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피지를 펼치고서 고개를 든다. 차갑게 맑은 밤하늘이 깊고, 그 끝을 모를 듯 넓게 펼쳐져 있다. 모든 것이 다른 곳에서 본 밤하늘과 다름이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이곳에서의 구름의 형태는, 저 별의 반짝임에는. 자신이 읽지 못하는 어떠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는 걸까. 깃 펜을 들어, 점멸하는 별의 내용을 양피지에 적기 시작하며. 그 메시지를 전하는 이가 누구일지 문득, 스베타는 궁금해졌다.
너는 좋은 사람이라 판단했다. 지적하지 않고 같이 미소를 지어줬기 때문이다. 네게 동조해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단순하고 명료하게 생각하는게 네 장점이었다. 그만큼 너는 솔직했다. "너 좋은 사람이에요." 하고 대뜸 말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사람을 선인으로 단정짓고는 쾌활하게 답했다. "응. 도망갔어요? 그렇지만 걱정 마. 곧 보름달이니까, 예쁜 춤을 추러 올 거예요?"
보름달이 뜨면 구애의 춤을 출 것이다. 네 기준이서는 아주 좋은 일이다. 흔한 것을 기술하기 보다 구애의 춤을 적어내는 것이 더 멋지기 때문이다. 문카프 대신 사람을 관찰하듯 손님에게로 시선이 꽂힌다. 관자놀이를 누르는 모습을 따라하듯 한 손을 들어 관자놀이 주변을 더듬는다. 방울이 손가락에 채여 딸랑거렸다.
"이유? 좋은 사람인 너는 그게 궁금한 것이어요?"
너는 장죽을 내려다본다. 쑥의 맛은 특별하지 않다. 연기가 독하고 오래 갈 뿐이지 다를 것이 없다. 가면 속의 공허한 눈을 감고 너는 다시 그날을 떠올린다. 봄결 햇살 만연한 숲, 문 앞을 서성이던 히포그리프가 쑥뜸 냄새에 코를 찡그리고 저 멀리 날아가던 단란한 하루.
"효능? 이노리 아는 건 쑥이 유령 쫓는 것밖에 없어요."
순전히 유령을 놀려주기 위해 피울 때도 있었다. 삶에 미련이 남은 존재가 둥둥 떠다니는 걸 보면 질투가 났기 때문이다. 너는 날지 못하고,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데 그들은 빗자루도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네 입장에선 부럽고, 심통이 났다. 하지만 그 이유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있다.
"집에선 늘 쑥 냄새가 났어- 집에 가고 싶은데 기숙사 점수도 없어요..그래서야. 맵지만 집 냄새가 나-"
너는 학교 냄새는 싫다고 투덜거린다. 추억 위에 새 추억을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두 개나 있는건 싫다. 마법약 냄새가 배기라도 하는 날엔 집요정에게 떼를 썼다. 너는 고개를 기울인다. 손님의 노리개가 금색이다.
그녀는 그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잠자코 잔을 비웠다. 그녀를 포함한 학교의 인원들이 방해가 되는데도 이 상황을 방관한다는 건 윤 나름의 생각이 있을거라 여겼으니까. 지켜보면 알게 될 일을 굳이 지금 머리 싸맬 이유는 없다. 그러니 무언으로 흘려보내다가, 키득이며 하는 말에 눈을 깜빡였다. 동시에 또,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래저래, 꽤나 깊게 들어와있었네요."
그녀도 만났고 학생들 대부분도 만났다면 후보자는 소수로 좁혀진다. 그러나 그 중에서 누구 하나를 특정할 생각은 없다. 이매탈이 누구든 상관없었다. 공격한다면 맞대응할 뿐이고 질투한다면 더 보란듯이 굴어줄거다. 자기만이 충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연적으로라도 취급할 필요가 있겠는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주머니를 챙기자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건은 끝났으니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자기가 알려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며, 이 이상은 윤에게 확인하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싱긋 웃었다.
"묻는다고 순순히 알려줄 것 같진 않지만, 한번 물어나볼게요. 그럼 다음에, 또 뵈요. 샤오 씨."
그렇게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려다가 아차, 한 듯 멈춰서 주머니를 가리킨다.
"그거, 샤오 씨 입에 맞으면 드시고 아니면 버니 선배나 멜리스 씨 주세요. 같이 들어있는 건 꼭 좀 전해주시고, 모두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적에게 안부라니, 싶지만 그녀는 전에 말했듯 그들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니 말이다. 한차례 더 종알거린 후에야 이제 정말 용건은 끝이라는 듯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주막을 나간다. 그리고 잠시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학교로 돌아가는 길로 몸을 틀었다.
어차피, 목적은 이뤘으니까.
빈 손으로 가볍게 걸어가는 그녀의 얼굴엔 드물게도 즐거운 웃음이 피어있었다.
