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이 너무 가까이 그녀에게 얼굴을 들이민 것으로 그녀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아." 주원은 저질렀다. 같이 짧게 읊조리며 뒤로 물러난다. 이런 식이었다. 아랑에겐 거리감을 제대로 재지 못하고 그대로 달려들어버린다. 아마 그녀가 너무 귀여운 탓이겠지. 그녀의 뒤로 물러나는 움직임은 마치 걸그룹의 댄스에서나 볼 법한 우아하고 깔끔한 움직임이었다. 주원은 그렇게 부드럽게 물러서는 그녀를 보곤
"미안해."
하고 고개를 슬며시 숙인다. 요즘들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스스로도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랑에게만. 이유는 간단. 너무 귀엽기 때문이었지만, 그녀는 인형이 아니었으니까. 큰 애정을 단순히 부딪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 말이다. 상대가 받아낼 수 없다면, 그저 서로 서있는 바닥이 더러워질 뿐이다. 그렇게 얼룩진 바닥 위엔 그 아무도 서고 싶지 않을 테니까. 이미 몇 번이나 쏟아버린 것을 주원은 슬슬 깨닫기 시작했다.
"맞아. 그런 얘기가 있지? 남에게 소원을 말하면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알려주지 않는게 좋겠다. 응!"
주원은 그런 생각으로부터 저먼치 달아나기 위해 그녀의 말에 과하게 신경을 쓰며 대답했다. 어딜 봐도 어색한 태도. 스스로를 속이는 것 조차 이젠 익숙하지 않게 되어버렸으니까.
"한 글자를 알려줘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떡해? 그랬다간 아랑이 슬퍼할테니까, 괜찮아. 알려주지 않아도."
그렇게 말하곤 미소를 지어보인다. 우러나온 미소가 아닌 미소를 지어야한다는 생각으로 지어낸, 쓴맛을 지워내지 못한 미소. 귀여운 후배가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테니까. 주원은 이어 말 없이 그녀에게서 메모지와 볼펜을 받아들었다.
"뭐라고 적으면 좋을까."
스스로도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무엇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는지. 이젠 슬슬 충분히 즐거우니까. 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웃으며 행복하다고 대답할 수 있기도 했고. 매일이 흘러가는 일상. 누군가와 만나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가끔은 마음이 맞는 이야기를 하고 기뻐지고. 상대방과 어긋나고 슬퍼지고. 그렇다고 모든 인간 맞을 수는 없으니.
그렇다면.
주원은 무언가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작게 몇 번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의외로 빨리 결정됐어. 아랑이도 다 쓰면 함께 내러 가지 않을래?"
그는 소원을 고민하고 작성하는 아랑을 보지 않기 위해 아랑으로부터 등을 돌려 어딜 둘러보더라도 벚꽃 가득한 풍경을, 들어오지도 않으면서도 그 눈에 담고 있었다. 그 눈은 그 벚꽃들을 보고 있지 않았지만. 그저 시선이 그 쪽으로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왜 소원을 빌어보기 위해 나오자는 생각이 들었을까, 홍현은 어느새 노을도 다 져서 어둑어둑해진 학교 정원에 홀로 서있는 자신을 알아차렸다. 손에는 쪽지가 들어있었다. 쪽지만 펼쳐본다면 언젠가 소문을 듣고 썼을법한 이 쪽지의 내용을 알 수 있었겠지만 홍연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마 안에는 영양제의 완벽한 조합을 찾을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 같은 게 들어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미소가 절로 띠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버릇에 대해 들어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미소는 사라졌다. 말을 더듬는 버릇, 완화시킬 수는 있지만 고치긴 힘든 버릇. 버릇에 대해 생각하니 왠지 답답해졌다. "불안감"을 주기 때문이었다. 불안함은 늘 그랬다. 한번 생겨나면 걱정이라는 질 나쁜 친구를 끌고 오는 나쁜 녀석이었다. 누군가 보는 건 아닐까, 만약 보고 있다면 뭐라고 변명해야 할까. 보고 있다면 원예부에서 키운다던 딸기를 보러 왔다고 말하면 되겠지. 하지만 서리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거기에 이 쪽지는 어떡하지? 오만가지를 걱정하던 홍현은 현기증이 나는 것만 같았다.
홍연은 자신이 늘 들고 다니던 가방에 있던 강장제를 급하게 꺼내 따 한 모금 마셨다. 그와 함께 고개를 저으며 확실히 생각들을 떨쳐버렸다.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아니, 걱정들이 떨쳐져 확실히 머리가 맑아졌다는 게 느껴졌다. 홍현은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벚꽃나무 아래로 향했다.
벚꽃나무를 올려다보며 잠시 생각을 가다듬던 홍현은 자신의 소원이 들어있던 쪽지를 들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쪽지를 놓고 눈을 감았다. 속으로 시간을 세던 홍현은 간절히 속으로 소원을 빌어야 한다던 말이 생각났다. 잠시 가슴이 내려앉은 것 같았다. 쪽지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데. 하지만 왠지 눈을 뜨면 벚꽃나무가 화를 내서 자신을 쫓아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홍현은 자신이 썼을 법한 소원 두 가지, 두 가지를 빌어보기로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홍현은 조심스레 눈을 떠보았다. 그리고 알아차린 건, 자신의 안경이 어딘가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아마 고개를 저을 때 떨어진 거겠지? 홍현은 급하게 뒤로 가서 잔디를 뒤졌다. 그렇게 한참 뒤지던 홍현에게 자신이 여기 있다는 듯 달빛을 반사시킨 덕분에 안경이 자신이 소원을 빈자리에 떨어졌단 걸 알게 되었다. 안경을 다시 주운 홍현은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쪽지가 사라진 건지 아닌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소원을 빌러 온 김에 눈을 감고 아까의 소원을 빌어보기로 했다.
잠시 후, 눈을 다시 뜬 홍현은 안경을 썼다. 그리고 잠시 일어나 걸어가는 듯 싶다가 딸기 모종 옆에 앉아 아직 얼마 차지 않은 달을 바라보며 아까 마시다 말던 강장제를 음미하며 마셨다.
>>929 8ㅁ8.... 시계바늘을 돌려야 하는 걸까요...!! 쪼꼼만 더 힘내시고, 집에 오시면 천천히 쉬어주세요!
>>930 아니... 벌써 그런 면을 보셨단 말이에요...? oO 가예 프로필은 >>아니. 모든 사람을 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군자의 덕목이니까.<< 요게 제일 인상 깊었다고 할까, 걸크러쉬!! 였는데 실제 일상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돼요! 😃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랑, 안 친한 사람이랑 있을 때랑 갭이 좀 있을 것 같지요!
>>934-935 연호주 어서오세요!! :D 쫀 저녁!! 여태 본 일상 조각 중에 제일 늑대 같아요...? oO (댕댕이같던 연호 봄) (늑대 같은 연호 봄) (번갈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