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시식. 아무리 생각해도 꽤 이득인 것이 아닌가. 맛있는 것을 먹어보면서 돈까지 받는다니! 행복한 아르바이트다. 너는 쫄래쫄래 월식 주막으로 들어갔다. 맵다고 비명을 지르며 나가는 학생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시식 해보러 왔어요?" 하고 말하는 것을 보니 강심장임은 분명하다. 너는 네 앞에 놓인 접시를 보고 고개를 기울인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고기 샌드위치였기 때문이다.
"맛있어보여요?"
너는 샌드위치를 손으로 들었다. 윤기 좔좔 흐르는 고기도 그렇고, 소스도 그렇고. 냄새는 맛있어보인다.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너는 막입이라 무엇이든 잘 먹을 것이 분명했고, 너는 샌드위치를 당차게 물었다. 어떤 시련이 닥쳐올지 모르고 양볼 빵빵하게 물고는 입을 오물오물 움직였다.
네가 오물거리다 내용물을 목 너머로 삼킨 것은 입에 샌드위치를 당차게 문 지 한참이 지나서였다. 그렇지만 예의가 있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 먹는걸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야금야금 기어이 샌드위치를 다 먹는 것이다. 이후 부처처럼 은은한 미소를 지어내며 너는 말없이 물을 따라 한컵 마셨다. 그리고 두컵... 세컵 가득이 되어서야 네가 시식평을 말했다.
"맛있어! 하지만 짜요...바닷물이랑 안녕 했어요..."
은은한 부처의 미소만치나 은은한 소녀의 목소리였다. 너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이제 뭘 해야겠는가. 바로 당과점에 가는 것이다. 짠맛의 완성은 단맛이고, 단맛의 완성은 짠맛이다. 불변의 진리 아닌가.
눈안개를 두려워하니 접근하는 이가 없고, 자우룩하니 그 실루엣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속에는 다른 세상이 숨겨져 있다니. 신비한 동물들을 지키기 위한 방어책이지만. 호수 아래 잠겨 있다는 키테즈 같은. 그런 설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 역시 선택되거나 초대받은 이들만 들어갈 수 있을까. 또 가끔씩은 길 잃은 목동들이 우연하게 흘러 들어오는 일도 있을까.
"도원향 같은 곳이네요."
일정한 리듬으로 풀벌레가 울듯. 딸랑, 하는 방울 소리가 울려왔다. 소리에 당신을 바라보다, 질문을 듣고서 잠시 고민에 빠진다. 최초의 기억에서부터, 대부분의 장면 속에 그 흰 눈들이 있었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에도 탄생을 축하하듯. 눈송이들이 소용돌이치며 춤을 추었다고 들었었다. 스베타는 무릎을 감싸던 팔을 풀고서 다리를 쭉 펴낸다.
너는 후부키를 떠올린다. 눈안개에 덮인 후부키에는 방랑자도 찾아오지만 필연적으로 다친 사람들이 오기 마련이었다. 오러에게 쫓기는 어둠의 마법사라도, 혹은 어둠의 마법사에게 공격당해 홀로 살아남은 오러라도. 가문의 권모술수에 당해 삶을 위협받고 도망쳐오는 나그네라도 후부키는 모두 품고 치료했다. 매구도, 마법사 전쟁도. 그 눈안개에 뒤덮인 숲속에서만 살았기에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후부키는 신비한 동물, 그것만이 전부인 삶이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라도 나타나면 극진히 대했다. 너는 가면 속 눈을 곱게 접어 미소를 짓는다. 도원향 같은 곳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스베타도 놀러와요? 마법사 사회를 떠돌다보면 나타나는 눈보라를 놓쳐서는 안 돼?"
너는 졸업 이후 눈안개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이씨 가문은 의탁하는 곳일 뿐, 그곳에서 권력을 잡을 생각은 일절 없었다. 권력을 잡아봤자 그 뒤의 일은 또 피바람이기 때문이다. 너는 누군가의 피를 보는것이 익숙했지만 직접 내는 것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할 사람이었다. 네 시선이 마주친다. 가면 안에 있었지만 마주친다는 느낌은 인간의 본성이 익히 알아채는 것이지 않나. 너는 입의 양 끝을 빙긋 올렸다. 그 괴상한 성격과 달리 제법 얌전한 미소를 짓는 것은 네 특기였다.