//이걸로 막레 할게~~ 수고했어 캡틴! 참고로 주머니 안에 든건 월병 한 꾸러미랑 멜리스의 태피스트리 조각이야!
할미탈은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안에 들어있던 것을 확인했습니다. 오, 월병이네요.
' ........ '
그는 말 없이 월병을 들어서 입에 물고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곧이어, 그는 비릿한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 왔어!? '
비명을 지르는 소년과 그 뒤에서 키득키득 웃는 갓을 쓴 청년의 말에 할미탈이 그 둘의 사이를 가로막듯 섰습니다. 비명을 연신 지르던 소년은 최대한 힘을 짜내서, 할미탈의 바짓단을 붙잡았습니다. 불결한 손으로 자신을 만지는 손길에, 그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내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더 이상 월병을 먹을 기분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아쉽네요, 오랜만에 먹는 고향의 과자였는데.
' 어쩐 일이야? 결벽증이 있는 할미탈이 더러운 손으로 자신을 만져도 내치지 않는 건 또 처음보네? ' ' ..... 주인님의 신분이 되어주는 아이니까. 굳이 갇혀있던 걸 왜 꺼낸 건데? '
그 상황을 가만히 보고 있던 양반탈이 물었습니다. 변화가 생긴 걸까, 싶었던 것입니다. 눈 앞의 누추한 아이를 만질 생각은 없었던 듯 할미탈은 백정탈에게 턱짓을 했습니다. 백정탈은 순순히 아이를 데리고 안 쪽으로 들어갔습니다.
' 넌, 네 과거를 지울 거면 제대로 지워. 이걸 받았으니까. ' ' ! 야, 그거...!! '
태피스트리 조각. 자신의 얼굴 쪽에 붉게 새겨진, 천인공노할 죄인이라는 단어에 양반탈이 미간을 확 찌푸렸습니다.
' 그리고 초랭아. ' ' 엉? ' ' *크루시오 ' ' 씨X!!!!!!!!!! '
*용서받지 못할 저주. 고문용으로 쓰이며, 죽이지는 않으나 굉장한 고통을 주는 주문이다.
자신의 바짓단을 더럽히게 한 원인을 제공했던 초랭이탈을 향해, 할미탈은 용서 받지 못할 저주를 날렸습니다. 곧이어, 초랭이탈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 어떤 대답을 주고받더라도 변화가 없던 단태의 섬찟하리만치 침침하게 가라앉아있던 붉은 암적색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호기심이었다. "규격이상의 수단?" 하고 물음을 던지는 목소리는 여전히 느물거렸지만 능청스러운 기색은 없는 상태였다.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마저도 곧 가라앉았지만.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그런 사이에 의미는 있는건가.
"이해하라는 말은 권유라던가 제의는 아니었어."
그 사실이 맞았기 때문에 단태는 담담히 그렇게 중얼거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주양의 시선을 말끄러미 응시하다가 피식, 하고 짤막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꼭 놀란 것 같은 눈빛이여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웃었을 것이다. 주양의 이어지는 말에, 단태는 그 낄낄거리는 웃음이 잦아드는 얼굴로 암적색 눈동자를 깜빡였을 뿐이다. 팔짱을 끼고 눈을 깜빡이고 어깨를 으쓱여보인다.
"왜, 아닐거라고 생각해? 지금 보여주는 모습에 대해서도 짐작만 했을 뿐이지 확신하지는 못했잖아?"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은 대답을 주로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불편하고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을 때만큼은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은 대답을 자주 해보였다. 지금도 그런 식의 대답이었다. 당연하게도 주양의 말이 맞기는 했지만 말이다. 대화와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끊어지는 기분이 드는 이유는 서로가 서로의 이해자가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모르는 체 하고 있던 상황과는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끊어지고는 있어도 나름 대화가 잘 이어지고 있기도 했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단태가 주양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내기에 대한 이야기로 끌어갈 이유는 없었지만 대화는 몇번이고 돌고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오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거리를 진지하게 대화에 끼워서 나누고 있는 이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아야했다. 아니 사실은 납득이 되지 않으면서도 먼저 납득이 안된다는 말을 꺼내지 않을 뿐이었다. 자신도, 그녀도. 장난인지 진심이었는지 모를 행동을 해보인 뒤에 단태는 뻣뻣하게 굳어 있는 주양의 목뒤를 잡은 손으로 가볍게 눌러준 뒤 손을 떼어내고, 걸음을 뒤로 물려냈다.
"지나간 일에 대해서 관심은 없지만 탈들과 만났을 때 네가 쓰던 마법들이 유난히 불과 관련되어 있다는 건 관심있게 보고 있어."
여전히 주단태가 던지는 말은 평범한 대화법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있었다. 영 엉뚱한 소리를 하던 단태는 잠시 주양을 바라보고 고개를 기울여보였다. "너무 길지 않다면, 들어줄 수는 있어." 하는 대답을 내놓은 단태는 산책을 계속하자는 것처럼 주양에게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