘러드는 것을 보고, 마침내 웃을 준비를 했다.
"으으...?! 악! 흐아악! 아아아아가가아악! 끄하아아아악!"
빈센트가 아무 능력도 쓰지 않았는데도, 통제 없이 섞인 화학물질은 사내의 체온만으로 발화했다. 화학물질이 온 몸을 적셨으니, 그의 온 몸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스턴트맨처럼 불탔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지옥에서도 들리지 않을 비명을 지르면서 뛰어다니며, 사내는 온갖 곳에 불을 붙였다. 마약 포대를 붙잡고 울어대고, 어머니를 부르고, 열기에 바싹 구워져가는 폐를 두들기며 제발 살려달라고 하고. 빈센트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크게 웃었다.
"풉, 푸하하하하!!!"
시중일관 진지하던 빈센트의 얼굴이 구겨지며, 미친 듯한 웃음을 보였다.
웃겼다. 너무 웃겼다.
빈센트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피했고, 또 피했다. 그런데 저들끼리, 빈센트가 아군인지 적인지도 판단하지 않고 마구 달려들다가 넘어지고, 칼을 던지다가 죽이고, 마지막에는 화학물질과 부딪쳐 온 몸을 화끈하게 달궜다. 손 하나 쓰지 않았는데 벌써 세 명이 죽었다. 웃겼다. 너무 웃겨서 웃음이 다 나왔다. 이게 웃기지 않으면 뭐가 웃기단 말인가, 저 끔찍한 고통이 웃기지 않은 이들은 불행하다. 그리고 빈센트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가장 행복했다. 빈센트가 미친듯이 웃던 와중에, 불타던 사내는 마약 포대를 껴안은 채 늘어졌고, 마약포대가 불타면서 화재가 일어났다.
"어... 어어어?! 안 돼! 마약이 불타잖아!"
죽은 동료보다도 마약이 중요한 이들이여. 빈센트는 너무나도 완벽한 인간쓰레기의 교과서를 만났음에 감사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제 부모보다도 소중할 마약을 지키겠다고 수많은 조직원들이 뛰쳐나왔다. 소화기를 든 그들은 불타는 사내는 무시한 채 소화기를 가져와서 진화하려고 했다. 빈센트는 저들에게 파이어볼을 날리려다가, 더 우스꽝스럽고 재미있는 광경이 생각나 손가락을 튕겼다.
"야! 위에다 쏘지 말고 아래에다가..."
팝!
"야! 너 안 끄고 ㅁ..."
팝!
"야! 너네 뭐야! 왜 그래!"
팝!
손가락을 튕기자, 사람들의 머리가 부풀어올랐다. 흉측하던 사내의 머리는 대두형 외계인처럼 위로 솟아오르고, 비실해보이는 사내의 머리는 푸슉! 하며 머리의 모든 구멍으로 김을 뿜고, 마맛자국이 난 사내의 얼굴은 터지다가 말았다. 아아, 이렇게 웃길 수가 있나. 이렇게 웃기니까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다 망하는 거다. 빈센트는 웃으면서, 마약을 잡아먹고 더 크게 솟아오르는 불꽃과 마주했다. 빈센트는 그 불꽃을 붙잡고, 어떻게든 진화하려고 용쓰고 있는 조직원들에게 날려보냈다.
"어... 어어?! 불길이 왜 이래!"
"으... 으아아아!!!"
그들은 왜 그곳에 서 있었을까. 마약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빈센트는 그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고통받기 위해 그곳에 서 있었다.
"...이 개새끼..."
"너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빈센트를 욕하는 세 사람을 묶은 채, 빈센트는 장갑을 고쳐 끼웠다. 기회만 되면 빈센트를 죽여버리겠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빈센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만약 그들 중에 의념 각성자가 있었다면 빈센트도 힘든 싸움을 각오해야 했겠지만, 일이 너무나도 싱겁게 끝난 것으로 봐서는 아니었다. 아니면 의념 각성자더라도, 레벨이 5도 안되는 아기 각성자였거나. 그렇기에 그들이 저주를 퍼부어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새끼야, 너 두고 봐. 내가 너네 집 찾아내서, 니 애비랑 애미 둘 다 죽여버릴 거야!"
"우리 부모님은 제가 다섯 살일 때 돌아가셨습니다. 유감이군요."
"아 그래? 너 부모 없는 새끼였구나! 하하하! 넌..."
딱, 손가락을 튕기자, 빈센트를 어떻게든 화나게 하려던 사내의 머리가 불덩이로 변했다.
