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위키: https://bit.ly/2UOMF0L 1:1 카톡방: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245396 뉴비들을 위한 간략한 캐릭터 목록: https://bit.ly/3da6h5D 웹박수: https://pushoong.com/ask/3894969769
[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а́ 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7. 픽크루를 올릴때 반드시 캐릭터명을 명시하도록 하자.
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가 신비로운 곳에 떨어져 수수께끼 같은 모험을 하는 동화. 앨리스는 동화 속의 아이의 심정을 이제껏 어른의 시선에서 헤아리려 노력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뒤집혀버린 사람의 입장에서 동화를 이해하고 있었다. 영웅은 어떤 존재인가? 사람을 구하는 자들이다. 구조받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은 적도 있고, 구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거나 큰 사고를 겪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그걸 견디고 견뎌 저마다의 영웅관과 사명을 완성하는 이들이다. 새로운 날개를 달고 도시의 어둠 속을 활보하는 존재들이다. 그랬는데… 그녀의 눈이 눈꺼풀 뒤로 숨었다. 사람들을 믿기에 이 일을 지속하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그랬다. 그리고 신뢰가 흔들리는 이 상황이 그녀로서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수도 있다. 내부 분열, 단지 사익을 위해서.
그녀에게 누군가가 접근했다. 혼란과 두려움에 지쳐 보이는 표정을 한 붉은 머리의 여자에게, 조금 더 쉬운 일을 제안하고자 하는 사람이. 조금의 미안한 목소리와 함께, 조심스럽게 말을 시작한 사람. 그녀가 갓 입사했을 무렵부터 앞길을 넌지시 제시해 주던 선배였다. 내부 사정이 이렇게 된 게 어쩌면 자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며 호소하는 말. 훈련장을 보수하기 위해 무리해서 의견을 냈더니 이렇게 됐다는 말. 가물거리는 것처럼 붉은 머리의 여자는 얼굴을 찌푸렸다. 괜찮느냐 말을 건네기 무섭게,
앨리스는 제 선배를 벽에 밀어붙여 제압했다. 사람들을 믿기에 이 일을 지속하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그랬다. 구한 사람이 실은 잡범이었다든가, 대체 왜 전에 일어난 사건에는 오지 않았냐든가, 하는 말을 숱하게 들어온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지속하고 있다. 그녀는 그랬다. 사람들을 믿기에 지속하기 이전에, 그녀 스스로 버틸 수 있기에. 회유라는 단어를 쓰기 무색하게도 제압해 버렸으나, 밀려오는 배신감과 일말의 신뢰가 그녀를 그리 움직이게 했다. 녹음이 가득한 눈에 분노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 곳은 동화 속의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현실을 알고 있다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꿈에서 깨야 할 사람은 진작부터 그녀가 아니었다.
-
명단 속의 사람 수를 세던 다니엘은 정보팀 총괄자에게 급여에 관련된 서류도 이 곳에 있느냐 물어 보았다. 이에 총괄자는 여기가 인사팀도 아니고, 무언가를 결재하는 이사진들의 모임은 더더욱 아니기에, 기껏 해 봤자 영수증들 뿐일 거라 대답했다. 그럼 그쪽 월급은? 총괄자는 웃으며 대략적인 급여를 이야기했고, 명단에 있는 이들의 수만큼 곱해 보았다. 자금의 양은 컸지만, 다니엘은 제 추측을 거기에 얹었다. 그들이 따로 받은 돈이 적은 양일리가 없다. 이 곳에서 일하는 것보다 조금 더 메리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요구사항을 대가로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붉은 머리가 믿어 왔던 선배의 건이 그러하듯이. 그 자금이 쉽게 운용이 되었을까?
사람은 총알 한 발이면 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누가 총알을 단 한 발만 가지고 다니는가? 두 쌍의 눈이 고요히 꿈 너머의 세상으로 굴러간다. 총알 하나는 이미 주웠으니, 나머지 하나를 만들 납과 화약이 필요했다. 꿈 속은 바다인가, 무엇인가. 정돈되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그로서는 대답할 수 없었고, 단서를 얻기 위해 뻗어 나가는 이로서는 대답할 이유가 없었다. 나뭇가지가 햇빛을 찾아가듯이 끝없이 뻗어 나가, 싱그럽거나 혹은 썩어 문드러진 과실을 기억의 끝에서 발견할 뿐이다. 구멍 뚫린 잎사귀의 맥 없음을 관찰하고, 꽃의 피고 짐을 관찰하고…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고. 채 들여다보지 못한 게 있었음에도 방문객에 의해 그는 꿈에서 끌어올려졌다. 그는 무표정에 짜증을 덧바른, 서늘한 얼굴을 하였으나, 방문객이 데려온 손님이 납덩이 화약통인 것을 알자 그 위에 구렁이 같은 웃음을 하나 그었다.
