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궁의 감 사감이 신탁을 대가로 노래를 듣는다는 말을 듣고, 그녀는 그 전에 물을 얻으러 갔을 때를 떠올렸다. 그 때도 기타 들고 가서 한곡 뽑았었지. 이번에도 똑같이 하면 되는건가. 이번엔 물이 아니라 신탁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니 좀 혹한다. 그 때처럼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가볼까나."
기숙사에 누워 약지의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린 그녀는 그냥 갈까 기타를 챙겨갈까 아주 잠깐 고민했다. 결론은 가져가는 걸로 하고 일어나 기타를 챙겨들었다. 자기도 가겠다는 듯 따라나오는 리치를 데려가려다가, 현궁의 추위를 이 작은 고양이가 못 견딜 듯 해 오늘은 얌전히 기다리라고 하고 혼자 현궁으로 향했다.
이미 몇몇의 학생들이 시도하고 돌아가는 듯 현궁에서 타 기숙사 학생들이 나온다. 그들을 지나쳐 감 사감이 있는 곳으로 간 그녀는 늘 그렇듯 예의 바른 인사를 하고 한 자리를 잠시 빌려 앉았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 적당히 줄을 조율하고 상태를 확인한 후, 작은 헛기침 두어번으로 목을 가다듬는다. 하나, 둘. 박자를 세며 노래는 시작된다.
"매미 소리가 내 마음에 차갑게 울려퍼져 태양을 적시고 말야 지금이 계속 석양빛으로 물들어 간다면 저녁도 행복할 거야
여름이 고집을 부릴수록 땀이 흘러내리는 이 손으로는 너를 붙잡아놓을 수 없어
아아, 밤에는 사라져 버려 사랑과 아주 닮은 나팔꽃이 질 무렵에-"
간결한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을 배경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가사를 노래로 자아낸다. 어쩐지 매미 소리가 잘 어울릴 것만 같은 노래는 잔잔하게 흐른다.
"가슴 속이 아파, 아프다고 이렇게나 거리를 느끼고 있어 저기, 사랑은 슬픔으로, 그것은 여름 파도처럼 나의 목소리를 흔들고 있었어..."
그 누구보다 행복해야 할 그녀가 어떻게 이토록 애절하게 노래할 수 있는지 누구도 모를 것이다. 상실도, 실연도 모르는 채로 어째서 그럴 수 있는지.
"바다를 품은 여름 철새가 다시 남쪽으로 날아가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어 아아, 계절은 변해가는 것
여름이 끝나기 전에 예쁜 하늘로 지나간 슬픔을 내던져 버리자 아아, 밤에는 깊은 산들바람이 눈물을 주네 나팔꽃이 질 무렵에..."
가사가 끝난 뒤에도 몇개의 줄을 더 울려 여운을 남기는 것으로 노래는 끝났다. 이걸로 신탁을 들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상관없이, 그녀는 그저 노래를 한 것만으로도 개운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마무리 인사를 하여 보잘 것 없는 노래를 들어준 것에 예를 표했다.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을 초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베타는 상상했다. 어느 날 전조도 없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겨울바람을 맞이하게 될 것을. 바람 부는 곳을 찾아 다가서면, 자신도 모르게 보이지 않을 경계를 넘어서게 될것이다. 하얀 눈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어리둥절하며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있으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불빛을 볼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될 것이다. 그 불빛과 함께 오는 이가 당신임을. 아 그래, 버터케이크도 같이.
"선배는요? 선배의 생일은 언제인가요?"
스베타는 고개를 슬쩍 기울이며 묻는다. 당신의 말처럼 누군가의 생일은 축하해 줘야 하는 법이니까. 당신도 그런 풍경을 좋하는데 현궁이라니. 얼마나 축복인지. 그 하얀 길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 역시 좋아할까. 분명 좋아하겠지. 백지처럼 하얀 눈 위를 걷는 것을 싫어할 이유는 없을테니까.
"아.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매일이 행복할 텐데."