빈센트를 향하던 도발이 1초만에 살려달라는 애원이 되었고, 2초만에 죽여달라는 지옥의 애원이 되었다. 하지만 빈센트는 그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빈센트가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머리에 붙어있던 불이 전부 꺼졌다. 하지만 빈센트가 불을 거둘 수는 있어도, 불이 그의 머리에 남긴 끔찍한 후폭풍은 지울 수 없었다. 분명 얼굴이었을 것이 필설로 나타낼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서, 열풍에 구워진 폐로 쌕쌕거리는 광경. 한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한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벌벌 떨면서 빈센트에게 고개를 돌렸다.
"설마 너... 방화범 동전이냐?"
"내가 그렇게 유명했나? 뭐, 알아봐주시니 영광입니다. 네, 제가 그 방화범 동전이고, 전 협조하지 않는 친구를 저렇게 만드는 취미가 있죠."
"..."
빈센트는 자신의 정체를 간파한 사내의 턱을 붙잡고, 얼굴을 강제로 머리가 불탄 동료 쪽으로 돌렸다. 빈센트는 저 모습을 똑똑히 보여주면서, 무미건조하게 경고했다.
"그러니까, 대답할 혓바닥이 남아있을 때, 대답을 잘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아니면... 저기 저 친구처럼 머릿고기 구이가 되던지."
"그... 그래! 알았어!"
"대답할게! 제발!"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힘의 논리만큼 훌륭한 대화수단도 없다. 참으로 동물적인 이들이지만, 심문할 때는 이들이 편하다. 빈센트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물어봤고, 그들은 회피 없이 대답했다.
"우리가 돈 때문에 시작한 건 맞아... 하지만 우리도 형님들한테 바치면 남는 게 별로 없었어! 겨우 입에 풀칠만 했다고... 그래서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모으려고, 한 봉지라도 더 팔려고 자극을 세게 만들었지. 우리도 어쩔 수 없었어!"
빈센트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조용히 물었다. 회피 없이 질문하던 그들의 눈에 두려움이 서리고, 빈센트의 질문을 거부했다.
"그럼 그 형님들은 누구고, 윗선은 누굽니까? 어디로 가면 볼 수 있죠?"
"그... 그건..."
"모... 못 말해! 그걸 얘기하느니 차라리 죽을 거야!"
차라리 죽겠다라. 빈센트는 피식 웃었다. 죽음이라. 저들은 빈센트의 사악하고 배배 꼬인 본성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다. 빈센트는 한 명을 걷어차서 눕혔다.
"큭!"
그리고, 빈센트는 넘어진 사내를 바닥에 결박했다. 너무 빡빡하게 묶어서 피가 안 통할 정도였지만 빈센트는 그를 오래 살려둘 생각은 없었기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빈센트는 주머니를 뒤져서 동전을 잔뜩 꺼냈다. 10원, 100원, 500원, 다양한 크기의 동전들이었다. 빈센트는 그 동전을 넘어진 사내 위에 뿌리면서, 그 사내가 겪을 운명을 간접적으로 예언했다.
"차라리 죽는다, 라. 그거 저도 잘 하는 일입니다. 좋은 말로 얘기할 때 안 들은 친구들은, 전부 '차라리 죽여달라'고 부탁했지요."
"...다, 당신... 대체 무슨 일을..."
빈센트는 앉아 있던 사내를, 넘어진 사내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겼다.
"보시면 압니다."
사내의 몸 위에 뿌려져 있던 동전 위로, 파란색 불꽃이 타올랐다.
불꽃에 달궈진 동전은 점점 그슬리다가, 이내 빨개졌고, 노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랗게 변한 동전은, 얼마 가지 못해 흐물흐물 녹아내렸고, 자신의 뜨거운 몸에 덩달아 녹거나 불타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안아줄 땅바닥을 찾아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빈센트는 동전(이었던 것)들이 몸에 올라간 사내를, 의자에 앉아있는 사내에게 보여주었다. 그제야, 의자에 앉아있던 사내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빈센트는 그들을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대답을 잘 한다면, 빈센트가 이 세상의 악인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을 줄 생각이었다.
"...그래. 말할게. 우리 윗선은... 인신매매 집단이야. 습격 장비를 구해야 한다고 빨리 돈을 구해오랬어. 그래서 마약을 더 팔려고 했던 거야. 주소가 복잡해. 인천광역시에..."
"...그렇군요. 협조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다 말한 사내는, 후우! 하고 긴장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두려움에 가득찬 눈으로 빈센트를 바라보며 물었다.
"약속, 지킬 거지?"
"그럼요."
빈센트는 웃으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팍! 앉아있던 사내의 머릿속에서 뭔가 끊기는 소리가 들려오고, 힘을 잃은 몸은 축 늘어져서 넘어졌다.
그는 죽음에서 안식을 찾았다.
빈센트는 이미 죽어버린 그에게 관심을 끄고, 아직도 살아있던 머리가 불탄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고백하자면, 전 당신 같은 사람이 좋습니다."
"..."