"그렇구나. 눈안개가 오는 날에 버터 케이크를 준비할게요? 누군가의 생일은 축하해줘야 하는 법이에요?"
너의 생일은 언제였더라. 쌍둥이와 같은 날에 태어났으니 굳이 세지 않아도 될 것이다. 헤어진 날은 다르지만 나는 날은 같으니, 그날마다 기억하지 않은가. 스베타가 언급하는 눈이 지나간 후의 길은 눈을 감으면 바로 상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노리도 눈온 다음을 좋아해요! 그래서 현궁이 좋아요? 늘 하얀 길을 볼 수 있어."
눈이 한바탕 지나가면 온통 새하얀 세상이라 함부로 더럽히기 어렵다. 그렇지만 첫 발자국을 내딛으면 그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 현궁에서도 눈이 소복하게 쌓이면 누구보다 먼저 뛰어가는 것이 너였다. 그리고 눈더미에 파묻혀 천사를 만들겠다고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파닥거렸지만, 안타깝게도 너는 천사가 아니라 구형을 만드는 것에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둥그런 원형이 만들어진것을 보고 머글 출신 학생이 뭐라고 했더라.
— 아! 저거! 저거!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인체 비례도!!
..라고 했던가.
"매일이 눈안개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스베타는 매일 케이크를 먹을 수 있고, 이노리는 늘 신나요?"
또 의식의 흐름이다. 하지만 쿡쿡 웃는 소리를 듣자하니 이정도는 약한 장난임을 아는 것이다.
마음에 안 들 리가 있을까. 고개를 살짝 저어 그런게 아니라고 확인시켜준다. 윤의 표정이 풀리는 걸 보며 그녀도 미소를 짓고, 다음엔 그녀의 마음에 드는 걸로 사주겠단 말에 꼭이라며 약속받는다.
"이렇게 선물 받는 것도 좋지만, 같이 고르는 것도 좋으니까. 꼭이에요. 안 지키면 삐질거야."
키득 웃으며 장난스런 엄포를 놓다가 목 쪽으로 와닿는 체온에 흠칫했다. 낮게 목을 울리는 소리에 어쩐지 소름이 돋아 미른 침을 삼키며 가만히 있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는 윤이 있었다.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한 채 넘어가는 상황이 좀 아쉽다고, 그녀는 무의식중에 생각했다. 그 아쉬움이 윤을 보는 시선에도 약간 담겼을지도 모르고.
그녀도 윤에게 반지를 끼워주겠다고 하니 윤이 한 손을 내밀었다. 내민 손을 한 손으로 잡고 상자에서 반지를 꺼낸 그녀는 바로 끼워주지 않고 잠시 반지와 그의 손을 번갈아 보았다. 그 모습이 언뜻,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제대로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었으니 그건 아니었던 듯 하다.
"......"
천천히 약지의 끝까지 반지를 밀어넣고 몇번 만지작대다가 그녀의 양 손으로 윤의 한 손을 꼬옥 쥔다. 비슷하다고는 하나 확실히 크기도 감촉도 다른 그의 손을 쥐고서 말없이 있는다. 잠시 그러다가 윤의 손을 들어 그가 했던 것처럼 손에 입맞춤을 해준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그녀는 손끝을 약간 입술로 물었다 놓듯 했다는 점일까. 그리고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윤을 보며 입술을 달싹거리지만 좀처럼 말을 못 한다. 결국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작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린다.
"주변이 시끄러워서 하고싶은 말을 못 하겠어요. 지금 아니면 또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
핑계 아닌 핑계 같은 말을 하며 살짝 시선을 들어 윤을 빤히 바라본다. 세로동공은 아니지만 생김이 고양이를 닮은 눈을 천천히 두어번 깜빡이고, 발돋움을 해 그의 귓가에 소곤소곤한다.
"그러니까, 둘만 있을 수 있는 곳에 데려가주면 안 돼요?"
어디든 좋으니까.
하는 행동이나 말은 그의 이성을 간질간질하게 건드리는 듯 해도, 시선을 마주하며 짓는 미소는 그와 대조적으로 순진해보였을거다. 다른 의도는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