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도 논의할 것은 다 되지 않았을까 싶어. 굳이 더 정한다면 두 캐릭터의 관계 같은 것으로 조금이 아닐까? 일단 나이가 같다면 같은 반이었기에 친하게 지냈었다로 갈 수도 잇겠지만, 나이가 다른만큼 친하게 지냈을만한 이유가 뭐가 있을까 싶거든. 혹시 혜준주는 떠오르거나 생각나는 것이 있을지 먼저 물어도 될까?
소라는 육상부 활동을 해서 달리기를 잘한다기보다는 저지먼트 활동을 위해 체력을 기르면서 잘하게 된 애다보니 아마 육상부 활동은 하지 않았을 것 같아서 그건 조금 애매할 것 같아. 그냥 가볍게는 부모님 중 한 쪽이 친한 사이여서 어릴적부터 자연히 얼굴을 알고 놀다보니 친하게 지냈다 같은 것은 어떨까도 싶네.
예전에 인터넷으로 어떤 기사를 본 기억이 있는데 아프리카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한국의 여름을 덥다고 혀를 내두르는 것이었다. 그때가 몇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햇빛은 그때보다 더 강렬하게 나를 내리쬐고 있다. 진짜 덥다, 라고 생각하면서 옷을 펄럭이던 나는 이런 내 자신이 처량해져서 귀의 이어셋을 톡톡 두드렸다.
- 왜? " 너무 더워서 그런데 능력 사용하면 안됩니까? " - 그런 시답잖은 곳에는 사용하면 안된다고 몇번이고 말했잖아? " 이런 더위는 시답잖은게 아닌 것 같은ㄷ.. " - 쓸데없는 이야기할꺼면 끊는다.
참 매정하다 매정해. 사람이 밖에서 익어가는데 말이야. 예전 같았으면 내 주변의 공간만 시원하게 해서 이런 더운 여름날 정도는 쉽사리 버텨냈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연구소의 연구에 동참하면서 나는 내 능력 사용에 제한을 걸려버렸고 지금은 간신히 레벨 2 정도의 출력만 낼 수 있었다. 이 정도 출력으로는 가만히 있을때 내 주변 공간을 아주 약간 시원하게 하는 것말고는 할 수가 없었기에 오랜만의 여름에 더위에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하, 얼른 집에 들어가서 에어컨이라도 쐬야지. 다행인건 연구에 참여하면서 돈은 두둑히 받고 있다는 것일까.
' 우르르릉 '
그렇게 걷고 있던 내 귓가에 작게 천둥소리 비슷한 것이 들렸다. 이렇게 맑은데 천둥소리라니 소나기라도 내릴 것인가 싶어서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구름 한 점 없이 강렬한 햇빛만이 날 반기고 있었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피하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왔다갔다할때는 공사장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보았을때는 이미 한쪽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너지는 부분은 정말로 공교롭게도 내가 지나가고 있는 길거리의 바로 옆에 위치한 곳이었다.
" 맨날! 나만 이래! "
지금까지 단련한 반사신경은 다행히 내가 잔해에 깔리기 직전에 나를 위기에서 구해주었지만 무너지면서 오는 충격파와 굉음, 그리고 엄청난 먼지구름은 막아주지 못했다. 거기에 굴러온 돌조각이 내 얼굴을 몇번이고 스쳐지나갔고 그 자리에 따끔한 고통이 느껴졌다.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번에도 이런 식인거냐고, 라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했지만 힘이 풀렸는지 쉽지 않았다.
소라가 세우는 계획은 언제나 완벽했다. 지금만 해도 더운 여름인만큼 아이스크림을 산 후, 집으로 돌아가 냉동실에 넣어두고 오래오래 먹자는 계획을 세웠지만 언제나 예상 외의 사태는 그녀의 계획을 세웠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뭔가 무너지는 소리에 그녀는 마트로 가려는 발걸음을 멈추고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주머니에 넣어둔 저지먼트 완장을 오른팔에 찬 후 모여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호루라기를 삑삑 불었다.
"비켜주세요! 비켜주세요! 저지먼트입니다!"
뭔가 큰 것이 무너지기라도 했는지 흙먼지가 아직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뭔가 사태가 생각보다 크게 일어난 것 같아 소라는 핸드폰을 꺼내 부부장에게 전화했다. 응. 여기 00길인데 공사하던 건물이 무너진 것 같아. 다친 이가 있는지 먼저 체크할테니까 부원들 좀 보내줘. 짧고 간결하게 용건을 이야기하며 우선 상황을 파악하려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들어온 이가 있었다.