“제압해 온 건가?” “그렇게 됐어. 나한테 접근을 하려고 하시길래.” “좋아. 우리 이야기 좀 할까요?”
사람을 진정시키는 데에 쓰이는 음료는 보통 홍차가 있다지만, 그렇게 자비롭게도 대접해 줄 이유는 없었다. 차가운 물 한 잔이 컵 안에 들어 찼다. 선고를 내리는 듯 서늘한 말이 귓가에 넘실거리지는 않은가?
“후배를 다른 일에 꾀어내려고 하시다니,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다, 알고서…!” “화를 낼 사람이 왜 댁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정해야 이야기가 이어질 테니 물이나 마저 드시고요.”
제 컵에 담긴 물을 뿌릴까 말까 고민하는 손가락이 일품이다.
“맞잖아요. 지금 열받아야 하는 건 댁 후배랑 여기 새로 둥지 틀었는데 계약 사기 당한 나랑 씨X.”
대신 마시는 걸 선택한 다니엘은 한 잔을 시원하게 비운 뒤 말을 이었다.
“어이가 없으려고 하네. 이 인간이 뭐라고 했길래?” “나한테 접근했을 때?” “으흠?”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훈련장 어쩌구…” “음, 그럼 그 건을 좀 이야기 해 볼까.”
당신은 무슨 계약을 했는가. 죄책감이라도 있다면 입을 여는 게 좋을 것이다. 발이 가볍게 바닥을 두드린다. 초를 재는 듯 일정했다.
-
다니엘이 그리 대화를 빙자한 심문을 하는 동안, 앨리스는 내부에서 이 일을 알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도와 줄 사람을 찾았고, 이 일에 대해 고발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회사는 겉보기에는 넓어 보이지만 아주 좁은 사회다. 그녀가 이 일을 입에서 입으로 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진실인지 묻기 위해 그녀를 찾는 사람도 있었고, ‘휴가’를 빙자한 ‘다른 업무’에 끌려간 이들도 걸음해 왔다. 그들 중에는, 상황실 소속이면서 이 상황을 타개하고 싶어하던 다른 이들 몇몇도 있었다. 싸움판이 나지 않길 바라는 그녀의 바람대로 모인 사람들 중에 진실을 아는 이들이 먼저 입을 열며 차갑게 장내를 달궜고, 소리 없는 분노가 공기를 뜨겁게 식혔다.
…문을 열고 나온 다니엘이 순식간에 불어난 사람들을 보고 표정을 달리 한 건 일단 못 본 체 하도록 하자. 어차피 담당 심문관도 아니었으니, 단체로 작정하고 무언가를 할 일만 남았다. 아직 오지 않았거나, 혹은 오는 것을 결정하지 않은 이들을 제외하고, 그들은 이를 어떻게 할지 토의했다. 일에 휘말렸던 이들이나 휘말린 이들과 연락이 닿는 사람들에게 다니엘은 앨리스 모르게 이런 저런 부탁을 했다. 총알의 나머지 하나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
사람들은 흔히 어떤 사람을 부려 피 말리는 신경전을 벌이고, 그 사람을 잘라내는 등의 일을 할 때 이를 체스 게임에 비유하곤 한다. 대표적으로 대립 구도가 명확한 게임이고, 플레이어가 기물을 움직여 판도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총괄자의 방에서 흑과 백으로 나뉜 게임의 말이라 할 수 있는 동그란 것을 뒤집고 있었다. 탁, 탁. 오델로 게임은 그에 비하자면 접근하기 조금 쉬운 편일지도 모른다. 조금 더 직관적일 지도 모르고, 이기는 방법이 훨씬 눈에 띄기도 한다. 그에게는 어떠한 기물도 없다. 그런 주제에 체스를 강요 받는다고 덥석 물려 줄 생각도 없고, 기물이 있다고 해서 이 흐름에 익숙한 인간 뜻대로 놀아나 줄 생각도 없다. 그는 말 하나를 뒤집었다. 흑색의 반대쪽엔 백색이 있고, 백색의 반대쪽엔 흑색이 있다. 코인처럼 생긴 말을 손 안에서 굴리다가, 첫 수를 둔다.
