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들에겐 재능에 따른 리스크, 양들은 그저 극심한 외로움. 그래 어쩌면 양들은 늑대를 시기하고 질투할지도 모른다. 그 어떤 특별한 재능조차 받지 않고서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려야하니까. 허나 늑대들도 재능에 걸맞는 기대감을 만족시켜야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약한 늑대는 결국 무리에서 도태되고 배척 당한다는 것. 너무나도 약한 늑대였던 나는 그렇게 홀로 자랄 수 밖에 없었다. 나도 외로웠으니까, 그 외로움을 채워줄 상대가 필요했다.
" ... 여전히 당당하네. " " 고마워, 은사하. 예전이고 지금이고 역시나 나한텐 너 밖에 없네. "
머리를 더 쓰다듬어 달라면서도 하는 말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지만 그녀가 하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드러난 하얀 목덜미에 잠시 깨물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참을 인자 세번으로 간신히 참아내고선 그저 조금 더 세게 끌어안는 것으로 대신했다.
" 어쩔 수 없어, 나는 늑대라서. " " 우리 당당하신 양님이 평생 필요하니까. "
양이 없으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감정을 극복할 수 없었기에, 우리는 멀리 가고 싶어도 허리에 메여진 고무줄 같은 관계성 때문에 다시 돌아와 부딪힐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국 난 너를 밀어내도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만, 계속해서 밀어내는 것밖에는 나에게 주어진 답이 없다.
" 좀 더 쎄게 끌어안아주면 안될까? "
재능을 매일 같이 사용하는만큼 그 반동도 심하게 온다. 내가 끄고 켤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에 관련된 재능은 내가 잘때를 빼곤 계속해서 사용할 수 밖에 없으니까. 너무나도 불편하고 마음에 안드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나는 거스를 수 없다.
평소라면 눈물을 닦아주려는 손이 다가오기 전에 씩씩하게 닦았을 텐데, 옷소매나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나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방긋방긋 웃어줄 수도 있었을 텐데. 조심하고 있는 상대라면 닿지 않으려고 노력할 텐데. 오늘은 그게 안 돼. 뻗어온 손이 눈물을 닦아주었다면 얌전히 눈을 감았을 것이고, 닦아주지 않고 멀어졌다 하면 눈물이 굴러떨어져 흐릿해진 시야로라도 열심히 그를 바라봤을 것이다.
“ 고마워어. ”
애교 있게 늘어지는 목소리는 눈물로 젖었는데, 기쁨이라는 감정이 파릇하게 고개를 들어. 누군가가 충동을 누르느라 한참 고생 중이라는 것을 모르는 채, 아랑은 무구하게 웃었다. 연호의 팔이 아랑의 목을 감싸 안으려고 했다면, 아랑의 팔은 그에 뒤따라 연호의 허리를 살포시 감싸 안으려고 했을 테지.
대신 너도?
너무나 가깝게 들리는 낮은 목소리에, 아랑은 그가 평소완 비교도 할 수 없이 가까워진 것을 깨닫는다. 도망치는 것도 피하는 것도 이미 늦었다. 게다가 도망치고 싶단 생각도 피하고 싶단 생각도 지금은 들지 않아. 다만 허락 없이 목덜미를 물 것처럼 가까워지는 게 무서워서 몸이 살짝 빳빳하게 굳었다.
연호 너 진짜로 늑대구나.
“ ....조금만이라면, 깨물어도 괜찮아. 대신 아프지 않게 살살 깨물어야 해. ”
평소라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을 허락. 늑대란 걸 깨달았다면, 더욱더 엄격하게 굴어야 하는 법인데. 입 밖으로 굴러나오는 것은 소심하고도 응석어린 허락의 말이다.
