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위키: https://bit.ly/2UOMF0L 1:1 카톡방: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245396 뉴비들을 위한 간략한 캐릭터 목록: https://bit.ly/3da6h5D 웹박수: https://pushoong.com/ask/3894969769
[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а́ 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7. 픽크루를 올릴때 반드시 캐릭터명을 명시하도록 하자.
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당신은 투구꽃을 알고 있는가? 나는 몰랐다. 네스트와 만나고, 농부인 네스트가 꽃에 대하여 박식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투구꽃은 독성이 있는 식물, 즉 독초다. 그것으로 우린 차를 먹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먹는 즉시 피를 토하며 쓰러져 죽지는 않더라도, 이내 죽음에 이르리라는 짐작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나의 기억 속에서 내 부모가 제1 요람의 대장과 나누어먹었다던 차의 주 재료는, 내가 제1 요람의 대장에게서 받은 화분의 꽃은 투구꽃이 확실했다. 네스트는 나에게 말했다. 자신에게 알려준 모든 것이 모두 진실이라면, 제1 요람의 대장이라는 루스트가 나의 부모를 살해한 것이고 거짓으로 나를 속인 것이라고. 자신의 조상이 살인마라는 확신이 깃든 눈동자는 그 조상의 눈동자와 달랐다. 그래서 나는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내가 부모를 죽인 것이 아니라고 달라지는 것은 무엇이고, 루스트가 내 부모를 죽인 것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무엇인가? 셋 다 이미 죽었다. 어릴 적의 나와 같이 숨 쉬던 사람들은 다 죽었다. 오로지 나만이 남아 숨을 쉬고 있고, 그런 나는 여전히 괴물과 어울리는 것이다. 그때의 내가 몇 명을 죽였는지는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고, 부모가 누구의 손에 죽었는지도 의미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루스트는 나에게 사람을 죽인 만큼 속죄하여 죗값을 치루는 것을 삶의 목표로 정해주었다. 그런데 아무도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니, 나는 삶의 목표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만 숨을 쉬고 싶었다. 모두가 괴물이라고 불러주니, 여느 아름다운 결말을 맺는 동화 속의 괴물처럼 되고 싶었다. 멋진 영웅이 와서 괴물을 해치우고 찬송받으며 끝나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물론, 내가 그렇게 죽음을 선택했더라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스트가 나에게 괴물이 아니라고 말을 해주었다. 이 모든 글의 첫번 째 문장, 0장의 첫 문장을 기억하는가? ‘괴물이 아니라고 한다.’ 만난 지 하루는 커녕 반나절도 안 된 자가 내 인생의 99%에 가까운 시간을 너무나도 확신에 가득차서 부정해버릴 때,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은가? 나는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궁금했다. 나는 네스트에게 물었다.
“며칠 낮밤을 먹지 않고 자지 않아도 죽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내가 괴물이 아니라면 무엇이니?”
이 질문에 대한 네스트의 대답은 너무나도 어리석고 단순한 것이었다.
“그냥… 그저 조금 다른 사람이에요!”
나는 진위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내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포함하여, 네스트가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신뢰와 확신을 품을 수 있는 근거의 정당성 또한 확인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얼마나 오랜만일지도 모를 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모든 것이 시작된 곳에 티끌만한 흔적이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망상을 품고 여행을 시작했다. 오해하지 말자. 기대와 망상은 네스트의 몫이다. 네스트는 나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고 (여전히 이해가지 않는 행동이다.) 내가 가는 길을 따라다니며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하였다.
제2 요람까지 가는 길은 가까웠고, 단순했으며, 날씨조차 화창했다. 긴 시간동안, 오랜 시간동안 틀어박혀 갇혀 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은 날이었다. 정말 비웃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내 집에 찾아가는 길을 까먹었기 때문이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그 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생각을 하지도 않아도 발걸음이 알아서 향하는 곳이 있었다. 모래 밖에 남지 않은 지구에 둥지를 튼 요람, 그 중 제1 요람만이 식물을 가꾸었다. 제2 요람은 식물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그런 곳에 작은 숲이 우거져 있다면, 나는 내게서 본능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삶의 의지가 없어 제일 중요한 본능이 마비된 것이나 다름없는 내게 본능적인 이끌림이 느껴진 것이다.
제2 요람의 사람들은 당연히 나를 알아보지 못 했다. 한때 제2 요람을 이끌었던 대장 부부의 딸이라한들 과거의 이야기다. 제2 요람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제1 요람의 대장 자리를 물려받을 농부 하나가 웬 어린애를 데리고서 제2 요람에 찾아온 모양새로만 비추어졌다. 그리 달갑지 않은 이방인들로만 보였단 뜻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경계감을 비추고 있으면서, 숲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니 그곳은 죽음의 숲이라 독초가 자란다며 들어가지 말라는 친절을 베풀었다. 언젠가부터 우거져서는 쉽게 시들지도 않는다며 베어내지 않고 두었단다. 나는 내 본능적인 이끌림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고 숲으로 들어가려 했다. 네스트가 붙잡아서 제2 요람의 사람들에게 내 머리를 눌러 인사시키는, 한 차례 쇼가 있은 후에 말이다.
죽음의 숲이라고 불리는 숲은, 그 안쪽은 이름과 걸맞았다. 생명이라고는 방금 발을 들인 네스트와 나 밖에 없다는 듯이 고요하고 잔잔했다. 그리고 그곳에 내가 살았던, 내 찰나의 어린 시절의 전부였던 집이 있었다. 내가 키운 꽃에 천장이 뚫려버린 채로.
