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짧은 대화를 마치고 민규 선배가 자리를 뜨자 홍현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민규 선배가 손에 든 것을 본 홍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선배의 손에 딸기 마카롱이 들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먹으라는 짧은 말에 홍현은 차가운 말 뒤에 따뜻함도 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게 바로 그 '우리 집에 고양이 있는데 보러 갈래?' 라는 것일까? 의도야 좀 다르긴 하겠지만 목적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맞는 말일 것이다.
"후후후... 물론 글쎄가 마음에 드신다면, 이라는 전제가 좀 깔리긴 하겠지만요~"
고양이를 애호하는 사람으로서, 아무리 이상하게 생긴 고양이라 해도 사랑해줄수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고양이들의 외모에 주로 신경쓰곤 하니까. 가령 먼치킨은 좋아해도 스핑크스는 특유의 외모 때문에 피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메인쿤의 경우에는... 겉모습은 귀여울진 몰라도 크기만큼은 강아지들에 견줄 정도로 크게 자라니, 아무래도 그런 태생부터 압도적인 사이즈-심지어 더 커질 가능성까지 있다고 하니...-는 싫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침착하게 대꾸하든 꺼내는 목소리와 다르게 얼굴에 써진듯한 기대감,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조금은 재밌는 사람이라 느꼈을지도 모른다. 왜 조금이냐고 하면... 분명 순하기보단 날카로운 인상이고 명찰만 봐도 선배인게 확실하지만, 조심스러운 행동이나 평범한 사람들처럼 고양이에 굶주린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귀여운쪽이 먼저 다가와서 그런것 아닐까? ...저보다 약간 작은 키도 한몫 했겠지만...
"저도 잘 부탁드려요~"
가볍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다가 자신이 요리부라는걸 말하자 꽤 놀란 것같은 반응을 보이는 그녀를 보고 덩달아 깜짝 놀라긴 했지만, 이내 감탄과 함께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물어오자 그녀는 살짝 그러쥔 주먹을 입가에 가져다대고선 잠시 고민하는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냥 뭐... 여러가지 하죠? 이따금씩 과제겸 투표받은 경우나 추천받은 메뉴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대체적으론 이것저것 만드는 편이니까요~ 최대한 인도스타일에 가까운 카레라던지, 시카고 딥 디쉬(피자)에서부터... 아, 스타게이지 파이도 부탁받아서 만들어본적은 있네요! ...네, 사람들이 정어리 파이라고 하는 그거 맞아요~"
어떻게든 살려냈었지만 개인적으론 딱히 더 만들고 싶진 않았다는 생각이 압도적으로 다가온 그런 요리였을런지도 모른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작게 젓는다. 어차피 일어나야할 시간이었고 아마 깨우지 않았다면 학교가 마치는 시간즈음 일어났을테니까. 진짜 그렇게 오랜 시간 잘꺼면 차라리 집에 가서 자는게 맘 편하다. 그러다 시험이 끝나면 온다는 말에 나는 슬쩍 웃으며 얘기했다.
" 뭐야, 데이트 신청하는거야? 가예랑 데이트라면 나는 언제던 환영인데~ "
사실 가예가 반에 올때마다 얼굴을 보긴 하지만 굳이 아는척을 하지는 않았다. 가예도 바쁠테고 볼일만 보고 가는걸 굳이 아는척하기엔 그랬으니까. 반에서 내가 그렇게 바쁘냐고 물어보면 반에서는 그렇게 바쁘지는 않았지만 ... 우선 대외적으론 여러 이야기를 잘 들어주곤 했으니까 주변에 친구들이 자주 모여있기는 했다. 그래도 가예랑 단 둘이 이렇게 얘기하는건 확실히 간만의 일이기는 하지.
" 늑대의 재능은 저주야. 적어도 나한테는. " " 그냥 회사 들어가서 평범하게 사는게 목표야. 적당히 좋은 회사 들어가서 평범하게. "
재능을 사용해서 인생에서 행복해본적이 손에 꼽는다. 그나마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재능을 좋은 쪽으로 사용해보는거지 그전까지는 어찌나 시달렸는지 아직까지도 악몽을 꿀 정도니까. 그렇다고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지만 좋아하기도 힘들어서 지금까지도 관계는 소원한 편이다. 예전의 안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눈빛이 잠깐 흔들려 시선을 피한다. 아직까지도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기억은 떠올릴때마다 고통스럽다.