"......"
안 그래도 꾹 닫힌 입이 더욱 꾹 닫혔다. 푸석한 느낌의 하얀빛이 군데군데 섞여있는 검은색 머리의 사낼르 바라보며 그녀는 일부러 발에 힘을 주며 앞으로 걸어갔다.
"참 신기해. 왜 항상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 곳마다 꼭 있는걸까? 아니나다를까 오늘도 이렇게 있는 이유가 대체 뭐야? 아무튼 왜 그러고 있어? 다쳤어?"
사람들은 무언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때 그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느냐에 따라서 운이 좋다, 나쁘다 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어느날은 운이 좋을때도 있고 운이 나쁠때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 운이 좋다라는 말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어릴적부터 나는 온갖 사건 사고는 다 당했고 남은 다 피해갈법한 일들도 꼭 한번씩 겪어가곤 했다. 독감이 유행하면 무조건 걸리고 무슨 게임을 하던 내가 원하는 것은 절대 나오지 않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나쁜 사람을 꼽으라면 그것은 내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불운은 지금도 여지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 에취! "
주변의 가득한 먼지 때문인지 재채기가 나왔고 다리에 힘이 점점 돌아와 몸을 일으키고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무너진 건물 옆에 있던건 나 뿐이었는지 다들 말끔해보였다. 그래 다친 사람이 없는 것은 다행이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척 재빠르게 현장을 벗어나려고 했다. 물론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었으니까 병원에 가서 깽판이라도 치면서 보상을 받아야하는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 이상으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삑삑! '
하지만 내 행동은 너무 늦어버렸는지 이미 익숙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은 그녀도 이 자리에 왔다는 것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얼굴이 다가왔다. 전체적으로 힘이 딱 들어간 몸짓과 분위기. 학원도시 저지먼트의 부장, 최소라. 오자마자 하는 말은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익숙해질테로 익숙해진터라 별 감흥없이 대답했다.
" 내가 있는 곳에서 이런 사건이 터지는거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딱히 다친 곳은 없어. "
어릴때부터 이어온 불운은 역시나 내 주변 사람들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 부모님이 친하게 지내셨기에 어릴때부터 얼굴을 맞대고 자라온 소라는 당연하게도 내 불운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알면서 물어보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것인지.
" 이 더운 여름 날에도 열심이네. "
아무래도 넘어질때 팔을 살짝 다쳤는지 쓰라린 감각이 올라왔다. 바닥에 쓸린 것이겠지. 하지만 이런 상처들은 내 몸에는 항상 있던 것이기에 대수롭지도 않은 것이다. 그냥 집가서 약바르고 뭐라도 붙이면 되는거니까. 그래서 나는 몸에 묻은 먼지들을 조금씩 털어내면서 말을 이었다.
" 그래서 잘 지냈어? "
으레 물어보는 안부차원의 인사이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잘 보지않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요 몇년간 그 정도의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그 하루이틀을 설명해야만 하는 내 입장도 좀 되어보지 않을래? 늘상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네가 있으니까 대체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막막한 것은 나란 말이야."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말에 소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눈동자만 돌려서 그의 모습을 살폈다. 아무리 봐도 이 사건인지 사고인지 모를 일에 흽쓸린 것 같았기에 그녀는 아무런 말 없이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얼굴, 몸, 옷, 다리, 팔.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는 빤히 그를 바라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저지먼트는 더워도 추워도 쉬지 않는 절대무결의 치안조직이니까. 못 지내진 않아. 그쪽처럼 흽쓸리거나 하는 일은 잘 없으니까. 아무튼 그것보다 정말 안 다친거 맞아?"
영 미덥지 못하다는 눈빛과 표정을 보이며 그녀는 가만히 그에게 한걸음 더 다가갔다. 그리고 제대로 보여보라는 듯이 무언의 눈빛을 주면서 고개를 가만히 저었다.
"레벨5나 되었으면서 왜 휘말리는거야. 내가 아는 레벨5의 인식이 너만 보면 변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야. 보통 그쯤 되면 이런 사고에 안 휘말리고 오히려 멋지게 대처하고 갈 길 가고 그러지 않아? 아니면 내가 너무 오버해서 생각하는거야?"
