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순혈이니 혼혈이니 하는 것은 그에게 맞지 않는 일이다. 그의 성격으로 미루건대 인간은 죽은 사람, 좀 먼 미래에 관에 들어갈 사람, 가까운 미래에 관에 들어갈 사람 뿐이다. 그래서인지 입학한 이 학교는 유달리 험난한 생활을 보장했다. 학기 초에는 순혈주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미친 괴짜 취급을 받고, 매구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명의 위협도 여러번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모종의 이유로 꾸역꾸역 버텨내며 전학가거나 자퇴하지 않았다.
그렇게 6학년이 됐다. 여전히 위협은 있지만 초반보단 줄어든 상태다. 대신 다른 것이 3학년부터 생겨 굳어졌다. 이쯤에서 밝히는 낯부끄러운 별명이지만, 원내에서 불리는 그의 별명은 검은 토끼다. 어두운 모습과 달리 속은 심약하고, 맹수와 다름없는 추종자 사이에서 사냥 당할 것이라는 멸칭이기도 하다. 원내의 생활에서 보는 검은 토끼 발렌타인은 미소를 짓고 조심스러우며, 저주는 낙제에 가깝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잘 울기도 하며, 머리가 꽃밭인데다, 천문학 교수의 앞에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 돌아가버리기까지 한다. 서른 다섯번이나 고백 계획을 세워놓고 시도조차 못한 것이다. 다들 그를 따르는 유능한 타니아를 안타까워 한다. 다만 그를 오래 전부터 봐온 수행원 타니아는 침묵한다. 오늘도 혼돈 기숙사 학생들의 괴롭힘에 우는 그를 말없이 달랠 뿐이다. 새벽이 되고 원내는 조용해졌다. 더 괴롭힐 사람도 없으니 아무도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를 것이다. 벌써 멍청이라 써있는 쪽지 하나 붙은 도철 기숙사 끝방에서 타니아는 바닥에 앉아있다.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무릎에 고개를 파묻는다. 뺨을 부비던 타니아가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그가 혀를 차는 소리에 타니아는 소리죽여 웃는다. "이 짓도 못해먹겠군." 하고 검은 토끼가 말했기 때문이다. 타니아는 낭랑히 답한다. "그럼요, 그만 두셔야죠. 도련님께서 우실 때마다 소름이 돋는 걸요."
"내 눈물이 어때서?" "악어보다 끔찍해요." "저런!" "이참에 천문학 교수에게 고백하는 것도 그만 두시고요." "타니아, 나의 신도야. 질투가 나더냐." "안 나는게 이상할 지경이에요! 도련님을 곁에서 봐온 건 그 교수도 아니고 바로 저 혼자니까요. 그 사람은 이런 모습도 모를 텐데.." "모르는게 좋지." "도철의 토끼가 맞나 몰라."
타니아는 배시시 웃는다.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고 묻고는 고개를 올려 그를 바라본다. 묶어뒀던 머리는 젖어있고, 셔츠의 단추는 두어개 풀려있다. 울지 않는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눈길 뒤로 그가 타니아의 뺨 위에 손을 올려 눈을 마주친다.
"맙소사, 타니아. 들어보렴. 이제 막 9대를 넘어 순혈로 인정받는 잡종이 죽었구나." "혹시 도련님을 귀찮게 하던 그 사람이 죽었을까요?" "그래. 죽고 말았어..계단에서 굴러 떨어졌구나. 설마 누가 거슬린다는 이유로 죽여버리기라도 했을까! 아니야. 누군가 밀지도 않았고, 헛디뎠다는 증거도 있구나. 참 안타깝지 않니?" "안타깝네요."
색이 다른 두 시선이 호선을 긋는다.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는구나. 위로해주련." 하자 타니아가 몸을 일으킨다.
"이래서 교수 나부랭이에게 주기 아깝다니까요." 비윤리적인 발언이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큰 돈이 된다.
