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위키: https://bit.ly/2UOMF0L 1:1 카톡방: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245396 뉴비들을 위한 간략한 캐릭터 목록: https://bit.ly/3da6h5D 웹박수: https://pushoong.com/ask/3894969769
[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а́ 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번정도만 언급하는걸로 깔끔하게 할것. 떠날때 미련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규칙에 따라,지적과 수용,해명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5. 아직 내지 않았거나, 어장에서 내린(혹은 데려오지 않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자제하자.
6. 모브캐가 비중 높게 독백에서 나올 경우, 위키 등재나 각주 설명을 사용해보자. 또한 모브캐의 암기를 강요하지 말자.
7. 픽크루를 올릴때 반드시 캐릭터명을 명시하도록 하자.
8. 유사시를 위해 0답글에 어장을 세운사람이 누군지 나메를 적어두자.
9. 타작품 언급시 스포일러라는 지적이 하나라도 들어올 시 마스크 처리된다.
10. 특정 작품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면 AT로 취급한다. 특히 단순한 감상이나 플레이 이야기가 주가되지 않도록 하자.
11. 특정 작품 기반 AU설정및 썰은 위키내 문서를 활용하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당신은 투구꽃을 알고 있는가? 나는 몰랐다. 네스트와 만나고, 농부인 네스트가 꽃에 대하여 박식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투구꽃은 독성이 있는 식물, 즉 독초다. 그것으로 우린 차를 먹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먹는 즉시 피를 토하며 쓰러져 죽지는 않더라도, 이내 죽음에 이르리라는 짐작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나의 기억 속에서 내 부모가 제1 요람의 대장과 나누어먹었다던 차의 주 재료는, 내가 제1 요람의 대장에게서 받은 화분의 꽃은 투구꽃이 확실했다. 네스트는 나에게 말했다. 자신에게 알려준 모든 것이 모두 진실이라면, 제1 요람의 대장이라는 루스트가 나의 부모를 살해한 것이고 거짓으로 나를 속인 것이라고. 자신의 조상이 살인마라는 확신이 깃든 눈동자는 그 조상의 눈동자와 달랐다. 그래서 나는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내가 부모를 죽인 것이 아니라고 달라지는 것은 무엇이고, 루스트가 내 부모를 죽인 것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무엇인가? 셋 다 이미 죽었다. 어릴 적의 나와 같이 숨 쉬던 사람들은 다 죽었다. 오로지 나만이 남아 숨을 쉬고 있고, 그런 나는 여전히 괴물과 어울리는 것이다. 그때의 내가 몇 명을 죽였는지는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고, 부모가 누구의 손에 죽었는지도 의미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루스트는 나에게 사람을 죽인 만큼 속죄하여 죗값을 치루는 것을 삶의 목표로 정해주었다. 그런데 아무도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니, 나는 삶의 목표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만 숨을 쉬고 싶었다. 모두가 괴물이라고 불러주니, 여느 아름다운 결말을 맺는 동화 속의 괴물처럼 되고 싶었다. 멋진 영웅이 와서 괴물을 해치우고 찬송받으며 끝나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물론, 내가 그렇게 죽음을 선택했더라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스트가 나에게 괴물이 아니라고 말을 해주었다. 이 모든 글의 첫번 째 문장, 0장의 첫 문장을 기억하는가? ‘괴물이 아니라고 한다.’ 만난 지 하루는 커녕 반나절도 안 된 자가 내 인생의 99%에 가까운 시간을 너무나도 확신에 가득차서 부정해버릴 때,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은가? 나는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궁금했다. 나는 네스트에게 물었다.
“며칠 낮밤을 먹지 않고 자지 않아도 죽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내가 괴물이 아니라면 무엇이니?”
이 질문에 대한 네스트의 대답은 너무나도 어리석고 단순한 것이었다.
“그냥… 그저 조금 다른 사람이에요!”
나는 진위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내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포함하여, 네스트가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신뢰와 확신을 품을 수 있는 근거의 정당성 또한 확인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얼마나 오랜만일지도 모를 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모든 것이 시작된 곳에 티끌만한 흔적이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망상을 품고 여행을 시작했다. 오해하지 말자. 기대와 망상은 네스트의 몫이다. 네스트는 나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고 (여전히 이해가지 않는 행동이다.) 내가 가는 길을 따라다니며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하였다.