처음으로 스베타는 소리내어 웃는다. 그리고 웃음이 멎었을 때쯤. 웃음 소리를 따라 온 것인지, 둥그런 달 때문인지. 그 네발의 문카프가 금지 된 숲에서 나오며 그 모습을 보인다.
때는 늦은 오후. 간만에 종손네 젊은 피, 남매들의 휴일이 모두 겹쳤던 날의 점심 즈음이었다. 여름이 가까워 날이 더웠다. 햇볕은 점차로 거세지고 여름벌레 우는 소리가 조금씩 들린다. 방구석 그늘은 시원하니 용코로 한가하게 뻗어있기엔 제격인 날씨였다. 빛 옅은 갈색 머리카락이 방바닥에 길다랗게 흩어져 있었다. 올해 30세의 설택현은 간만에 찾아온 휴일을 남부럽지 않은 백수처럼 보내는 중이었다. 활짝 방문을 열어두고, 머리카락을 위로 올려 늘어놓고 대청에 뻗어 있으려니 세상이 참 아름답게만 보인다……. 그러나 한갓지고 자적하기 그지없던 시간은 오래지 못한다. 사건은 그 짧은 말로부터 시작되었다.
"야, 설택혀이. 일나라."
대뜸 들이닥친 불손한 언행에 택현의 시선이 불만스레 위쪽을, 발언의 근원지를 찾아 쿡 찌른다. 문지방 밖에서부터 살벌하게 자신을 내려다보고 선 택은이 그 종착점이었다. "가시나 예의 어데 갖다 팔았나. 오빠야한테 말투가 그기 뭐고." 불퉁하게 올려다보던 시선을 옆으로 슥 옮기니 마루를 딛고 선 발은 신발조차 벗지 않고 있었다. 사태가 꽤 심상치 않다는 것을 택현은 그때부터 깨달았다. 급히 벌떡 일어나 도주하려던 자유인의 몸짓은 가련하게도 누웠던 자리에서 반 걸음을 뗀 것을 고작으로 불발되고 말았다. 누이의 다부진 손이 동기(同氣)의 귀밑머리를 냅다 잡아채었다. 움직이면 뜯긴다. 관자놀이를 타고 긴장감이 마구 내달린다. 방금 전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정쩡한 자세로 택현은 몸이 굳은 채 어물어물 말문을 열었다.
"뭐… 뭔데. 갑자기 와 이라는데. 이래가 니나 내나 좋을 거 없다. 침착하게 말로 하자, 말로." "대화 좋다 그래, 나도 그거 좋아한다. 그라믄 이바구*를 해보자. 오빠야 니 와 그랬노. 내가 내 방에 들어오지 말라 했었제. 짐까지 누누히 말했었데이." "그…랬었제." "근데 오빠야가 들어와서?" "들어와서……." "뭔 짓을 했을까요?" "어……."
대답이 돌아가지 못했다. 즉답하지 못하는 자에겐 감형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리니. 곧장 택은은 냅다 오라비의 고운 옆머리를 잡아올리며 소리를 질렀다.
"니는 진짜!!!!! 멀 잘했다고!!!! 이바구는! 이바구야! 개놈의 쌔끼야, 어?" "아, 아! 물어봤음서 이유는 말해줘야 대는 거 아이가? 니 진짜 화 왜 났는데?" "와겠노, 와! 걸 니가 모르이까 내가 니를 패지 이─"
막 걸쭉하게 욕을 뱉으려던 순간 문득 인기척을 느낀 택은이 홱 뒤를 돌아보았다. 무해하고 미미한 시선이 느껴진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방에서부터 긴 머리를 드리우다시피 하며 빼꼼 고개를 내민 채로 택영이 형제자매의 난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냥 똘망거리는 막내의 시선─이제 17살 먹은 청소년의 눈을 어린애 것 보듯 하니 다소 미화가 낀 시각이긴 했다.─에 촉발되다 만 분노가 애매하게 사그라들었다. 셋의 시선도 애매하게 얽혔다. 어려서부터 미운 짓 하나 안 하던 마음 여린 예쁜 동생이었다고, 택은과 택현은 그동안 적어도 택영의 앞에서만은 추태를 부리고 싶지 않았다. 말인즉 임시 휴전의 때가 도래한 것이다. 한껏 두들겨패가며 싸우던 것이 언제였냐는 듯 택은이 꾹 붙들고 있던 귀밑머리를 슬쩍 놓아주려 했다. 택현도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미묘하게 화색이 된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믿었던 막내가 슬그머니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그 표정이 무너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마저 해도 된다."