"내가 사람을 태우면, 나는 괴물이라고 불리지만, 당신을 태우면, 나는 영웅이 됩니다. 내가 사람을 고문하면 감옥에 가지만, 당신을 고문하면, 나는 법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을 속 시원하게 긁어주는 다크 히어로가 되어서 기사로 가죠. 사실 그건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겁니다. 난 당신들 죽는 게 정말 좋아요. 고통스럽게 죽으면 더 좋죠. 그렇기에, 난 댁들이 존재한다는 게 감사합니다. 기뻐하세요. 당신은 고통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
빈센트는 숨이 완전히 멎은 사내를 뒤로 하고, 건물을 나왔다. 빈센트가 열심히 태운 덕분에, 안에 마약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경찰들이 증거를 찾느라 개고생을 하겠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이면 UGN이건 UHN이건 조사관을 불렀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빈센트는 사내가 알려준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준비는 철저해야 했다. 이 세계에서 아직도 인신매매를 할 깡이 있는 집단이, 설마하니 의념 각성자 하나 없을 리도 없을 테니까.
방화범 동전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이야기가 끝나려면, 아직 죽어야 할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스킬을 가르쳐준다면서 사람을 두들겨패는 사람을요. 어쨌든 스킬을 얻긴 얻었으니, 방법이 심하게 잘못되었을 뿐 결과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기에는 결과가 너무 심하군요."
빈센트는 고개를 저으면서 한태호에게 유감을 표한다. 특별반의 저 사람은, 항상 장난기 많아보이는 인상이었지. 안경을 쓰고 다니지만 전투시에는 벗어도 딱히 문제를 느끼지 못하던데, 빈센트는 저게 있어보이려는 건지, 아니면 성격의 폭주를 막는 리미터인지 잘 몰랐다. 어쨌든 빈센트는 웃으면서 그의 신체 능력에 경의를 표한다.
"그렇게 맞고도 돌아다니실 수 있음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 저는... 두들겨맞은 건 아니고..."
빈센트는 짧게 말한다.
"저랑, 제 동행인이 떨어진 채로 습격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동행인이 한번 "화가 나면"... 이성을 잃는 성격이어서, UGN인지 UHN인지, 하여간 그곳에 나온 집행관을 들이받았다가 크게 다쳤죠."
그런 사람한테 '한 방 먹이려는' 거나, 집행관한테 '들이받는' 거나, 정도의 차이일 뿐 미친 짓인건 똑같지 않나?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불타는 투기가 눈동자에 가득한 것을 보고,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봐 웃으면서 긍정한다.
"잘 되시길 바랍니다. 누가 압니까. 언제 그 사람보다 강해질지."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피곤하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피곤하다. 차라리 빈센트가 레벨빨로 억눌러 버릴 수 있는 거면 억누르겠는데, 빈센트가 억누를 수 없으니까. 빈센트는 베로니카가 무슨 일을 저지르면, 계속 그것에 끌려다니던 옛날을 생각하며 한탄하듯 말한다.
" 어..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그래도 싸워서 이겨먹으려는건 아니고 그냥 한 방 먹여주는게 목적이니까! 그 정도는 할 수 있으면 좋겠네 "
그 사람보다 강해질수도 있지 않겠냐는 빈센트의 말에 태호는 감정적으로 복수를 선언했던 방금전과 달리 이성적인 모습으로 그건 좀 힘들지! 라고 하면서, 아까까지 보여준 감정적인 면모를 포기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게 이성과 감정의 밸런스를 잡은 거라면 좋겠지만, 태호는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좀 이상한 친구입니다.
" 에이, 통제라니. 무슨 동물원 야수도 아니고 같이 다니는 친구한테! "
통제라는 단어는 뭔가.. 사람한테 할 말은 아니지. 음.
태호는 읏샤, 하는 소리를 내면서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몸의 중심을 가볍게 잡은 뒤 빈센트에게 말합니다.
"저도 그 친구를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싶습니다만... 피 맛을 보면 집행관이고 뭐고 들이받는 친구입니다. 상대가 자기보다 강한지 약한지는 신경 쓰지도 않아요."
빈센트는 고개를 젓는다. 레벨이 5 정도 차이나는 거면, 베로니카는 빈센트를 죽일 리가 없으니 빈센트가 다른 사람들의 인간방패가 됨과 동시에, 베로니카를 최대한 저지하면서 시간을 끌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베로니카의 피의 갈증이 식을 때까지, 아니면 UHN 집행관이 와서 베로니카를 진정시킬 때까지. 하지만 빈센트는 베로니카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기에, 통제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피 냄새를 맡거나, 피 맛을 보거나, 피를 보거나. 그러면 미칩니다. 제가 처음에 그 친구를 구했을 때... 저에게 달려들던 친구가 실수로 제 팔을 찌르고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다가 그 피가 그 친구 얼굴에 튀었는데..."