제2 요람까지 가는 길은 가까웠고, 단순했으며, 날씨조차 화창했다. 긴 시간동안, 오랜 시간동안 틀어박혀 갇혀 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은 날이었다. 정말 비웃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내 집에 찾아가는 길을 까먹었기 때문이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그 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생각을 하지도 않아도 발걸음이 알아서 향하는 곳이 있었다. 모래 밖에 남지 않은 지구에 둥지를 튼 요람, 그 중 제1 요람만이 식물을 가꾸었다. 제2 요람은 식물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그런 곳에 작은 숲이 우거져 있다면, 나는 내게서 본능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삶의 의지가 없어 제일 중요한 본능이 마비된 것이나 다름없는 내게 본능적인 이끌림이 느껴진 것이다.
제2 요람의 사람들은 당연히 나를 알아보지 못 했다. 한때 제2 요람을 이끌었던 대장 부부의 딸이라한들 과거의 이야기다. 제2 요람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제1 요람의 대장 자리를 물려받을 농부 하나가 웬 어린애를 데리고서 제2 요람에 찾아온 모양새로만 비추어졌다. 그리 달갑지 않은 이방인들로만 보였단 뜻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경계감을 비추고 있으면서, 숲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니 그곳은 죽음의 숲이라 독초가 자란다며 들어가지 말라는 친절을 베풀었다. 언젠가부터 우거져서는 쉽게 시들지도 않는다며 베어내지 않고 두었단다. 나는 내 본능적인 이끌림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고 숲으로 들어가려 했다. 네스트가 붙잡아서 제2 요람의 사람들에게 내 머리를 눌러 인사시키는, 한 차례 쇼가 있은 후에 말이다.
죽음의 숲이라고 불리는 숲은, 그 안쪽은 이름과 걸맞았다. 생명이라고는 방금 발을 들인 네스트와 나 밖에 없다는 듯이 고요하고 잔잔했다. 그리고 그곳에 내가 살았던, 내 찰나의 어린 시절의 전부였던 집이 있었다. 내가 키운 꽃에 천장이 뚫려버린 채로.
내가 피웠던 꽃은 물론 없었다. 다만 뜨거운 모래밭을 걷느라 늘 까져있던 발바닥에 풀이 밟혔다. 맺혀있는 이슬은 차가웠고 풀잎 자체는 부드러웠다. 이런 것을 삶이라고 정의 내린다면 나는 그때 첫 숨을 쉬었다고 이야기하겠다. 숨을 들이켜 폐부에 공기를 채워 가슴을 부풀어오르도록 만들고, 다시 내뱉으며 몸이 가라앉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살아있다’고 느꼈다는 이야기다. 나는 죽음의 숲에서 삶을 찾았다.
내가 어릴 적 지내던 공간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낄 리가 없다. 애초에 내 감정을 무뎌진지 오래라 그런 것을 느끼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네스트는 그때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지구라는 행성 어디를 둘러보아도 사람이 모여 사는 요람을 제외하고는 모래밭 밖에 없는데, 이렇게 그 누구의 관리도 없이 울창하게 푸르른 숲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데 어떻게 무섭지 않겠느냐고 네스트는 말했다. 맞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는 몰라도 아무도 관리해주지 않는 생명이 시드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자 섭리이다. 그렇지만 내 앞에는 그 꽃이 피어있다. 커다란 투구꽃이 피어있다. 저것은 분명 내가 피웠던 그 꽃이다. 꽃이라고 불러도 될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줄기와 줄기가 얽혀 나무처럼 투구꽃이 피어있다. 나는 한참 그 꽃을 바라보며 저것을 한 송이라고 불러야할까, 한 그루로 불러야할까 고민하다가 네스트를 두고서 나의 집으로 걸어갔다.
낡은 문이 닫히다 만 채 걸려 있었다.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날카로웠고, 자칫 잘못하면 곧 바스라내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문을 무너뜨렸다. 억센 덩굴 식물이 곧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집의 외벽을 감싸고 자라도록 하였다. 그리고 뻑뻑하게 굳어 걸려있는 문을 몇 번 걷어차주었다. 박살나는 소리가 났지만 문은 멀쩡하게 달려 있었다. 먼지는 꼭 모래바람이 불어온 것 마냥 날렸지만 나에게는 해가 되지 못한다. 나는 집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니 그제서야 네스트는 나를 쫓아 집 안으로 들어왔다.
