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카페에서 일 하고 있으니, 한참 전에 다림이 들은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스몰 토크라는건 언제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도 모르니 말이다. 쉽게 납득은 했지만, 다림이 놀리는것은 전혀 대비하지 못한듯 귓가가 새빨게져 "그런건 아니야…" 라고 들릴듯 말듯한 소리로 대답할 수 밖에 없었지만.
"…"
새하얗게 질린것은 다림의 얼굴 뿐만이 아니었다. 가디언 후보생인 이상 유혈에는 어느정도 내성이 있는 그이기에 안의 '내용'에 놀란것은 아니었으며, 슬퍼하는 다림의 표정을 보고 질려버린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사랑하진 않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주변인이 끔찍하게 사라진다는 것은- …머리론 납득할 수 있어도, 마음은 그렇지 않으니. 모두가 그럴것이다. 그럴 것이리라 믿고 싶다. 나는 이런 광경을 보고싶어서 거울을 건네준게 아니야.
미안하다던가, 이럴줄 몰랐다던가. 무엇 하나 쉽게 말이 나오지 못해 침묵이 감돌았다.
"…점궤는 절대적인게 아니라고 들었어."
그러니까,
"아직 이루어진 일도 아니잖아?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분명 할 수 있을거야. 그치…"
"그렇죠. 정훈 씨가 꽤 직접적으로 말씀하셔서 놀랐던 기억이 나요." 나중에 한정판 젤리라도 사드리며 물어봤다라는 걸 덧붙여야 할까. 라고 생각하는 다림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별 이유도 없이 막 들어버렸던.. 기분인걸요? 귓가가 새빨개지는 걸 보았기 때문에 이 정도로 하고는(너무 놀리면 곤란한걸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본인에게 뭔가 생긴다면 똑같이 돌려받아버릴 거라고요?) 거울을 주는 것에 짖궂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금방 사라져버리는 안타까운 미소였겠지만.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처럼 깔깔 웃는 듯한 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것에서 벗어난 것은 은후 씨의 말 덕분이었습니다. 과거는 과거고.. 과거에서 벌어졌던 일이 일어난다는 그런.. 점괘는.. 그렇죠?
"그렇...죠." 네. 점괘가 절대적인 건 아니니까요. 라고 말하면서 과거를 보여주는 듯한 거울에서 나오는 빛이 끊기는 것과 동시에 거울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습니다. 외면하고 회피하고 있던 것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현재 보호자가 누구인지조차도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잖아요. 연락은 커녕 왔어도 받지 않았을 겁니다.
"괜찮아요. 뭐..말씀하셨듯.. 다른 걸 찾아볼 수 있겠지요? 타로를 더 봐도 상관은 없겠지만요...?"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타로를 본다 한들 지금 감정에 영향을 받아서 제대로 나올 리가 만무했습니다. 점술사는 아무런 말이 없이 그저 향을 끄지도 않은 채 그들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저렇게 쿠션에 얼굴을 파묻고 부끄러워 하는 것이 귀엽다는 것을 다림도 알아야 할텐데요. 하루는 그렇게 생각하며 키득키득 웃어보입니다. 뭐, 다른 이야기가 있어서 그 부분은 귀엽지 않은 다림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앞에 펼쳐진 이야기들은 귀여우니 귀여운 걸로 하고 넘어가기로 합니다.
" 맞아요, 다림의 말처럼 기원하니까요~ "
쿡쿡 웃는 다림을 따라 웃으며 에미리에게 상냥하게 기원의 말을 건내는 하루였다. 어찌되었든 좋은 사람을 만나 마음을 나누면 좋은게 좋은거라고 나쁜 일은 아닐테니까. 앞에 놓인 디저트처럼 부디 달콤한 사랑을 할 수 있길 마음 속으로 한번 더 기원해주는 하루였다.
