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저녁, 청천은 집 사이사이로 난 골목길을 달립니다. 그도 마찬가지로 아무 생각 없이 달리는 중이었지요. 그렇지만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보면 어느 새,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르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지금처럼요.
의념 각성자가 되어서 좋았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밤중에 골목길을 달리고 있어도 일반인들이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혹시나 누군가가 건드리더라도 본인 쪽에서 대응할 방법이 전보다 많았다는 것. 청천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멈춰서서 뒤를 돌아봅니다. 그 눈빛은 순간적으로 경계심을 담고 있었지만...그가 목소리의 주인을 인식하자마자 그런 눈빛은 어느새 사라져 반가운 눈웃음으로 변해 있습니다.
몽블랑의 클로징은 조금 늦은 편이었지만. 가차없는 도서관이나 공부방과는 달리 생각보다 온건한 편이었습니다.
공부를 하며 카페인을 빨고 빠는 청월생을 바라보며. 손님. 영업 종료 30분 전이오니. 주문을 그만하시고 정리를 부탁드립니다. 라는 말을 하면서 테이크아웃의 마지막 주문을 받고, 커피 머신을 청소하고, 아이스크림 기계도 청소하고.. 그런 청소를 하다 보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서 마지막 손님이 자리를 뜨면 거기에 있는 여러가지 먹은 것들을 마무리 설거지를 합니다. 그러고 나면 마지막으로 포스기 정리를 한 뒤, 문을 잠그고 해산하는 것이죠.
지금은 바닥을 쓸고닦는 것을 마무리하고 오늘의 설거지 담당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홀에 앉아서 잠깐 노닥거리는 중입니다. 다림과 하루는 오늘 설거지담당이 아니라서 가능한 것입니다.
매니저인 만큼 홀 테이블에서 장부를 정리 중입니다. 하루 양이랑 같이 장부를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언젠가 오긴 할 테니까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면 모를까요. 라고 말하다가 진짜 시간이 안 흐르면 수련을 잔뜩 해도 무위로 돌아갈까요. 아니면 수련을 한 거니까 수련의 효율이 높아진다. 일까요.. 라고 중얼거리지만. 혼잣말 같은 건가 봅니다. 영수증과 장부를 정리하는 글씨가 꽤 단정하네요. 노력으로 얻은 글씨체였나요?
"월급이라는 말은 낯서네요.." 가디언 후보생인 만큼 의뢰로 돈을 얻는 건 월급이라 하긴 그렇고요. 라고 말하며 살짝 턱을 굅니다. 장부를 다 정리한 모양입니다.
"저나 에미리 양이랑 즐겁게 노는 데 쓰는 거라니 어쩐지 영광스럽네요.." 사실 다림도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그냥 지나가듯이 물어본 것이었지만요. 그러고보니 물어본다는 건 어떻게 되었을까요. 라고 생각해봅니다.
" 음. 길은 기계적으로 외우는 것보다도 직접 다녀보는 게 빠르지. 이제 아카데미생 다 됐구나? " 하고 살짝 또 웃는다. 생각해보니, 올해 시간은 참 빨리도 지나가는 것 같은걸...
" ...으응, 다행이네. 나도 잘 지내고 있었어. 성학교에도 별 일 없지? " 뭐, 잘 지내냐느니 다친 데 없냐느니 하는 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말이다. 애초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순 없으니까... 네가 괜찮다면야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학교까지 묻는 이유? 으음으으음.
" 하긴, 두 달이나 봤으면 슬슬 길 보기가 지루할 만도 하네. 평범한 거리보단 이런저런 일이 많이 일어나서 소소하게 보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말이지. " 예를 들면...
" 얼마 전에 사악한 자판기 개조범-제노시아 학생을 무찌른 마법...? 소녀...? 라던가. " 마법도 아니고 소녀도 아니었지만. ...정말 뭐였을까 그건. [ adelt ]......
그러고보니 청천은 아직 새로운 교감선생님을 만나보지 못했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아, 그 동영상 저도 봤습니다. 가디언 아카데미가, 그것도 각자 개성이 강한 학교가 세 곳이나 한 섬에 붙어있으니 조용할 날이 없더군요."
비아의 말에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기분탓일까 싶었지만 확신이 없어 말을 흐립니다. 한 명은 사실 청천이 확실하게 아는 사람이고, 다른 한 명도 같은 학교 신입생이라 청천이 오며가며 봤을 법한 사람이었지만....비아가 올렸던 영상은 조금 떨어져서 촬영된 영상이었고, 청천은 그걸 굳이 의념까지 써보며 분석해보진 않았으니까요.