그는 오늘 게임을 하러 간다고 일렀다.
오늘이 어떤 날인가? 그와 회사 간의 계약서를 1차적으로 조정하는 날이다. 때문에 회사 내부에는 회사 이사진들을 포함해 재단 내 의원이라 칭해지는 임원들도 몇 명 와 있었다. 이 사람들을 모두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고 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안건을 생각하자면 정말로 그렇다. 다만 그는 한 명, 이 일을 일으킨 원인 되는 인간, 단 한 명을 집요하게 노리고 싶었기 때문에, 조정이 시작되기 전 독대를 요청했다. 모든 비밀을 꿸 힘이 있는 자의 요구에 가까운 압박이 되었을 수도, 사회 초년생의 어리숙한 부탁일 수도 있을 그런 것 말이다. 요청을 받아들여졌고, 그는 그 인간이 대기하고 있는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지에 들어간다는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다. 당신들은 총을 입 안에 집어넣는 행동을 보고 사지에 들어간다 표현하는가? 다니엘은 자신이 가진 정보를 머리로 굴리고, 눈으로 굴리고, 입 안에서 혀로 굴려 보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는 부드러웠고, 경첩이 삐걱거리지는 않았다. 누군가 더 들이닥쳐도 충분히 잘 열릴 문이다. 가벼이 닫은 뒤 그는 그 사람 앞에 섰다. 의자에 앉은 사람.
그 사람이 앉은 곳의 책상 위는 난잡했다. 이 곳에 몸만 온 사람 치고는 책상 위의 서류들이 꽤 많았다. 어쩌면 눈속임을 위해 일거리가 많은 체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손님을 맞을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는지 그를 위한 의자는 준비 되어있지 않았다. 상관은 없었다. 선 채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 더 괜찮을 것이다.
시야가 더 높기 때문이다. 내려다볼 때의 압박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푸른 눈이 똑바로 그 사람을 쳐다본다. 예의를 집어 치운 표정으로 살갑게도 안녕하십니까, 인사 한다.
“조정 전에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왜, 있잖습니까. 제 계약 조건이 절대적으로 좋았던 점은 인정할 테니까…”
말을 조금 흐린다. 상대방은 아무래도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러 왔는지 지레 짐작한 모양이다. 첫 수는 약하게. 이 곳에 찾아올 만한 이유를 대며, 정석적으로.
“조건이 많이 좋았죠. 그 때는 저희도 많이 혼란스러웠거든요. 조정에 긍정적으로 생각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예의 차리는 것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다. 본론만 바로 박아 버리고 당장 저 자의 목을 치고 싶다. 그러나 그러기엔 그 스스로 게임을 선택했다. 상대는 이미 말을 고르기 시작했으니, 그 또한 벼르고 벼를 시간이다.
“긍정적일 이유가 있으니까요. 이렇게 찾아오는 것 말입니다.” “…흐음, 사실, 조금 두렵긴 하군요. 당신이 가진 힘은 많은 걸 휘두를 수 있지 않습니까?” “글쎄요. 아직 곁에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분기별 회의 때도 제대로 힘을 못 쓰겠더군요.”
한 수, 또 한 수. 서로 서로 하나씩 잡아먹고 내어주며 탐색을 이어가고, 그는 제가 가진 것 중 상대가 먹기 좋아해 보이는 것을 주었다.
“뭐, 저는 일단 회의가 시작되기 전까지, 아니, 조정안이 나오기 전까지 제가 가진 모호한 권력은 유지되지 않습니까. 옆방에 다른 분이 계셨던 것도 같은데.” “아직 이야기는 안 끝났지요, 그렇죠?” “그렇죠.”
하나를 다시 뒤집으며 그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나아간다. 초년생 치고 똑똑하게 군다 생각한 모양인데… 글쎄. 무표정 위에 사무적인 웃음이 덧붙는다.
“그렇게 과감하게 나올 필요는 없을 겁니다. 난 당신이 가지는 가치를 알고, 당신은 가장 먼저 날 찾아왔으니까요…”
하나가 다시 뒤집혔다. 수적으로 조금 열세이다. 아까 내어 준 것 때문일 것이다. 야금야금 교환을 계속 할까.
“…제가 다른 분을 찾아 갔다면 어떻게 되길래?” “아니요, 뭐… 다른 사람들은 자금을 많이 댈 뿐일 테니까요.”
