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 이거 마따. 전문가 말이면 빼박이다. 난 창작업이랄지... 만드는 일 했었으니까 느낀건데, 내 작품에 애정을 느끼지 못하면 아무리 쌔벼판 작품이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더라구, 반대로 겁나 하찮은 조각 하나라도 내가 자부심을 가지면 다른 사람들이 귀엽게 봐주거든! 관점의 차이인 거지~
내가 각 동아리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고충이 있는지 잘 모르는 것처럼. 사람은 원래 자기 하는 일 이외에는 관심을 잘 가지지도 않고 남이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던간에 자기 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니까. 이기적인게 아니라 원래 자기 자신을 가장 우선시하는 경향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안그런 사람들도 간혹 존재하지만.
" 여기도 학교인데 학생회한테 과로하게 일을 시키거나 하지는 않아. 다른 학교보다 학생회가 하는 일이 조금 더 많을 뿐이니까. "
다만 학교에 대형 이벤트가 있을때는 확실히 바빠지는 편이다. 동아리들을 관리하는게 학생회고 주로 주관하는 것도 학생회가 하게 되니까. 물론 돈 관련해서는 학생회에는 일절 권한이 없어서 그렇게 권력이 있는 편도 아니다. 그러니까 ... 생기부에 한줄을 적기 위한 쌩쇼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 흠 ... 이유? "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역시나 1등은 생기부지. 하지만 그런건 재미가 없으니까.
" 남자라면 한번쯤 권력을 쥐어봐야하지 않겠어? "
장난 섞인 말이긴하다. 진짜 권력을 쥐고 싶었으면 학생회장을 했겠지. 하지만 남들 앞에 나서는건 귀찮고 나름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부회장에 지원한 것뿐. 근데 현실은 그냥 다른 학생들보다 더 바쁜 고3 이 되어버렸을뿐이다.
" 근데 할꺼면 작년에 할껄 그랬다. 고3 이랑 병행하려니 여간 힘든게 아니라서. "
가예가 학생회장일때 했어야했는데 역시 그녀가 현명했다. 말만 잘하면 뭐해 머리가 안돌아가는데.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쉰다. 어느새 본관을 빠져나와서 별관으로 들어온 나는 입구에 놓여있는 책들을 보며 말했다.
" 이거 학생쉼터쪽에 가져다놔야 하거든. 양이 좀 있어서 몇번 왕복해야해. "
책뭉치를 두손으로 간신히 들어서 품 안에 안는다. 운동을 안하는건 아니지만 평소에 할 시간이 별로 없는데 이럴때마다 짬내서 운동 좀 해둘껄, 하는 생각이 든다.
뒷북이라면 뒷북이겠지만, 주원주. 내 지인 중에 현직 소설 작가가 몇 분 있어. 그 분들이 늘 하는 말이 자기들 글도 모든 사람에게 재미 없을 거라고 하겠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내가 행복하면 된다고 하더라. 자기만의 색채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사실 나도 내가 쓴 글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사람인데(거기다가 과거에 쓴 게 지금 쓰는 것보다 더 잘썼다고 느끼는 중) 내가 글 잘 쓴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나보고 글 잘 쓴다고 정말 재미있다고 하는 거 보고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게 되었어.
그러니까 주원주의 글을 싫어하는 사람의 말을 기억한다기보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어차피, "너 글 재미없어" 하는 사람들은 그 만큼의 글 쓸 실력이 안 되는 경우도 수두룩빽빽이야. 실제로 그런 경우도 봤고 내가 빡쳐서 "그럼 네가 써보던가!" 했는데 맞춤법도 모르고 가독성이 엄청 떨어지는 경우 진짜 많았어. 그러니까 너무 괘념치 말아.
나도 여기까지 받아들여지는 데 고민이 엄청 많았던 건 사실이야ㅋㅋㅋㅋㅋㅋ... 칭찬해도 나한테 와닿지 않는 느낌? 나중에 지인이 내가 힘들어하는 걸 봤었다, 나는 네 특유의 이러이러한 문체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네가 쓴 소설이 참 좋다. 하는데 눈물이 왈칵 나더라고...ㅋㅋㅋ 그 후로는 조금씩이나마 내 글을 좋아하기로 했어:P
뭔가 오늘은 두번이나 일하다가 레스 쓰게 되네. 원래 꼭 써야할거 아니면 안 쓰는데. 이거야 원. 주원주의 글에 대해서 평가는 안할게. 내가 누구 글 평가할 입장도 아니고 솔직히 하고 싶지도 않아. 놀려고 온거지, 글 평가하러 온건 아니니까. 하지만 난 같이 돌리는 일상이 즐거웠어. 주원이는 이런 애구나를 일상을 읽으면서 잘 알 수 있었지. 적어도 난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싶다. 고민도 좋지만 같이 돌린 상대는 즐거워하는구나 정도는 알아주면 고마울거 같네.
뭐 암튼 할말 남기고 이제 진짜 일만 하러간다! >>531을 보고 주절주절하는 하늘주는 이제 퇴근 후에나 올게!
후힛 하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쥔 실을 쥐고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며 연의 높이를 조절한다. 연의 실을 잡고 조금 옥상을 돌아다녀볼까 했는데 마침 출입구에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위험해. 설마 선생님? 하고 생각하고 그대로 얼어버렸지만, 다행히도 자신과 같이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었다. '다행이다아~'속으로 안도와 함께 "휴으."하고 겉으론 낮게 한숨을 내쉰다.
순하고 귀여워 보이는 백색의 머리를 한 남학생. 명찰을 보니 2학년이었다. 도와달라는 목소리에 두 손에 쥔 것을 보니 자신과 같이 종이로 만든 연을 들고 있었다. 보아하니 마찬가지로 쪽지시험 종이 같은데. 그는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주원에게 도와달라고 말한다. 처음 보는, 명찰을 봐 이름을 알았을 뿐인 학생의 부탁에 주원은
"좋아!"
하고 두 눈으로 반달모양을 만들어 쾌활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처음 본다든가 하는 것은 완전히 상관없다는 듯이. 그리곤 "으음~"하고 휘영이 만든 연을 살펴보았다.
"나쁘진 않은데, 제대로 날리려면 좀 더 개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네. 따라와!"
주원은 줄을 성큼성큼 당겨 자신의 연을 회수한 뒤 가벼운 뜀걸음으로 옥상 입구까지 달려가 휘영을 향해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만약 휘영이 따라온다면 주원은 그를 '아무튼 즐거운 것을 하는 부'의 좁은 부실까지 안내해줄 것이다. 기계체조부인 휘영의 부실보다는 물론이요, 다른 큰 부실을 필요로 하지 않는 동아리 방의 반정도 크기. 애초에 동아리방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공간이었지만 그 공간엔 알뜰살뜰하게 케비넷, 책상, 의자, 소파 등 필요한 것들은 전부 구비되어 있었다. 그만큼 공간이 꽉 차버렸지만. 동아리방이라기보단, 좁은 자취방이라고 부르는게 옳을지도?
주원은 좁은 부실로 휘영을 안내한 뒤 콧노래를 부르며 케비넷에서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했다. 실, 가벼운 나무 막대, 가위 등. 연의 재료가 될 것들이었다.
"우선은 이거부터. 가오리 모양은 되어있으니까, 뼈대를 만들어보자."
주원은 그렇게 말하며 휘영에게 제작에 쓰이는 깔끔하고 얇은 나무 두 개와 작은 톱을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