내가 피웠던 꽃은 물론 없었다. 다만 뜨거운 모래밭을 걷느라 늘 까져있던 발바닥에 풀이 밟혔다. 맺혀있는 이슬은 차가웠고 풀잎 자체는 부드러웠다. 이런 것을 삶이라고 정의 내린다면 나는 그때 첫 숨을 쉬었다고 이야기하겠다. 숨을 들이켜 폐부에 공기를 채워 가슴을 부풀어오르도록 만들고, 다시 내뱉으며 몸이 가라앉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살아있다’고 느꼈다는 이야기다. 나는 죽음의 숲에서 삶을 찾았다.
내가 어릴 적 지내던 공간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낄 리가 없다. 애초에 내 감정을 무뎌진지 오래라 그런 것을 느끼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네스트는 그때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지구라는 행성 어디를 둘러보아도 사람이 모여 사는 요람을 제외하고는 모래밭 밖에 없는데, 이렇게 그 누구의 관리도 없이 울창하게 푸르른 숲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데 어떻게 무섭지 않겠느냐고 네스트는 말했다. 맞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는 몰라도 아무도 관리해주지 않는 생명이 시드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자 섭리이다. 그렇지만 내 앞에는 그 꽃이 피어있다. 커다란 투구꽃이 피어있다. 저것은 분명 내가 피웠던 그 꽃이다. 꽃이라고 불러도 될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줄기와 줄기가 얽혀 나무처럼 투구꽃이 피어있다. 나는 한참 그 꽃을 바라보며 저것을 한 송이라고 불러야할까, 한 그루로 불러야할까 고민하다가 네스트를 두고서 나의 집으로 걸어갔다.
낡은 문이 닫히다 만 채 걸려 있었다.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날카로웠고, 자칫 잘못하면 곧 바스라내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문을 무너뜨렸다. 억센 덩굴 식물이 곧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집의 외벽을 감싸고 자라도록 하였다. 그리고 뻑뻑하게 굳어 걸려있는 문을 몇 번 걷어차주었다. 박살나는 소리가 났지만 문은 멀쩡하게 달려 있었다. 먼지는 꼭 모래바람이 불어온 것 마냥 날렸지만 나에게는 해가 되지 못한다. 나는 집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니 그제서야 네스트는 나를 쫓아 집 안으로 들어왔다.
네스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름끼칠 정도로 똑같았다.
내 기억 속의 집과,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난 후에 마주한 집은 똑같았다.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그때의 흔적을 고스란히 갖고서 멈춰 있었다. 그때 이후로 키가 한 뼘도 크지 않은 나처럼, 이 집도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그렇기에 더욱 낯설었다. 분명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데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집 곳곳을 돌아다녔다. 정말 다른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아버지도, 내 어머니도, 루스트도, 나도, 네스트도 아닌 다른 사람이 남긴 것을 발견했다.
⌜ ㅤ 붉은 머리칼, 녹빛 눈동자. ㅤ 아네모네를 꼭 닮은 작은 아이에게. 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
편지인지 노래인지 모를 것이다. 그 원본을 이곳에 옮길 수 없으니 필사한다. 낡은 종이의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글을 전혀 몰랐기에 네스트가 읽어주지 않았다면 읽을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 ㅤ 별은 서쪽을 향해 춤을 추네 ㅤ 바위가 부서져 뿔이 솟는 곳 ㅤ 바람이 흘러가 노래 하는 곳 ㅤ 불꽃이 타올라 달이 되는 곳 ㅤ 나무가 뿌리 내리지 못한 곳 ㅤ 모래가 실려 숨어버린 그 곳 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 ㅤㅤ⌟
⌜ ㅤ 작은 아이야, 아네모네야. ㅤ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
나와 네스트는 목적지를 정했다. 이 여행의 목적지이자 종착지는 저 어딘지 모를 그곳이 될 것이라고 느꼈다.
일상 속의 소란은 갑자기 찾아온다. 지금 델타 부대를 찾아온 이 불청객처럼. 여느 때처럼 하늘은 맑고, 자연은 고요한 때였다.
그의 방문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선두의 보초들이었다. 낯선 안드로이드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보초들은 그의 몇 마디 말에 가볍게 길을 내어준다. 이내 그가 연병장을 향해 걸어온다. 그는 검은 망토를 온 몸에 두른 남성형 안드로이드였다. 자칭 손님이라는 이 안드로이드의 출현에 연병장의 병사들은 경계 태세를 취한다. 모두가 무기를 꼬나쥐고 그를 노려본다. 방금 막사를 빠져나온 칼리스토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등에 매어둔 대검에 손이 간다. 불편한 기류가 흐른다. 남성은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더니 방정맞은 몸짓으로 두 손을 들어올린다.
"이런, 다들 진정해. 먼저 대화로 풀자고."
능글맞은 웃음소리가 공터를 울린다. 병사들이 수군댄다. 그새 웃음기를 거둔 남성이 자신을 둘러싼 안드로이드들을 돌아본다. 칼리스토도 그를 흘겨본다. 한쪽 눈에 안대를 차고 있다. 그 모습에서 기시감이 느껴진다. 교체할 부품이 없었나? 칼리스토는 생각을 거듭하다 한 가지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는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탈영병이다. 무리를 저버린 변절자다. 몸을 도는 오일이 차가워지는 것 같다. 탈영병이다. 소녀를 찾으러 온 존재일 것이다. 아닐 수도 있지만, 굳이 파괴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부대로 돌아오는 정신나간 탈영병은 없다. 칼리스토의 회로가 빠르게 회전한다. 목적이 확실한 탈영병. 매복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 또한 혼자서 오는 위험을 감수하진 않았을 테다. 그러나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적군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폐빌딩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 볼 수가 없다.
