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홀 사건이 어떻게든 해결되고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한동안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있었고, 그 과정 속에서 각자 경찰 업무를 보기도 하고, 새로 들어온 신입을 맞이해주기도 하고, 혹은 사적인 시간이나 공적인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친해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평화로운 분위기를 그냥 둘 수는 없다는 듯,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다. 1층 카페에서 근무하고 있는 여직원이 음료를 배달하러 들어서고, 모두에게 음료를 하나하나 놓아주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예성의 자리에서 전화가 울렸다. 신고용으로 들어오는 전화이기에, 일단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예성은 통화 내용이 모두에게 들리도록 전환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청해시 특수본부서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지하철이 멈추지 않고 막 달리고 있어요! 뭐가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는데 막 문도 안 열리고, 아까부터 계속 기다려도 멈추지도 않고 이상한 목소리가 몸값이 어쩌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제발 살려주세요!!
"저기?! 무슨 일이십니까?!"
-부탁이에요! 제발 살려주세요! 여기, 여기.. 그러니까 4호선 열차고요!! 지금 막 푸른나무역을 지났어요!! 아니. 아니. 지금 막 지나고 이대로 가면 막 계속 돌 것 같아요!! 살려주세요!!
전화통화 너머로 패닉에 빠진듯한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살려달라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전화는 뚝 끊겼다. 무슨 상황인지 모를 상황 속에서 음료를 배달하고 있던 직원은 아하하- 하는 소리를 내면서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일 나가시겠네요. 다들 수고하세요!"
꾸벅 인사를 하며 카페 직원은 빠르게 자동문을 통해 빠져나갔고 예성은 미간을 집더니 잠시 대기하라고 이야기를 하며 소라가 있는 사무실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지하철이 누군가에게 점령 당했다. 다행힌 건 무력진압이 아닌 기차자체의 통제권을 빼앗겼다는 것. 그게 왜 다행이냐고? 오히려 답이 없어진 게 아니냐고? 우리 오퍼레이터는 전자기계를 조종할 수 있고 지하철을 움직이는 많은 부품들 또한 전자기계가 있으니까. 지하철을 통째로 멈춰버리고 물리적으로 멈추면 끝난다. 지하철 안 사람들만 대피시킬 방도를 찾으면 된다.
정신없이 일할게 있나 모르겠지만, 일단 내 책상에 앉아서 이것저것 하고 있을때 음료가 올라온다. 1층의 카페에서 단체로 주문한 음료. 나는 달달한 커피를 시켰기에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음료를 받아들었다. 그러다 서의 전화기가 울리고 스피커 모드로 변경된 전화기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온다.
' 또 사건인가. '
멈추지 않는 지하철. 영화에서나 보는 멈추면 터지는 폭탄 같은게 진짜로 설치 되어있는걸까. 아니면 저번과도 같이 익스퍼의 범죄? 뭐가 됐던간에 까다로운 일이라는건 변하지 않는다.
" 커피는 마시지도 못하겠네. "
한숨을 푹 내쉬고 소라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예성씨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마 익스파 반응의 여부에 따라 우리가 이그드라실 팀으로 출동할지 말지가 정해지는 것이겠지.
>>383 큐브웨폰 자체에게 그런 힘을 부여한다면 모를까. 아예 다른 곳에 인력과 척력을 부여하는 것은 조금 힘들 것 같네요. 애초에 원래 능력 자체가 [상대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거나, 반대로 자신 근처에 있는 물체들을 멀리 날려버릴 수 있다.]로 '자신'이 기준이었으니까요.
음료를 쪽쪽 빨며 오늘도 열심히 경찰일을 하는 사민. 생각했던 것보다는 평화로운 나날들에 사민은 대만족 상태다. 저번 싱크홀 사건 때문에 과하게 겁을 먹기는 했지만 어디 A급 에스퍼가 흔한 것도 아니고 끽해봤자 강도 제압 이런 사건이나 처리하겠지. 하하하.
-살려주세요!
현실도피 끝. 하아... 인생이 이렇게 고달프다. 사민은 조금 울적해진다. 하마터면 음료 배달 직원과 함께 같이 나갈 뻔 했다. 얼핏 듣기로도 심상치 않은데 어디서 대형 테러라도 난 걸까. 아는바가 없으니 덜컥 겁이 났다. 주섬주섬 근무복을 입고 큐브를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큐브를 만지작거리는 손길이 못내 초조하다.
몸값이니 뭐니 하는 걸 봐서는 인질극이라도 하려는 모양인데 이 세상에는 왜 이렇게 나쁜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다. 부산스러운 시선과 다르게 앙 다문 입이 평소와 다르게 경직되어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점은 무차별 테러와 달리 사람을 바로 죽이려는 느낌은 아니라는 거다.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사민이 눈을 굴리며 큐브를 꽉 쥐었다 폈다.
익스파. 인간의 한계를 넘어 일으킬 수 있는 상식 새로운 힘. 그 위력은 천차만별이나 세상에 변수를 추가한다고 해도 좋을 힘을 가진 익스퍼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었다. 그에 따른 범죄도 어쩌면 당연한 사실. 팀 위그드라실로 걸려온 전화는 또다른 익스파 범죄를 알리는 경종이 되어 울리고 있었다. 몸값이라는 건, 인질극인걸까... 하지만 평범한 인질극에서 벗어난 지하철이라는 특수한 키워드. 지하철과 인질극. 좋지 않은 예감이 얌전히 앉아 대기하고 있는듯 보이는 유우카에게도 타고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