확실히 사건이 일어나는 곳마다 내가 있으니 그녀 입장에서도 보고하기가 껄끄럽기는 했을테다. 거의 사건 현장마다 있는게 연쇄테러범 같은 이미지니까. 하지만 현장에 있는 CCTV 같은 것들로 항상 내 무죄는 입증되고 있다. 그래도 의심의 눈초리를 피해가기에는 그 빈도수가 너무 잦은게 문제지만. 아무래도 이번에도 안티 스킬들의 방문을 받을 것 같았지만 그런건 나중의 일이니까 아무래도 좋고 우선 지금 이 현장을 벗어나고 싶었다.
" 나처럼 계속 휩쓸리지 않는게 정상적인게 아닐까. 그래도 잘지낸다니 다행이네. "
항상 마주칠때마다 건네는 안부인사는 비슷했고 돌아오는 대답도 얼추 비슷했다. 그래도 옛날에는 정말 친하게 지냈던 것 같은데. 레벨 5 판정을 받고서부턴 이런 서먹서먹한 관계가 지속 되고 있다. 물론 그녀의 감정을 나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라서 내 쪽에서도 최대한 마주치지 않게 거리를 두고 있었고 그것이 길어지면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겠지. 그녀는 미덥지 못하다는 눈빛과 함께 성큼 걸어왔고 나에게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
" 레벨 5 는 무적이 아니라구? 물론 다른 애들은 멋있게 처리하긴 하지만 나는 그럴 정도는 아닌가봐. "
당연히 거짓말이다. 레벨 5 의 능력이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냥 무너지는 건물 자체를 격리시킨다면 나에게 어떤 피해도 오지 않았을테니까. 하지만 그건 내 능력이 온전하게 살아있을 경우고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내가 진행하는 실험을 굳이 말해주고 싶지는 않아서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 땡큐. "
간단한 감사인사와 함께 손수건으로 먼지를 털어낸다. 그래도 남의 것이니까 대충 거지 같은 꼴만 면하자는 생각으로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 대충 닦았다. 하지만 팔에서 나온 피가 손수건을 적셨고 나는 그것은 눈치채지 못한채 그녀에게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적어도 이 정도 일은 얼마든지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좋아. 나도 휘말린 민간인을 추궁할 정도로 시간이 넉넉한 사람은 아니니까."
더 말해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지금은 다른 일이 급한 것인지 소라는 그 정도로만 말하겠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톡 쏘는 느낌이었다. 안 기간이 많다는 것은 당연히 그의 능력이 뭔지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소라가 아는 한, 그의 능력을 사용하면 설사 테러 사건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그는 휘말리지 않고 무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지금 이건 대체 무엇인지. 영 미덥지 않다는 듯이 찌릿 바라보는 눈빛이 금새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깐. 누가 가라고 했어?"
손수건을 돌려받은 그녀는 그 손수건을 바라보다 붉은색 얼룩이 진 부분을 가만히 펼쳐서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숨을 작게 내쉰 후에 그를 올려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나가 말했지? 거짓말하면 화낸다고. 이렇게 피가 나는데 다친 곳이 없다는게 말이 돼? 저지먼트로서 휘말리고 다친 민간인을 그냥 보낼 순 없어. 조금만 기다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서 구급차라던가 올테니까 그거 타고 검사 받아. ...말해두는데 다친 사람에게 선택지는 없어."
절대로 그냥은 못 보낸다는 듯이 그녀는 물병 하나를 가방에서 꺼냈고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쏘아붙이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딱히 네가 어떻게 되건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이것도 저지먼트 업무의 일환이야. 그러니까 치료받아. 그냥 보내기 찝찝하단 말이야."
오래 알고 지낸만큼 그녀는 분명 내가 하는 말이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을테지만 그걸 꾸역꾸역 묻는다고 해도 나는 대답해줄 생각은 없었다. 다행히도 더 캐물을 생각은 없어보였지만 그 눈빛만큼은 나중에라도 꼭 알아내고 말테야, 라는 느낌을 준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이번엔 집으로 보내줄 생각인지 딱히 붙잡지는 않아서 나는 그대로 그녀를 지나쳐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그녀의 말에 나는 다시금 걸음을 우뚝 멈출 수 밖에는 없었다.
" 이렇게 다치는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그냥 집가서 약 바르면 되는데 .. "
학원도시의 기술력은 도시 바깥보다 몇십년은 더 빠르다고 할만큼 우월했기에 이런 상처는 병원에 가면 금방 낫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자주 찾아가서 내 얼굴을 다 외워버린 의사와 간호사들을 보는 것도 조금 껄끄러웠고 애초에 이 장소를 벗어나고 싶은게 내 마음이었지만 아무래도 소라는 그럴 마음이 추호도 없어보였다.
