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툭한 손톱으로 긁어서 약간만 붉게 부어오른 정도가 아니라면 아예 30분 안에 낫는 건 무리이지 않을까? 아마 비유겠지만, 응. 그래도 잘못 헛디뎌서 발목이 부러지거나 인대가 늘어나거나 하면 30분 안에 안 낫겠지.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무서운 생각을 하지만, 그에게 딱히 악의가 있는 건 아니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는 것 뿐이다.
"다른 사람보다 튼튼해도 다치긴 하니까 말야. 세상에 안 다치는 사람은 없으니 조심해야 해?"
그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자신이 튼튼하다는 것을 아필했지만, 글쎄. 이현이 말한것과는 논점이 다르다. 어쩌면 이 언쟁은 창과 방패처럼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난 그것도 신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신은 우리가 마음속에서 믿고 따르고 매달리는 듯한 그런 거라고 나는 생각하거든. 넌 아닐 수도 있지만... 하하."
당차게 말하다가 머쓱한 듯 손으로 목 뒤를 쓸며 바보처럼 웃는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른 거니까, 그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설득할 요량으로 길게 말할 생각은 없다.
"아하하하, 그럼 되겠네! 그렇지만 복도에선 뛰면 안 되니까 그런 데에서는 빨리 걸어가는 정도로 할까!"
마찬가지로 그도 인사하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짤막한 근황을 주고받고 곧바로 연호에게 다시 집중하는 것을 보면, 그가 그런 사람이란 걸 누구라도 알아챌 수 있지 않을까?
"응? 아하하!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한 살 차이고, 나는 반말 써도 괜찮으니까. 그렇지만 다른 애들 중엔 존대를 더 좋아하는 애들도 있으니까 다음번엔 주의하는 게 좋겠네."
고개를 저으며 소리 내어 웃었다. 본인을 탓해도 그것을 회피할 명분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늑대의 재능을 이용하려고 다가오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을 것이며, 그걸 알고 있는 나마저도 네 재능을 놔줄 생각이 없었으니까. 또한 너도 내가 필요하다고 함으로써 모종의 합의에 동참하고 있으니 놓아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널 찾으라는 말에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받은 만큼은 돌려주는 사람이긴 했지만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인면수심보다 책임 없고 누구나로 대체될 수 있는 안이함이 여자에겐 더 모멸적이다. 그것은 무기명의 질권자에 지나지 않으므로. 기숙사에 먼저 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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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전 먼저 기숙사로 들어가 사감 선생님에게 특별 활동으로 늦을 수 있다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진땀을 뺐다. 따지면 틀린 말도 아니고, 허락을 받지 못했어도 선약을 했기 때문에 점호 이후 빠져나왔을 것이며 벌점을 매긴대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튼 환복을 하고 나온 여자는 기숙사 건물 어귀에서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우르르 나오는 학생들 사이에서 해인과 눈을 마주치자 웃으며 손을 흔들어 자신의 위치를 알린다. 이 시간을 기다렸기에 학교에서 보던 얼굴인데도 퍽 반갑게 느껴졌다.
걸음을 옮겨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기존의 세일러복이 아닌 사복으로 보이는 여름에 입을 법한 슬립 나시 위에 가디건을 걸친 여자가 기숙사 뒤쪽을 가리켰다.
"공부는 잘 했고?"
가볍게 안부를 물으며 뒤쪽을 가리키는 이유는 사람의 이목이 없는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누군가 보고 이러쿵저러쿵해대면 곤란해지기 때문일까. 그 후엔 거절해도 된다는 듯 느긋이 손을 내밀며 웃었다.
아는 사람들 중에 기숙사에 사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이쪽으로 올 일이 흔한 것은 아니었다. 야자가 끝나고 기숙사로 향하는 학생들 무리에 뒤섞여 도착하자 건물 어귀에서 익숙한 사람이 이쪽을 보고 손을 흔든다. 나는 기숙사 건물로 향하는 무리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와 그쪽으로 향했다. 거기엔 교복차림이 아니라 사복 차림의 가예가 있었고 슬립 나시에 가디건이라는 차림에 약간 설렐 수 밖에 없었다.
" 평소처럼 했지 뭐. "
가까이 다가가며 들려온 물음에 가볍게 답한 나는 이제 조금씩 따뜻해지는 날씨에 입고있던 저지를 벗어서 가방에 넣었다. 곧 중간고사가 시작할테고 중간고사가 끝나면 5월. 여름만큼 덥지는 않겠지만 슬슬 반팔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일 날씨일테다. 그녀가 가리키는 뒤쪽으로 향하며 내미는 손을 자연스럽게 꼭 잡는다. 거리가 가까운만큼 페로몬의 향이 코를 확 찔러왔지만 일단 손을 잡자 불안했던 마음이 싹 가시는 것이 느껴졌다.
" 누가 보면 몰래 사귀는줄 알겠네. "
그런 구설수가 돌까봐 일부러 인적이 드문 곳으로 온 것이겠지. 이 시간에 기숙사 뒤쪽으로 오는 학생은 거의 없을테니까. 손을 잡은채로 어느정도 걷자 가로등 불빛 사이로 작은 벤치 하나가 보인다. 서있는 것보다는 앉아있는게 좋겠다는 생각에 벤치로 다가간 나는 같이 앉자는 말과 함께 잡은 손을 놓지 않은채 그대로 앉았다.
" 기숙사에서는 그렇게 입고 있는거야? 상당히 마음에 드는데. "
어떻게 보면 취향 저격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옷차림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에 어울리는 그런 옷차림이란. 그녀에게서 퍼져나오는 은은한 페로몬과 어우러져 내 마음을 계속해서 뒤흔들고 있었다. 물론 자제를 못 할 정도는 아니라서 계속 손만 잡고 있었지만. 가예가 벤치에 앉으면 무릎에 덮어주기 위해서 넣었던 저지를 꺼낸 나는 그렇게 그녀를 쭉 바라보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