형제자매의 가슴이 동시에 뭉클해졌다. 한쪽은 우리 애 담이 커졌다며 기특해하는 쪽이었고, 기특해하는 한편 구세주의 배신에 울고 싶은 어른이 나머지 한 쪽이었다. 무슨 생각인지 진록색 눈이 조금씩 성글거리며 웃고만 있었다. 택영은 그러고서 양손을 들고 제 귀를 잽싸게 꾹 눌러 막았다. 경험상 이쯤에서 누부*가 반드시 욕을 하기 마련이었으니, 해로운 부분은 알아서 걸러 듣겠다 이 뜻이다. 대견하단 반응이 더해진 것은 두말할 것 없었다.
이제는 거리낄 것도 없겠다, 택은은 아예 쩌렁쩌렁 외치며 현의 멱살을 쥐어잡고 입씨름 겸 몸씨름을 하기 시작했다. 왱알왱알, 개새끼 소새끼에 쌍시옷이 마구 날아다녔다. 그나마 주먹질이며 목 조르는 짓거리가 나오지 않은 것은 막둥이를 보아 참고 참은 덕이었다. 한편 하던대로 편히 싸우라 제 입으로 이르긴 했지만 난장판이 정신 없는 것은 피할 방도 없는 길이라, 택영은 그 불같은 서슬에 정신이 쏙 달아나는 것만 같았다. 시시각각으로 영혼 빠져가는 기분이 드는 게 디멘터와 진하게 입이라도 맞춘 것 같기도 했다. 장내에 순간이동으로 난입한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그 역시 하릴없이 바짝 말라서 비실거리게 되었으리라. 허공에서 홀연 나타난 중년인은 싸움박질을 하던 둘에게 나란히 꿀밤을 먹였다.
"뭐고 씨─어, 이숙 어른."
뜨끈한 이마를 얻고서야 둘은 서로 떨어져서 말다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둘 모두 그 나이를 먹고 잔소리 들어 입술이 삐죽 나왔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야야, 현이 은이. 너거들이 무슨 7살짜리 아도 아이고 시끄럽게 이게 뭐고? 싸울라면 저어 가서 싸워라, 집안에서 소리 빽빽 지르지 말고! 허구한날 싸우고 난리 치기 지겹지도 않나!" "아자씨! 이게 으딜 봐서 싸우는기요, 내가 일방즉으로 처맞고 있는ㄷ" "머시마 말이 많노, 닥치라."
택은이 택현의 입을 철썩 때리며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되도 않게 뾰로통한 얼굴로 툴툴거렸다.
"거 시끄럽으면 아이씨*가 비키소. 뭔놈의 회의를 그래 오래 한답니꺼, 매나*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그랬을 거 아인교. 비생산적이구로*." "시끄럽다 카면 알아들어라. 그리고! 영이도 있는데 어서* 쌈질을 하노. 안 그래도 조심조심 살피야 되는 아가 보는데." "글치만 영이도 괜찮다 캤는데예."
매섭던 눈빛이 조금 누그러진 기색으로 택영에게 닿는다. "진짜가." 조금 얼떨떨한 대답이 돌아갔다. "예에…… 저도 학원 다니면서 이 정도는 합니더. 이거 정돈 괘안아예."
사실이라 하니 더 나무라지는 못하겠다. 중년인은 푹 한숨을 내쉬고는, 지팡이를 들어 회초리마냥 성인 남녀의 눈앞에 들이대고 달달 흔들어대며 당부를 했다.
"하이튼* 느그들, 너거 집안 성질머리 땜에 내가 허페가 안 디빌서지는* 날이 없다. 제발 가라. 가! 원래 집에서는 목청 너무 높이는 거 아이니까 가라. 가가 하날 조지든지 직이든지 느그 알아서들 하고."
