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성의 뒤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성은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는 뒤로 돌아봤다. 익숙한 목소리,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성의 머리가 쭈뼛서며 아파졌다.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이 아성의 옆에서 일행인 것처럼 확 다가서자 아성은 그에게서 풍기는 분위기와 목소리 등으로 그가 선비탈임을 짐작했다.
"10초만 더 늦었어도 바로 집에 갔을 꺼야."
아성은 선비탈의 어깨동무를 거부하지 않고 도리어 친한 친구를 만난 듯 역으로 어깨동무를 하며 장난삼아 헤드락을 시도하기도 한다.
"뭔 헛소리야? 하하. 너 기다리다가 지루해져서 먼저 귀곡탑으로 향하려고 했지."
놈들이 아무리 미치광이 순혈주의자일지라도 귀곡탑 행이라면 부담스러워할 것이라 추측했다. 물론 귀곡탑에서 놈에게 살해당할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야말로 길동무가 생겨서 정말 반갑네. "
심장이 쿵쾅거리며 날뛰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호흡이 불안정하게 떨리며 눈은 갈곳을 잃은 체 길 이곳 저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팡이를 들고다니는 습관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평소와 같이 그는 현궁 복도를 걸었다. 오늘도 현궁은 추웠고, 추석이 다가와서 그런지 단내가 물씬 끼쳤다. 그렇지만 1학년 학생이 달려와 자신을 끌어안자 적잖이 당황했다. 분명 그는 무서운 선배라며 다른 학생들이 기피하는 존재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서스럼 없이 안을 수 있을까? 그는 학생이 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추종자의 습격이 있는 걸까? 지팡이를 들기 위해 손을 까딱이려던 순간, 학생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요." "뭐라고?" "간식이..간식이 날아다녀요!!!" "납득할 수 없는 얘기군. 일단 진정하고, 콘푼도라도 맞았나?" "아뇨, 진짜라니까요!! 저기!! 저기 보세요..!!"
이제 보니 학생의 옷에 기름 얼룩이 묻어있다. 반쯤 녹은 옥춘당도 머리카락에 붙어있다. 그는 복도를 쏜살같이 날아 지나치는 찰보리빵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그의 옆을 막 날아 지나치던 찰보리빵은 마치 윙크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대목을 앞두고 바빠진 것을 보고서야 벌써 추석인가 싶었다. 차려진 다과들로 행복한 날이어야 할 텐데. 올해는 조금 다른 모습일까. 수많은 다과들이 제각기 냄새를 풍기며 허공을 떠다니고, 학생 한 명이 머리를 감싸고 투다닥 도망치면, 성격 사나운 까치처럼 뒤를 따라 빵들이 온 기숙사를 쏘다닌다. 눈가를 찡그린 채, 그 모습을 보던 스베타는 쫓기던 학생과 눈이 맞아 외면하듯 고개를 돌린다.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하면 또 다른 장난인듯싶다. 그래도 저번처럼 어려진다던가, 갑자기 짐승 귀와 꼬리가 생기는 그런 장난은 아닌 것 같으니 다행일까. 그저 다과들이 돌아다니는 이런 장난이라면. 가을을 맞는 날이니. 시끌벅적하여도 나쁘지 않은 것이다. 스베타는 문득 해파리처럼 제 앞을 떠다니는 양갱들을 보고선 그중 하나를 집어 베어 문다. 고향에 있었더라면 크렌베리 키셀을 마셨을 텐데. 식감과 퍼지는 단맛에 그런 생각을 하다 삼켜낸다.
윙크하며 날아다니는 찰보리빵, 떼지어 둥실둥실 날아다니는 양갱, 그리고 다식과 약과의..그는 지나가던 길에 그대로 굳어 두 다과의 뜨거운 애정행각을 마주한다. 미쳐서 헛것을 보는 걸까? 학교라는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다과끼리의 뜨거운 애정행각을 차마 제정신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서로 몸을 비비는 약과와 다식을 미쳤냐는 시선으로 쳐다봤지만 두 맛있는 다과는 본 척도 안한다.
번식활동을 할 생각이라면 안 보는 데서 했으면 좋겠다. 그는 자신의 취향이 제법 넓다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지만 막상 이런 부분에서는 감히 이상성욕자라고 명함을 내밀며 단언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다식을 손가락으로 튕겨놓고 약과를 집어든다.
"공공장소에서 무슨 망발인지."
약과는 몸을 비틀며 반항했지만, 결국 사랑하는 다과 앞에서 산채로 잡아먹혔다. 그는 약과를 베어물었고, 만족한듯 다시 가던 길을 간다. 약과는 갓 만든 것처럼 따끈따끈하니 맛이 좋았다. 끈적한 조청이 묻은 엄지를 가볍게 핥으며 그는 잠시 멈춰선다.
..방금 전까지 열렬히 구애하고 번식활동을 하던 녀석이니 당연히 뜨겁고 더 달겠지. 어쩐지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깨달았으니 당분간 약과는 먹지 못할 것 같다.
그녀가 이 학교에 입학하고 흥미로웠던 일을 꼽으라 하면 단연 절기 행사라고 할 수 있다. 고향에는 없는 계절별, 시기별 절기라는 것에 맞춘 행사가 어찌나 흥미롭던지. 하지만 그것도 4학년쯤 되니 그냥 또 하는구나 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올해 추석도 작년과 별반 다를거 없을거라 생각했다.
...다과상을 탈출한 다과들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기숙사 안을 걷는데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싶었다. 그 때까지는 다과향이 좀 진하게 나는구나 정도였는데, 잠시 뒤 온 사방을 날아다니는 다과들을 보곤 과연 그녀도 말을 잃었다. 이젠 하다 하다 이런 일까지 일어나는구나. 누가 무슨 사단을 냈는지 생각하기도 귀찮다. 후. 하는 짧은 한숨을 내쉬곤 옆을 쌩하니 스쳐지나가는 한과를 부서지지 않게 낚아챘다.
"날뛰는 과자는 감초로 충분한데.."
그래도 이건 물진 않으니 그나마 낫다고 할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과를 입에 쏙 넣었다. 맛은 좋네.
약과는 제법 맛있었다. 애정행각을 벌인 다과라는 걸 굳이 떠올리고 싶진 않았다. 그는 지금 기숙사 방을 목전에 두고 잠시 노선을 틀어 현궁의 얼음 호수에 있다. 차가운 호수의 나무에 등을 기대 앉아 있으면 그 아이가 다가와 올라탔다.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괜한 생각이다. 상념에 잠긴 그가 고개를 옆으로 꺾자 유밀과가 나무에 표창처럼 날아와 박힌다. 지금은 살아남는게 더 중하다. 유밀과가 회심의 일격을 실패하자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유밀과를 손으로 잡아 들고 입에 쏙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