" 그 물병 여는거 협박용은 아니지? "
소라의 능력은 하이드로 핸드. 물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능력이었기에 항상 물병을 두개씩 들고다니곤 했다. 물이 없는 곳에서는 응용하기 힘든 능력이니까 저지먼트라면 어디서든 대응할 수 있어야한다는 생각에 들고 다니는 것이겠지. 그리고 그녀가 능력을 사용할때는 항상 물병의 뚜껑을 열곤 했기에 나는 흠칫하며 살짝 뒷걸음질 쳤다.
" 알았어, 얌전히 구급차에 앉아서 검사 맡을테니까 그 뚜껑은 다시 닫아두면 안될까..? "
지금의 나는 저 능력을 막을 방법은 없었기에 고분고분하게 그녀의 말을 따라야했다. 다른 레벨 5 들이 보면 재밌다면서 마구 웃었겠지만.
"그 하루이틀이라는 핑계로 내가 보내줄리가 없잖아? 저지먼트의 부장을 뭐라고 생각해? 이런 것이 싫으면 안 다치면 되잖아."
집 가서 약 바른다는 말에 괜히 더 심통이 났는지 괜히 화를 내면서 그녀는 작게 흥 소리를 내면서 시선을 살며시 다른 곳으로 돌렸다. 하지만 역시 피가 묻어나왔다는 것이 조금 신경 쓰였는지 그녀는 눈을 감고 괜히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 눈을 홱 뜨면서 자신의 손수건에 물병 속 물을 살며시 묻혔다. 그리고 그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간 후 바로 앞에서 멈췄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내가 널 잡거나 할 방도가 없잖아. 적어도 맞추거나 하진 않을거야. 앞을 못 가게 가로막을 뿐이야. 아무튼 이거로 묶어서 지혈이라도 해. 아프면 아프다고 하고, 다쳤으면 다쳤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는데 뭘 그렇게 숨기고 그러나 몰라. 저지먼트에게 민간인이 의지하거나 도움받는건 당연한건데."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며 물 묻은 손수건을 홱 앞으로 내밀면서 그녀는 아무런 말 없이 뚜껑을 다시 닫았다. 물론 도망치려고 하면 다시 뚜껑을 열면 그만인 일이었으니 소라에게 있어 손해는 없었다.
"못 묶어? 못 묶으면 말해. 특별히 묶어줄테니까. 일단 환자는 너밖에 없는 것 같고 다른 애들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테니까. 그래도 구급차는 금방 오겠네."
안다치는게 제 맘대로 되는게 아니잖아요. 라는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씨알도 안먹히리라는걸 잘 알고 있던 나는 작게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내가 말을 잘못했는지 더 화가 난 것 같은 그녀를 보고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계속해서 할뿐이었다. 하지만 소라는 곧 손수건에 물을 묻혀서 다가왔고 나에게 건네주며 얘기했다.
" 내 입장에선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까. 어릴때부터 이 정도 다치는건 자주 있던 일이잖아. 나한테는 바늘에 실수로 찔린 정도에 불과한 일이야. "
어릴때야 이 정도 사건이면 너무 놀라기도 했지만 19년이라는 세월을 이렇게 보내면 이 정도 상처에는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적어도 나를 놀래키려면 어디 부러지는 정도의 부상은 입어야지. 하지만 그녀의 말에도 틀린 부분은 하나도 없었기에 반박하는 내 말은 조금씩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근데 물병을 열었던건 진짜 나를 막으려고 했던거네.
" 다행히도 나말곤 다친 사람이 없긴하네. "
보통은 주변 사람도 내 불운에 같이 휘말리는게 정상이겠지만 나는 주변 사람들의 불운을 흡수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지 나 말고는 피해를 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런 특이한 이유도 내가 연구대상으로 뽑힌 이유겠지. 나로써도 나 때문에 다친 사람이 없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인 사실이다.
" ... 미안한데 좀 묶어줄래? "
피가 조금 많이 나는 것 같아서 그녀의 말대로 묶어두기라도 하려고 했지만 팔이라서 한손으로 손수건을 묶기에는 영 불편했다. 결국 나는 받은 손수건을 다시 그녀에게 건네면서 부탁했다.
"그것을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들 입장은 또 그게 아니거든? 지금 그 말, 아주머니와 아저씨에게 그대로 말 할 수 있어?"