둘은 여전하게도 불손한 낯짝으로 들었지만 말이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택은은 오라비의 귓불을 잡고 홱 잡아당겼다. 변명권도 잃고 발언권도 잃고, 이유 모를 분노(하지만 아마도 제 잘못인 듯한)의 표적만 된 택현이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어 도움을 구했지만 이모부도 남동생도 모두 슬그머니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맏이는 그렇게 세상에 버려졌다.
"예이예이~ 으른들 말씀하시는데 저거*들이 너무 시끄럽었지요? 저는 저어 가서 이 셰끼 마저 칵 직여삐리고* 올 테이까 아이씨는 일 보소~ 굿빠이~ " "야, 야쫌 야야 잠깐 신발은 신게 해줘야지 이 씨벌, 아 귀때기 땡기지 말고!" "뭐 셰끼야. 그름 귀때기 말고 멀꺼디이* 조 땡기주까."
처음보다는 정겨워진─택현은 이에 동의하지 않을 테지만─말다툼 소리가 저 멀리로 사라져갔다. 정말로 일 보던 도중에 소란을 못 버티고 뛰쳐나왔던 이숙은 문제가 해결되었음에도 속 시원해보이는 기색이 아니었다. 탈기한 듯한 낯으로 땅이 꺼지듯 한숨을 쉬다 그가 택영을 보고 힘빠지게 웃었다. 택영이 무어라 인사말을 꺼내기도 전에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 그는 다시 순간이동으로 사라졌다.
정신 없는 상황이 지나고서도 정작 홀로 남은 택영은 태연하였다. 이 집안이 시끄럽고 정신없기가 하루이틀 일이 아니란 거다. 누이가 신 신고 밟아 하얗게 흙먼지 자국이 붙은 마룻바닥을 훌훌 털어버리고는 그도 마루에 걸터앉았다. ……아, 형의 머리카락도 쥐여뜯겨 바닥에 뭉텅이로 빠져 있는 것은 모른 척 한다.
"덥다……."
냉차나 마시고 싶다. 떠들썩한 소란이 가신 자리를 이르게 우는 매미 울음만이 시원하게 울려대었다.
그냥 별 거 없는 우당탕탕 일상인데 왜 이렇게 길어졌을까........ ^q^ 아무튼 주석도 같이 달겠다!
*이바구: '이야기'의 방언. *누부: '누나'를 이르는 경주 방언 *아이씨: '아저씨'의 방언. 사전적으로는 경기와 강원 지역 방언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경상도식으로도 아저씨 내지는 아자씨를 빠르게 발음하면 아이씨로 들리게 된다. *매나: '역시'의 방언. *-구로: '-게12'의 방언. *어서: '어디서'. [어-서]로 길게 발음하여 어서1(부사)와 구별한다. *하이튼: '하여튼'의 방언 *허페가 안 디빌서지는: '허파가 안 뒤집어지는'. 대략 '속이 안 뒤집어지는', '환장 안 하는 날이 없는' 정도의 의미. *저거: '저희'의 방언 *직여삐리고: '죽여버리고'. *멀꺼디: '머리끄덩이'의 방언.
>>342 유일한 상식인인 할미는 포기했고 마지막으로 합류한 중은.... 고치려고 시도했다가 포기했습니다... :P! 그 외에 다른 탈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답니다 그 누구도 정정하지 않아요:D! 같이해서 문제..(...) 매구는 너희들 알아서 해라~ 하고 있고...(...)
이제..... 예말이요 나오고 ~요야 나오고 문디 나오면... 완벽해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아.... 명절 때 자주 보던 풍경이 스레에서 펼쳐져....(아-련(?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안개에서 길을 잃은 자를 안내하고 숲 속으로 인도하는것이 너의 일이기 때문이다. 친구를 안내하는 것은 아주 자신있는 일이다. 고모는 이씨 가문에 남아있으라 하였지만 그 자리는 네게 당치도 않은 것이라, 너는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응. 마중갈게요? 호롱불이랑 버터케이크를 따라오면 돼요."