네스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름끼칠 정도로 똑같았다.
내 기억 속의 집과,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난 후에 마주한 집은 똑같았다.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그때의 흔적을 고스란히 갖고서 멈춰 있었다. 그때 이후로 키가 한 뼘도 크지 않은 나처럼, 이 집도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그렇기에 더욱 낯설었다. 분명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데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집 곳곳을 돌아다녔다. 정말 다른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아버지도, 내 어머니도, 루스트도, 나도, 네스트도 아닌 다른 사람이 남긴 것을 발견했다.
⌜ ㅤ 붉은 머리칼, 녹빛 눈동자. ㅤ 아네모네를 꼭 닮은 작은 아이에게. 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
편지인지 노래인지 모를 것이다. 그 원본을 이곳에 옮길 수 없으니 필사한다. 낡은 종이의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글을 전혀 몰랐기에 네스트가 읽어주지 않았다면 읽을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 ㅤ 별은 서쪽을 향해 춤을 추네 ㅤ 바위가 부서져 뿔이 솟는 곳 ㅤ 바람이 흘러가 노래 하는 곳 ㅤ 불꽃이 타올라 달이 되는 곳 ㅤ 나무가 뿌리 내리지 못한 곳 ㅤ 모래가 실려 숨어버린 그 곳 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 ㅤㅤ⌟
⌜ ㅤ 작은 아이야, 아네모네야. ㅤ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
나와 네스트는 목적지를 정했다. 이 여행의 목적지이자 종착지는 저 어딘지 모를 그곳이 될 것이라고 느꼈다.
일상 속의 소란은 갑자기 찾아온다. 지금 델타 부대를 찾아온 이 불청객처럼. 여느 때처럼 하늘은 맑고, 자연은 고요한 때였다.
그의 방문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선두의 보초들이었다. 낯선 안드로이드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보초들은 그의 몇 마디 말에 가볍게 길을 내어준다. 이내 그가 연병장을 향해 걸어온다. 그는 검은 망토를 온 몸에 두른 남성형 안드로이드였다. 자칭 손님이라는 이 안드로이드의 출현에 연병장의 병사들은 경계 태세를 취한다. 모두가 무기를 꼬나쥐고 그를 노려본다. 방금 막사를 빠져나온 칼리스토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등에 매어둔 대검에 손이 간다. 불편한 기류가 흐른다. 남성은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더니 방정맞은 몸짓으로 두 손을 들어올린다.
"이런, 다들 진정해. 먼저 대화로 풀자고."
능글맞은 웃음소리가 공터를 울린다. 병사들이 수군댄다. 그새 웃음기를 거둔 남성이 자신을 둘러싼 안드로이드들을 돌아본다. 칼리스토도 그를 흘겨본다. 한쪽 눈에 안대를 차고 있다. 그 모습에서 기시감이 느껴진다. 교체할 부품이 없었나? 칼리스토는 생각을 거듭하다 한 가지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는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탈영병이다. 무리를 저버린 변절자다. 몸을 도는 오일이 차가워지는 것 같다. 탈영병이다. 소녀를 찾으러 온 존재일 것이다. 아닐 수도 있지만, 굳이 파괴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부대로 돌아오는 정신나간 탈영병은 없다. 칼리스토의 회로가 빠르게 회전한다. 목적이 확실한 탈영병. 매복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 또한 혼자서 오는 위험을 감수하진 않았을 테다. 그러나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적군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폐빌딩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 볼 수가 없다.
"일단은 여기 사령관을 불러주면 좋겠는데~"
남성의 말에 병사들이 서로 눈치를 본다. 곧 작은 체구의 안드로이드가 병영 안으로 잽싸게 달려들어간다. 고요한 침묵이 흐르는 것도 잠시 남성이 정적을 깬다. 오늘 날씨가 어떠느니, 일 힘들지 않냐느니, 흥미없는 소리만 늘어놓는다. 곧 사령관, 벨레로폰이 나온다. 얼굴에 근심이 서려있다. 그도 놈이 무슨 눈치인지 아는 듯했다. 남성과 거리를 둔 채 마주한 벨레로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상대를 노려볼 뿐이다. 여려보이는 소년의 신체지만 속내는 굳은 심지처럼 단단하다. 남성은 불편한 기색으로 팔짱을 낀다.