그가 그렇듯이 소라 역시 쉽게는 물러설 수 없다는 듯이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말을 마친 직후 그녀는 또 다시 주변을 가만히 살펴봤고 무너진 파편을 바라봤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너질 리는 없을테고, 만일의 경우에는 조사를 해야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저지먼트에 소속된 학생들이 오면 결정할 일이었으니 일단 혜준에게 집중하기로 하며 그녀는 묶어달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쓰릴 수도 있으니 참아."
피가 나오는 곳에 물이 닿게 될테니 안 쓰릴 순 없겠지만 그래도 깨끗한 물로 지혈을 해야 차후 감염문제를 막을 수 있었기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의 팔에 물이 묻은 수건을 적당한 힘으로 묶었다. 그리고 손을 가볍게 털어내면서 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빨아서 저지먼트 부실에 놔둬. 그럼 내가 알아서 가져갈테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던지."
저지먼트와 그다지 엮이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기에 소라는 그렇게 통보하듯 이야기를 하며 길가에 떨어진 콘크리트 조각을 바라봤다. 역시 좀 더 세밀하게 보지 않으면 알 수 없겠다고 생각을 하며 그녀는 괜히 혀를 찼다. 이런 것도 팍팍 알아내는 것이 저지먼트 부장으로서 좀 더 완전무결한 일일텐데. 그리 생각하며 그녀는 괜히 땅을 발로 차면서 숨을 내쉬었다.
"적당히 쉬고 있어. 구급차 오면 바로 타고. 나는 나대로 잠깐 조사해볼테니까."
/슬슬 자야 할 시간이 다 되어가니 우선 조사를 한다는 명분 하에 소라를 퇴장시켜볼게! 막레를 줘도 되고 더 잇고 싶다면 킵이 되겠지만 이어도 괜찮아! 쓰면서 소라가 너무 쌀쌀맞은 것 같아서 괜히 미안해. ㅠㅠㅠㅠㅠㅠ
부모님까지 물고 늘어지면 할 말이 없긴하지. 물론 우리 부모님도 내가 이렇게 다치는 것에 대해서 이젠 면역이 어느정도 생기신건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자식이 다쳐오는데 마음이 아프지 않을리가 없다. 정곡을 찌르는 그녀의 말에 나는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아무 말 없이 그녀가 손수건을 묶는 것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상처에 직접적으로 닿아서 쓰라리긴 했지만 소라의 말처럼 이렇게라도 해놓는게 더 좋을테니까.
" 나중에 연락해서 직접 줄께. "
아무리 저지먼트랑 마주치기 싫다고해도 이런걸 남에게 부탁할 정도로 몰상식하진 않았다. 나를 위해서 손수건까지 줬는데 이걸 남을 통해서 전달해주면 별로 좋아보이지는 않을테니까. 그녀도 나랑 마주치는게 별로 달갑지는 않을테지만 이런건 직접 전해주는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녀가 직접적으로 싫다고 말하지 않는 이상은 내가 직접 줄 생각이었다.
" 추가로 무너질지도 모르니까 조심하고. "
이렇게 밖에 얘기할 수 없는게 조금은 착잡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분명 이렇지 않았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물론 누구의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로 돌릴 수 있다면 나는 무조건 돌아갈 의향이 있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지고 주변으로 저지먼트 완장을 찬 학생들이 속속들이 모여지고 있었다. 나는 눈인사를 건네고선 어느새 다가온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생각보다 내 팔 상태가 심각했는지 팔의 손수건을 풀고서 날 바라보는 구급대원의 표정이 조금 심각했지만 나는 손수건을 받아서 주머니에 쑤셔넣으며 그저 고개만 가로저을뿐이었다.
// 막레!! 수고했다!! 쌀쌀맞기는 하지만 정말 싫어서 그런건 아닌 것 같으니까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걸! 밤이 늦었으니 잘자구, 내일보자!
사실 레벨5가 불량배들에게 쫓기는 그림이 전혀 떠오르지 않아서 신선하다고 생각해. 보통은 건드리려고 하지도 않을텐데 말이야. 다만 소라가 그 모습을 보면 대체 뭐하는 거냐고 한 소리 하는 그림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시선회피) 사실 소라의 입장에서 보면 혜준이가 그렇게 능력을 쓰지 않고 휘말리기만 하는 것이 자신이 그토록 바라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어쩌면 불쾌하게 보일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고..
