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탈쟁이들이 '주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충성심이 얼마나 높은지는 잘 알고있다. 그 사람이 죽으라고하면 죽을 정도인 녀석들이니까. 레오는 그런 사람에게 자신의 가설을 이야기하는 것이 옳을지 말지는 잠깐 제쳐두고 지금은 그냥 다른 사람과 꼭 끌어안고 체온을 나누고싶은 기분뿐이었다. 자기가 지고있는 짐을 잠깐 내려놓고 싶었으니까.
" 허으으... "
레오는 몸을 일으켰다. 누군가를 안는것 그리고 안겨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어떤 자세로 안겨있고 어떤 자세로 안아야 서로가 편한지를 잘 알게 되었다고해야하나. 몸을 일으킨 레오는 물이 흐르듯 폭 안겨 눈을 감았다. 그리곤 어깨와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느리게 숨을 쉬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따뜻하고 안심이 되는 기분이다. 이래서 다른사람에게 안기는걸 좋아하는지도 모르지.
" 네네, 청구하세요. "
건성으로 느릿느릿 대답한 레오는 천천히 움직임을 줄여나갔다. 깊게 숨을 쉬고 다시 깊게 내쉬기를 두 어번 정도 반복하다보면 머릿속에 떠오르던 잡념들이, 목을 조르던 불쾌감이, 하늘을 낮게 짓누르던 인지부조화가, 속을 갉아먹는 지독한 자기혐오가 조금씩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면 조금만 얘기해볼까. 아주 조금만.
" 하늘이 너무 낮아. 하늘이 너무너무 낮아서 숨쉬기가 힘들어. 있지, 그 중이 알고보니까 내가 좋아하던 교수님이더라고. 그 더러운 위선자. 여태까지 날 속이고, 기만하고, 능멸하고, 무시하고, 비웃었겠지. 그 동안 가장 가까이에 있던 교수가 너희들 중 하나였으니까. 그걸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마구 때려줬어. 다른 사람들이 얘기라도 들어보자고 할 때, 나는 그냥 계속 때렸어. 너무 화가나서. 그 왜, 자기 감정에 솔직하면 좋은거잖아. "
레오는 다시 깊게 심호흡을 했다. 연상은 연상이라는 것인지 무언가 안심이 되는 기분을 지울수가 없었다. 따지고보면 너도 그들 중 하나일텐데. 지독한 악연이라면 악연이다. 그럼에도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던가 숨쉬기가 조금 편해졌다던가 하는 이유는 아마도 너도 역시 자기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나한테 이 모든걸 알려준 사람도 당신이며 당신 나름의 조언은 나에게 나름 잘 먹혀들었으니까. 썩 괜찮은 사람이네.
" 그런데 알고보니까, 그 사람은 결국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고. 물론 안믿었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지. 어디서 개소리를 하냐면서 더 때려줬어. 그리고 너도 그렇게 말하더라고. 그런 계약을 했다고. 난 그 말도 믿지않아. 어쨌든 너도 그 사람과 같은.. 그러니까, 동료잖아? "
레오는 '잠깐, 이렇게.' 하고 말하면서 자세를 조금 고쳤다. 더 깊이 안길 수 있게 그리고 더 깊이 안아줄 수 있게. 심장소리가 들렸다. 레오 자신의 심장소리가 조금 큰 소리로 울렸다. 그리고나선 자신이 안고있는 부네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작지만 확실하게 들을 수 있는 소리. 두 개의 소리가 거의 일정한 타이밍으로 들리는 것이 제법 듣기 좋았다.
" 좀 두서가 없는데. 생각해보면 나도 너랑 이렇게, 같이 있잖아? 그 사람과 나의 차이는 직접 탈을 썼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 정도로 느껴진다는거야. 그리고 여기서부터 기분이 불쾌해져. 하늘이 낮아지고 목이 졸려. 지독한 자기혐오가 시작돼. 결국 나는 내가 그렇게 증오하던 그 녀석과 똑같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 그리고 만약 그게 맞다면 나는 무슨 자격으로 그를 혐오하고, 때리고, 증오하고, 원망하고, 화낼 수 있는걸까 라는 생각이 들어. "
레오는 눈을 감고 부네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불쾌한 인지부조화 그리고 그의 방어기제에 따른 자기합리화. 그 다음 단계는 지독하고 질긴 자기혐오가 시작된다. 그런 상념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탈출구 없이 빙빙 돌아 스스로의 목을 조르고 안에서부터 갉아먹는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썩어들어가는 느낌. 하늘이 너무나도 낮아서 숨쉬기가 힘들고 세상의 모든 것들에 눈이 달려 자신을 노려보는 기분이 들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손가락질 하는 느낌. 그리고 거기에 대한 방어기제로 자기합리화. 그 다음에는, 또 다시 지독한 자기혐오. 레오는 이빨을 꽉 물었다.
" ..그냥 그게 다야. "
분명히 떨고있었다. 자기혐오에 빠지게되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신을 혐오한다 느끼게되고 그리고나면 자신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며 종국에는 스스로를 잃어버리게 된다. 레오는 그 일련의 과정을 본능처럼 알고있었다. 혼자서 생각할때, 꿈에서 또 다른 자신과 마주하며 이야기 할 때 왜인지 모르게 이런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고 어떻게 될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끝이 다가올것이라는 것이 두렵고도 싫었으니까.
>>631 잉이의 가면은 이제 혜향 교수님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미 여러번 깨먹은 전적이 있는지라..🙄 ((기숙사를 우당탕 뛰어다니고 굴러다니던 잉이를 떠올려요..)) 아마 교수님께 드린 가면도 며칠 전 박살나서 사흘동안 내리밤낮 쉬지않고 만들었는데 오늘 양도해버린 따끈따끈한 새가면이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