"당신들이 수중에 넣은 그 인간. 돌려주지 않겠어?"
역시나. 칼리스토의 전기 신호는 이 안드로이드가 위험한 놈이라고 소리치고 있다. 남성의 말에 숨겨진 의미는 간단했다. 돌려주지 않으면 폭력으로 해결하겠다.
"원래는 우리 거라서 말이야."
남성은 뭐가 그리 우스운지 연병장이 떠나가라 웃는다. 벨레로폰이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는다. 칼리스토도 초조하게 그를 바라본다. 그는 사령관이다. 인류 사령부로부터 이 부대의 지휘권을 일임받은 존재다. 소녀를 넘겨준다는 결정을 내려도 칼리스토는 그를 나무랄 수 없다.
"...거절하겠어요."
벨레로폰이 눈을 뜨며 일갈한다. 남성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입꼬리를 내린다. 강렬한 증오와 분노가 느껴진다.
"그렇다면 죽이고 빼앗는 수밖에 없지."
두꺼운 후드 아래로 남성이 비소를 내보인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안구에서 독기가 차오른다.
"나와라, 얘들아!"
남성이 소리치며 망토 안을 뒤적인다. 그걸 본 벨레로폰은 급하게 공격 명령을 내리지만, 그가 꺼내든 접이식 방패에 공격이 전부 막혀버린다. 남성의 방패를 휘두르는 거친 공격에 아군이 하나 둘 나가떨어진다. 건물 사이 숨어있던 다른 안드로이드들이 남성의 지시에 따라 모습을 드러낸다. 적의 총성이 청각 센서를 강하게 때린다. 이내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연병장으로 뛰어든 적과 아군이 한데 뒤섞인다. 설상가상으로 어디서 왔는지 모를 중대형 키메라들도 전장에 난입하기 시작했다. 적들이 데려온 것인지는 몰라도, 이대로면 승산이 없다. 칼리스토가 대검을 꺼내든 손에 힘을 준다.
"칼리스토! 인간을!"
벨레로폰이 권총을 꺼내며 칼리스토에게 외친다. 그녀는 그제서야 홀로 있을 소녀가 생각났다. "보레아스! 벨로에! 다른 부대에 지원을 요청해요!" 사령관의 필사적인 목소리는 칼리스토가 등을 돌려 소녀의 막사로 뛰어갈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칼리스토가 황급히 막사로 들어선다. 침대 한 켠에 웅크린 소녀는 바깥 소란을 눈치챈 듯 담요를 꼭 끌어안고 있다. 기척에 잠시 움찔한 소녀는 칼리스토를 바라보며 울상을 짓는다. 이대로는 적들에게 붙잡힐지 모른다.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야 한다. 그 생각만으로 소녀에게 다가갔지만. 바로 뒤에서 천막 찢어지는 거북한 소리가 들려왔다. 칼리스토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본다. 오래된 기름 냄새를 풍기는 남성 안드로이드다. 닳아빠진 인공 피부 뒤로 금속 장갑이 드러나있다. 적이다. 칼리스토는 세워둔 대검을 다시 쥔다. 검이 기계적으로 펼쳐지며 날도 드러난다. 깔쭉깔쭉한 톱날이다. 칼리스토가 거침없이 그를 향해 대검을 휘두른다. 느긋한 태도로 소녀를 바라보던 안드로이드가 일순 눈을 빛낸다. 그의 몸이 유연하게 움직이며 공격을 피한다. 칼리스토의 검은 허공을 가른다. 그의 머리카락조차 베지 못했다. 안드로이드는 기다렸다는 듯 칼리스토의 허리를 팔꿈치로 찍는다. 힘이 어찌나 강한지 검자루를 놓쳐버렸다. 안드로이드가 빠른 몸짓으로 칼리스토에게 일격을 가하려 한다. 신속하고 군더더기 없는 무술에 칼리스토는 바짝 밀어붙여진다. 주먹이 뺨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지금. 포착된 빈틈에 칼리스토가 몸을 돌리며 크게 다리를 뻗는다. 하지만 상대는 날아드는 다리를 바로 그 자리에서 붙잡는다. 그리고 앞으로 당긴다. 압도적인 완력에 칼리스토는 그대로 끌려가 엎어진다. 안드로이드가 그녀의 무방비한 등 위로 올라탄다. 상당한 무게가 기체를 짓누른다. 안드로이드의 손에는 복잡한 부품으로 만들어진 단검이 들려있다. 그가 버둥대는 칼리스토의 목에 단검을 가져다댄다. 피부를 몇 번이나 내리친 뒤에야 시퍼런 칼날이 금속 장갑을 뚫고 뒷목에 꽂혀들어갔다. 찢기는 듯한 고통에 그녀는 이를 악문다. 부품에 강한 전기 충격이 전해진다.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 신음은 점차 힘없는 앓이가 되어간다. 붉은 오일이 터져나오는 게 곁눈질로도 보였다. 칼날에 꿰뚫린 상처에서 스파크가 튀어오른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오일의 순환이 점점 멈춘다. 전신에서 전력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칼리스토의 사고도 순간적으로 정지한다. 마비되어가는 정신을 붙잡으며 필사적으로 몸을 뒤틀지만 의식은 점점 멀어진다.
