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위기는 모면한 것에 윤재는 안도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건지. 집에 가서 이 사실을 말해도 믿어주긴 할런지. 자신의 손목에 달린 조금 다른 디자인의 팔찌를 윤재는 가만히 바라봤다. 역시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른 디자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이들은 로봇을 직접 만들었지만 자신은 이 전함을 받았던가. 자신은 이런 전함을 바란 적이 없었는데 왜 자신에게만?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 투성이였다.
'나는 뭐가 다른 게 있는건가.'
그런 고민과 생각을 하는 와중,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오자 윤재는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 싸웠던 메타트론을 조종했던 진혁이의 모습이 윤재의 눈에 들어왔다. 자리에서 일어선 윤재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다가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수고 많았어. 하지만 나는 어떻냐고 해도.. 나는 직접 싸운건 아니니까."
굳이 말하면 그는 전함 안에서 대기를 하고 상황을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혹시나 다른 원군이 오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적의 분석을 해야만 했으니까. 다행히 공중에서 멈춘채로 떠 있을 수 있었기에 다행이었다고 생각을 하며 윤재는 살며시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다가 무덤덤하게 물었다.
정의감? 아니면 사명감? 그것도 아니면 다른 무언가? 여러가지 가능성을 떠올리며 윤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추측해봤다. 허나 어느 쪽이건 정말로 대단하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짝짝 치며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시선이 여기저기로 향했다. 정말 여긴 우리 교실이 맞는 것일까. 왜 교실이 전함 안에 들어온 것일까. 정말 미스테리 투성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만큼은 아니야. 하지만 그건 그렇고, 어쩌지. 담임 선생님이나 어른들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까."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 담임 교사는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돌아가게 되면 대혼란이 일어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싸워야겠구나. 우리. ...내가 이것을 출격시키지 않으면, 로봇들을 꺼낼 수 없을테니 출격해야만할테고. ...여러모로 설득해야 할 이들이 많아지겠어. 일단 이건 내가 어떻게든 얘기를 해볼게."
"오히려 정상적인 어른들이라면, 우리들이 이것을 끌지 못하게 하지 않을까? 고등학생에게 전장터로 나가라고 하는 것은 후진국에서나 있을법한 일인걸."
물론 지금의 싸움으로 보아 자신들이 아니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들이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자신은 또 싸워야할테고 어른들은 그걸 납득해야겠지만, 그게 과연 쉬울진 알 수 없었다. 이어 윤재는 팔찌의 버튼을 꾹 눌렀고 앞의 화면이 격납고로 향했다. 거기엔 이번 싸움에서 절로 회복을 하고 있는 로봇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렇게 두면 혼자서 자아 회복을 하는 것일까. 그것만은 신기하다고 생각을 하며 그는 피식 웃었다.
"아프고 말고는 내가 정할 수 있는게 아니잖아? ...그땐 그런 괴물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래야지."
한편 이어지는 우주와 해외여행 말에 윤재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저 로봇들이 있으면 그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허나 과연 그게 쉬울지는 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이 밖으로 로봇을 끌고 갔다가 혹시나 암흑 전사라는 이들이 또 나오면 어찌될까 싶기도 하니까.
"그건 그렇고, 정말로 다른 세계라는게 있긴 했구나. ...지금까지 그런 것은 없는 줄 알았어. ...그렇게 따져보면 앞으로도 계속 싸워야할텐데. 괜찮겠어?"
그의 말대로 대체 누가 지금 이 사태를 예상할 수 있었을까? 갑자기 괴물이 나타나고 그 괴물을 막기 위한 로봇이 나왔고, 그것을 조종해서 싸우게 된 이 사태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만큼 예상하지 못한 일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가만히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튼 정말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진혁을 바라보며 순수하게 대단하다고 생각을 하며 윤재는 엄지를 위로 척 올렸다. 자신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이런 전함을 받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그는 잠시 생각을 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군인같은 마인드네. 나라면 어림도 없을거야. ...그래도 어쨌든 지구는 지켜야 하고,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해야만 하니까. 나도 마음을 굳건하게 먹어야겠어."
널 본받아서 말이야. 그렇게 작게 소리없이 웃어보이며 윤재는 잠시 로봇들을 바라보다가 이야기했다.
"그건 그렇고 로봇을 저렇게 이미지한 이유라도 있는거야? ...아니. 멋이 없는 것은 아니고 취향쪽인거야?"
"...만화로 따지자면 그럴지도 모르겠네. 있잖아. 옛날 만화 중에 막 그렇게 로봇을 타고 세계를 지키는 초등학생들."