"일단은 여기 사령관을 불러주면 좋겠는데~"
남성의 말에 병사들이 서로 눈치를 본다. 곧 작은 체구의 안드로이드가 병영 안으로 잽싸게 달려들어간다. 고요한 침묵이 흐르는 것도 잠시 남성이 정적을 깬다. 오늘 날씨가 어떠느니, 일 힘들지 않냐느니, 흥미없는 소리만 늘어놓는다. 곧 사령관, 벨레로폰이 나온다. 얼굴에 근심이 서려있다. 그도 놈이 무슨 눈치인지 아는 듯했다. 남성과 거리를 둔 채 마주한 벨레로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상대를 노려볼 뿐이다. 여려보이는 소년의 신체지만 속내는 굳은 심지처럼 단단하다. 남성은 불편한 기색으로 팔짱을 낀다.
"당신들이 수중에 넣은 그 인간. 돌려주지 않겠어?"
역시나. 칼리스토의 전기 신호는 이 안드로이드가 위험한 놈이라고 소리치고 있다. 남성의 말에 숨겨진 의미는 간단했다. 돌려주지 않으면 폭력으로 해결하겠다.
"원래는 우리 거라서 말이야."
남성은 뭐가 그리 우스운지 연병장이 떠나가라 웃는다. 벨레로폰이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는다. 칼리스토도 초조하게 그를 바라본다. 그는 사령관이다. 인류 사령부로부터 이 부대의 지휘권을 일임받은 존재다. 소녀를 넘겨준다는 결정을 내려도 칼리스토는 그를 나무랄 수 없다.
"...거절하겠어요."
벨레로폰이 눈을 뜨며 일갈한다. 남성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입꼬리를 내린다. 강렬한 증오와 분노가 느껴진다.
"그렇다면 죽이고 빼앗는 수밖에 없지."
두꺼운 후드 아래로 남성이 비소를 내보인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안구에서 독기가 차오른다.
"나와라, 얘들아!"
남성이 소리치며 망토 안을 뒤적인다. 그걸 본 벨레로폰은 급하게 공격 명령을 내리지만, 그가 꺼내든 접이식 방패에 공격이 전부 막혀버린다. 남성의 방패를 휘두르는 거친 공격에 아군이 하나 둘 나가떨어진다. 건물 사이 숨어있던 다른 안드로이드들이 남성의 지시에 따라 모습을 드러낸다. 적의 총성이 청각 센서를 강하게 때린다. 이내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연병장으로 뛰어든 적과 아군이 한데 뒤섞인다. 설상가상으로 어디서 왔는지 모를 중대형 키메라들도 전장에 난입하기 시작했다. 적들이 데려온 것인지는 몰라도, 이대로면 승산이 없다. 칼리스토가 대검을 꺼내든 손에 힘을 준다.
"칼리스토! 인간을!"
벨레로폰이 권총을 꺼내며 칼리스토에게 외친다. 그녀는 그제서야 홀로 있을 소녀가 생각났다. "보레아스! 벨로에! 다른 부대에 지원을 요청해요!" 사령관의 필사적인 목소리는 칼리스토가 등을 돌려 소녀의 막사로 뛰어갈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칼리스토가 황급히 막사로 들어선다. 침대 한 켠에 웅크린 소녀는 바깥 소란을 눈치챈 듯 담요를 꼭 끌어안고 있다. 기척에 잠시 움찔한 소녀는 칼리스토를 바라보며 울상을 짓는다. 이대로는 적들에게 붙잡힐지 모른다.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야 한다. 그 생각만으로 소녀에게 다가갔지만. 바로 뒤에서 천막 찢어지는 거북한 소리가 들려왔다. 칼리스토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본다. 오래된 기름 냄새를 풍기는 남성 안드로이드다. 닳아빠진 인공 피부 뒤로 금속 장갑이 드러나있다. 적이다. 칼리스토는 세워둔 대검을 다시 쥔다. 검이 기계적으로 펼쳐지며 날도 드러난다. 깔쭉깔쭉한 톱날이다. 칼리스토가 거침없이 그를 향해 대검을 휘두른다. 느긋한 태도로 소녀를 바라보던 안드로이드가 일순 눈을 빛낸다. 그의 몸이 유연하게 움직이며 공격을 피한다. 칼리스토의 검은 허공을 가른다. 그의 머리카락조차 베지 못했다. 안드로이드는 기다렸다는 듯 칼리스토의 허리를 팔꿈치로 찍는다. 힘이 어찌나 강한지 검자루를 놓쳐버렸다. 안드로이드가 빠른 몸짓으로 칼리스토에게 일격을 가하려 한다. 신속하고 군더더기 없는 무술에 칼리스토는 바짝 밀어붙여진다. 주먹이 뺨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지금. 포착된 빈틈에 칼리스토가 몸을 돌리며 크게 다리를 뻗는다. 하지만 상대는 날아드는 다리를 바로 그 자리에서 붙잡는다. 그리고 앞으로 당긴다. 압도적인 완력에 칼리스토는 그대로 끌려가 엎어진다. 안드로이드가 그녀의 무방비한 등 위로 올라탄다. 상당한 무게가 기체를 짓누른다. 안드로이드의 손에는 복잡한 부품으로 만들어진 단검이 들려있다. 그가 버둥대는 칼리스토의 목에 단검을 가져다댄다. 피부를 몇 번이나 내리친 뒤에야 시퍼런 칼날이 금속 장갑을 뚫고 뒷목에 꽂혀들어갔다. 찢기는 듯한 고통에 그녀는 이를 악문다. 부품에 강한 전기 충격이 전해진다.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 신음은 점차 힘없는 앓이가 되어간다. 붉은 오일이 터져나오는 게 곁눈질로도 보였다. 칼날에 꿰뚫린 상처에서 스파크가 튀어오른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오일의 순환이 점점 멈춘다. 전신에서 전력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칼리스토의 사고도 순간적으로 정지한다. 마비되어가는 정신을 붙잡으며 필사적으로 몸을 뒤틀지만 의식은 점점 멀어진다.
