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란 무릇 행동거지에 드러나기 마련이며, 훈련된 사람이라면 거짓말 탐지기가 없어도 어느 정도 거짓과 진실을 분간해낼 수 있다. 그것이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일상생활이라면, 굳이 훈련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눈치만 좋다면 말투나 표정을 통해 진심인지 아닌지 정돈 알 수 있을 것이고.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늑대로서 '재능'이 있다.
나의 재능은 직관적이진 않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학교에서의 수업은 쉽게 이해되었고, 타인을 이해하는 것 또한. 그 말의 속내와 그 너머의 의미까지 이해하는 것 또한 가능했으니까.
나를 향해 웃으며 대단하다고 말하는 친구의 내키지 않는 미소도.
성적을 보고 동경의 눈빛을 보내던 아이의 꾹 쥔 주먹도.
철봉에 실패한 나를 위로해주던 친구의 입을 가린, 그 너머의 표정도.
굳이 마음을 읽을 수 없어도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안녕?""이름이 뭐야?""학년은?""몇 반인데?""그거 좋아한다고?""나도 그거 좋아하는데!""요즘 어때?""건강해?""와 정말?""대단하네!" 인간이 입 밖에 내는 대부분의 말은 의미가 없다. 전부 "뺩뺩"으로 대체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전부 관계를 맺기 위한 허울에 지나지 않으며 그 와중에 진정으로 대화가 통하는 것은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어느 사람 한 명을 만났다. 언제나 밝게 웃으며 입에서 거짓의 냄새가 나지 않는, 거짓말을 금지당한 존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음 담긴 말의 냄새밖에 나지 않는 그런 사람을.
그 친구는 언제나 사람들의 중심이었으며, 빛나고 있었다.
나는 타인을 밀어내고 홀로였으며, 스스로 자신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그런 사람.
"뭐해?" 너는 나에게 눈을 빛내며 물었다. 원하는 것 하나 없다는 눈을 하고.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눈을 하고. 그때 뭘 하고 있었는지, 지금의 나는 기억하고 있지 않다. 아마 교과서를 읽고 있었을까? 그 뒤에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아. 그저 횡설수설. 너에게 상처를 줄 만한 말을 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너는 그저 미소지으며 나를 이끌어 주었다.
한동안 빛으로 가득한 나날이 이어졌다. 나에겐 거짓의 미소로밖에, 가짜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이, 그 아이와 함께 있는 것으로 마치 검은 때를 한순간에 벗겨내듯이 빛으로 가득 차 들어갔다.
그 아이는 늑대였던 것일까? 아니면 양이었던 것일까? 그 어느 쪽도 아닌 평범한 인간?
그 어느 쪽이든 그 아이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바로 주위를 빛으로 가득 채우는 재능. 타인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마음까지도 전부 빛으로 씻어내고 순수한 사랑만 남게 하는 그런 힘. 타인에게 부정당하며 살아왔던 인생도 그 아이를 만나는 것으로 사람을 믿어도 되지 않을까 하고 희망을 품게 하는 그런 미소.
그런 너는, 마치 그 재능의 대가를 치루듯 나와 함께 2년을 보내지 못했다. 선천적으로 병이 있었던 것이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어 갈수록 너는 초췌해져 가고, 눈에 빛을 잃어갔다.
"주원아."
"응?"
"나, 후회하는 게 있어."
"뭔데?"
"말하지 못한 게 있어."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나, 너에게 말을 건 이유."
"응?"
"널 좋아해서야."
"..."
"뭘 하는지 진심으로 궁금하기보단, 그저 너에게 말을 걸고 싶었어."
"..."
"널 알고 싶었어. 더 가까워지고 싶었어."
"나 같은 거에... 왜?"
"좋아하는데... 이유가 필요하니?"
"..."
"더 살고 싶었어."
"..."
"너와 함께."
"..."
"너와 함께 놀러 가고 싶었어. 좀 더 여러 곳에. 공원에, 꽃밭에, 카페에, 놀이공원에, 동물원에, 식물원에."
"...병이 나으면 함께..."
"거짓말. 알고 있으면서."
"..."
"그러니까 나 대신에."
"..."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
"..............."
"............"
"........."
"..."
너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거짓말을 했다. 유일한 거짓말을. 네가 바란 것은 내가 너 대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나와 함께 행복하기를 바랐다. 앞으로 더. 조금이라도 더. 짧게 남은 시간일지라도.
그 후로 나는 바뀌기로 했다. 나에겐 너같은 빛은 없어서 그저 녹을 벗겨내듯 그 마음 속 어둠을 긁어낼 수밖에 없었다. 네가 나에게 남겨준 빛은 너무나도 작아서, 그것으론 무엇을 할 수 없어서 나는 스스로 가짜 등불을 잔뜩 만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깨달았어. 아무리 의미 없는 말을 나누더라도. "뺩뺩"으로 대체해도 전혀 상관없을 대화를 나누더라도. 마음을 열고 필사적으로 진심을, 네가 남겨준 작은 빛과 가짜 등불을 밝혀내면 상대에게도 그 빛이 옮겨갈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가짜 빛으로 옮겨간 빛이라고 해도, 상대에겐 진짜 빛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너 같은 진짜가 아닌 가짜지만. 그래도 가짜에겐 가짜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