간단하게 방해꾼을 처리한 안드로이드는 소녀에게 다가간다. 그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걸려있다. 소녀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비명지른다. 낯익은 얼굴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달달 떨리는 다리로 어떻게든 기어서 도망쳐본다. 그것도 잠시 소녀는 안드로이드에게 목덜미를 붙잡히고 만다. 몸이 붕 뜨고 발이 땅에서 떨어진다. 안드로이드는 소녀의 고개를 억지로 돌려 자신을 마주보게 한다.
"나쁜 아이한테는 벌을 줘야지."
장군님도 손 좀 봐주라고 하셨거든. 기분나쁜 미소다. 안드로이드가 팔을 휘둘러 소녀를 벽에 내친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숨 들이키는 소리가 난다. 너무 아프고 괴롭다. 그것도 잠시 머리칼을 쥐어채는 거친 손길이 느껴진다. 소녀의 고개가 들어올려진다. 안드로이드가 왼손을 높게 들어올린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 마구잡이로 찢어진 천막 너머 전장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내 소녀는 앞발을 휘두르던 곰 키메라와 눈이 마주친다. 여기야, 도와줘. 소녀가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키메라가 사람 말을 알아듣기야 하겠냐만은, 어째선지 곰 키메라는 당연하다는 듯 막사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폭발적인 속도로 막사를 향해 돌진한다. 키메라의 목표는 적군 안드로이드였다. 머리채를 쥔 손아귀에 힘이 풀리고 안드로이드가 뒤로 넘어진다. 제 몸에 올라탄 키메라를 보며 그는 꼴사납게 고함을 지른다. 하지만 아무리 몸부림쳐도 키메라의 완력을 당해낼 수 없는지 고초를 겪고 있다. 이윽고 키메라가 입을 벌린다. 커다란 입 속으로 안드로이드의 머리가 통째로 집어삼켜진다. 전선이 끊어지고 부품이 박살나는 살벌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목이 절단된다. 흘러나온 오일이 바닥을 축축하게 적신다. 사냥이 끝난 키메라는 몸을 돌려 막사 밖으로 뛰쳐나간다. 남아있는 둘에겐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소녀는 주저앉은 자세로 칼리스토에게 기어간다.
"괜찮아?"
힘들어하는 칼리스토를 소녀가 일으켜세운다. 그녀 또한 몽롱한 의식 속에서 방금 전의 사냥을 똑똑히 보았다. 마치 소녀가 키메라를 길들이기라도 한 것 같은 상황.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칼리스토는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소녀를 품에 안아든다. 막사 뒤쪽으로 나가 조심히 병영으로 향한다. 말을 듣지 않는 부품에 간헐적으로 비틀거린다. 조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둘은 병영 뒷편의 지하실에 도착한다. 칼리스토는 낡은 마룻바닥에 소녀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조심하라고 당부한 뒤 전장에 뛰어들 준비를 한다.
가르고 박살내고 죽인다. 키메라도, 적군 안드로이드도 그녀의 손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진다. 손바닥이 찢어져 오일이 흐르고 통각이 느껴져도 멈추지 않는다. 목에서 아릿한 고통이 지속적으로 전해진다. 그래도 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