간단하게 방해꾼을 처리한 안드로이드는 소녀에게 다가간다. 그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걸려있다. 소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비명지른다. 낯익은 얼굴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달달 떨리는 다리로 어떻게든 기어서 도망쳐본다. 그것도 잠시 소녀는 안드로이드에게 목덜미를 붙잡히고 만다. 몸이 붕 뜨고 발이 땅에서 떨어진다. 안드로이드는 소녀의 고개를 억지로 돌려 자신을 마주보게 한다.
"나쁜 아이한테는 벌을 줘야지."
장군님도 손 좀 봐주라고 하셨거든. 기분나쁜 미소다. 안드로이드가 팔을 휘둘러 소녀를 벽에 내친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숨 들이키는 소리가 난다. 너무 아프고 괴롭다. 그것도 잠시 머리칼을 쥐어채는 거친 손길이 느껴진다. 소녀의 고개가 들어올려진다. 안드로이드가 왼손을 높게 들어올린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 마구잡이로 찢어진 천막 너머 전장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내 소녀는 앞발을 휘두르던 곰 키메라와 눈이 마주친다. 여기야, 도와줘. 소녀가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키메라가 사람 말을 알아듣기야 하겠냐만은, 어째선지 곰 키메라는 당연하다는 듯 막사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폭발적인 속도로 막사를 향해 돌진한다. 키메라의 목표는 적군 안드로이드였다. 머리채를 쥔 손아귀에 힘이 풀리고 안드로이드가 뒤로 넘어진다. 제 몸에 올라탄 키메라를 보며 그는 꼴사납게 고함을 지른다. 하지만 아무리 몸부림쳐도 키메라의 완력을 당해낼 수 없는지 고초를 겪고 있다. 이윽고 키메라가 입을 벌린다. 커다란 입 속으로 안드로이드의 머리가 통째로 집어삼켜진다. 전선이 끊어지고 부품이 박살나는 살벌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목이 절단된다. 흘러나온 오일이 바닥을 축축하게 적신다. 사냥이 끝난 키메라는 몸을 돌려 막사 밖으로 뛰쳐나간다. 남아있는 둘에겐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소녀는 주저앉은 자세로 칼리스토에게 기어간다.
"괜찮아?"
힘들어하는 칼리스토를 소녀가 일으켜세운다. 그녀 또한 몽롱한 의식 속에서 방금 전의 사냥을 똑똑히 보았다. 마치 소녀가 키메라를 길들이기라도 한 것 같은 상황.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칼리스토는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소녀를 품에 안아든다. 막사 뒤쪽으로 나가 조심히 병영으로 향한다. 말을 듣지 않는 부품에 간헐적으로 비틀거린다. 조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둘은 병영 뒷편의 지하실에 도착한다. 칼리스토는 낡은 마룻바닥에 소녀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조심하라고 당부한 뒤 전장에 뛰어들 준비를 한다.
가르고 박살내고 죽인다. 키메라도, 적군 안드로이드도 그녀의 손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진다. 손바닥이 찢어져 오일이 흐르고 통각이 느껴져도 멈추지 않는다. 목에서 아릿한 고통이 지속적으로 전해진다. 그래도 쉬지 않는다.