설마 자신이, 자신들이 똑같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비슷한 것은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윤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며 동의했다. 물론 돌아갔을 때 어른들이 만화처럼 손쉽게 물러날지는 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만 해도, 부모님에게 전화하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알 수 없었으니까.
진혁이 생각한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저렇게 이미지가 나온 것을 윤재는 공감할 수 있었다. 천사라. 확실히 천사처럼 생긴 로봇이었다. 그렇다면 저 천사는 앞으로 지구를 계속 지키게 될 수호천사인걸까. 앞으로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고 생각을 하며 곧 들려오는 물음에 윤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이미지 하지 않았어. 그냥 내 머리로는 단추를 누르라고 해서 눌렀는데 이게 나온거야."
다른 이는 듣지 못한 목소리. 윤재에게만 들린 목소리. 그것에 대해서 윤재는 조금 혼란을 느끼며 가만히 전함 내부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그저 우연이 아닐까.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윤재만이 유일하게 달랐으니까. 만약 거기에 이유가 있다면, 역시 랜덤 밖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허나 이 이상은 복잡하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에 윤재는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하며 괜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정말로 평화가 찾아온다면, 나중에 대학이나 어른이 되면 이야기할 것은 많겠네. 우리가 세상을 구했다고 말이야."
그러면 과연 몇이나 믿을 것 같아? 괜히 그렇게 이야기를 해보기도 하며 그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정말로 모든 것이 다 잘 끝난다면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간 추억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하며 그는 괜히 팔찌를 소중하게 손으로 쓸어내리다가 손을 아래로 내렸다.
"1년 내로 끝났으면 좋겠어. ...고3일때도 이렇게 하면, 대학이 위험해. ...물론 나는 카페를 이어받을 거지만, 그래도 대학은 가보고 싶기도 하고..."
그런 혼잣말을 작게 중얼거리면서 윤재는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슬슬 학교로 돌아가려는 듯, 발진기를 잡고 돌려서 학교로 이동시키면서 윤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운이 제일 나빴으면 나빴지. 좋은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는 괜히 표정을 찌푸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이런 자리에 있는 것이 본능적으로 조금 꺼려지는 감이 있었고, 윤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이 이런 것을 싫어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그것을 아직은 알 방도가 스스로도 없었다.
이력서에 쓴다는 그 말에 결국 윤재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특별채용 같은 거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한번 해보라고 이야기를 하며 윤재는 다시 조종대를 제대로 잡았다.
"증명할 서류를 떼오라고 하면 어쩔거야? 로봇 타고 가게? 물론 그때까지 로봇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만화를 보면 꼭 사태가 끝나면 로봇을 다 회수해가던데 이것도 그럴까. 그렇게 생각을 하기도 하며 그는 학교가 보이자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머릿속으로 정보가 전송되었기에, 조종방법은 그도 충분히 알고 있었고, 그는 능숙하게 학교 안으로 전함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학교가 원래 상태로 돌아가며, 2학년 3반 교실도 원래 상태가 되었다. 이제는 완전히 학교로 돌아온 셈이었다.
"그게 대단하다고 생각해. ...보통은 SNS에 올리고 자랑할 거라고 생각해. ...우리 반 애들 중에서도 그러는 애들이 분명히 있을걸?"
정말 순수하게 진혁에게 대단함을 표하면서 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일단 빅토리아 호를 학교로 돌아오게 했어. 아마 지금이라면 나갈 수 있을거야. 학교도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 같았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증명사진은 조금 힘들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허나 그냥 기념사진 정도는 괜찮지 않겠냐고 말을 하며 윤재는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섰다. 한편 진혁처럼 윤재 역시 굳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SNS야 하긴 하지만, 거기에 올려봐야 시끄러워질 것 같았으니까. 너무 과도한 관심을 받는 것은 질색이었다.
"...조만간에 우리 반이 한창 시끄러워질지도 모르겠어. 학교 사람들이 다 몰려들테고."
지금도 봐. 이러면서 윤재는 복도를 가리켰다. 거기엔 이미 여러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아마 지금 사태가 뭔지 구경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겠거니 생각을 하며 저길 어떻게 빠져나가면 좋을지 윤재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뭐가 함장님이야. 그냥 윤재라고 불러."
괜히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내며 그는 우선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어차피 공부를 하긴 글러먹은 상황이었다. 집에 연락해서 안전여부를 전해야겟다고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저었다.
"...빅토리아 호라. 정말, 그 말대로 이겼으면 좋겠네."
그 말을 하면서 윤재는 마침내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심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상태를 알리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