누군가의 시체를 마주하거나 그 속을 들여다보는 등 고된 일을 업으로 삼는 만큼 그 액수는 어마어마하다. 그는 솜씨 좋은 수완가로, 이 학교에 다니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득이라 생각했다. 그는 이 작은 혼란 속에서도 암약해 이득을 챙겼다. 작은 사고는 큰 사고가 됐다. 친했던 2학년 친구는 마차 사고로 인해 섹튬셈프라에 당한 것처럼 상반신과 하반신이 나뉘어 죽었고, 어떤 학생은 다른 학생이 선물한 초콜릿을 먹고 평생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며칠 전에는 한 가문의 자제가 원내의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목이 부러진 나머지 즉사했다. 모두 검은 토끼가 연관 되었다지만 초대한 당사자나, 초콜릿을 주라고 조언하거나, 괴롭힘 당하던 것 뿐. 별다른 혐의는 입증될 수 없었다. 이런 작은 사건사고 덕분에 불린 돈은 어마어마했고, 이젠 가문원의 반발도 사그라들었다. 그는 순혈주의로 돌아선 것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그는 쾌락과 욕구를 좇는 성미가 짙었고, 시체를 보는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선 수준 높은 저주가 필요했으며, 금전적 욕구인 수완을 위해서는 혼란을 원했다. 이정도는 가문에서도 눈감고 넘어가는 것이다.
지성인에게는 대화로 풀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가 있지만 선민사상에 찌든 무지렁이는 참을 수 없던 사람이던 그는 원내에 입학하자마자 결심했다. 저 멍청이들은 지구력이 지구의 힘이고 월력은 언제 나올까 생각할 지능을 가진 게 틀림 없다. 앞으로 매구의 세상이 도래하면 일어날 각종 머저리들의 향연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저놈들과 어울리느니 차라리 멍청한 척을 하는 것이 낫겠다. 그러면 더 이득도 보기 쉬울 것이다. "으흐윽. 죄, 죄송해요. 우, 울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그.그게..교수님을, 그, 그러니까..ㅅ..사..사모..합니다……."
46번째 시도만에 고백을 성공했다. 35번째 고백 이후로 모든것이 연기였지만, 이번에는 연기가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우는 자신을 보며 입을 떡 벌리는 타니아를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지 부각하기 위한 장치로 접근한 교수에게 코 꿰인지 오래라는 걸 깨닫고 울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아무래도 망한 것 같다.
>>390 고맙다고 하기 금지여요! 이건 아주아주 당연한 거니까요. 저는 새벽 지킴이인 첼주를 아주 좋아하고, 다른 분들도 아주 좋아해요. 그러니까 이정도는 당연한 거랍니다.😳 부담스러운 말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이말저말 다 해버리기로 했어요!😬 첼주도 좋은 밤 되시길 바랄게요.😊 마음 놓고 푹 쉬시기여요, 약속?
어브브..어브브브..말도 안 돼요. 억울해요. 벌써 잘 시간이잖아요. 추석이 다가오니까 그때는 꼭 밤도 새고 그럴 거예요!!((못 지킬 약속을 마구 해버려요..)) 이이이..😬 먼저 들어갈게요..😂😴 안정화 되기 전까지는 이럴 것 같아요.🙄 어제도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걱정이나 고생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오늘 하루도 힘내기여요.😊 다들 많이 좋아해요! 음쪼쪼..😘
해뜨는 걸 보고 자던 때에 비하면야 한참 이르지. 뭐 근데 이건 내 기준이니까. 피로에 백신 후유증이 겹쳐져서 더 그랬나보다. 이제는 괜찮다니 다행이지만. 체력적으로 축났을지도 모르니까 당분간은 든든하게 잘 챙겨먹고 그래. 날도 춥고 하니까 말야. 음. 왜 이런지 알면 해결이라도 해보려고 할텐데 전혀 짚이는게 없어서 그게 문제네. 그냥 가을 타나봐. 걱정할거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