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에 한번, 리 사감으로부터 퀘스트가 내려왔었다. 잠시라도 백호의 관심을 돌릴 만한 뭔가를 갖다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때 그녀는 슬라임 저금통으로 채운 방석과 닭가슴살로 된 간식과 캣잎이 든 공 한주머니를 갖다 줬었지. 그리고 신탁을 들었고. 그 신탁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의 그녀는 없었을거다. 과장 조금 보태서,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을거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이번 퀘스트도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말이 그렇지 특별한 걸 준비하지는 못 했지만. 저번보다는 손을 덜 다치는 수준으로 제법 큼직한 헝겊 공 몇개를 만들었다. 내용물은 물론 솜과 캣잎. 저번엔 던지기 쉬운 크기였지만 이번엔 백호가 굴리며 가지고 놀기 적당한 크기로 만들었다. 이 정도는 되야 리 사감이 도망칠 시간 정도는 벌어줄 수 있을거 같아서 말이다.
"어허, 이거 리치 거 아냐~ 리치 거는... 여깄지!"
제 몸보다 큰 공을 노리는 리치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따로 만든 작은 공을 던져주자 잽싸게 그리로 달려가는 리치. 공과 한몸이 되어 뒹구는 작은 고양이를 보며 키득키득 웃곤 캣잎 공들을 주섬주섬 모아 들었다. 이제 떨어뜨리기 전에 리 사감에게 갖다주는 일만 남았다.
마법 엄청 잘 쓰던 친구라는 말에 저절로 주양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마법을 잘 쓴것 같지는 않았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 않는가. 제 패트로누스도 이 칭찬을 들었다면 춤을 추었을 것이다. 물론 그건 상어지만. 일단 중요하지 않은 잡생각은 기억에서 떨쳐버리고, 주양은 꿇어 앉은 모습을 한 당신을 빤히 내려다보다가 다시 키득키득 웃었다.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는건 어때~? 바닥에 계속 앉아있으면 옷 지저분해져요, 선배님~"
넘어진곳 상태도 좀 봐야 하고. 머트랩 용액을 발라 치료해야할곳이 있다면 그렇게 해야하기도 하고. 당신에게 손을 내밀어주던 주양은 감초사탕이 당신의 뺨을 깨무는 광경을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하여튼 저게 저래서 성가시다니까. 자신의 자유 의지를 가지고 날뛰고 다니는 사탕은 사양이었다. 잠시만요. 하고 아까 전 당신의 뺨을 깨물었던 감초사탕을 향해. 당신이 맞지 않을 각도로 딱밤을 쎄게 날리고 나서 다시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오, 마침 좋네요! 나도 당과점에서 먹을것좀 사러 가던 길이었는데. 선배를 도와주면 내 용돈을 탕진할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는걸요?"
물론 음식 쪽으로는 양심이 털리지 않았기에 한두개정도 얻어먹고 적당히 자신의 몫을 마저 챙기러 다시 당과점에 들르기야 하겠지만은, 적당히 도와주고 몇개 얻어먹는것도 괜찮지 싶었다. 어차피 감초 사탕이 기어다니고 퍼덕거리고 깨물고 난리법석을 피우느라 흙이 묻더라도 금방 다시 털어내질테니 크게 상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서 있다가 제 팔을 물어대는 감초사탕을 보고 주양은 하하. 하고 헛웃음을 흘리며 순간 쎄한 표정을 지었다. 확 그냥. 찌부시켜버릴까.
"선배를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 사탕을 병을 찾아오는 일? 아니면 흩어져버린 감초사탕들 하나하나 다시 찾아오는 일? 뭐든 맡겨줘요. 지금 체력은 넉넉하니까요~!"
설마하니 이곳 라온까지 나와서 사람도 아니고 감초사탕과 신나는 추격전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몰랐으나 꽤 재밌는 일이 될 터였다. 마침 요즘 게시판에 걸린 의뢰도 안 해서 체력이 남아돌다 못해 오버클락될 지경이었으니까. 간만에 몸좀 풀어볼까. 그런 생각으로 머리를 올려 묶으며 슥 미소지었다. 이래뵈도 몸는 일은 꽤 잘하니까.
그런 와중에도 슬그머니 경쟁 심리가 솟아나는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엇다. 이미 당신의 손에 가득 담겨있는 사탕. 그것을 보고도 왠지 자신이 더 빨리 찾아올것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진짜 무지성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허나 그것을 눈치채는 건 주양이 아니었기에. 정말 오랜만에 내기를 향한 욕구에 불을 붙이며 평소 짓던 비열한 미소를 냅다 내거는 것이었다.
"음. 그건 그렇고~ 그냥 찾아오기만 하면 조금 심심할지도 모르니까. 저랑 누가 더 빨리, 더 많은 감초사탕을 찾아오는지 내기 한번 안 하실래요, 선배님~?"
네가 유독 체구가 작았던 것도 있지만 원래 사람이 이렇게까지 컸나 싶었던 의문은 빠르게 해소된다. 학생의 제안에 고개를 내렸기 때문이다. 이제 보니 주저앉아 있었다. 너는 활짝 웃는다. 앉아있어서 커보였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너는 눈앞의 학생이 아주 크다고만 생각했다.
