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 걸릴 정도로 웃는 걸 보자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등을 두드려 주려 뻗은 손은 혼자 잘 해결하는 주원을 보곤 머쓱하게 책상 위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괜찮은지 주원을 살피던 사하는 조금 황당하다는 표정을 했다. 책상 위에 있던 손이 다시 움직인다. 목표로 하는 종착지는 주원의 머리.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줄 생각이었다.
"…응, 그랬구나. 기특해요."
손길이야 당연히 부드럽지만, 목소리엔 어딘가 어처구니 없다는 기색이 서려있다. 뽀로로 DVD. 심지어 전권. 너 정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걸 좋아하는 거니. 묻고 싶었지만 영화를 너무 열심히 보길래 말았다. 응응, 그래. 네가 좋으면 됐지. 뭐가 더 중요하겠어. 슬퍼서 울기 전에 웃다가 울 것 같은 주원을 보며 마주 웃었다. 비록 웃기기만 한 영화는 아니어도,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추천한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화면 전환이라니. 운명의 신은 매정하기도 하시지. 포도맛 젤리를 입 안에서 굴리던 사하가 속으로 탄식했다. 이제 웃음 구간은 끝났다. 똑같이 웃긴 장면이 나와도 저 코미디언의 사연을 알게 된 순간 아까처럼은 웃을 수 없겠지. 아니나 다를까, 주원은 신 나게 웃던 전과는 영 다른 반응이다. 장면들은 흘러가게 둔 채로 주원을 보던 사하가 주원을 부른다.
"주원아."
주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사하는 제 미간을 톡톡 친다. 어느새 옅게 인상까지 쓴 채로.
"너 그러다 주름 생긴다."
가볍게 분위기를 돌리려는 행동이었는지, 찌푸린 얼굴은 곧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벌써 그런 표정이면 어떻게 해. 조금만 있으면 울게 될 텐데.
원래... 기억력 나빠서 선관은 안 짜려고 했는데 찔러주시는 분이 계시면 응답해 드리는 게 정답 ㅇ<
>>330 사라 시트 다시 보다가 작년 같은 반 선관보다 맘에 드는 선관을 찾았어! 아랑이랑 사라랑 같은 제과점이 마음에 들어서 종종 얼굴 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있지~ 어느 빵이 맛있었어? 난 이게 좋았는데~" 라고 아랑이가 말 걸어서 친해지는 선관 어때? 제과점에서 마주치면 빵 추천 해주는 사이 :>
안녕! 나는 스피드민규주! 갱킹은 LOL에서 라인들의 중간 지역을 돌아다니는 포지션인 정글이 라인으로 공격을 오는 걸 의미한단다! 그러니까 사라가 아랑이한테 갱킹을 온다는 건 그냥 사라가 아랑이네 반으로 놀러온단 뜻이지! 그럼 스피드민규주는 그냥 민규주가 되도록 할게! 이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더니, 결과는 K.O였다. 민규의 공을 뺏으려 시도했으나 그는 빈틈이 없었다. 결국 눈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네트가 일렁이는 것을 보며 동시에 다리에 힘이 울렁이며 빠져나갔다. 하. 얼빠진 얼굴로 웃음 소리만 내며 그 자리에 털썩 누워 바닥에 대자로 널부러졌다.
"덥다."
그런 말을 지껄이며 전혀 다른 두 색이 섞여 들어가고 있는 저만치의 하늘을 응시했다. 이번엔 정말이지 나의 완패다. 한치의 의심도 없는 사실이었다. 너울거리는 노을이 눈부셨다. 진작 하늘 좀 보고 살 걸 그랬나 싶다. 그러고보니 저 녀석은 종종 하늘을 올려다보곤 하던가. 나에겐 없는 것이다. 이마의 땀이 바닥으로 주륵 흘러 내렸다.
"어깨에 힘이 안 들어가, 형."
고개를 돌려 민규를 잠시 바라보다 피실 웃으며 힘없이 너부적 거리는 팔을 민규에게로 뻗었다. 어떤 결과든 승패를 번복하진 않는다. 우리들의 규칙아닌 규칙이었다. 그래, 너 잘났다 임마. 편의점은 그리 멀지 않았고, 곧 배시계가 울릴 참이겠다. 또 제일 비싼 걸 고른다고 해놓곤 하드를 물고 장난을 치며 집에 터덜터덜 돌아갈 모습이 그려진다. 언제 그려도 질리지 않는 장면이다. 그것을, 그것들을 나는 포기하지 못한다.