혜준이 본인도 엄청 답답하다고 생각할테니까. 소라는 상황을 전혀 모르니까 불쾌하게 생각할수도 있겠네. 사실 소문이라는게 퍼지니까 레벨 5 가 지금은 쪽도 못쓴다라는게 암암리에 퍼져서 건드릴 수 있다고 생각해. 마치 원작의 일방통행이 약해졌다고 소문이 퍼진 것처럼! 거기다가 소라가 잔소리해주는 상황도 나는 좋은걸~
원작의 일방통행 씨는 약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무쌍을 찍는데 그걸 또 덤비는 애들이 있었지. 아마? 어쩌면 혜준이도 비슷한 상황일지도 모르겠네. 사실 지금까지의 인상만 보자면 소라 입장에선 지금의 혜준이는 아무래도 좋게 보기는 조금 힘들 것 같아. 하지만 그게 또 어떻게 변화할지는 모르는 거니까. 잔소리라니. ㅋㅋㅋㅋㅋㅋㅋ 그런거 좋아하면 안돼!
얼마전에 공사장이 무너지는 사고를 겪고서 3일이 지났다. 다행히 몸에 큰 부상은 없었지만 팔의 상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컸다. 지금도 조금씩 욱신거리는 감각이 남아있었고 힘을 주면 고통이 살짝 있었기에 무리는 하지 말라는 주의를 들은 상태였다. 여름이라 상처가 덧날수도 있어서 하루에 한번씩 병원에 와서 소독을 받으라는 의사의 말에 나는 오늘도 병원으로 가기 위한 채비를 마쳤다. 나간 김에 손수건도 돌려줄 생각이라 핸드폰으로 소라의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손수건 돌려줄께. 어디로 갈까?]
아무래도 저지먼트니까 나보단 바쁘겠다는 생각에 그녀가 편한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신발까지 말끔하게 신고서 밖으로 나가자 나를 맞이하는 것은 강렬한 햇빛이었고 오늘도 엄청나게 더울 것 같다는 생각에 작은 한숨과 함께 발걸음을 내딛었다. 소라가 되는 시간을 보고 손수건을 먼저 돌려줄지 병원으로 향할지 결정해야했기에 나는 핸드폰 화면을 주기적으로 확인하면서 그늘만 찾아서 열심히 걷고 있었다. 여름에는 골목길을 애용하곤 했는데 정오가 아니면 항상 그늘이 져있었기에 햇빛을 피하기엔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골목길로 들어간 내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안녕, 윤혜준씨? "
낮으면서도 갈라지는 듣기 싫은 목소리. 이 근방에서는 저 목소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악질인 남자. 예전에 내가 이곳을 지나다니다가 누군가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서 혼내줬던 기억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코빼기도 안비치다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야 나타나는 것을 보면 무언가 들은게 있겠지. 사실 학원도시의 소문은 빨라서 나에 대한 소문도 분명히 돌고 있을 것이다. 레벨 5가 지금은 왜인지 능력 사용을 못한다고.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는 연구소의 허가를 받고 능력을 쓸 수 있으니까 나는 급하게 이어셋을 두드렸지만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대답이 없었다.
' 이런 급한 상황에 아무도 없다고?! ' " 그, 우리 서로 보고싶지 않은 사이인것 같은데... 먼저 지나가도 괜찮을까? "
웃는 낯에 침 못뱉는다고 나도 웃으면서 그에게 말을 걸면서 아무렇지도 않은척 지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는지 내가 지나가자마자 내 앞으로 몇명의 사람들이 더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작정하고 온 것 같아서 등 뒤로 흐르는 식은 땀을 느끼면서 결국 육탄 돌격을 실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갑자기 뛰어서 사람들 사이로 뛰쳐나간 나는 그들이 쫓아오는 소리를 들으며 전력질주로 골목길을 주파하기 시작했다. 잡히면 정말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저지먼트 완장을 차고 순찰을 하는 와중 자신의 폰으로 들어온 문자에 소라는 그 이상의, 그 이하의 의미도 담지 않고 답변했다. 이후에 어떻게 응답이 올진 알 수 없었으나 정말로 그렇게 해도 상관없었기에 그녀는 바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어차피 답변이 오면 진동이 올테니, 핸드폰을 그 이후에 꺼내도 될 문제였다.
