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조교는 자신과 같이 일하는 나장미와 자신이 사귀며, 남들 모르는 비밀연애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박동기와 마주쳤을 때, 자신이 나장미의 여자친구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나장미에게 그녀의 애정공세는 부담스럽기만 했고 그는 접근금지신청을 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나장미의 생일파티에 최조교는 초대받지 못하지만 가게 되었고 나장미가 자신을 접근금지 신청했다는 것에 분노해 언성을 높이고 분위기가 험악해지기에 이른다.
나장미는 모두 다 나가라고 말했으며, 박동기는 자신이 장미의 집에 설치해뒀던 몰래카메라를 회수하러 갔다가 돌아간다.
혼자 남은 나장미의 집에 최조교가 접근, 베개로 그의 얼굴을 꽉 눌러 질식시키고 그 과정에서 나장미는 저항하다가 그녀의 머리카락 일부가 손톱에 박히게 된다.
최조교는 커버를 빨래 바구니에 넣고 나장미 시신에서 손톱을 모두 잘라 쓰레기통에 넣게 되는데, 들킬까 겁난 그녀는 시신의 목을 졸라 자살한 것으로 위장한다.
휴학한 경위는 단순하다. 수업 도중 의식을 잃고 병동에 실려 갔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가 맥없이 쓰러지자 옆 학생이 비명을 지르고 교수님이 그를 향해 달려온 건 기억이 나는데, 눈을 떴더니 병동보다 푹신한 침대였다. 그는 앓는 소리를 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누워있는 몸이 뒤로 더 넘어가 땅 밑 깊숙하게 끌려갈 것 같다. 조금만 움직여도 토할 것 같이 속이 뒤집히려 했다. 여기는 어디지? 안간힘을 써서 흐린 눈으로 보이는 장소를 가늠하려 했다. 열린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에 초여름의 숲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무래도 본가인 것 같다. 잠깐, 본가? 그러면 기숙사는 어떻게 된 거지? 마노는?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이라도 할 걸 그랬다! 혼자 있는 걸 아주 싫어할 텐데, 내가 그를 버렸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몸을 일으키려다 누군가의 차가운 손길에 이마가 눌리고 그대로 다시 베개에 뒤통수를 박았다. 연락해야 하는데, 혼자 두면 안 되는데…우리 아가, 내 절애하는…… 푹신한 베개에 그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정신이 좀 들었을 때 캐서린이 들어왔다. 그녀는 마법부의 신비한 동물 부서 소속인데, 비번일 때는 그를 거들어 장례 절차의 예산을 짜거나 법의학적인 소견을 서로 내며 사인을 논의한다. 가끔 가문 내부의 일을 촉새처럼 알려주는데, 이 점을 높게 사서 나름 조수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인 사이다. 매력적인 금발 머리는 그새 동물이 핥았는지 엉망이 되고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됐다. 그녀는 그를 보고 외쳤다. "맙소사!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신에게 빌지 말게.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게 매달려봤자 무엇 하나." 그는 건성으로 대꾸했다. 정신은 차렸지만 머리가 빙빙 돌아서 신에게 할 기도를 들어줄 형편이 아니었다. 깨자마자 드는 온갖 생각 때문에 머릿속이 지끈거렸다. 마노는 어쩌지? 과제는? 상처받은 표정을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내내 목놓아 울던 캐서린에게 스투페파이 한 번을 썼다. 이제 좀들을 여유가 생겼다. 잠깐 기절했다 깬 캐서린에게 듣기로는 그가 쓰러진 이후 며칠간 의식불명인 상태라 했다. 마침 근처 병동에서 상처를 치료받던 오러 가문원이 연락을 전했다. 어머니는 이틀 정도면 괜찮겠다 싶었는데 의식 불명이 사흘을 넘어가니 가주 대리인의 권한으로 그의 상태가 심히 좋지 않아 폐를 끼칠 수 없으니 잠시간의 요양을 위해 휴학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엉클 잭¹이 가주님 관을 맞췄다니까요?" "알겠으니 나가보게. 자네도 바쁠 것 아닌가. 나가는 김에 엉클 잭에게 성가나 크게 부르라 하는 것²이 좋겠구만."
캐서린이 놀라서 손뼉을 쳤다. "그 말씀을 하실 줄 알았어요! 다른 사람이 빙의한 게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사실 내기를 했거든요. 그렇게 픽 쓰러지신 뒤로 노마지의 공상 소설처럼 다른 사람이 빙의하는 가설이 들어맞는지.."
"내 협탁에 노마지의 지팡이³가 있을 텐데……." "어머, 내 정신 좀 봐! 일하러 갈게요! 몸조리 잘 하세요!!"