"월급이라는 느낌보다는 성과급이라는 느낌이 강해보이는 느낌이니까요.." 가디언 지망생도 의뢰나 아르바이트로 gp를 버는 만큼.. 기본급이란 게 있을 수 없지요. 기분 좋을 곳에 쓴다는 말을 하는 하르를 보고는 저는 아마도.. 그냥 모아두기만 할 것 같아요. 라고 말하다가... 잠깐 침묵합니다. 부정적 의미의 침묵은 아니었고. 하루가 말을 잇자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앗. 그런가요? 주말 즈음이라.." 즐겁게 파자마파티를 할 것을 생각하니 다림도 조금 기대되는 모양입니다. 조금 반짝거리는 것 같이 미약한 생기가 도는 표정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학생들이랑 같이 파자마 파티는 거의 처음이잖아요. 둘이서는 해본 적 있긴 하지만.(사실 그것도 파자마파티를 목적으로 만난 것은 아니었다)
"파자마 파티에 뭘 가져가야 할지 고민해봐야겠네요.." 고민하는 것처럼 펜을 빙글 돌렸다가 흠.. 하며 내려놓았습니다.
의뢰 준비를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시가지를 지나가게 되었다. 무슨 날인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왠지 속이 거북해진다. 이럴때를 위한 일코일코! 모드로 돌입하여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걷다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호기심이 생겨 군중들 사이로 들어갔다. 이리저리 군중들을 해치고 도달한 곳에서 본 것은... 흠, 핑크복장? 붉은 리본이랑... 흠, 그렇군....
"변태인가."
아니, 취향은 존중해야지.. 존중... 해야지 싶지만, 저 얼굴.. 어디서 본 것 같단 말이야. 머리색은 다르지만... 다르지만.. 머릿속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찾다가... 아! 하고 뭔가 떠올라 해당 광경을 녹화하기 시작했다. 키키 누군진 사람들 만나다보면 떠오르겠지? 키키 그때를 위해서 일단 보관보관~ 키-키-키- 하고 웃는 특이한 버릇을 가진 사람이 핑크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전기 충격같은 걸 쓰는지 왜 푸른색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를 전기가 와이어를 타고 흐르는 것이 보였다. 흐음... 큰일인가.. 도와줘야 하나? 연극이라면 어떡하지?
주변 두리번
아니네... 그러면 흠... 스케치북을 펼쳐서 거대한 귀로 하늘을 나는 토끼 비스므리한 방울쥐 비스므리한 귀여운 생물체를 그려낸다. 이마에 반짝이는 보석으로 매지컬틱한 느낌도 내주고! 그리고 그것을 구현!!!!!! 핑크머리 주변으로 날려보내고, 구현한 생물체를 통해 마도로 만들어낸 회전하는 물의 원형톱을 발사하여 와이어를 잘라냈다. 어디보자.. 음성변조 소프트웨어가.. 아, 여기있다.
"크흠.."
이것도 역시 마도와 의념을 응용한 어쩌구 저쩌구 사실은 일상이니까 가능한 어쩌구저쩌구
생물체 [ 지지마라빗! 넌 할 수 있다빗!! 저 자판기를 재활용시켜버리는 거다빗!! 요즘같은 세상에 누가 라벨도 제거 안 한 음료를 판매하냐빗! ]
" 그런가... " 하긴, 뭔가 일어났다면 알아도 고학년이 알 테니까. 라고 소문 같은 건 잘 모르는 3학년인 내가 생각하고 있으니 참 이상하네. 그러고보니 그 성학교의 낙서범은 뭐 하고 있을까. 낙서한 가게 사장님한테 잡혀갔으니까 혼나긴 했겠지만. 음, 스파이크로 맞았을지도.
" 그렇다니깐. 정말... 성학교나 제노시아의 선도부는 바쁠 거라고 생각해. 그래도 유명인사가 하나둘 나오는 걸 보면 바빠서 놓치는 걸까, 다 잡고도 남은 게 그 정도인 걸까... " 자판기 제작자들은 솔직히 그냥 안 잡는 거 같기도 하고... 사실 선도부 중에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조금 충격이다.
" ...본 적 있는 사람들이야? " 청천이는 성실한 이미지인데 그런(?) 사람들이랑 연관이 있다니 조금 상상되지가 않는다. —사실 다림이랑도 친한 후배긴 하지만 안 그래도 좀 멀었는데 찍으면서 보려다 보니 아예 못 본 편이다.—
" ...됐다. 모르는 사람 일 가지고 왈가왈부할 게 아니니깐. 만난 김에 음료수라도 사줄 테니까, 잠깐 쉴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