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9 키라에게 햄버거를 뺏어먹는 만큼 초콜릿으로 갚는 것입니다..! 사실 알데도 이래저래 챙겨주는 거 좋아하니 키라랑 일상하면 서로 뺏어먹고 사주는 관계 아닐까요(?) 박하사탕 같은 건 좋아하는데 민트초코는... 애매... 하지만 오너인 저는 취존할 줄 아는 사람인 것(끄덕)
— 그러니까 선배, 청해시로 아예 가버린 거예요? 이직 한거라고요? "응." — 안식년이잖아요! 저번 사건만 처리하고 안식년 지내다가 복귀할지 은퇴할지 정한다면서요! "그렇게 됐네요." — 정말이지! 복귀는 여기로 하길 기대했어요! 제 고향이 아니라요.. "자기 일 때문에요?" — 으..말도 마요, 선배님 안 계신다고 반장님이 저를 들들 볶는다니까요! 저 어제도 야근했어요! 그 끔찍한 커피머신에서 나오는 커피까지 마셨고요! 너무 힘들어요. "어머, 난 그거 괜찮던데? 이제 내일도 밤 새면 그것만큼 맛있는게 없을 거예요." — 안 그래도 안드레아스씨가 그 말 했어요. 100유로 걸고 내기한대요. "100유로 내주게 생겼네. 그것보다 내가 전화한건 이것 때문이 아닌데.." — 필요한 거 있으세요? "응. 내가 청해시가 처음이라서요. 자기가 고향 사람이잖아. 뭐가 좋을지 물어볼까 해서." — 음..잠시만요. 샌드위치? "샌드위치?" — 네! 제가 연초 때 내려가면 늘 사먹는 샌드위치가 있어요. 고수 들어간 반미가 정말 맛있었는데..선배도 고수 잘 드시지 않아요? "아, 샹차이. 잘 먹죠." — 그러면 됐어요! 일단 전화 끊고 어딘지 제가 위치 보내드릴게요. "어머, 자기. 바빠요?" — 네. 여기 완전 난리예요, 며칠 전에 시체가 발견 됐거든요. "저런, 안타까워라." — 아무튼 보내드릴게요. 거긴 점심이죠? 배고프실텐데 시체 이야기 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자기. 바쁠 텐데 끊어요."
그는 전화를 끊었다. 카카오톡은 편리한 문명이다. 왓츠앱보다 훨씬 편리한 이 어플은 그가 가야 할 곳이 어딘지 지도와 자세한 위치까지 보내준다. 동서쪽으로 230m만 가면 이제 한국인 후배가 알려준 가게가 나온다. 후배는 그때 찍었던 음식 사진도 몇장 보내줬는데, 사진으로만 봐도 싱싱한 야채와 차가운 커피에 절로 회가 동했다. 바닷가를 바라보며 샌드위치를 먹는다는 것 자체는 실로 낭만적인 일이다! 그는 고장난 시계를 잠시 바라본다. 그는 바닷가에 오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바닷가 근처에서 살게 될 예정이다. 집도 계약을 마쳤고, 공항에서 짐이 도착하면 얼마 없는 짐을 옮길 예정이다. 그러기 전에 미리 실컷 관광을 즐기자는 심산이었다.
그는 카페의 문을 연다. 차임벨 소리와 함께 상쾌한 향기가 물씬 느껴진다. 그가 먹을 메뉴는 정해져있다. 카드를 들고 계산대로 다가가 주문하려 했다.
"음..여명의 샌드위치랑,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시럽 한번만 추가해주시겠어요?"
학생이 일하는 걸까? 아니면 가족? 그는 어느쪽이든 이 샌드위치 가게가 마음에 든다면 앞으로 자주 볼 얼굴일 테니 한껏 유순하게 미소 짓는다.
원래 여명은 부모님이 일하는 샌드위치 카페에서 일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원래도 사이가 좋은 부모님들이고, 일 없고 약속 없는 날이면 한번씩 일일 아르바이트 느낌으로 가게에서 업무를 보기도 한다. 뭐, 그런 연유로 오늘도 부모님의 일손을 거들던 여명. 애초에 가게 자체가 단골들 위주로 찾아오는지라 바쁠 일도 없었고, 매번 일을 돕는 것도 아닌 여명도 다 알던 얼굴들이 대부분인지라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리고 여유가 생기기 마련이다.
-"음... 여명의 샌드위치랑,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시럽 한번만 추가해주시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매번 보던 얼굴들 사이로 처음 보는 사람이 툭, 하고 나타났다. 포근하지만, 묘하게 야성적인 미소. 굉장히 중성적인 외모와 잊기 힘든, 묘하게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첫인상. (정작 여명 본인 역시 남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잊기 힘들고 중성적이지만 말이다.) 선명한 금안과 잿빛 머리카락에 시선을 뺏기려는 찰나- 여명은 너무 늦지 않게 자신의 본분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네 여명의 샌드위치랑, 아이스 아메리카노 시럽 추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일손을 돕는 겸 지금 받은 반미의 주문은 여명이 직접 만든다. '커피...는 사실 여기가 카페 메인도 아니고, 아메리카노에 시럽 넣으면 되니까!' 라고 생각하며 샌드위치부터 만들 준비를 하지만, 나름대로 자기 이름이 붙은 메뉴에 자부심을 가진 여명인 만큼 정성스럽게 바게트에 속재료들을 체워넣는다. 카운터 옆 간이조리대 앞에서, 유리벽 하나만을 사이에 놓은 채로 손님 앞에서 샌드위치를 만든다. 만약 눈썰미 있는 손님이라면 왼쪽 가슴에 붙은 명찰에 적힌 이름-초여명을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산한 분위기 속, 샌드위치를 마무리하던 여명은 앞의 손님에게 말을 걸었다. "저... 혹시 여기 처음 오신 거 같은데, 어떤 경유로 오셨어요?" 나름대로 한산한 분위기 속, 궁금증도 해결할 겸 대화나 한번 해보려는 여명의 질문이었다.