우회해서 한 수. 상대는 탐욕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조금 나쁜 위치에 수를 두었다. 모른 체 했더니, 알아서 입방정을 떨려고 하는 모양이다.
“저는 사내에 아는 분들이 많거든요. 입지를 다지기 아주 좋을 겁니다.”
아까 뒤집었던 것까지 한 번 더 뒤집힌다. 오델로 게임은 기본적으로, 흑과 백의 개수에 따라 승패를 나눈다. 그러니까 이렇게 수적 열세를 가지면 크게 위험할 수도 있다.
“이를 테면 상황실이나 현장팀 쪽에 말이죠?”
그리고 기본적인 필승법에는, 각 끝 모서리를 먹는 방법이 있다.
“…네, 맞습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그럼요. 뵈어야 하는데.”
순식간에 저가 뒤집어야 할 말들이 많아진다. 손가락이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빨라진다. 초조함을 드러내기 안성맞춤인 습관이다만, 저처럼 그저 손이 비기에 두드릴 수도 있으니 수는 여전히 신중히 두어야 한다.
“…무서운 사람이었군요?” “별 말씀을.”
상대는 그가 차지한 모서리를 뒤로 한 채 다른 곳에 말을 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죠. 세력이 없으니까요.”
내어 준 적도 없는데 두 개를 먹어 간다. 상대는 급해졌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 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가 준 정보 하나로 최대한의 이득을 보려는 셈이다.
“…그건 사실이긴 하네요.” “부탁하러 온 게 아니라 협박하러 온 것이였나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하나, 하나, 둘. 손실이 조금씩 생긴다. 상대는 궁지에 몰린 것이 아니라 단지 비밀 하나를 아무것도 못 하는 사회 초년생에게 들켰을 뿐이라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의 색은 판에서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길래 협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까?”
기다리던 대답이다.
“그걸 맞추셔야 뭐라도 진행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는 거래라는 단어를 입에도 올리지 않았다. 그는 시계를 봤다. 회의 시작까지는 시간이 남았고… 어디 보자.
“내 입으로 까라는 소리입니까? 헛소리.”
상대는 코웃음 쳤다. 아무래도 그가 알고 있는 것이 빈 깡통 수준이리라 짐작한 것 같다. 하기사, 그가 보여준 것이 별로 없긴 했다. 상대는 과감하게 수를 내질렀다.
“여기 있는 서류는 다 뭔가요?” “아, 이건 자회사 일 때문에 가져온 겁니다. 운영적인 내용을 담고 있긴 한데, 처음 보겠군요?”
흐름을 저 쪽에 내어 준다. 우회적인 수가 뱅글뱅글 돈다.
“그래도 몸만 오신 분들이 대부분이지 않던가요?” “뭐, 전 여기서 이래 저래 일 해야 하니까요…”
그가 서랍을 닫았다. 서랍 안에 무엇이 있었을까, 아마도 저가 계약을 한다면, 을 가정했을 때의 약식 계약서 정도? 아니면 불청객이 봐서는 안 되는 서류?
“회의가 금방 끝나면 이것도 참 금방 옮기지도 못하겠는데 말이죠.”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요, 회의가 쉽게 안 끝나게 하면 되겠군요.”
조금 공격적인 수 하나. 이 걸로 조금의 이득을 챙겨 간다. 나는 당신이 숨긴 것을 알고 있음을 어필하는 듯이, 간교한 혀가 부르튼 입술을 축였다.
“상황에 따라 어찌 될 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다른 방에 가면 정말 그렇게 될 지도 모르겠군요.”
말들이 가득 찼으니 슬슬 강수를 하나씩 둔다. 가지고 있는 것을 유용하게 활용해야 한다. 패를 전부 보여주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는 게 제일 좋겠지. 다니엘은 아직 먹히지 않은 3개의 모서리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움직임이 크게 제약된, 그러니까 저가 먹은 모서리 쪽으로 쉽사리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대방을 보았다.
“갈 겁니까?” “결론에 따라서?” “…위험한 사람 같으니라고. 회의 때 당신의 의견을 푸시해 주면 괜찮겠죠?”
상대는 포기한 채 다른 곳을 먹으려 하고 있다. 닿아가는 것도 같다.
“회의… 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렇죠?” “…허?”
난 그렇게 둘 생각이 없다. 다니엘은 시계를 다시 보았다. 시간을 끈다면 저 쪽의 승리로 마무리될 수도 있고, 이대로 무승부가 날 수도 있다.