" ... 스펙타클하죠. 제가 책으로 배운 고백 같은 건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
애초에 고백도 처음이었고, 고백을 받는 사람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어쩔 수 없던 부분이긴 하지만, 그것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꽤나 스펙타클 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아니, 뭐라고 해야할지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해지는데요.. 그냥 너무 깊이 제가 다 말해버리면 그 아이가 곤란할수도 있으니까 짧게만 말하면 저에 대한 마음을 확인 시켜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몸으로 부딪치고, 몸으로 확인했다고 해야할까.. 그게 또 효과가 없던 건 아니여서 참 묘하네요. "
아니 그 어떤 말보다 효과가 좋았으니 평범한 연애사와는 참으로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사랑을 쟁취했으니 어찌됐든 좋은 이야기가 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떻게 가든 바라는 결과에 도착하면 되는 것이니까.
" 엉망진창 천방지축의 첫 사랑을 해보는 사람 둘이 모이니까 그런 이야기가 되어버렸어요. 왠지 이뤘을 땐 기뻤는데 남에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까 또 부끄럽고 그러네요, 호호.. "
결국 머쓱하니 다림이 잘라준 디저트를 오물거리며 쓴 미소를 지어보이는 하루였다. 왠지 카사가 보고 싶어지는 기분이었다. 카사를 보여주면 다림과 에미리도 왠지 수긍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아무튼 그런 것이었다.
"그러니까요... 에미리 양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지는 몰라도요." 슬쩍슬쩍 말하지만 별 의미가 없다는 것처럼의 표정을 지으며 얼버무리는 것을 용인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몰아가면 안되는 법이니까요. 오늘의 수확인 에미야=에미리 양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것입니다? 하루 양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러게요... 상당히 희귀한.. 그런 경험이라고 생각하는걸요?" 정말로 그렇습니다. 다림은 나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에미리 양의 말씀과 행동에 동의합니다. 여러가지 일을 겪은 편에 속하는 다림으로써도 상당히 당혹스러운 일이었는걸요? 하루 양의 추가되는 이야기를 깊게 들어봐야겠습니다.
"스펙터클하고.. 일반적이진 않네요." 하지만 깊이 들어가는 건 상대방이랑 같이 말하는 게 좋을 테니.오늘은 이정도로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몸으로 부딪힌다니. 약간.. 몸이 먼저 나가는 스타일인 걸까요..라고 추측해봅니다. 하루 양보다 작거나 크거나.. 비슷하거나? 나중에 카사라는 걸 알게 된다면 귀엽다고 하는 것도 있지만, 이해할 것 같습니다.
"저랑 에미리 양도 부끄러웠으니까요." 서로 쌤쌤인 느낌? 이라고 생각하는 다림입니다. 첫사랑 이야기까지 공유했다는 말에 그..그렇네요! 라고 답하면서 디저트를 오물거립니다. 디저트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었고.. 또 할 만한 이야기라면 역시 학교 일 같은 걸까요? 청월생 한 분 계셨다면 딱 좋았을 텐데 말이지요.
금전적인 사유로 객관적인 자주 온다에는 모자랄수도 있지만.. 주관적으로, 정훈이 다니는 가게들 중에서는 자주 오는 편이니까요! 과일도 좋아하고 젤리도 좋아하는데 자주 오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그러다가 눈 앞의 학우분이 슬슬 줄이 빠진다고 하자 정훈은 바로 고개를 옆으로 쏙 빼서 앞에 줄서있는 사람들을 체크하기 시작합니다. 이탈하는 사람, 곰인형 페이크, 기타등등.. 여러 혼란스러운 상황에 눈이 갔던곳에 다시 가는일을 수 번 반복했을때. 앞에 있던 사람들은 어느덧 몇 명 남지 않고 가게 안에서 젤리가 10개 남았다는걸 알려옵니다.
그러니까.. 지금 앞에 남아있는 사람이... 내 앞의 학우님까지, 딱 열 명.
" ...어, 음. "
아까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있던 등 뒤가 발걸음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휑하게 변해가는것을 느끼며 정훈은 고개를 다시 집어넣고 앞을 바라본 채 살짝 굳어버립니다. 아까까지 대화하던 학우님이 이쪽을 돌아보자 그제서야 정훈은 굳었던 표정을 풀고 어색한 웃음이라도 얼굴 위로 띄워보입니다.
" 그.. 오늘은 다른걸로 사야겠네요! "
하하, 하하하. 어쩔 수 없죠! 다음엔 좀 더 일찍 와야겠어요.. 아니면 성학교 친구에게 부탁한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