그녀의 손이 머리카락을 살며시 정리해준다. 생각보다 곱슬기가 있는 내 머리카락은 뻗치면 잘 정리가 안되는데 역시나 그녀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머리카락이 뻗쳐나가는 모습을 보면 한번 미용실에 들러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들려오는 가예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 굶주린 늑대 앞에서 고기를 흔드는거야? "
나른한 웃음을 지어보이지만 굶주린 늑대는 어떻게든 양을 잡아먹을 준비가 되어있다. 그렇다고 지금이 엄청 굶주렸다거나 그런건 아니겠지만 다가오는 유혹을 뿌리치는 것은 힘들기도 했다.
" 나는 너가 필요해, 백가예. " " 하지만 너도 내가 필요할까? "
변함없이 웃는 표정으로 얘기한다. 내용을 듣지 못한다면 그저 장난을 치는 것 같은 그런 웃음으로.
반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다 조금 생각하더니 하는 말. <글쎄가 싫어하지만 않으면 좋겠네요.> 혼자 하는 사랑에 취미는 없다만, 고양이라면 짝사랑 상대로도 나쁘지 않지. 물론 상대가 질색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싫어하면…… 그냥 울면서 자리 피해주면 된다. 싫다는데 계속 들이대면 더 싫어할 거 아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안 먹히는 경우도 있는지라. 좋아하는데 괴롭게 하기 싫어. 같이 좋아해주길 바라진 않아도 미움받고 싶진 않아.
같이 놀라는 슬혜를 본 사하는 약간 민망해진다. 워낙 부서가 다양하니까 다 알 수는 없더라도, 요리부가 엄청나게 특이한 것도 아닌데. 그래도 사하에게 요리란 나름 별세계에 가까웠다. 아주 간단한 레시피를 따라하는 데 그친 제 실력에 비하면, 슬혜의 이력은 아주 화려했다. 사하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옥장판을 들이밀어도 끄덕거릴 판이다.
"아하, 정어리파이……."
그 생선머리 빼꼼 나와 있는 파이. 떠올린 사하의 표정이 복잡해진다. 사하에게 정어리 파이는 진짜 붕어가 들어간 붕어빵 같은 느낌이었다. 신기한데, 진짜 신기하긴 한데 딱히 먹어보고 싶지는 않은. 어쨌든 대단하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종류도 무진장 많은데다 전부 시도할 생각도 못 해본 것들이라.
물속에 가라앉은 난파선을 탐사하며 돌아다니는 금붕어 인어! 배에 타고 있다가 사고로 바닷속에 떨어진 선원이 격하게 몸부림치다가 물 속에서 들리는 희미한 노랫소리를 듣고 움직임을 멈춰서 가까스로 구조됐다던가, 아니면 그대로 가라앉아 버렸다던가 하는 전설, 어느 배가 실수로 해류가 거세서 들어서면 안 되는 항로에 들어서고 폭풍까지 밀려드는 가운데 간신히 폭풍을 뚫고 중심에 도착했더니 바닷속에 가라앉은 수많은 보물이 모여 있는 보물섬에 도착했는데, 다시 나오지 못하는 바람에 자신들도 그 보물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던가... 하는 구전이 전해져내려올지도 모르지.
예기치 못한 소음에, 멀거니 다시 시내 방향으로 떠나려던 문하의 시선이 규리에게로 되돌아왔다. 와르르 따라붙어서 와르르 말을 쏟아내는 게- 이런 비유를 하는 것은 실례지만, 별생각 없이 쓰다듬어주었더니 꼬리를 치며 달라붙는 강아지 같다. 귀찮아. 하고 문하는 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나 굳이 규리를 쫓아내거나 규리에게서 멀어지거나 하려고 하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그것도 귀찮으니까.
"어."
학교 학생이냐고 묻는 질문에 문하는 무성의하게 코대답했다. 작년 1월경에 이리로 이사와서 산들고를 다니기 시작했으니, 생각해보니 어느덧 이 곳에 발을 붙이고 산 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발만 붙어있을 뿐 그 외에 그 어떤 것도 여기 붙지 못했지만.
"하. 문 하. 외자 이름."
규리가 통성명을 해오자 그제서야 문하는 자기한테 명찰이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스포츠백에 담겨있는 교복 외투에나 명찰이 달려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지금 문하가 입고 있는 것은 예의 그 아디다스 져지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