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태양이 떠올라 모든 것을 어두컴컴한 어둠으로 뒤덮고 있는 그 어딘가를 비추는 불빛은 찬란하게 반짝였다. 자연빛이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인공적인 빛만이 겨우 그 어둠 속에 서 있는 이들을 하나하나 비추고 있었다.
거대한 황좌에 앉아있는 이는 전방에 있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 화면은 허공을 가르고 있는 거대한 금을 비췄다. 이내 금은 점점 커지며 허공에 거대한 틈새를 만들었다. 그 너머는 찬란한 태양빛이 가득한 또 다른 세상이었다. 그 빛을 바라보며 황좌에 앉아있는 이는 약한 숨을 내뱉었다.
"아직 통과하기엔 너무 작구나. 이래서야 짐은 물론이며 너희들도 저 세상으로 갈 수 없지 않느냐."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틈이 작다고 하나, 이 전함이 통과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보다 작은 것이라면 통과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그것이 제대로 도움이 되긴 하겠느냐? 짐은 영 미덥지 못하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황제 폐하. 이미 모든 실험은 끝이 났습니다. 이내 이 전함도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구멍이 생길 것이고, 그 순간 모든 것이 우리들의 계획대로 진행될 것입니다."
그 말에 만족감을 느끼며 황좌에 앉아있는 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그 틈 사이로 뭔가가 발사되었다. 검은색 구체로 보이는 그 뭔가는 아무도 모르게 빛이 가득한 세상 저 너머로 넘어가 땅에 조용히 착지했다. 뒤이어 데굴데굴 구르던 그 구체의 벽이 깨지고 이내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구체는 녹아내렸다.
허나 땅에는 벌레 한 마리가 들어갈법한 아주 작은 구멍이 있었다. 마치 뭔가가 그 안으로 파고 들어간 것처럼.
[어젯밤, 또 다시 지진이 발생해...] [지진이 발생했을 때 안전대피 방법은...] [아직 건물이 무너지진 않을 정도이나, 갑자기 진도가 커질 수 있어...] [원인은 불명. 아직 조사 중...]
수많은 뉴스가 아침부터 밤까지 방송되었다. 아주 작은 땅의 흔들림이 울렁이다 또 다시 사라졌고, 진열된 TV가 살며시 흔들렸다.
"저기.... 이러시면....." -"에이 빼지 말고, 고등학생이라면 놀 때는 놀 줄 알아야지!"
학교가 끝나고 가볍게 거리를 뛰며 운동을 하고 있을 찰나에 휩쓸린 상황, 분명히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한 남성이 예미를 향해 헌팅을 가한 것이었다. 확실히 그녀가 꾸미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탓인지 또래보다 잘 발달된 몸과 더불어 온순해 보이는 인상은 남자들을 꼬이게 하기 충분하였다.
"저.... 집에 가야하는데요?" -"아니 잠깐만 같이 놀자니까...!! 왜 그렇게 튕기는건데!"
그녀의 거듭된 거절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끈질겼다. 분명히 그들이 보기에는 예미라는 소녀는 상당히 좋은 먹잇감으로 보였으니까, 그렇게 대학생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려는 찰나.... 그녀의 손이 유려하게 움직이며 대학생의 손을 벗어났고, 그녀는 그대로 물 흐르듯 남성의 손을 쳐낸뒤, 가볍게 품으로 파고들고는 안쪽 다리 관절 부분을 가볍게 발 뒤꿈치로 쳐서 무릎을 굽힌뒤 그대로 팔을 뒤편에서 꺾었다. 남자는 그녀의 완력을 무시했는지 그대로 빠져나가려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제압된 팔에 가해지는 통증은 점점 강해졌다.
-"이....이익!! 이거 안놔?! 제길!! 무슨 힘이....!!" "어 음..... 그러니까....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재판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으며, 질문을 받을 때 변호인에게 대신 발언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변호사를 쓸 돈이 없다면, 국선변호인이 선임될 것입니다. 이 권리가 있음을 인지했습니까....? 맞나?"
그녀의 입에서 유창하게 미란다 원칙이 흘러나온다. 경찰도 아닌, 일개 고등학생인 그녀의 언밸런스한 발언에 다들 벙찐것인지 그녀를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지금 이 근처를 지나가는, 자신의 동급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갑작스러운 시선의 주목에 남자를 제압한 모습 그대로 어쩔줄 몰라하기 시작한다. 이럴때 쓰려고 배운 무술들이지만, 렇다고 해서 이렇개 주목받는 상황을 바란 것 까지는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그 자세 그대로 어쩔줄 몰라하던 찰나, 그녀의 귓가로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 엉?"
그 순간 그녀의 무게 중심이 엇나가고, 계속 발버둥 치던 남성이 풀려남과 동시에 그녀가 가볍게 쓰러지며 그대로 자세를 바로 잡았고, 남자는 뻐근한 팔을 연신 주무르며 예미를 바라보다가 두고보자! 같은 삼류대사를 내뱉고는 그대로 줄행랑을 쳐버렸다. 예미만 있다면 모르겠지만, 분명히 진혁의 통화내역 일부를 들었기에 하는 판단인 것이리라. 그렇게 어안이 벙벙해하던 순간,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예미였다.
"ㅈ, 잘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몸 하나 가눌 정도만....."
그렇게 더듬더듬 자신없게 말하는 것치고는 정말로 본격적인 움직임이었다. 부드럽고 유려하지만 힘있고 날카로운 그 동작은 그녀가 년 단위로 단련해왔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서둘러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해내기 위해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갔다.
눈이 핑핑 돌아간다. 아까 자기 소개 했을때 혀까지 깨문 덕분인지 그녀는 지금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버티고 있는 것인지 이내 신색을 겨우 가다듬으며 오렌지 빛 눈동자로 상대방을 직시하며 가볍게 미소를 머금어 보인다.
"혀를 깨물어 버렸어요. 실제로 밖에서 실전을 해보는건 꽤 오랫만이라가지고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 가볍게 몸을 풀어보인다. 군더더기 없는 행동과 더불어 확실히 불필요한 행동 자체가 없어보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이어지는 말들에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마침 돌아가는 길이기도 했고, 방향이 맞다면 같이 가자는 뜻일것이다.
"다친 곳은 없지. 다만 나같은 얘에게 헌팅이라니.... 다들 나이에 맞는 행동을 좀 했으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못알아먹을 것 같지만, 만약 출석 순을 키로 했다면 제법 뒷쪽에 위치했을것 같은 키에, 충분히 서양인의 피를 이어받은 그녀로서는 나이를 정확히 지칭하기는 좀 애매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살포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범죄도 그렇고 지진도 그렇고 뭔가 있는건지.... 왜 이렇게 자주 일어나는지 모르겠네."
진심으로 하는 말인 것인지 그녀는 전혀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렌지빛 시선에 담긴 감정은 분명히 진지함 그 자체, 아마 자기같은 인상의 여성보다는 반 아이들 같이 지금 나이대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오히려 더 인기가 많을 것이라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이는 그녀였다.
"그래도 뭐, 큰 지진은 아니니까, 별일은 없겠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조금은 불안한 듯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지구 멸망, 말이 지구 멸망이지, 실제로 일어난다면 어떠한 아비규환이 벌어질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상상하는 것 자체도 어처구니 없는게 사실이었고 말이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이어지는 말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딘가에 사는 히어로, 히로인씨가 구해줄지도 모르고 말이지."
이런걸 믿을 나이는 지났다 생각하면서도 만약 진짜 있다면 웃길거 같아서, 끝을 얼버부리는 건 비밀아닌 비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