“ 도망 안 쳐. 너 두고 어디로 가고 싶지도 않아. 늑대도... 만월의 밤은 힘들잖아. ”
양이어서, 어떤 느낌으로 힘든지는 완전히 이해 못 하겠지만 그래도. 외로움과는 다른 갈망으로 힘들겠지. 잠잠해도 어딘가 으르릉거리는 듯한 목소리에 몸이 잠깐 움찔했어도, 아랑은 몸을 바로 폈다. 아까부터 응석을 받아준 덕인지, 아주 조금은 덜 외로워진 것 같고. 차분한 목소리도 낼 수 있었다. 그래도 역시 아직은 외로우니까.
“ 내가 연호를 의지하고 싶은 것처럼, 연호 너도 나를 의지해도 괜찮아. ”
차분해진 목소리가 달고 사근하게 귓가로 감겨든다. 아랑은 그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아랑에게 의지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그의 자유에 맡겨두었다.
...사실 내가 너무 작고 귀여운 나머지, 별로 의지가 되지 않는 타입인 거 알고 있어. 라는 현실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말은 덧붙이지 않고 속으로만 했다.
피아노에게 질투가 난다는 ㅡ적어도 그가 생각하기엔ㅡ 장난끼로 들리는 말에 그는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꺼려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자신이 싫거나 마음에 들지 않다는 이들과 거리를 둘 뿐이었다. 그 이외에는 나름대로 무난하게 잘 지낸다고 스스로 생각을 하며 그는 두 손으로 깍지를 긴 후에 앞으로 쭉 뻗었다가 아래로 내렸다.
"하지만 초면인 이와 적어도 1년 이상을 같이 한 피아노와 비교하면 선배랑 안 기간이 짧잖아요? 물론 저도 농담이에요. 그저,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그냥 좋아서요. 피아노가. 이걸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네."
아름다운 음색도 좋고, 자신이 이렇게 멜로디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좋고, 그리고... 거기까지만 생각을 하며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눈을 잠시 감았다.
"선배도 그런 거 있지 않나요? 무엇보다 좋아하고 그러는 거. 저에겐 이거예요."
괜히 피아노 건반을 꾹 눌러서 한 음을 쭈욱 길게 냈다가 떨어뜨린 그는 아- 소리를 내면서 두 손을 이어 휘저었다.
"아. 물론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와 있는 것이 불편한 건 아니에요. 전 싫은 사람에게는 그다지 말 안하거든요. 그러니까 선배나 다른 이들이 싫은 건 아니에요. 절대로, 네버."
나름 침착하고 논리적인 대화가 오간다 해도 그의 본능이 사그라들기란 쉽지 않고, 그녀의 충동 역시 억누를 수 없었다. 그저 누가 더 단정하게 구는가의 경쟁, 하지만 이런 날에 굳이 체면을 차릴 필요가 있던가? 결국 미쳐가는 것이었다. 양도, 늑대도 그녀도, 그도
별다른 수가 없었다. 만월에 멋대로 돌아다닌 죄는 꽤나 무거운 법이니까,
"후후후... 꽤나 살벌한 이야기를 하시네요~?"
키득거리는 웃음의 톤이 한층 더 높아졌다. 더이상 속으로 웃는 것이 아닌, 누가 봐도 그를 향한 웃음 위기감에 뇌가 어떻게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이것이 그녀의 본성인 것일까? 눈앞에 있는 늑대의 '어떻게든 입질을 하고 싶으면서도 참으려는' 모습이 못내 사랑스러워보이면서 동시에 우스워보였다.
"그럼... 진짜 먹잇감을 들고 가듯 해야하지 않으시겠어요 그대야?"
분명 걸을 힘이 있건만 그녀는 부러 맥빠진 행색을 취하며 쓰러졌고 의식없이 널브러진 몸에 머리에만 숨이 붙어있는 것마냥 그를 올려다보았다.
>>581 어렵네. 굳이 따지자면 하늘이는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는다에 가까울 것 같아. 사실 스킨십을 나눌 정도면 어느 정도 친숙하다는거니, 그 정도면 그냥 자기가 먼저 할 것 같기도 하고, 해도 아무렇지 않게 받을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처음에 할 때만은 조금 고민을 많이 할 것 같긴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