바로 옆에 같이 순찰을 돌 후배를 하나 데리고 소라는 학교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치안 상태를 확인했다. 별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나 정말 간혹 문제를 일으키는 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그녀의 눈빛은 정말로 날카롭게 반짝이며 주변을 살폈다. 허나 멀지 않은 곳에서 곧 뭔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기에 자연히 소라와 후배의 발걸음은 그곳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골목길을 달리고 있는 혜준의 모습에 소라는 두 눈이 동그랗게 변해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뭐, 뭐야?! 갑자기?!"
그리고 보이는 것은 쫓는 것으로 보이는 남자들의 모습이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어 그녀는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또 무슨 일에 휘말린거야? 진짜."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소라는 후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옆으로 비켜있으라는 말을 하면서 호루라기를 삐익 불었다. 그리고 팔에 차고 있는 완장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야기했다.
"저지먼트입니다! 지금 당장 소란을 멈추세요!"
/저기서 어떻게 이어야할지 조금 고민을 했다만 역시 순찰밖에는 없을 것 같네. 소라가 혜준이가 위험한 것을 알고 뛰쳐나가는 초능력은 없을테니까.
저지먼트는 항상 순찰을 돌고 있으니까 아무나 나 좀 봐달라는 식으로 시끄럽게 하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달려서 이곳저곳 부딪혔지만 아파할 겨를은 없었다. 진짜 잡히면 큰일날지도 모르니까. 팔이라도 정상이면 저항이라도 해봤겠지만 지금은 팔도 아파서 그저 도망치는 것만 할 수 있었다. 이 더운 여름날 추격전이라니 이러다간 쫓기는 사람이나 쫓는 사람이나 둘 중 하나가 일사병으로 쓰러지기 전엔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불운은 이들을 만난 것으로 끝난 것인지 앞에서 저지먼트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 살았다! "
나도 모르게 터져나온 소리와 함께 저지먼트 앞에서 멈춰서서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내 뒤를 쫓아오던 남자들은 어느새 흩어졌는지 코빼기도 안보였고 안그래도 더운 날씨에 긴장감과 뜀박질이 합쳐져서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정말 평소에 운동을 해두지 않았다면 이미 잡혀서 끌려갔을지도 몰라. 헉헉, 하면서 날 구해준 저지먼트가 누구인지 확인한 나는 정말 익숙한 얼굴이 보이자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 ... 하하, 안녕. 손수건 돌려주러 왔어. "
분명 손수건을 돌려주러 보러 가기는 했어야했지만 여기서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아마도 다시 불운 속성이 작용해버린걸까. 거기다 날 보는 시선이 영 곱지는 않은 모양이라 살짝 눈치를 보면서 핸드폰을 찾기 위해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하지만 뛰다가 떨어져버린 것인지 주머니에 만져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히 떨어져서 박살이 났겠지 ... 피 같은 돈이 또 빠져나갈거란 생각에 마음이 아팠지만 우선 볼 일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였다. 뒷주머니에 넣어놓은 손수건을 꺼내서 소라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 덕분에 살았어. 저지먼트 순찰이 아니었으면 큰일날뻔했지 뭐야. "
레벨 5 가 저런 양아치들 때문에 전력질주를 해야한다는 것도 저들 입장에서도 웃기긴하겠다. 실험이 딱히 비밀은 아니긴 했지만 떠벌리는 것도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다. 거기에 내가 말해버리면 지금 내가 약한게 공인이 되어버리고 소문이 더 빠르게 퍼져버릴테니까. 사실 최대한 숨기려고 했지만 역시 숨길 수가 없는 것이라 골치 아프기는 했다. 그래도 잃어버린게 손수건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숨을 천천히 고르면서 벽에 몸을 기댔다.
호루라기를 삑삑 불자 다들 도망이라도 갔는지 남자들이 흩어지기 시작했고 소라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하면서 흩어진 남자들을 바라봤다. 어차피 저기서 쫓아봐야 이쪽이 조금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우선 그녀는 목표를 바꿔 혜준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쫓겼으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당연히 잘 알테니까. 물론 대답을 해줄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자신도 해야 할 일을 해야 했으니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살았다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저지먼트 순찰이 아니었으면 큰일날뻔 했다는 그 말에 소라의 표정이 살짝 찌푸러졌다. 지금 자신을 놀리는 것인지. 아니면 순수하게 그런 쪽으로 재능이 있는 것인지. 자연히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쌀쌀맞은 어투였다.
"레벨5가 할 말은 아니지 않아? 저지먼트 순찰에 보호를 받아야하는 입장이라니. 우릴 놀리는거야? 아니면 스스로를 방어하는 능력조차 쓰기 싫어진거야?"