이 곳은 둥지, 영웅들의 첨탑. 사람들은 영웅이라 한다면 단단한 육신과 강인한 정신을 생각할 것이다. 그것이 설령 짜여버린 틀이고 보편적이 되어버린 군상이며 대중이 요구하는 영웅의 모습이라 해도, 그런 사람들이 정말 필요한 곳이며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적어도 육체적으로는 건강해 보이는 곳임은 분명했다. 물론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이를테면 붉은 머리를 가진 사람, 혹은 노란 눈을 가진 사람처럼 눈에 보이는 색채가 특이한 사람들. 꿀벌의 노란 빛을 연상시키는 눈을 가진 남자가, 붉은 머리에 새싹빛 눈을 한 여자와 한동안 재잘재잘 대화를 나눈다. 드르륵, 문이 열린다. 그들이 서 있는 복도에 달린 문이 열리고, 한쪽 눈에 안대를 쓴 남자가 두 사람을 불러 사무실 안으로 부른다. 보편적인 영웅 군상, 그런 사람은 아닌 존재. 제법 마르고, 평범하게도 갈색 머리칼에 푸른 눈빛을 가진 남자는 순식간에 복도 언저리를 고요로 채우고는 그대로 자신의 공간으로 사라진다. 복도에 있던 사람들은 항상 있어왔던 일 치고는 드물게 시선을 모아 주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방금 전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잠시 동안 휴가로 자리를 비웠었기 때문이다. 빈 자리의 고요가 순식간에 채워졌다가 평소의 일상적 모습마저 보여지는 광경은 늘 그렇듯이 잠깐 동안의 낯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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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눈을 한 남자는 하루 일과를 잘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으면, 문이 열린다… 본인의 방이 있는 층은 아니다. 하지만 익숙한 얼굴들이 그를 보고 손을 흔들어 준다. 그는 살갑게 웃으면서 따라 인사를 한다. 짧은 대면의 순간은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면서 끝난다.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 속 스스로의 모습을 본다. 그는 아주 옛날에, 이 거울에 제대로 비치지도 못할 정도로 작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거울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졌지만, 작고 작은 시절에는 엘리베이터 구석에서 파르르 떨었던 때가 있었더랬다. 손을 흔드는 것조차 무서워 누군가의 뒤에 숨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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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나면 비가 추적추적 온다는 묘사를 자주 끼워 넣곤 한다만, 어떤 작은 아이에게 일어난 일은 바람이 유난히 강한 날에 일어났다. 그 날은 아이의 어머니가 유달리 아이를 잘 달래던 날이었다. 매일같이 언성을 높이고, 조악한 밥을 먹이던 사람이 까슬한 손길을 뒤로 숨기고 아이를 서툴게나마 보듬던 날이었다. 어린 아이는, 무감함 속에 새겨진 학습된 공포에 어머니를 이리 저리 피해 보려고 여느 때와 같이 장롱에 숨었다. 어머니는 평소와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를 찾았고, 이내 평소와 같이 거친 손길로 장롱을 열었다. 아이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가 아니라 다른 사람인 걸까?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하지만 꿈에서도 엄마는 항상 화를 냈는데. 아이는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꿈을 눈 앞에 두고 망설였다. 소리 지르지 않는 엄마. 안 아프게 하는 엄마. 엄마한테서 괴상한 냄새가 나지 않는 걸 보니, 술을 먹은 건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정말로 꿈일까. 그래도 붙잡아도 될까. 아이는 까슬한 손을 붙잡고 장롱 밖을 나왔다. 아이는 이미 마음의 문을 닫은 지 너무 오래 되어서, 어머니의 체온이 따뜻한 지 차가운 지 잘 느끼지도 못했다. 닫은 문이 덜컹거릴 때는 무서운 걸 봤을 때 뿐이었다. 화난 엄마, 술을 먹은 엄마, 술을 먹고 화를 내는 엄마… 돈이 없다고 하는 엄마. 집에 방치되었던 아이는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들이, 현관문 밖에서 오간다. 아이는 무섭다. 조금 무섭지만 엄마의 손을 잡고 있어서 괜찮다. 그런데 엄마가 손을 놓아 버렸다. 아이는 모르는 사람의 손에 넘겨졌다. 엄마는 아이 대신 돈을 잡고 있다. 아이는 모르는 사람의 품에 들어가 버렸다. 아이는 무섭다. 이제는 너무 무섭다. 그런데 울면 혼날 거야. 소리를 내면 혼날 거야. 아이는 그저 품에서 떨기만 한다. 노란 눈동자는 바람에 빠르게 실려가는 구름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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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정돈을 한창 하고 있던 와중에, 정보 제공자가 붉은 머리의 영웅에게 은밀히 정보를 흘린 것으로 사건의 서술은 시작되었다. 정보 제공자는 지도를 펼치며 항구 근처와 빈민가 인근의 몇몇 장소를 골라 짚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장소로 짚인 곳은 두 곳이었는데, 하나는 항구의 대체 누가 주인인지도 모르는 중간 크기의 창고였고, 다른 하나는 빈민가 쪽의 지하 설비(정확히는 지하와 연결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 였다. 붉은 원과 별 표시로 중요성을 나타낸 정보 제공자는 붉은 머리의 영웅을 바라보았다. 사건의 개요는 이러하다. 아동 실종 사건, 불법 선박 목격 등의 이유로, 누군가 조직적으로 일을 치고 있다는 것. 이런 일은 경찰들이 해결할 수 있다면 할 일이기 때문에 본래 그들이 주로 개입하는 사건은 일반적으로 공권력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로 정의되며, 특히 초능력에 관련된 사건이 그러했다. 그러나 이번 일에 마땅히 개입할 명분을 그가 끌어왔는데,
‘납치된 아이들 중에 아무래도 초능력자가 있는 것 같더라. 이 일을 꾸민 새X들은 걔만 따로 어떻게 할 속셈인 거고.’
그리 된 것이었다. 이런 정보를 물어 와 기어코 틈바구니를 쥐어 짠 정보 제공자는, 혹시라도 그 애를 데려올 수 있다면 최대한 심적 안정을 취하게끔 조치하라고 추가적으로 당부했다. 당시의 붉은 머리 영웅은 그것을 명령이라고 느꼈지만, 동감하는 바였기에 이에 동의하였고, 몇 가지를 간단하게 토론한 뒤 그들은 둥지 밖을 나섰다. 경찰들의 사이렌이 그들의 얼굴에 번쩍거렸다. 붉은 머리의 영웅은, 앨리스 맥거프는 이번 일에 기습적인 협조를 해 준 녀석에 대해 짧은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나 정보 제공자는 원래부터 저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는 듯 시큰둥해하며, 일이나 빨리 마치고 오라고 핀잔이나 주었다. 이걸 그저 성과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앨리스는 그리 쏘아 붙이려다가 말았다. 어찌 되었건 간에 그는 스스로의 유능함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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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는 홀로 다른 방에 갇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른 아이들이랑 함께 마룻바닥 밑의 쥐 떼 처럼 죽은 듯이 있었는데, 이제는 혼자 쥐 덫에 걸린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무섭게도 커다란 손은 아이가 떨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고, 손을 머리 위로 올리자 눈을 감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지 억지로 눈을 뜨게 만들었다.
