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긴 거 나도 아니까 그냥 크게 웃어도 돼. 먼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자신도 분명 이런 외견에 나길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봤다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을지도 모르지. 마치 한국 이름 짓기의 희망편과 절망편을 보는 느낌이었다. 차민철과 나길수. ...어떻게 봐도 후자가 너무하잖아?
"한국에서 방학이라. 그럼 와서는 주로 뭘 했어?"
시골에 내려갔으려나? 시골 할머니 집 같은 게 한국에 있을 리 없는 그녀로서는 조금 부러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조부모님은 아직 건강하시지만 두 분 다 미국에 사시니까.
화연은 평소 다른 이들에게 친화력이 좋다. 용감하다 소리를 자주 듣는다. 길거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묻고 아무렇지도 않게 길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에게 손을 건네준다. 길에서 누군가의 물건이 떨어지면 주워주고 미용실에서는 이발이 끝날때까지 아주머니와 수다를 떤다. 누군가는 그에게 착하다고 말하겠고 누군가는 오지랖이 넓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면이 회식 같은 친목 장소에서는 강점이 된다. 당장 이번 회식만 해도 벌써 한명과 인사를 나누고 대화했으니
화연은 동환과의 짤막한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식사를 계속한다. 화연은 고기를 좋아한다. 아무래도 이름의 '화'자가 직화구이할 때 火자여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삼겹살을 좋아한다. 양념갈비를 좋아한다. 항정살을 좋아한다. 대패삼결살을 좋아한다. 우삼겹을 좋아한다. 소고기를 좋아한다. 가브리살을 좋아한다. 부엌에서, 식당에서, 옥상에서, 캠핑장에서, 친구 집에서, 술집에서, 모든 장소와 종류의 고기를 좋아한다. 혼자 집에서 저녁으로 음료와 함께 삼결살을 구워 쌈장에 찍어 상추에 싸서 먹어도 맛있고 친구들과 함께 캠핑장에서 바베큐 파티를 하며 먹어도 맛있다. 화연은 속으로 고기에 대한 예찬을 하며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술은 마시지 않는다. 술을 마시면 의식이 흐려지고 의식이 흐려지면 맛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옆자리 앉은 여성이 아무리 초록병으로 초록 산을 만들고 술값으로 팀이 해체 되진 않을까 걱정이 들기 시작할 정도로 마셔도 무시하고 그냥 먹었다.
화연은 먹는 것과 사교를 나누는 것을 엄격히 구분한다. 먹으면서 말하지 않고 말할때에는 절대 먹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이런 일이 생긴다.
"... "
입에 음식이 있을 때, 누군가가 말을 거는 일.
그때마다 화연은 빠르게 음식을 씹고 제대로 씹지도 않은 채 넘겨버린 후 물을 마셔 제대로 넘어가지 못한 음식물을 처리한다..
음식을 씹고 삼키고 물을 마시느라 바로 인사를 받지 못했지만 화연은 그저 그녀가 자신을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취기가 올라와 옅은 붉은 빛 얼굴을 한 동료가 나름대로 적의가 없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에게 인사를 건넨다.
술을 마신 청림은, 평소보다 표정이 무르게 변한다. 체내에 들어온 알코올이 세상을 무지개빛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술을 마신 청림은, 평소보다 말이 많아진다. 세상에 재미있는 일들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술을 마신 청림은, 평소보다 관찰력이 떨어지게 된다. 세상을 보는 눈이 좁아져 버리기 때문이다.
" 아, 아. 네에. 저는 이청림 경위입니다. 잘 부탁해요. "
청림이 살며시 상대를 향해 몸을 비튼 뒤 꾸벅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다. 그렇다고 청림이 술에 떡이 될 정도로 과음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껏 소주 한 병 정도를 마셨을까. 이정도면 조절할 수 있어, 하는 안일한 믿음으로 빠르게 부어댄 탓이다. 청림이 허리를 굽혔다 편 뒤 살며시 제 뺨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씨, 처음으로 대화해본 동료인데 얼굴 시뻘개진 거나 보여주고 있네. 음, 흠. 청림이 목을 다듬었다. 그럼에도 살며시 꼬부러진 말투는 다듬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 같은 팀이니까—, 잘 지내요. 음, 그러니까… "
청림은 말주변이 좋았지만, 꼭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그 말재주를 잃는 특징이 있었다. 청림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뭐라고 하면 좋지? 말 놔요? 미쳤나. 친하게 지내요? 갑자기? 아, 뭐라고 하지. 상대의 입장에서는, 꾹 입술을 닫고 술잔에 시선을 고정한 그 모습이, 이 여자 취해도 보통 취한 게 아니군. 하고 생각하게 될테다.
" 팀 분위기가 좋네요. 다들 친절해보이시고. 어, 착하신 거 같고… "
입을 닫는 게 나아보이는데. 이청림이 다시 한 번 냉수를 들이켰다. 술에 취한 상태임에도 지금 자신이 얼마나 이상하게 보일지 예상이 가는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