고수가 들어간 반미 샌드위치. 고수라는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는 향신료에 불호는 없었고, 고수가 들어갔으니 맛이 어떨지 특히 기대가 됐다. 향신료가 다른 재료의 맛을 모두 잡아먹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간이조리대를 향해 시선을 옮긴다. 한눈에 봐도 신선하고 붉은 토마토, 양상추, 고수와 함께 작은 사이즈의 반미 바게트가 보인다. 칼로 써는 소리가 선명하니 빵도 품질이 좋다.
그는 시선을 옮겨 명찰을 본다. 한글을 읽을 줄 알아 다행이다. 한국어도 못했으면 올 이유가 있지도 않았겠지만! 더듬더듬 속으로 생각한다. ㅊ..ch..cho- 아, 초..여명, 그러니까 여명 초 라고 읽으면 되는구나. 성이 앞으로 오는 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토마토를 써는 손길을 물끄러미 본다. 신선한 토마토의 꼭지를 따고, 붉은 과육을 편 썰어낸다. 토마토의 상쾌한 내음이 여기까지 난다. 샌드위치의 재료 배치가 마무리되고, 그는 고개를 들었다.
"아, 일 때문에요. 최근에 한국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거든요."
그는 장갑낀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눈만 샐쭉 휘어본다. 한국에 와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은 건 아주 큰 행운이다. 무려 1년동안의 휴가인 안식년을 신청했고, 수락을 받았다. 당신은 쉴 자격이 있어요. 푹 쉬다 와요. 라는 말을 듣고 무작정 한국로 왔다. 은퇴를 고민하던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았고, 그는 이제 잊고 살 새 직장이 필요했다.
"여기 가게까지 오게 된 건..전 직장 후배가 여기를 추천해줘서 왔어요. 연휴 때마다 한국에 와서 여기 샌드위치를 먹고 갔다고 하길래 궁금했거든요."
신체조건이 어른으로서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키라의 말에 유우카는 어떤 형용못할 표정을-그래봤자 눈이 커지는 정도다-얼굴에 띄웠다. 그리고는 유우카의 팔이 서서히- 소리소문도 없이 들어올려지다가,
"아뇨... 믿어요. 저도, 그런 말 자주 들어서... 알아요..."
어떤 유대라도 품었는지 그 들어올린 손으로 키라의 손을 조심스레 맞붙잡으려 하였다. 유우카는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있는 것과 같다. 즉 둘 중 어떤 상태가 되더라도 지금으로 돌아오도록 고정 되어있는 것. 그러고보면, 자신의 키가 거의 크지 않게 된 것도 첫 번째 죽음을 당한 그 때가 아닌가 싶다. 아니면 그저 영양부족의 핑계를 대는 것 뿐일까? 유우카의 손이 제대로 그 손을 붙잡았다면 전혀 산 사람처럼은 느껴지지 않는 차가움이 키라에겐 느껴지고 있었을테였다.
"모래, 가... 아니에요?"
모래면 그저 모래인거지, 모래 같은 것은 또 무얼까. 아까부터 생각했지만 참으로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다. 아무리봐도 모래 그 자체인 것을... 삽으로 퍼내어 양동이 안으로 잘게 흘러 떨어지는 모래이지만 모래가 아닌 것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은 분명히 이걸 먹고 있었지...
"더 자세히, 볼래요... 그래도 머, 먹진 않을거에요..."
사건해결의 제 1원칙. 용의자의 소지품을 확실하게 조사한다... 물론 상대가 용의자도 아니고, 그런 원칙이야 없다지만 역시 모래를 삼키고 있던 것이 신경쓰여서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유우카는 더 가까이 다가가 양동이와 그 안에 담긴 모래를 살펴보려 했다.
"아... 제가 치워도 되는데..."
바닥에 엎어져 흙먼지를 잔뜩 묻힌 샌드위치를 주워올리는 그녀를 보며 말한다. 가슴쪽에 모여서 살짝 띄워올린 손이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이곳, 자신이 발령받은 지부가 있는 대한민국 청해시는 수많은 아름다운 도시 중에서도 특히나 친환경으로 이름 높은 도시라고 들었다. 그런 도시에, 이런 음식물이 놀이터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것은 경찰으로서도, 시민으로서도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지만 그건 그거고... 샌드위치를 못먹게 되었다. 저녁이었는데. 줄 서서 기다려 마지막 남은 샌드위치 얻어온 것인데 말이다. 이 시간에 다시 가도 가게 문은 닫혀있을게 뻔한데...
"햄..버거...?"
고뇌하고 있던 유우카의 귓전에 떨어지는 그녀의 말. 햄버거. 샌드위치는 아니지만... 샌드위치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빵도 있고, 햄도 있고, 야채도 있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한 발짝 움직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