아이는 순간 제발 이 사람이 나에게서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리 되었다.
불완전하고 얇고, 아이의 눈 색을 닮은 황금빛 벽이 아이를 잠깐 보호했다. 보호되는 순간 아이는 황금빛 세상에 들어온 듯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을 반짝였지만, 이내 커다란 사람의 거친 고함에 세상이 깨어지자 다시 숨을 죽였다. 눈을 죽이고, 울음을 죽였다. 공포를 짓눌렀다. 불규칙한 호흡만이 아이가 무서움에 갇혔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아이는 그렇게, 혼자 갇히게 되었다. 나쁜 짓을 했나 봐. 내가 어른들 말을 안 들어서 그래. 나쁜 아이가 된 거야. 어떡하지? 잘못했다고 할까? 작은 머리가 이리 저리 구른다. 달이 뜬 밤이었지만 아이의 생각은 달만큼 높이 닿지 못하고 구름에 막힌다. 조막만한 손이 눈을 덮었다. 울면 안 돼, 혼날 거야. 나쁜 아이는 울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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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가 본래 향해야 할 곳은 항구 쪽이었다. 그녀의 힘은 복잡스러운 곳에서 더 활용하기 좋은 만큼, 그리고 항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홀로 시간을 끌거나 수비하기에도 좋은 만큼. 그래서 그녀가 항구에 있었는가? 있었다. 다만 아이에 대한 정보를 듣고, 정보 제공자의 말을 들었을 때의 피 끓음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빨리 끝낸다면 합류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야.’ 빌어먹을 놈, 사람 이용 한 번 잘 하는 놈. 무엇에 대한 분노인지는 모르겠으나. 적들이 보였다, 창고 안에 있는 빈 드럼통이 ‘우연히’ 구르기 시작한다. 창고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위로 남은 자재들이, ‘우연히’ 굴러가는 드럼통에 밀려 ‘우연히도’ 덮인다. 쇠사슬 같은 것들 이 사람들을 얽어버리고, 바깥은 관리가 제대로 안 된 창문 너머로 굴러간 드럼통에 소동이 인다. 골드버그 장치는 그녀를 배회하며 적들을 노려본다. 노려보는 것을 그만 둔다, 이 쯤이면 그냥 주먹질을 해도 이길 것 같거든.
어둠을 틈타, 의도적으로 도착한 자가 뒤통수를 강타하기 시작한다. 항구에서 선박을 기다리던 이들은 하나 둘 씩 제압당한다. 제압당하는 자들 보다도, 제압하는 자의 이가 훨씬 더 악에 받친 듯 꽉 물려 있었다. 늦고 싶지 않다. 몇 명을 드럼통을 둥글려 넘겨 버림으로써 넘어뜨리고 차례차례 기절시킨 뒤, 마지막으로 남은 이들을 해결한다. 바닷바람이 매섭고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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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이 곳이 집에 있던 장롱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매일 같이 어머니의 손을 피해 숨던 곳. 금방 들키지만, 숨을 곳이 마땅치 않던 집에서 유일한 피난처. 그래서 아이는, 바깥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자 자연히 그림자 속으로, 구석으로 파고 들기 시작했다. 마치 이 곳에 아무도 없다는 듯이 아이는 쥐 죽은 듯 가만히 숨을 참았다. 가만가만 쉬기만 했다. 이따금 높은 비명과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아까 전 같이 있던 아이들의 것인가 보다. 또 들어 보면 굵고 짧은 소리가 들린다. 이건 아까 커다란 사람의 것인가 보다. 나쁜 사람이 여기를 태우러 오나 봐. 나쁜 사람이, 잡아먹으러 오나 봐! 아이는 구석에 잔뜩 웅크렸다. 달빛이 지상과 지하를 가르는 그 틈새로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쾅! 마침내 문이 부서질 듯 열렸을 때, 앨리스는 작은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스스로를 세상과 분리시키고 싶은 것처럼 작고 노란 공에 갇힌 작은 아이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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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번의 용의자였던 사람이나, 전무후무한 사례를 남긴 정보 제공자와는 달리, 아이는 정말 설탕유리과자를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이동되었다. 회사에 딸린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고, 취조를 할 때에도 그 숨 막히는 공간보다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병원 복도의 의자에서. 앨리스는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아이는 병원에 있는 모든 시간동안 앨리스의 옷자락을 움켜쥐느라 손이 허옇고 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앨리스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피가 몰린 아이의 손을 주물거리면서 물었다.
“아가야, 있지. 누나가 궁금한 게 있는데. 아, 내 이름은 앨리스야.” “…앨리스…” “응. 혹시 아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동화 아니?”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앨리스는 굴하지 않았다.
“그렇구나. 여기는 병원이야. 병원.” “…병원…”
멀거니 따라하는 아이의 모습이 예사롭지는 않다. 단어를 발음하는 게 조금 부자연스러웠다. 앨리스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처음 오니?” “응…”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적인 신호를 본 것치고 앨리스의 속은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좋게 생각하자면 아이는 아무 데도 아프지 않아서 병원에 올 일이 없었던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앨리스는 그것보다는 아이를 살피는 데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부드러운 웃음이 그녀의 얼굴에 자리했다.