도망치는 캐서린을 노려보던 그는 손을 휘휘 젓고 헤드 보드에 편하게 기댔다. 촉새 같은 캐서린은 이제 그가 멀쩡하다는 걸 가문 내부에 소문낼 것이다. 귀만 열어두면 바깥 상황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허리에 힘을 빼고 다시 베개로 몸을 스르르 뉘었다. 다시 뇌가 생각 모드로 돌아갈 시간이다. 일단 어머니의 결정은 대의를 따지고 보면 좋은 선택이다. 계속 의식불명인 상태로 학교에 있으면 누군가 그의 상태를 알아챌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대로 가문의 위치까지 탄로 나면 감히 머글과 잡종까지 그들과 똑같은 장례를 치렀다며 앙심을 품은 어둠의 마법사들이 언제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심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마법사 사회에 특히 많을 뿐이다. 어머니는 이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을 뿐이다. 하지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원내에 혼자 남은 마노도 있지만 해결할 일이 산더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제도 아직 덜 끝냈는데! 유독 과제가 억울했다. 그의 완벽한 과제에 미완성이라는 오점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위장이 뒤틀려서 몇 번이고 멀건 위액을 토하고 나서야 학점 따위는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정신을 온전하게 차리고 어느 정도 몸도 움직일 수 있게 되니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다. 예전 같으면 맘 놓고 요양하면서 돌아가기 싫다고 늘어졌을 텐데 사람 하나에 코가 잘못 꿰인 이후로는 어림도 없다. 그렇지만 마노가 무슨 죄가 있겠나? 불평 대신 맛은커녕 종이 씹는 식감이 나는 오트밀 죽을 한 스푼 억지로 입속에 밀어 넣고 씹었다. 문 너머로 캐서린이 농담하는 소리가 들렸다. "크리스틴, 복근에 좋은 밥이 뭔 줄 알아요? 볶음밥! 복근밥 보끈밥 보끔빱!" 그가 오트밀 죽을 그릇에 다시 뱉었다. 이런 곳에서 더 요양하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럼 용건은 도련님 기숙사로 가서 매 한 마리에게 오레오랑 편지를 챙겨주는 건가요?" 호수나 가을 하늘을 보듯 새파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거울 너머로 온갖 맛이 나는 젤리를 한 움큼 집어 입에 넣었다. "으, 까나리 맛이 있네." 그는 거울 너머의 타니아⁴를 보며 질색했다. "그렇지. 가급적 매에겐 아무 말도 하지 말게. 영리한 녀석이라 뭐든 알아들을 테니."
"도련님,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되신 건 아니죠? 매는 오레오도 못 먹고 편지도 못 읽어요." "매가 먹을 리가 있니. 당연히 전서구지." "아하! 그렇구나. 전 또. 근데 괜찮으세요, 도련님?" "뭐가?" "거울이요." "……." "죄송해요." "됐다. 사람이 변할 수도 있는 거지. 내 요양하는 동안 사고만 치지 말아라." "저를 대체 뭐로 보시는 거예요?!" "…사고뭉치 돼지?" "도련님!!!!!" "목청이 이리 커서야, 내 사인은 쇼크사겠어."
미친 게 분명하다. 유리 조각도 치가 떨리는데 손바닥만 한 양면 거울을 마주 보면서 연락을 했다! 덕분에 타니아를 통해 마노에게 연락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 두 번은 하고 싶지 않다. 그는 거울에 비친 핼쑥한 자신을 보고 문을 향해 집어 던졌다. 거울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깨지고 그는 다시금 양동이에 대고 헛구역질을 했다. 연락하는 동안 속이 뒤집히지 않는 게 용했다. 사람이 변할 수도 있다지만 그는 아직 한참 멀었다. 불쾌한 감정이 속에서 점점 강해졌다. 멀건 위액 사이에서 분홍색 조각을 같이 토했다. 결국 위벽이 떨어졌다. 은색 설렁줄을 당기자 주치의가 문을 열고 들어오다 거울 조각을 보고 기겁을 했다. 알게 뭔가. 그는 흐린 시야 너머로 손을 까딱였다. "진통제."
진통제로 고통을 견디고 잠들었다. 깨니 새벽이다. 헤드 보드에 등을 기대 마노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다 보니 조급하던 마음이 점차 차분해졌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돌아가서 쓰러지는 모습이나 안 보이면 다행이다. 편지를 받아도 그가 믿어줄 확률은 희박하지만 이번만큼은 적은 확률에 기대보기로 했다. 그리고 치료에 전념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보기 좋은 모습으로 만나서, 이번에는 홀로 두지 않을 것이다.