너는 호롱불을 들고 마중을 나갈 것이다. 겨울 바람이 부는 곳, 눈토끼가 펄쩍거리다 숨고 소복하게 쌓인 눈 사이로 영원한 겨울을 나며 가지 사이로 바람이 드는 자작나무와 우뚝 선 소나무 뒤로 나타나는 너와 몇 신비한 동물. 너는 유니콘을 데려오지 않고, 스낼리개스터와 함께 올 것이다. 스낼리개스터는 호기심이 많기 때문이다. 부리를 딱딱대며 버터케이크를 먹기 위해 장난을 치면 비늘 부분을 쓸어주면 될 것이다. 너는 그때를 위해 맛있는 케이크를 찾아둬야겠다 생각하고는, 생일에 대한 질문에 잠시 음, 하고 운을 뗀다.
"이노리도 겨울날에 태어났어요? 12월 10일."
그날엔 태어남을 축하하듯 히포그리프가 날아와 겨울숲에 피어있던 꽃을 부리에 물어왔다고 한다. 그 꽃을 아주 소중하게 간직했지만 유니콘이 먹어치운 것이 흠이었지만 말이다. 너는 스베타를 한번 쳐다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웃는 모습 때문이다. 너는 매일이 행복할 스베타를 떠올린다. 아름다운 선택을 하였겠거니 싶어 기분이 같이 좋아졌다. 너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리지만 사려깊고, 친절한.
"있죠, 스베타. 현궁에도 자주 놀러와요? 현궁 사람도 손님을 싫어하지 않아요. 생각해보니 매일매일이 겨울이니까 같이 케이크도 먹을 수 있어요?"
너는 고개를 살짝 돌린다. 아, 문카프다. 너는 가면 속 눈을 휘었다. 장죽의 연기도 어느덧 사그라들었고, 너는 그 장죽을 들어 조심스럽게 어느 한곳을 가리켰다. 길쭉한 막대기 같은 은빛 몸, 커다란 눈동자에 넓적한 발까지. 높고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며 뒤뚱뒤뚱 걸어나오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것은 공손하게 눈을 내리감고 고개를 한번 끄덕인다. 어려우면 더는 설명치 않겠다는 의미다. 은인이 이해하기를 바란다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깨달을 것이다. 지켜보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거나 파멸을 자초할 자에게 손대지 말라 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좋은 선택입니다." 하고 공손히 은인의 결정에 답하고는 시선을 옮긴다. 은인의 귀다.
"이제 보니 은인께서도 붉은 장식을 하셨군요. 어울리십니다."
그것은 손을 들어 귀를 한번 매만진다. 붉은 노리개가 손가락의 움직임에 맥없이 흔들린다. 은인의 귀에 달린 것은 노리개를 귀에 장식한것과 달리 직접 꿰어낸듯한 붉은 실이라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것은 굳이 아프지 않았느냐 묻지 않고 침묵한다. 아프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정상적인 의문이겠으나, 귀를 뚫을 때도 바늘을 쓰니 별 다를 것은 없겠거니 싶었던 것이다.
"아쉬웁기 그지 없어라."
뭇 진지한 어조에 그것은 담담히 농담을 뱉는다. 이 돈으로는 당과점은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있다. 하지만 당과점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정도의 양은 사줄 수 있을 것이니 마냥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것은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은인의 행동에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탕을 치아 끝으로 문 은인이 얼굴을 가까이 대자 그것은 잠깐 눈을 꿈뻑인다. 놀라 커진 눈동자와 함께 하얀 속눈썹이 위로 휙 올라간다. 숲 밖의 마법사나 노마지, 혼혈의 사례를 통틀어도 이렇게 사탕을 먹는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잠시 당황한듯 동공이 수축하더니 은인을 무안하게 할 수 없다는 듯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내고는 고개를 가까이 하여 사탕을 입술로 물어가려 했다. 닿는 피부의 면적은 최소화 하려는 노력이 엿보였으리라. 그리고는 입안에 들어온 사탕이 혀 위로 구르기도 전에 볼 한구석에 사탕을 밀어내며 질문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