“병원은 아픈 사람들이 오는 곳이야. 여기서, 아까 본 하얀색 옷이랑 초록색 옷 입은 사람들 있지. 선생님들이야.” “응…” “선생님들이랑 놀면 아픈 게 다 낫는 곳이야. 알았지? 어디 아픈 곳은 없니?”
아이는 다시 고개를 젓는다.
“아가야, 선생님이 아가 이름을 알고 싶대. 아가는 이름이 뭐야?”
새싹빛 눈이, 죽어가는 전구처럼 빛나는 눈을 마주한다. 노란 눈을 한 아이가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엄마는… 잭이라고 했어요.” “잭, 잭이구나. 안녕, 잭. 이제 괜찮을 거야. 이제 괜찮을 거야…”
앨리스는 잭을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안아주었다. 여린 새싹의 화분을 옮기듯이. 잭은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머리 위까지 올라간 손이 그렇게 무섭지 않았고, 또 난생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말했다. 난생 처음으로 조심스럽게 안겼다. 처음 일어난 일은, 아주… 따뜻했다.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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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슨 호프.” “그럼 잭도 잭 호프가 되나?” “그 애 이름이 잭인가 보군.” “그래. 메이슨 호프 씨는 어떻게 되고 있지?” “이 쪽은 순전히 경찰들 소관이지만, 조사 결과 정도는. 경찰들이 나한테 고마워할 걸.”
정보 제공자, 다니엘이 다리를 꼬며 자세를 고쳤다. 참 예의 바르지 않은 자세였다. 저 사람이 아이의 보호자 씩이나 되는 사람한테 적대감을 드리우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의 추측이 맞는 모양이었다. 다만 그 뒷면에 있던 것 까지는 그녀도 몰랐겠지.
“일단 이거 먼저. 실종자 서류. 특이사항, 눈이 노란 색임.” “…이 사람은 호프 씨가 아닌데. 그렇다는 건,” “그래.” “실종자라고?” “실종자 ‘였어.’ 다음은 보험 청구 문서.”
메이슨 호프의 앞으로 도착한 거액의 보험금. 다니엘은 이어서 사진 한 장을 추가로 들이민다. 비교적 최근, 아니, 바로 어젯밤에 찍은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는 깔끔한 화질의 사진이다. 사진 안에는 메이슨 호프와 잭 호프가 살았던 집과, 작은 안뜰. 앨리스는 사진을 자세히 봤다. 작은 안뜰은 파헤쳐 져 있었다. 파헤친 흙더미 사이로 유골이 보인다. 옷가지가 같이 보인다. 실종자가 입고 있던 옷과 똑같다.
“보험… 사기였지. 실종이 아니라,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된 셈이야. 메이슨 호프는 살인 및 보험 사기, 인신 매매 혐의로 체포 됐어.” “…그걸 알아냈다고?” “단기간에 능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킨 다니엘 워커씨의 힘이랍니다, 맥거프 씨.”
재수없게도 어깨를 으쓱한 다니엘은 이어서 앨리스를 바라본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더 해 보라는 듯이.
“…아, 무래도 죄목을 추가해야 할 것 같은데.” “이를 테면?” “…아동 학대.” “으흠. 실종 처리가 14년 전에 됐거든? 그런데 그 애는 몇 살로 보였지?” “14년? 거짓말하지 마, 그 애는 고작 8살 밖에 안 돼 보였다고.” “최소 14살. 그 애가 몇 살로 보였다고? 교육 수준은? 지능 검사… 는 안 했으니 패스.” “…하.”
아이의 건강 검진 결과에 분명히 써 있던 영양결핍이 눈에 아른거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죽은 듯이 지냈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눈이 핑 도는 것 같다. 눈물이 새는 것도 같다. 다니엘의 웃음소리가 들려도 새어 나간 눈물이 다시 마르지는 않았다.
“웃음이 나오나 보지?” “아니, 그렇게 울 수 있는 인간이 나한테는 그렇게 살벌하게 대한 게 웃기잖아.”
다니엘은 자신이 다쳤던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면서 웃는 사람의 눈은 웃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시커멓게 썩고 독이 가득 든 사람의 눈. 앨리스는 잠깐 숨을 멈췄다.
앨리스는 다니엘을 막기에는, 눈 속 어딘가의 흔적을 읽은 것도 같았다. 혹은 애라고 할 때 묘하게 부드러워지는 목소리를 눈치챈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앨리스는 다니엘을 막을 수 없었다. 기묘한 믿음이 태도에서 묻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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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은 하얀 병원복을 입고 하얀 병실에 있었다. 하얀 침대의 하얀 이불을 만지작거리는 손이 어색함을 느끼고 있다고 열심히 바르작거리고 있었다. 병원, 아픈 곳이 사라지면, 떠나는 곳. 그러면 나는 이제 어디로 가지? 노란 눈이 깜빡거린다. 작은 머리가 돌아갈 힘이 없어 숙여진다. 그 때, 문이 조용히 열렸다.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꾸미려는 무거운 발걸음이 이어지다가, 간이 침대에 멈췄다. 들어온 사람을 바라보기엔 잭은 작은 아이였고, 들어온 사람은 어른이었다. 어른은 아이가 충분히 낮춰 볼 수 있도록 간이 침대에 자신을 꿇어 앉혔다. 이런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임을 잭이 알게 되는 것은 한참 나중이 될 일이다.
“안녕, 아이야. 이름이 뭐니.” “…잭이에요.” “잭, 잭… 호프. 네 어머니의 성함이 메이슨 호프 더라. 그래서 네 이름은 아마도 잭 호프일 거야.” “…잭, 호프.”