이현주 잘자고 좋은 꿈 꾸세요 ^▽^! 첫일상으로 눈부신 청춘물 필름 찍어버렸다 여한이 없다 그런데 저도 내일 일찍 기상해야 해서 다음 지구 차례의 답레가 막레가 된다면 그 전에 먼저 뻗고 다음날 오전에 올라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민규주 ㅠ▽ㅠ! 양해 부탁드려요.. 그런데 너무 즐거운 시간이습니다..쿨쩍..T▽T
공을 집어서 대충 제자리에 던져넣었다. 그러게, 덥네. 혼잣말처럼 대답 아닌 대답을 했다. 셔츠 목덜미 부분을 잡고 바람이 통하도록 흔들었다. 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마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을이 빨갛게 지고 있었다. 웬일로 저 녀석이 하늘같은걸 보고 그런대. 태양과 눈이 마주쳐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 땅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게 누가 무리하래."
손을 뻗어 지구를 일으켜세웠다. 무겁기는. 작게 투덜댔다. 그래도 벤치에 가방을 챙기러 갔을 때는, 지구 몫까지 건네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런 게 다 형의 역할 아니겠어, 하며 생색내는 것을 잊지 않았지만.
농구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편의점이 있었다. 아마 하드 물고 집 가다가,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다 끝마친 다음에야 아, 피씨방 못 갔네, 하고 깨달을 것이다. 다음에 가면 되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쓰러지듯 잠에 들겠지. 피씨방은 아주 추운 겨울에나 갈 수 있으려나.
"요즘 왜, 인터넷에 보이던.. 거꾸로 수박바? 그거 맛있어 보이던데."
그게 요즘 제일 비싼 거 아니냐, 그런데 그거 편의점에 팔려나... 헛소리를 하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결국은 메로나나 사서 입에 물겠지만. 벚꽃이 지기까지는 아직 멀었다.
영화에 빨려들어갈 듯 몰입하는 주원. 상체는 점점 앞으로 내밀고 고개는 영화를 바라보는게 꼭 만화영화에 집중한 어린아이 같다. 아니, 그 자체라고 해야겠지. 사하가 주원의 머리를 쓰다듬자 쓰다듬는 방향대로 머리가 움직인다.
"누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이상하게 졸려. 편안해져서 그런가?"
주원은 잠시 눈을 감고 두 입꼬리를 당겨 편안한 미소를 짓는다.
다시 영화에 집중하는 주원. 코메디언은 다시 병원을 방문하고, 그 어떤 대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저 열심히 설명하는 의사와, 진찰실의 의자에 앉아 묵묵히 이야기를 듣는 코메디언과, 옆에 서서 이야기를 듣는 단장이 있을 뿐. 카메라는 점점 멀어지며 슬픈 음악이 흐른다. 단장은 카메라가 멀어지는 와중에 말 없이 그 진찰실에서 나온다.
장면은 바뀌고, 이윽고 '위대한 웃음'의 날이 되었다. 다시 무대 위로 선 코메디언. 지금까지 보였던 긴장도, 과한 건강함도 없이 그저 힘 없이 축 쳐지고 늘어진 모습. 분장을 지운 뒤엔 누가 보더라도 명백히 병자의 모습이었지만, 흰 분과 새빨간 연지곤지, 입술로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코메디언의 개그는 조금 바뀌어 자기보다 체급이 거대한 상대를 상대하다 쓰러지는 것이 아닌 "이제 됐어. 됐다고. 하아." 하고 퉁명스레 말하더니 스스로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쓰러진다. 그리고 알 수 없다는 듯 관객을 향해 어깨를 으쓱 하는 거대한 상대. 그 모습에 관객석은 웃음으로 가득차고 이어지는 냉소적인 슬랩스틱에 관객들은 지금까지 참아온 웃음을 터트리듯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허나 배경으로 깔리는 슬픈 음악 덕에 주원을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그저 심각한 표정으로 영화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어 이전과 비슷한 바나나껍질 씬이 이어진다. 코메디언은 과장된 발걸음으로 길을 걷다 눈 앞의 바나나껍질을 허리를 숙여 바라보곤 그것을 우아하게 피해간다. 그리고 몸을 돌려 바나나껍질을 보곤 ["누가 날 단단히 바보취급 하는군!"] 하고 그 바나나껍질을 향해 말한다. 그러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바나나 껍질.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리고 코메디언은 머리 위에 뭔가 떨어진 감각에 그것을 주워들곤 ["뭐라?!"] 하고 소리친다. 그 사이 바닥에서 손이 나와 코메디언이 보지 못하는 사이 그의 발 앞에 바나나껍질을 놓고 사라진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바나나껍질로 넘어질리가 없지. 바보같긴!"]
