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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왁, 각종 복잡한 문서와 보고서의 향연에 사민은 잽싸게 고개를 틀었다. 일단 자신은 지금 알 필요도 없고 알 생각도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았다. 어엇, 사민이 덜떨어진 소리를 내며 눈을 끔뻑였다. 눈 앞에 큐브는 확실히 권총과 수갑에 비해 낯선 물건이었다. 사민은 큐브를 받아들고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묘하게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앗, 네 그건 들었어요. ...이렇게 들으니까 확실히 저희 팀이 중요한 역할이네요. 그, 사회적 인식이나... 그런것들..."
하고는 큐브를 조금씩 움직였다. 사민의 손은 투박한 편에 속했는데 손짓 역시 마찬가지였다. 섬세함을 찾아볼 수 없는 어설픔이 있는 움직임이었다.
"예에? 그게 가능해요? 영화 같네요. 왜요, 막 립스틱에서 빔이 나오고, 그런... 헉, 대박!"
큐브가 순식간에 경찰봉이 되고 다시 큐브로 돌아오는 과정에 사민은 눈을 번쩍 떴다. 가능했다면 펄쩍 뛰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요컨대, 전문적으로 보이지 않는, 무척이나 부산스러운 반응이었다. 눈 앞에서 큐브가 이리번쩍 저리번쩍이는데 쉽게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긴 하겠지만... 사민은 유독 반응이 컸다. 크게 대박을 외치고 지레 놀라 입을 꾹 다무는 모습 역시 우스웠다. 사민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있잖아요. 다른 분들 큐브웨폰은 뭔가요? 아무래도 바로 정하기가 좀..."
목소리를 낮추며 말하는 게 큐브 웨폰의 존재가 비밀스럽게 다가왔나보다. 또 무슨 고민에 빠진건지 입끝을 꿈틀거리거나 눈썹을 들썩이기를 반복했다.
"큐브 웨폰은 언제까지 정하면 될까요?"
자신은 힘이 센게 특기니까 기왕이면 둔기가 좋았다. 투척형이라면 그것대로 좋았지만 잃어버리면 낭패다. 집에서 인터넷 서치를 좀 해봐야... 기왕이면 기깔나게 멋진 무기를 얻고 싶었다.
"꽤 다양하게 있지요. 최소라 경위님은 권총이고, 어떤 이는 확성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꽤 다양하게 자신에게 편한 것을 정했을 거예요."
자신이 알고 있는 형태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두번 위아래로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확성기는 정말 자신도 생각하지 못한 형태였기에 예성의 입술에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내리다가 사라졌다. 이어 헛기침 소리를 여러 번 내면서 시선을 회피한 후, 다시 한 번 괜히 헛기침 소리를 내며 예성은 다시 사민을 바라봤다.
"조금 기침이 나와서. 실례했습니다. 아무튼 언제까지라고 할 것은 없겠지요. 일단 출동때 보조용으로 제공한 거니,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상관없고요. 저 같은 경우는 제 능력과 연계하기 좋아서 이 형태로 정했고, 다른 이들도 대부분은 자신의 익스파와 연동하기 편한 형태로 정했고, 아직 정하지 않은 이도 있을 거예요. 아마."
물론 그 사이에 정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까지 모두 파악할 순 없었기에 예성은 조금 확신이 없는 목소리를 내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린 후에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창가에서 비스킷을 쪼개서 먹고 있던 녹색 뉴기니아 앵무인 셀린이 날개짓을 하며 빠르게 예성의 어깨에 착지했다.
"이 녀석은 셀린. 제가 기르고 있는 앵무새에요. 남쪽 지구에 있는 연구소 중 익스파와 관련된 연구 끝에 중학생 정도의 지능을 가지게 되었고, 익스파도 쓸 수 있는 아이긴 한데. 비스킷을 주면서 잔심부름을 시키면 어지간하면 많이 해줄 거예요. 물론 안 시켜도 상관은 없고."