빈센트는 진중한 성격이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몸이 벌벌 떨렸다. 빈센트는 한숨을 쉬면서 어떻게든 막으려 하다가, 생각해보니 지금 보는게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지금 보는 게 다행일지도."
지금은 멀쩡한 상태다. 하지만 빈센트는 베로니카를 소개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하다가, 소개하려면 지금이 낫다고 생각했다. 만약 나중에 만났는데, 태호가 그녀가 누군지를 모르고 막 덤벼들었다가는... 특별반 학생이 특별반의 친구 때문에 죽는 미친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으니. 빈센트는 소개와 주의를 겸해서, 베로니카를 소개시켜주는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저 친구는 상대가 누구건 전부 들이받습니다. 둘째, 저 친구는 레벨이 38입니다. 셋째... 이미 아시겠지만... 피를 보면 안 됩니다. 이 정도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 지, 아시리라 봅니다."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베로니카가 있을 양호실 칸 쪽으로 가서, 사락, 커튼을 펼치고 머리만 내민 채 베로니카에게 물었을 것이다.
"...베로니카, 있어?"
"..."
빈센트는 마치 시한폭탄을 찾으러 가는 사람처럼, 슬쩍 커튼 틈을 열어서 태호에게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 안에는, 노란 금발이 인상적인 우아한 베로니카가 눈을 감고 자고 있었을 것이다. 빈센트는 태호에게 당부의 말을 했을 것이다.
"베로니카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은 그녀를 데려가려고, 모르는 이들은 만만해 보여서 함부로 건드리다가 자극을 하죠. 만약... 이 친구가... 누군가에게 시비를 걸린 모습을 보인다면, 베로니카를 떼어낼 생각은 하지 말고, 시비를 거는 친구를 뜯어말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빈센트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자신이 기절한 사이 이렇게 아는 사람에게 뒷담을 듣는다면 기분이 나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었다. 만약 태호가 아무 악의 없이 한 행동이, 베로니카를 자극한다면...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몰랐다.
레벨이 38이란 소리에 달아올랐던 호기심이 갑자기 차분해지는걸 느끼면서 빈센트를 따라간 태호가 커튼 틈으로 본 것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금발의 여성분. 피를 보면 미치는 광전사라는 이전의 이야기와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모습에 순간 벙쪘던 태호는 정신을 차리곤 곧장 빈센트의 옷깃을 부여잡고 압박수사를.. 아니, 38레벨을 자극해선 안되죠. 잡았던 옷깃을 슬쩍 놓고 이너-피스를 되찾기 위해 호흡을 길게 들이마셨다가 내쉰 태호는 차분한 목소리와 정중한 톤으로 한마디 말을 내뱉습니다.
" 죽어, 이 기만자. "
이런. 포장지는 그럴싸한데 내용물은 영 꽝이네요!
" 일단.. 알았어. 겉보기로는 그렇지 않아도 실상은 위험한 사람이란거지? "
누군가 이 베로니카란 여성분에게 시비를 걸거나 집적거린다면 보다 커다란 재앙이 되기 전에, 자극을 주는 쪽을 제압해라. 빈센트가 알려준 대응법을 머릿 속 한 구석에 저장한 태호는 다시 빈센트를 바라봅니다. 베로니카의 얼굴을 보기 이전과는 다른, 약간 가라앉은 눈으로
영 꽝, 보다는 재앙이 맞지 않을까,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면, 빈센트가 어떻게 베로니카에게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의문이었다. 빈센트가 범죄자에게 내리던 가장 인도적인 조치는 죽음이었으니까. 게다가 베로니카의 범죄 행각이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예를 들어 살해된 피해자가 베로니카의 가족을 죽였다던지, 아니면 베로니카에게 사기를 쳐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던지.) 그렇기에 처음에는 그녀를 죽이려 했지만, 빈센트가 그녀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빈센트가 망념을 감수하고 불을 쏴도 베로니카는 웃으면서 맞았고, 목을 조르면 마치 어린아이가 철봉을 짜부라뜨리겠다고 붙잡고 낑낑대는 느낌이었다. 결국 포기한 빈센트는, 나중 가면 그녀를 강하지만 위험한 도구 정도로 취급하기 시작했지. 하지만, 무슨 일인지, 어느샌가 빈센트는 그녀를 여전히 신뢰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는 마음을 열게 되었다. 인간이 어찌나 이리 간사한지. 빈센트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옛날이었다면 그저 다른 이들을 베로니카로부터 지키기 위함이었지만, 지금은 베로니카를 베로니카로부터 지키기 위함...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빈센트는 어쩌다 자신이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해보기로 하고, 한태호에게 말한다.
"그래도... 멀리하거나 그러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제 친구, 뭐 그런 느낌이니까요.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베로니카만큼 괜찮은 친구가 없으니, 정말로 말이 잘 통할 겁니다. 평소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