“2년 6개월 전으로 돌아가서부터 이야기를 할까요, 아니면 당신과 연관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대는 것부터 할까요?” “…젠장.”
두 번째로 모서리를 먹었다. 운신폭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다음 수가 예측되기 마련이다.
“많이 알아내셨군요. 그걸 저와 경쟁관계이든 어떤 사람이던간에 뿌리면 제가 먹잇감이 되는 건 확실하겠습니다.” “잘 아시네요.” “그런데, 이걸 왜 회의 때 발의하지 않으시고. 죄 떠들 기회 아닙니까?”
스스로가 초반에 둔 악수. 그것으로 창출된 다른 수들. 그는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해 갉아먹으려 하였다. 그는 더 이상 그렇게 둘 생각은 없었다.
“내가 곁에 사람이 물리적으로 없댔지 연대한 사람이 없댔나.” “이 사람이 보자보자 하니까!”
한 번에 몇 개를 뒤집는 걸까. 웃음 뿐이 안 나온다. 이건 허풍이다. 저 인간은 내가 이미 다른 의원들과도 접촉했다 여길 것이다.
“그래서 자비라도 베풀 셈입니까? 뭘 원해서 온 거에요? 돈?” “그러니까 말 했잖아요. 알아내야 뭐라도 진행될 거라고.”
그리고 그는 거래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또다시. 그가 원하는 게 다른 것임을, 상대는 이제야 알아챈다. 게임의 승패는 처음부터 기울어진 채 시작되었음을 그는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나를 잡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여기까지 시간을 질질 끈 걸 보면 당신도 뾰족한 수가 마땅히 없어서 온 것 같은데.”
아차, 허술했던 쪽에 수가 놓였다. 순식간에 그의 말 몇 개가 다시 상대방의 것으로 돌아간다. 이 쪽을 언질하지 않은 것이 설계였다지만, 너무 신중했나.
“없죠.” “…다른 의원들하고도 마땅히 공모도 안 된 것 같고.”
한 수, 한 수 다시 먹힌다. 길을 트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몰아붙여진다. 괜찮다, 상대는… 조급하다. 그는 모서리 둘을 먹었고, 상대는 그 어디도 먹지 못했다. 말했듯이, 행동반경이 제한된 사람의 수는 읽히기 쉽다. 그리고 목적을 가진 수는 의도가 빤히 보이기 마련이다.
“뭘 믿고 그렇게 입을 터시는지 모르겠군요.” “여기서 굳이 서류 작업을 하는 이유를 알아서?”
자, 여기 예쁘장한 외통수를 주겠다.
“자금 운영이 그렇게 단독적으로 될 리가 없죠. 그렇죠? 사람들을 고용해서 웃돈까지 얹어 주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동의가 필요해요. 그런데 일처리가 빠르고 말이에요… 응?” “…하, 하하… 어디까지 안 겁니까. 어디까지?” “서류작업을 여기서 하는 이유. 말했잖아.”
그는 가담한 이들 가운데 상대의 사무실이나 집무를 보는 곳 어디든 간에, 접근할 수 있는 이에게 최대한 접근해 증거를 찾아 줄 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드러난 결과는 그의 예상이 맞았다.
“난 이 이상 말하지 않을 테니, 열심히 상상해 보시고.” “…돈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아, 그래, 회의를 미뤄서 권력을 원하는 거구나. 하!” “글쎄요. 그냥 댁을 만나기 가장 좋은 때라.” “그걸로 어떻게 할 건데.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해!” “회의는 시작 됐습니다. 나는 사람들과 연대했다고 했죠? 내 대리인이 회의실에서 뭘 밝힐 지 재미있을 것도 같네요. 이쯤이면 올 시간이 됐는데…”
총괄자와 가담자들은 그의 대리인이 되어 회의실에 돌연 출석했다. 당신들이 대리인 몇 명 내세운다고 그가 못 할 것은 없긴 했다. 사실 일방적으로 회의를 끝내기 위해, 그들의 면담 요청을 시작 직전에 맞추게 한 뒤 회의 전 간단하게 단체 면담을 계획한 것이긴 하다. 의원들이나 임원들이나 이사들이나, 개인들이 가진 금전이라는 압박이 있고 권위가 있을 터다. 그것으로 빠르게 면담을 종료하고 회의를 시작했을 것이다. 묶인 사람을 챙겨 줄 의무는 딱히 없지만, 대상자인 다니엘 워커까지 없으니 그들도 회의에 앞선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문이 열린다. 회의 전 단체 면담에서 나온 충격적인 담화 겸 해서, 그 묶인 사람을 찾기 위해, 담화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적절도 해라.” “이게, 그, 내용이, 사실입니까?”