그제야 제 이름을 안 것 마냥 아이는 몇 번이고 스스로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다니엘은 살 없이 마른 아이의 뺨을 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거 알아? 호프는 희망을 뜻해.” “희망…?” “그래. 어두컴컴할 때, 숨이 막힐 때, 한 줄기 빛 같은 거지. 으음, 나도 설명은 잘 못 하겠는데.” “좋은 거야?” “아마도.” “…어…”
잭은 눈 앞의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이름을 모른다. 어떻게 불러야 하지? 커다란 사람? 방황하는 입과 손이 빤히 보여 다니엘은 순간 웃음이 나오려던 것을 꾹 참는다.
“아저씨라고 부르든 형이라고 부르든 상관은 없는데, 일단 이름은 다니엘 워커라고 해. 다니엘, 클라이드, 워커.” “…클라이드?” “미들 네임이야.” “미들 네임 있으면 좋아?” “음, 있으면 좀 더… 멋있어져.”
그렇게 말하면서 다니엘은 멋진 팔짱을 껴 본다. 잭도 그것을 따라한다. 노란 눈이 다니엘을 향한다. 자신이 멋지냐고 물어보는 것 같다. 다니엘은 슬며시, 느리게 손을 잭의 뺨 가까이에 가져가서, 아이가 눈을 꼭 감으면 그제가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짜잔. 안 아프지롱.” “어…?”
어떤 아픔도 찾아오지 않자 잭은 감은 눈을 떴다. 안 아프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는 아이에게, 이제 막 노란 눈에 작은 빛들이 돌아오기 시작한 아이에게 다니엘은 말한다.
“앞으로 천천히, 아픈 걸 치료할 거야.” “…나 안 아픈데.”
나이에 비해 확연히 어려 보이는 모습. 키 하며 체구까지 두 뼘 정도는 평균보다 작은 아이. 그리고 말 하는 투를 봐도, 이걸 넘겨짚는 것은 조금 실례일 지도 모르겠으나 정신적인 연령 마저도 또래보다 확실히 어릴 것이다.
“잭은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어른들은 잭이 어디가 아픈지 알아. 그래서 잭은 계속 여기 있을 거야.” “병원에?” “병원 말고, 음… 새로운 집이랑, 새로운 사람들이랑 있을 거야. 병원도 계속 올 거지만.” “…그럼 나, 앨리스랑도 계속 봐?” “그으렇지.”
아이가 밝게 웃는다. 웃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서 다니엘은 안심한다. 서리 같은 것으로 촘촘히 쌓여 있던 안이 조금은 녹는 것 같았다. 고드름으로 온통 수장되었던 심장이 체온을 느끼라 한다. 다니엘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빙긋 웃는다.
“앨리스한테 멋진 이름 자랑하려면 미들 네임도 지어야지.” “응!” “그래서 내가 가져온 건 이름 모음집이야.” “응!” “잭, 좋아하는 이름을 찾으면 말해 줘.” “응! 다니엘!”
다니엘은 살며시 잭의 옆자리로 가 앉는다. 커다란 사람이 곁에 가 앉자 잭은 몸을 파르르 떨었지만, 이내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다시 눈을 뜬다. 아프지 않다. 잭은 몇 번 눈을 깜빡거리다가, 눈 앞에 놓인 이름 모음집이라는 이름의 책을 건네받는다. 만지작거린다. 책이다, 동화?
“동화도 있어?” “있지. ‘잭과 콩나무’라는 동화도 있어.” “그럼 나는 잭 콩나무 호프야?” “아니야.”
다니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책의 표지를 펼쳤다. 음, 제법 글씨가 빽빽한데. 글씨 공부 용으로 가져올 만한 거였는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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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신의 방에 도착하면 문패에 적힌 이름이 보인다. 건너편에는 ‘다니엘 클라이드 워커’가 적힌 방이 보인다. 제 형의 이름이다. 아직도 사무실에 있겠지, 하여튼 형은 서류를 만지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의 문패에 적힌 이름은- ‘잭 에드윈 호프’.
‘명예를 지키는 사람.’ 그는 문패를 한 번 쓸며 제 방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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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공개된 극비의 에이스 씨 다니엘: 공개된 극비의 드시웨 씨 잭: 공개된 극비의 말랑이
잭(말랑이): 근데 있잖아요, 왜 참새(잭 스패로우)라고는 안 해요? 별명 부를 때? 앨리스(에이스): (함박웃음) 잭: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음) 앨리스: 우리 짹짹이 참새라고 불리고 싶었구나 (함박웃음) 다니엘(드시웨): 내가 진짜 궁금한 건데, 왜 매번 스스로 불러 온 재앙에... 잭: 으아악 아니야 다니엘: 참새 녀석아
포피는 살인마 누명 썼던 친구였냐고 아이고 백이주 이런 맵다는 얘기 없었자나요 백이주 독백은 너무 말랑하고 맛있어서 마쉬멜론줄 알았더니 항상 이런 식이지 왜 내 마시멜로에 와사비를 넣었나요...? (농담임니다 독백 재밋어요)
에주 하드보일드 로봇 액션 너무 잘봤다 로봇끼리 죽자고 싸우는 거 파이트 클럽 같아서 멋있고 재밌는데 찾아보니까 내 심장이 저만치 날아가 있워요 요새 로봇들은 저런 나쁜 말도 어디서 배워서 아이구 잘한다 나쁜 아이한테 벌 준다고 막 그러고 할미는 늙어서 이런 게 막 새로워 디지털 이런 거 할미 잘 몰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