과장된 자신감으로 말한 코메디언은 한 발 내딛자 마자 그 방금 깔린 바나나껍질을 밟고 180도 넘어진다. 그리곤 힘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난, 노란색이, 싫어."]
그것은 이전의 노란색 페인트를 뒤집어 쓴 것과 이어지는, 꽤나 시간차가 있는 연출성 개그였다. 그 대사를 끝으로 코메디언은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는다. 관객들은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주원도 환희에 가득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물개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레와 같은 박수가 이어지지만, 그는 일어서지 않는다. 박수는 잦아들고 모두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여전히 쓰러진채인 코메디언은 힘겹게 오른손을 들어 엄지손가락을 펴보인다. 그것을 보고 안심한 관객들은 다시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무대 뒤에서 급하게 단장이 나오고, 단장은 커튼을 닫으라는 듯 손짓한다. 황급히 커튼이 닫히고, 박수와 환호 넘치는 커튼 뒤로 쓰러진 코메디언과 단장의 대화가 이어진다.
["도대체 왜.... 자네에게 개그가 뭐길래...."]
["전부....일세.... 누군가가, 웃어주는, 것 만으로도...."]
점점 코메디언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눈빛은 몽롱해져간다.
["정신 차리게! 의사를 부를테니!"]
단장은 서둘러 의사를 부르려 하나 코메디언은 그의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나... 그래도... 마지막엔... 꽤... 웃기지... 않... 았..."]
코메디언은 대사를 끝마치지 못하고 그대로 단장의 손을 잡던 손을 떨어트린다. 그 때 극의 처음 웃기지 않았던 코메디언의 OST가 흐르더니 장면은 어느 묘지의 묘비를 혼자 마주한 단장으로 바뀐다.
["관객들이 다 자네가 어딨냐고 난리일세. 그러길래, 그냥, 더 좋은 극단으로 떠났다고 했지. 웃기지 않나? 내 극단보다 더 좋은 극단이 어디 있다고!"]
단장은 평소와 같은 말투로 묘비를 향해 말하고 있다.
["뭐.... 인정하지. 마지막의 자네는, 꽤 웃겼어. 그러길래 말하지 않았나. 조금만 힘을 빼라고. 마지막엔 너무 힘을 뺀게 문제였지만.... 커흠! 미안하네."]
선을 넘는듯 마는듯한 말을 건네며 혼자 실소를 터트리는 단장.
["언젠가 그 곳의 자네의 공연을 보러 갈테니 그 때까지 내가 알려준 웃음의 기술을 잘 갈고 닦고 있게나. ...오랜 친구."]
단장은 그렇게 묘비에 말을 남기고 그 자리에서 떠난다. 아직 묘비를 비추고 있는 카메라. 그 묘비엔
[마지막까지 사람들에게 웃음을 나눠주었던 진정한 코메디언] 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렇게 카메라는 멀어지고, 홀로 묘지에서 쓸쓸히 떠나는 단장의 등을 비춘다. 그리고 화면은 암전되며 THE END 라는 글씨로 영화의 끝을 알렸다.
지금까지 주원이 어떤 얼굴로 영화를 보고 있었는진,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눈을 질끈 감은 주원은 안경을 벗고 옆의 책상에 조심히 올려놓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곤 아이같이 울음을 터트렸다...
"어째, 서어.. 큽, 그렇게, 까지.. 크흑, 으극.. 으으윽.."
주원은 의문과 슬픔을 오가며 제대로 된 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왜, 어, 크흐읍, 어째서.. 죽, 은거야? 왜 살려고.. 하지 않고.. 으아아아아아아앙!"
두 팔로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번갈아가며 닦으며 앞을 보지도 못하고 그저 아이같이 눈물을 터트리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