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해 볼까, 하는 해인의 답이 돌아온 순간. 새슬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와ㅡ정말? 신난다아. 그러고서는 해인의 말에 네ㅡ( ᐛ ) 하고 말 잘 듣는 학생처럼 대답하더니, 얌전히 첫 모래가 쌓일 때까지 근처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고대하던 첫 번째 젖은 모래. 손가락으로 쿡 찌르니 축축한 바닷물의 촉감과 함께, 모래 사이에 작은 구멍이 남는다. 한 번에 쌓이는 모래의 양이 그리 많다고는 이야기 할 수 없었기에 새슬은 조금 더 기다리며 머릿속으로 만들 모래성의 대략적인 이미지를 그려보기로 했다. 문제는 그 이미지가, [(새슬의 말로 묘사해 보자면)짱 크고, 짱 멋있고, 어쨌든 완전 화려한 거ㅡ]였다는 점.
다행히 살뜰한 해인의 충고 덕에, 새슬의 원대한 <모래사장에 내 집 마련하기>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ㅡ안 되는구나ㅡ. <:3. 새슬이 조금 풀 죽어 움츠린 어깨로 모래사장 바닥에 몰래 반항하듯 ‘내 집’ 따위의 글자를 손가락으로 끄적이다 슥슥 지워내고는, 그 자리에 젖은 모래 두어 줌을 덜어 쌓기 시작했다. 천천히 토닥거리는 손놀림.
“모래성같은 거 잘 만들어? 해인이는.”
아직 형태가 잡히지 않은 건지, 원래 그런 것을 만들 예정이었는지 모를 작은 모래 언덕을 계속해서 토닥거리면서, 해인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쯤 새슬이 물었다.
아랑이 예쁘게 웃었다. 연호는 바닷바람이 마리를 헝클어뜨려 빗어넘기는 것을 느끼다가, 고개를 돌려 아랑과 눈을 맞추었다. 아랑이 웃는 모습에 그 자신도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평소처럼 이를 드러내며 씩 웃거나, 입을 크게 벌려 하하 웃는것이 아닌, 입에 호선을 그리고 눈은 곱게 휜 미소를.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의 웃음도 아랑처럼 예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랑의 손에 살짝 힘이 빠진것을 연호는 캐치해냈다. 그것을 깨닫고서 그는 오히려 손에 힘을 조금 더 주려했다. 그 편이 더 안심된다는 듯이.
" 맞아. 그 보랏빛도 좋아. "
사실 바다라면 다 좋은게 아닐까, 싶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아랑도 바다를 보고있었고, 아랑의 옆모습을 보고있던 연호도 다시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았다. 아랑의 말대로 이제 주황빛 바다가 점점 어두운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정말 잠시라도 눈을 뗐다간 그 두 색이 섞여가는 모습은 보지 못할테다.
" 사실 말이야, "
그래서 그는 지금 입을 열었다. 아랑이 이쪽을 보지 않을거라는걸 알았으니까. 애초에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였으니.
" 난 혼자 있는걸 싫어해서, 바다에 혼자 남겨졌을때부터 컨디션이 별로였어. "
점점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노을이 아름답다고 생각할 때 즈음부터, 그는 홀로 고독을 씹으며 청승맞게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이제 그것도 질려 다시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까 하던 차에 아랑을 만난 것이다.
" 근데 너 만나서, 네가 손등을 대주었을때부터 컨디션이 완전 회복됐어. "
속인것 처럼 된건가? 라며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는 혹시나 이 말을 듣고 아랑이 손을 빼버릴까 얼른 뒷말을 덧붙였다.
" 그래도, 가끔 이렇게 과충전 하는것도 좋을것 같아. "
그렇게 말을 마친 그의 눈은,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었을까. 아름답게 보랏빛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바다? 저 멀리서 바닷물을 일렁이게 만드는 물고기들? 그 위에서 먹이를 노리고 있는 갈매기들? 그것도 아니라면, 바로 곁에서 손을 잡고있는, 아랑? 아랑이 그를 보고있는 상태가 아니어서야 정답은 없었다. 하지만 어디를 보고있던간에 그의 입가에 그려진 미소가, 둥굴게 휘어있는 눈이, 사라지지는 않았을테다.
나쁜 꿈 없이 푹 잤다는 소년의 말. 그래, 그렇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언 땅이 녹은 것처럼 미묘하게 풀어진 표정과, 자신과 마찬가지로 잠이 덜 깬 듯한 기색을 바라보며 새슬이 희미한 미소를 입에 걸었다. 그리곤 다가와, 손을 뻗어 소년의 흰 머리칼을 쓰다듬는 것이다. 두어 번ㅡ아주 가볍지만 느릿한 손놀림. 어쩌면 막 잠에서 깨어 부스스해진 머리칼을 매만져 주는 것이 아니었나 싶을 만큼, 더할 나위 없이 가볍게 내려앉았다가 떠나는 손놀림이었다.
“글쎄ㅡ.”
돌아간다고 해도, 어디로 돌아가야 하지? 그 말을 뱉고 나서부터, 급속도로 가라앉는 눈을 새슬은 보았다. 슬프면서도, 아직 무언가 뱉지 못한 말이 있는 것 같은.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낯설면서도 익숙한 것. 새슬이 그대로 꿇어앉아 문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너는 뭘 원해? 아무 말 없이 눈을 맞추고 있자, 갈 곳은 있는데 돌아갈 곳은 없어. 대답하듯 돌아오는 말. 그 때까지만 해도 옅은 웃음기가 걸려 있던 새슬의 눈동자가 아주 조금, 흐트러졌다. 그리곤, 아주, 천천히ㅡ(적어도 새슬이 느끼기엔 그랬다) 소년에게 이마를 맞대 오는 것이다. 툭. 저녁 그늘에 식어 서늘해진 체온을 느끼면서, 그대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나도.”
들릴 듯 말 듯 희미한 속삭임. 어쩌면 흐느낌? 그리고선 그게 무엇이었는지 생각할 틈 따위는 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새슬의 이마가 소년으로부터 떨어졌다. 곧 문하의 눈에는 평소와 같이 나른하게 웃고 있는 얼굴만이 비추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새슬의 시선이 문하로부터 떨어져 거의 자취를 감춘 태양의 끄트머리를 향했다.
“.....하지만, 지금은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곳은 있어.”
태양의 끄트머리가 지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진 찰나의 순간. 새슬의 미소가 태양빛과 함께 아주 잠깐, 사라졌다. 그러나 다시 문하를 돌아본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도망이라도 칠까? 이뤄질 리 없는 바람이 괜히 장난스레 툭 튀어나왔다.
>>680 감샤합니다... 답레는 늘... 천천히 올라옵니다... (어깨 맡김) 다갓이... 물욕센서에 반응하는가 가지고 싶다 생각하면 안 주는 것 같더라구요...? 🤔 아랑주 같이 가고는 싶은데 (양손에 일상 봄) (하늘이 일상에 찬조출연함) 이미.. 넘치게 받은 거 같으니까요... >:3
>>682 곧 뻗을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 그런가, 제일 큰 걸 받아가서 다갓이 네 이놈 하고 안주나봐요.... ㅎㅁ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