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주 이씨 가문에 입적될 때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중 하나는 위즌가모트의 소속이다. 마침 재판이 끝나고 본가로 내려온 차에 날 만날 수 있었는데, 내게 지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고모님은 애가 부담스러워하지 않느냐며 나를 뒤로 숨겼고, 나는 두 눈을 불안히 굴리다가 용기를 내어 그 사람을 마주했는데, 내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다름이 아니고 자신은 직계도 아니고 방계인지라 편히 삼촌이라 부르면 된다는 것까지는 용인할 수 있으나 업계에서만 통할 농담을 꺼냈는데, 네가 커서 위즌가모트에서 만날 일이 없길 바란다는 말이 문제였다. 나는 고모의 뒤에서 고운 한복 자락을 꽉 쥐며 몸을 바르르 떨었는데, 하필 나는 큰 죄를 저지르고 이미 형을 선고받고 온 날이었기 때문이다.
왼쪽 가슴팍에 은실로 W를 수놓은 사람들이 지하 10층 법정에 착석했다. 나는 폐쇄적인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은 처음 봤지만, 웅성거리는 소리가 참 싫었다. 그것이 그냥 시끄러워서가 아니라 어린 학생이 아니냐는 말이 나돌며 손가락질하는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한 번에 수십 개의 시선이 내리꽂히자 심장이 방망이질을 쳤기 때문이다. 여기서 난동을 부리면 이 수많은 사람이 내게 마법을 쓸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나는 이런 상황을 바라지도 않았고, 이렇게 될 거란 확신도 없었기에 몸을 벌벌 떨었다. 의장이 착석하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는데, 형식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12월 28일 징계 청문회입니다. 징계 대상자는─"
나의 이름, 주거지가 드러난다. 후부키라는 세글자가 귀를 때리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의장을 한번 보고는 눈을 질끈 감는다. 심문인, 그러니까 의장은 고모님이기 때문이다. 내가 앉지 않자 자리에 앉으라 호명할 때는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나는 당연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덜컥 다가온 현실의 공포 때문이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내 양옆을 지키던 마법사가 내 팔을 부축해 앞으로 성큼성큼 걸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을 내디뎠다. 한 발을 디딜 때마다 몸이 과일을 잔뜩 넣은 젤리처럼 흐물거렸다. 나는 읍읍 소리를 내며 반항했다. 하지만 의자에 털썩 앉고나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끝나버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건 꿈이다. 그래야만 했다. 어서 깨서 평소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고개를 숙이자 옆에 서있던 마법사가 부드럽게 목덜미를 잡아 세웠다. 덕분에 입에 문 재갈이 팽팽하게 입가를 당겼다. 재갈을 찬 이유는 내가 혀를 깨물려 했기 때문이다. 내가 위험한 짓을 하긴 했지만, 재갈을 물리고 옆에 마법사를 둘이나 끼워둘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정당한가 싶지만 어쩔 수 없다. 반항하면 제압당할게 뻔하다. 나는 도와달라는 심정으로 배심원으로 있는 마법사를 본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탈색된 것 같이 아주 옅은 갈색 머리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내 또래의 소년이었다. 나를 신비한 동물을 보듯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옆에 앉아있던 여인에게 누구인지 설명해달라는 듯 옷깃을 잡고 보챈다. 저 아이는 이씨 가문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이한서다. 그 옆에서 근엄하게 조용히 하라 타이르는 사람은 언젠가 한 번 본적이 있는 것 같은 얼굴이다. 머리가 희끗하며 나이 지긋한 노인은 험상궂은 표정에, 강렬한 붉은 색채가 일렁이는 한복을 입고 있다. 이제 기억났다. 이씨 가문의 전 가주인 이영찬이다. 붉은 눈동자로 노려보듯 나를 꿰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건지는 몰라도 이 불안감과 공포를 해소할 수는 없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입안의 혀로 재갈의 대를 훑었다. 이걸 밀어내야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을 보려 했지만 모두 정숙하라는 목소리에 나는 재갈을 꽉 무는 수밖에 없었다. 고모님이 나를 내려다보고는 엄숙하게 말했다.
"후부키 영지에서 섹튬셈프라, 크루시아투스 저주, 아바다 케다브라와 같은 공격 저주와 마법으로 후부키 가문의 당주 후부키 호타루를 포함하여 3명을 살해하였습니다. 이 죄는 매우 무겁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임을 시인하십니까."