우선 손수건을 확실하게 받으면서 그녀는 바로 옆에서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후배에게 눈길을 돌렸다. 잠깐 이야기를 하고 갈테니까 대기하고 있으라는 지시를 한 후, 소라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래서 이번엔 또 무슨 일인데? 그리고 방금 쫓아오던 이들은 누구야? 아는대로 설명해."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라고 요구를 한 후, 그녀는 입고 있는 상의 주머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냈다. 아무래도 진술 내용을 적으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누구는 방금 생과 사를 다퉜는데 태도가 너무 쌀쌀 맞은거 아니야? 입술을 살짝 삐죽이면서 생각했지만 코빼기도 먹히지 않을 생각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골목길 안쪽으로 쫓아가기엔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내쪽을 바라본 소라의 표정은 살짝 찡그려진 것이었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레벨 5 가 할 말은 아니긴 했다. 학원도시에도 몇명 없는 레벨 5, 그 중 한명이 나니까. 저지먼트의 도움 따윈 필요 없는 존재들이니까.
" 일하느라 바쁜 사람들한테 이런걸로 놀리는 취미는 없어. 능력을 쓰기엔 골목이 좁아서 애꿎은 사람들까지 피해가 갈까봐 그랬던거야. "
이것도 거짓말. 레벨 5가 그정도 조절도 못할리가 없다. 애당초 그런 실수는 레벨 2 정도의 능력자나 할 실수지 지금의 내가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변명을 꺼낼 수가 없었기에 저번처럼 애둘러서 넘어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소라의 옆에 서있는 후배를 보니까 약간 멍해보이던데 뭐에 놀라기라도한걸까. 그래도 소라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것을 보면 그녀가 저지먼트 내부에서 인망이 있단 것은 잘 알수가 있었다.
" 저 사람들은 이 근방에서 꽤나 유명한 불량배들이야. 알다시피 이쪽 골목길은 꽤나 복잡한데다가 저들 중에는 레벨 3 정도의 능력자도 있다고 알려져있어서 쉽사리 접근하기 힘들거든. 주동자 이름은 잘 모르지만 험악하게 생긴 외모에 낮고 찢어지는듯한 목소리가 특징이야. 그 사람이 레벨 3 능력자라고 알고 있어. 정신계열이라고 들었지만 자세한건 몰라. "
나는 이 근방에서 산지 꽤 되어서 그들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고 직접 본적도 몇번 있었기에 꽤나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었다. 안티스킬들도 위험해서 깊숙하게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 깊숙히 들어간다면 아까 그보다 더 위험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 내가 아는 것들을 다 설명해주자 살짝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긴장이 풀린 것과 동시에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의 추격전 때문일까. 시야가 살짝 흐릿해지려는 것을 바로잡았지만 몸이 비틀거리는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어서 벽에 기댄채로 넘어질뻔한 몸을 겨우 추슬렀다. 아, 이러면 또 병원 가라고 잔소리할텐데.
" 아무튼 타이밍 좋게 지나가서 다행이네. 도와줘서 고마워. "
불운이 강한 편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10%의 행운은 있는 편이라는 생각을 하는게 정말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극적으로 탈출할때가 몇번 있었고 지금도 그런 경우였다. 물론 아예 그런 일이 안일어나는게 속편하겠지만 아무래도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일테니까.
으음. 사실 첫 일상을 돌릴 때도 어느 정도 느낀 거지만, 지금 이것만 해도 소라가 거짓말 하지 말라고 톡 쏘아붙이면서 괜히 더 화를 내는 전개밖에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사실 이런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는데 처음에 내가 캐릭터를 잘못 짠 것일까. 미안해. 혜준주. 물론 혜준주가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목숨의 위협까지 일어나는데 레벨5가 연구에 협조해야한다고 저렇게 쫓겨다녀야하는 것도 막상 보니까 괴리감이 좀 크게 느껴지기도 하고... 뭔가 이런 느낌 상태에선 상황극을 계속 이어나가기가 조금 힘들 것 같아. 시작한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이 상황극을 끝내고 해산해도 괜찮을까?
혜준이도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해! 다만 내가 너무 상성이 안 맞는 캐릭터를 짰나봐. 뭔가 가면갈수록 점점 소라가 화를 내고 사이가 악화되는 상황만 되는 것 같아서 이대로 계속 돌리면 혜준주도 힘들고 나도 힘들 것 같아서. 응!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어딘가에서 보자. 짧았지만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