회복에 전념한 지 몇 주가 지났다. 이제 많이 좋아졌다. 새벽 4시에 눈을 뜨면 설렁줄을 당기고 미리 준비된 은쟁반을 무릎에 올려둔다. 그대로 코를 박고 기절하는 걸로 끝장나는 하루가 시작된다. 종소리에 들어온 주치의가 익숙하다는 듯 그의 몸을 침대의 헤드 보드에 가눈다. 정신이 든 그는 한때 이렇게 수치스러운 일이 없다며 혼자 있을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지금은 아주 익숙해져서 일정을 확인한다. 이제 가문의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좋아졌다. 아직 주치의가 있어야 하지만 몇 달만 더 있으면 원내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희망이 샘솟았다. "오늘은 일정이 없나 보군요? 간만에 회복에 전념해도 되겠어요." 주치의의 시선이 그의 머리로 향하더니 다시 그의 일정이 담긴 양피지로 향했다. "아니면 염색을 하셔도 좋죠. 새치가 좀 많이 자라셨어요." 그가 괜히 머리 위에 손을 얹는다. "그런가? 그러면 오늘 간만에 염색을 해야겠군. 쉬는 날을 둬서 뭐 하겠나." 말하기 무섭게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비켜! 비켜요! 미성년자 시체가 10구나 들어왔어요!!"
침묵.
"안 됩니다, 가주님." "돼." "안 됩니다!" "되고 안 되고는 내가 정해. 꺼져."
그는 침대를 박차고 벌떡 일어섰다. 불길한 예감이 요동쳤다. 그는 감을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번만큼은 온몸에서 감을 믿으라고 외쳤다. 문밖으로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깊은 불안이 그를 휘감았다.
"비켜봐. 꺼져, 다 꺼져!!!" "안 됩니다, 가주님. 아직 몸이..!" "어차피 얼마 못 가고 뒤질 몸이다. 다 나보다 먼저 가고 싶은 건 아니겠지.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리도 소란.."
머리가 회전하기를 멈췄다. 뇌 한구석에서 붉은 사이렌이 울렸다. 이 천을 들치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위험을 여러 번 겪었다. 이번에도 그는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무뎌진 감정으로 뭐든 해야 한다. 그는 천을 붙잡고 들췄다. 아침 첫 햇살이 열린 문 너머로 가문 안을 환하게 비추고 천을 걷어내자 자잘한 핏방울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역광으로 거칠게 뜯겨 뼈가 드러난 시체가 검게 비쳤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세상은 절대 소설과도 같은 삶이 아니다. 시련은 청천벽력으로 다가오고, 죽음은 한순간이다. 오늘도 꿈이 있는 창창한 젊은 생이, 제각기의 소망과 기회를 품었던 소중하고 무고한 생명이 스러졌다. 그는 천 너머로 눈도 감지 못한 시체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나머지 시체는 안 봐도 알겠다는 듯 히스테리 섞인 웃음을 뱉었다. 천 너머로 살랑이는 똑같은 옷자락만 봐도 뭔지 알겠다. 그는 나머지 천을 하나하나 들쳤다. 공교롭게도 모두 아는 사람이다. 그는 원내의 사람이었을 게 분명한 시체의 향연을 보고 충격에 휩싸인 가문원을 돌아봤다. "전부 내가 나서지." 그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나섰다. "더 쉬셔야 합니다."
"어머니는 지금 가주 자리에 앉은 것이 누군지 다시 생각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이 일을 마친 이후엔 복학할 테니 그리 아십시오." "불허한다면?" "내 지금 누가 가주 자리에 앉아있다 했지?" "……." "어머니, 저는 살면서 패륜을 저질러본 적이 없어 정도를 모릅니다." 헬레나가 갈라진 목소리로 답했다. "……모든 것은 가주님의 뜻입니다." "알았으면 준비하십시오."
그는 10구의 시체 모두 직접 염을 하고 관에 안치했다. 이런 행동을 하면서 울어본 적은 없는데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눈물은커녕 탄식도 나지 않는다. 인생 한번 아름답다. 차가운 감정이 가슴을 꽝꽝 얼리고 경악도, 망설임도 바스러트린다. 요양하는 시간, 건강. 이 모든 것이 이젠 낭비였다. 그는 고인의 관에 화려한 꽃을 가득 채우며 기도했다. 죽은자에게 편안한 안식을, 원인을 제공한 살아있는 자에게 끝없는 고통을. 짧은 기도를 마치며 밖으로 나섰다.
오늘의 날씨는 가을이 다가오는지 하늘이 빌어먹게 아름다웠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 복학하기 아주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