나는 재갈을 물고 있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지만, 몸은 자유로웠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모님의 표정이 일그러졌는데, 긴 손가락으로 내 재갈을 가리키자 옆의 마법사가 드디어 발언의 자유를 주었다. 나는 입이 자유로워지고 고모님께서 재차 묻는 말에 답하기 위해 숨을 들이마셨다. 누구의 것도 아니었던 목소리로 나는 대답했던 것이다.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피고의 죄는 방종이자 무지임을 정녕 모르시겠습니까?"
나는 입을 딱 다물었다. 고모님의 검은 머리카락과 대비되는 붉은 눈동자가 분노에 이글거리기가 무섭게 언성이 높아지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나는 방종과 무지라는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고모님을 쳐다봤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체 무엇이 나빴는가 싶었다. 나는 그저 단란한 가정을 꿈꿨을 뿐이다. 신비한 동물과 함께 후부키에서 살아가고 싶었다. 그게 뭐가 나쁘단 말인가. 살고 싶어서 발악했을 뿐인데 돌아오는 결과는 처참했다. 후부키의 숲에서 피투성이로 한참을 있다 오러에게 잡혔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를 생각하니 아직도 몸이 떨렸다. 차라리 도망쳤으면 이런 일도 있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을 도망칠지언정 이런 곳은 오고 싶지도 않았다.
"피고의 무지와 방종으로 인해 3명의 목숨이 사라졌습니다. 이 혐의를 정녕 부인하시는 겁니까?" "아니오. 모두 저의 죄입니다." "존경하는 위즌가모트 여러분. 피고가 죄를 인정하심을 이 자리에서 모두 보셨습니다."
고모님이 무언가를 들어 올린다. 지팡이다. 나는 고개를 도리질 쳤다. 형을 선고할 것이다! 나는 공포에 질렸다. 저 멀리서 남성인지 여성인지도 알기 어려운 그것이 자리에서 내려와 내 팔을 우악지게 붙잡았다. 형은 즉결심판이었다. 고모님은 내 간절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벌렸다.
"피고에게 낙인형과 졸업 이후의 감금을 선고합니다. 피고는 다시는 후부키에 발을 붙일 수 없으며, 그 어느 쪽에도 소속될 수 없음을 밝힙니다."
지팡이가 내 어깨를 향했을 때, 결국 나는 악에 받친 소리를 지른 것이다. 고모님, 싫어요. 후부키에 돌아가게 해주세요, 안 돼, 안 돼……. 처절한 외침은 재갈에 막혔고 나는 고통에 겨워 울부짖었다. 그 고통 때문에 혼절이라도 했는지 잠깐의 암전 이후 나는 깨었는데, 푹신푹신한 침대와 각종 장난감이 어지러이 흩어진 내 방이었던 것이다. 나는 어두운 방문을 열고 오늘은 어떠니, 몸은 괜찮니 하며 환히 웃는 고모님을 보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고모님, 혹 오늘도 상담이 내정되어 있나요? 오늘은 조금 쉬고 싶은지라……" 하며 말이다.
>>0 [아성/트롤이 날뛴다!!!]-수행 "MA님도 참~ 이러다 학생 한명 진짜 골로가지..."
MA님의 장난으로 학교 앞까지 이동된 트롤은 커다란 나무 뭉둥이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주위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미 몇몇 학생들이 녀석을 상대하고 지나간 듯 놈의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있었지만 녀석은 전혀 위축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지팡이를 꽉 잡는다. 그동안 질리도록 연습하고 배워왔던 마법이지 않은가? 성아는 난 할 수 있다고 연신 되뇌이며 트롤에게 지팡이를 겨누었다.
"인카서러스!!"
밧줄이 생성되어 트롤에게 날아갔다. 밧줄은 먹잇감을 휘감은 뱀처럼 트롤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트롤은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밧줄을 풀기 위해 주위를 파괴하며 난동을 부렸지만 그 덕에 아성을 신경쓰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은 혼자서 녀석을 쓰러뜨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최대한 고통과 불쾌감을 선사해주어 녀석을 제압해야한다.
"에이트 슬러그스!!"
몸 속에서 민달팽이가 튀어나오는 마법, 하지만 지금 현재 녀석의 목에는 인카서러스의 밧줄이 감겨있다. 즉, 달팽이는 그대로 녀석의 목을 막는다. 트롤은 연신 켁켁대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밧줄을 끊기 위해 녀석은 자신의 목을 할퀴고 있었다. 목의 상처가 늘어날 수 록 밧줄은 점점 더 느슨해져가고 있었다.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녀석의 몸을 마비시켜 질식 상태를 최대한 오래동안 유지한다. 이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