"안 시켜도 비스킷. 안 시켜도 비스킷."
조금은 건방진 목소리를 내는 셀린을 바라보며 작게 셀린. 이라는 목소리를 부르는 예성의 입가엔 작은 미소가 지어져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의 눈엔 귀여운 모양이었다.
확성기라. 확실이 멋진 웨폰이다. 상대의 신경을 분산시키기도 좋고 말로써 상황을 잘 해결할 수도 있는 좋은 도구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경철에 걸릴 일 없는 완벽한 무기... 아차 우리가 경찰이었지. 흠흠, 혼탁한 머리를 가르고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사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헐, 웃었다. 고개를 막 돌려 사무실 사람들을 살폈지만 이 웃음소리를 저만 들은 건지 다들 분주히 앞만 보고 있었다.
오호라, 경위님도 사람이구나. -원래 예성은 사람이다.- 사민은 피실피실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성에게서 일말의 인간다움을 느꼈기 때문에 거리감이 조금 좁혀진 상태였다. 그래봤자 다시 재위치를 찾은 예성의 입꼬리와 눈매에 냉큼 표정을 갈무리했지만 말이다.
"그러면 고민을... 좀... 해볼게요..."
집에서 핀X레스트도 좀 찾아보고 멋진 영화속 무기 top 10 이런것도 좀 찾아보면... 그렇게 생각하며 사민이 답했다. 무척 굼뜨고 단조로운 목소리였다. 그것도 잠시 옆에서 나타난 앵무새에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고, -으악!- 제게 말을 거는 모습에 육성으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말하는 앵무새다!"
원래 앵무새는 말한다. 사민은 어버버거리며 몸을 움추렸다. 안 그래도 위축되어 보이는 느낌이었는데 아예 몸을 숙이자 두배로 만만해보였다. 하다못해 앵무새한테 겁을 먹는다. 극강의 겁쟁이, 그것이 바로 사민이라 할 수 있다.
"바, 반가워요. 셀린...씨..."
눈 앞이 핑핑 돌고 정신이 없었다. 큐브며 말하는 앵무새며... 사실 경찰서가 아니라 연구소 아닌 걸까? 내가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실험실에 잡혀온 게 아닐까? 혼란스러운 눈으로 사민이 손을 내밀었다. 손을 내민다고 셀린이 악수를 받아줄 것 같진 않지만 거기까지 생각 못한 사민이다.
몸을 움츠리는 사민의 모습을 바라보며 예민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셀린을 향해 그렇게 이야기했다. 허나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이어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민 사민을 바라보며 셀린은 앞발을 내밀어 그녀의 손가락 하나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아무래도 앵무새의 앞발과 사람의 손은 크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셀린으로서는 이 정도가 한계인 모양이었다.
"잘 부탁해. 잘 부탁해."
앵무새가 자주 보이는 반복 어투를 사용하며 셀린은 나름대로 악수를 하듯이 앞발을 조심스럽게 흔들다가 그녀의 손가락을 놓아주었다. 이어 총총 예성의 어깨 위에서 자세를 잡은 후, 다시 비스킷을 놓아둔 창가로 빠르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놔둔 비스킷을 다시 입에 물고 천천히 쪼개서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미소를 짓던 예성은 사민을 다시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그 외에는 일단 저기에 있는 간식이나 커피는 마음대로 먹어도 괜찮고, 다른 디저트가 필요하면 1층 카페를 이용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3층은 자료실이나 취조실 같은 곳이 있고, 4층은 큐브웨폰이나 익스파를 단련할 수 있는 훈련장이 있어요. 사용하는 것은 좋으나 주어진 일은 착실하게 해주세요. 이 정도면 당장 필요한건 다 전달한 것 같긴 한데, 혹시 더 질문하고 싶은 사안 있으십니까?"
없다면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하다 예성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오른손을 내밀면서 말을 이었다.
"팀 위그드라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잘 부탁하고 다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위험한 일을 많이 하는 곳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