가장 최후의 한 수를 둘 시간이다. 자충수가 될 수도 있는 위험한 한 수.
“기자한테 먼저 뿌리기 전에 회의 안건을 바꾸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는 핸드폰을 흔들었다. 어디에든 뿌릴 준비가 되어 있는 요즘 젊은 이들의 모범적인 자세였다. 오델로 게임의 판은 그의 색으로 완전히 물든 채 끝났다. 체스 게임에 응해 줄 생각은 없었다. 다만, 손에 기물이 있는데 이용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뒤이어 온 정보팀 총괄자와 가담자들의 얼굴을 보았다. 웃어 보였다.
그 곳에 모인 모든 이들은 한 의원의 서류철을 확인하느라 회의를 미뤄야 했고, 결론을 간단히 지으려는 찰나에 결국 기자들의 먹잇감이 된 채 새 안건을 준비해야 했다. 애송이처럼 보인 사람이 그다지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어야 했을 것이다. 쉽게 넘어가려는 이들을 뒤로 한 채 핸드폰을 켜 온갖 곳에 제보 이메일을 돌린 다니엘은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지켜 보고만 있었다. 간단히 발의하고, 축출을 제시했다. 가담자들의 의견을 들어주었다. 상황의 흐름은 이제 그의 손에 쥐인 채 그 누구에게도 돌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 날 회의는 윤리 위원회로 이름을 바꾼 채 마무리가 되었다. 확인 사살된 결과에 다니엘은 만족한 듯 물러났다.
-
앨리스는 뒤늦게 기사를 보고 다니엘을 찾아왔다. 당연하게도, 갑자기 터져버린 이슈에 다른 동료들이 상처를 입을까 봐, 그리고 이런 일을 (그녀의 생각으로는) 다니엘이 독단적으로 행했으니까.
“이 미친… 이게… 뭐야…?” “당분간 윗사람들 많이 사리라고.” “아니 이…!” “여기서 반박 기사가 나오면 사내에서 일어난 일까지 덧붙을 거고.”
먼저 유출된 내용은 당연하게도 자금의 행방이 묘연함에 대한 의구심, 비리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두 총알 중 어떤 것을 먼저 쏠 것인가 고민한 끝에 다니엘은 순서를 결정했다. 혹시라도,
“이 쪽에 타겟팅이 된다면 여기도 피해자였다고 어필을 하기 좋잖아.” “…진짜 돌겠다. 피 말려서 단명할 것 같아.” “폭로전이라 당분간 내부가 많이 어수선할 거야.”
혹시라도 내부의 싹이 있다면 똑바로 보라고. 순서가 반대였다면 여론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그 의원으로 몰렸을 것이다. 이 순서대로라면 회사도 일말의 의심을 받을 것이고. 앨리스는 눈 앞의 잔인하기 짝이 없는 인간을 보고 무어라 더 말해야 하는지 입조차 떼지를 못했다. 이건 재단과 회사에 속한 모든 이들을 향한 총알이었다. 아군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게 몇 시간 전인데. 화끈하게 모든 걸 불태워 버렸다.
“이게 맞다고 봐?” “자진 신고한 내부 고발자가 있었으니까? 외려 내부는 다시 뭉치겠지.”
외풍에 의해 내부가 뭉치는 건 늘 있어왔던 일 아닌가. 내부 고발자가 있었기에 내부의 긴장은 아이러니하게도 먼저 터지고, 느슨해지기 시작했으며, 다시 교류가 시작되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규합이었고, 그 이전에…
“자, 이제 일동이 모여 입장문이든 뭐든 쓰러 갈 시간이야.” “개X끼야.”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한 성명서였다. 다니엘은 걸음을 옮기면서, 자기도 제법 위험에 노출된 셈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앨리스는 지금 이 상황을 보고 할 말이냐며 타박을 했지만 말이다.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관용구가 있다. 지금 이 상황을 정확히 설명할 만한 문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다니엘은 부정할 것이다. 첫번째로 자신은 사람이며, 두번째로 저것들은 박혀 있는 스스로의 주변을 알아서 깎아 먹어 스스로 굴러 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
분량이 길어서 나눠서 올립니다(...) 앨리스: 공개된 극비의 에이스 다니엘: 공개된 극비의 드시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