"아야?"
볼을 물던 감초사탕이 날아가자 하는 말은 고작 그거였다. 이내 "응, 일어나는거 잘해요?" 하며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난 너는 무릎을 내려다본다. "이노리 빨개?" 하고 말하는 걸 보니 공교롭게도 네 무릎이 쓸려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너는 아픈기색 하나 없어보였는데, 아마 감초사탕이 이곳저곳을 물고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감초사탕 하나가 손가락을 잽싸게 깨물었지만 너는 그걸 입에 앙 물었다. 볼 한켠에 가득하게 찬 감초사탕이 제법 잔인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빵빵한 볼 때문에 선명하게 드러난 감초사탕의 깨문 자국도 도드라지는 것이다.
"감초 마이써요? 이노리가 많이많이 나눠줄거야?"
감초사탕이 입안에서 날뛰자 볼이 떨렸다. 너는 사탕을 데굴데굴 굴렸고, 감초사탕은 머지않아 잠잠해진다. 기절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들린 소리는 오도독 하고 단단한 네 치아로 깨물어 부수는 소리다. 손 안에 가득한 감초사탕들이 일순 깨물던걸 멈췄다. 공포심을 느낀 것이다. 너는 눈을 깜빡, 하고 감았다 떴다.
"사탕 찾아주면 돼요? 병은 이노리가 구할 수 있어요. 이노리 아씨오 마법 아주아주 잘 써요."
반절로 조각낸 사탕을 다시 깨문다. 너는 손을 휘적휘적 하면서 아씨오 주문을 외웠다. 날아온 유리병 두 개는 감초사탕을 담던 유리병의 반절 크기였는데, 너와 친할리가 없었다. 마법을 잘써도 후속대처는 못하기 때문이다. 유리병은 차례대로 네 머리를 때리고 팔 안으로 들어온다. 너는 뒤로 젖혀진 고개를 우뚝 다시 젖혔다. 피가 나는 일이 없어 다행이다.
레오는 이히히, 하고 작게 웃었다. 중의적인 의미였다. 넓은의미에서 인간은 포유류로, 동물에 들어간다. 다른 의미라면 레오는 이제 애니마구스로 정말 동물, 짐승이 될 수 있었으니까. 왜인지 모를 따뜻함을 느꼈다. 인정받는 기분이었고, 떨어지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레오는 팔에 조금 더 힘을주고 조금더 깊이 파고들었다.
" ..맞아. 그 녀석은 위선자야. 사기꾼이야. 거짓말쟁이, 모사꾼이야. 믿어서는 안되는 사람이야. "
여지껏 혼자 방어기제로 자기합리화를 하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것에 대해 처음으로 공감해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여전히 눈을 감고있던 레오는 천천히 미소가 퍼지는 것을 느꼈다.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미소가 퍼졌다. 자신의 생각을 오롯이 공감해주고 받아들여주었다. 심지어 레오 자신마저도 스스로를 지독히도 혐오하고 ㅆ을때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 훌륭하게.. 해냈어..? "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레오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래, 마치 애완동물이 그러하듯이. 주인의 손길을 더욱 원하는 애완동물이 그러듯 고개를 살짝 낮추었다. 훌륭하게 해냈다-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된 이야기를 들어보자할때 들을 필요도 없다며 주먹을 날렸다. 나중에서야 그게 과연 잘한 일일까 싶었고 거기서부터 지독한 인지부조화와 자기혐오, 자기합리화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게 만일 훌륭하게 해낸것이라면 그럴 필요도 없어지지 않을까.
" 그치..? 난 틀리지 않았잖아. 그렇지? 틀린건 내가 아니야. 잘못된건 내가 아니야.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있었어. 그 간사한 혀로 다른 모두를 속인거야. 그리고,그리고 지금도 속이고 있을거야. 다른 사람들을 기만하고, 속이고, 능멸하고, 비웃고, 무시하고.. 기만,기만하고있어. 속이고 비웃고 무시하고있어. "
레오는 둘러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고 몸을 더욱 가까이 붙였다. 조금 정신이 나간 것처럼 '속고있는거야'라는 말을 반복하던 레오는 천천히 눈을 뜨고 뱀과 같았던 그 세로동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 이제야 하늘이 조금 높아지고 목을 조르던 손이 조금 풀어진 기분이다.
" 내가 바로잡아야해. 내가, 내가 해야해. 다들 속고있으니까 제대로 알고있는 내가 해야해. 위선자는 지옥으로, 거짓말쟁이는 벌을 받아야하잖아. 버니, 그렇지? 내가 맞는거지? "
>>271 앟! 저도 그거 느끼고 있었어요! 몬가 오버랩되고 있었슴당 :ㅇ!!! >>272 해방..이긴한데 조금 안 좋은 의미의 :ㅇ? 일련의 사건들을 주르륵 겪으면서(치명타는 백교수가 탈이었다는것) 모랄까.. 조금씩 조금씩 안 좋은 쪽으로 해방되면서 망가지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어찌됐든 성장의 또 한 걸음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