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즈키는 아이스 유자 스무디 위에 휘핑크림과 초코시럽을 추가해서 내놓아도 딱히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다림이 청수박주스를 내오겠다고 했으므로 괜히 그걸 줘도 괜찮다는 말 같은 걸 덧붙여 다림을 더 고생시키지 않기로 했다.
"잘 마실게."
금방 나온 주스는 꽤 달달한 듯 하면서도 깔끔한 맛이었다. 다림이 갑자기 변신하면서 나는 사실 다림이 아니라 춘덕이었다구리 같은 말을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수준이었다. 청소하면서 쌓인 피로(물론 몽블랑의 크기가 그를 피곤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가 싹 풀릴 정도여서, 미나즈키는 약간 기분이 좋아졌다.
다른 차원의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그 방문자들이 카페에 들리는 경우가 많아, 엄청나게 바빴다. 물론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바깥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사람을 '들어올래?' 하고 권유하거나 한 적도 많으니, 자업자득이라면 자업자득이겠다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의견을 통일한 우리는 에미야씨의 상당실에서 과자와 음료를 놓고 둘러 앉는 형태가 되었다.
"그건 다행이네. 나도 언젠간 기회가 되면 상담 받을 수 있을까? 실은 최근에 연애를 시작해서....."
조금 부끄러워 하면서도 수줍게 손가락을 꼼질거리며 그렇게 얘기하다가도....마스크를 벗지 않은체 빨대를 그 아래로 밀어넣어서 홀짝 거리는....뭐랄까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기묘한 광경을 보면, 살짝 당황하면서도 묻기 마련이다.
계속 웃고 있으려니 시선이 강해지는 게 느껴진다. 귀엽다고 생각하는 걸 안 건지, 왜 웃는지 모르겠단 건지. 아마 뒤쪽이어도 뭔가 말해줄 생각은 없다. 그도 그럴 게, 너도 날 놀렸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잖아?
" 나는,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 짊어질 뿐이야. 네가 나를 존중한다면 내가 짊어지고 싶은 걸 짊어지게 해주길 바라. ...그 이외의 짐을 같이 들어주고 싶은 거라면 정말 고맙겠지만. "
모든 걸 짊어지고 가는 건, '희생'이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 그 이상의 어떤 틀도 씌우고 싶지 않아. 무거운 말에 단호하게 말하며 살짝 표정을 흐리다가, 곧 다시 미소를 띄웠다. 나를 따라 미소짓는 너를 봐서. 억지로 지은 미소라고 해야 할지, 어렵게나마 지은 미소라고 해야 할지 모를 미소. 나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 이번만이야. 아무도 안 찾아오니까─라는 건 이유가 되지 않는걸. "
차라리 그냥 당당히 멋대로 들어간다면 모를까, 그걸 이유로 대면 변명이 된다. 살짝 째릿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한 박자 느린 대답과 온쉼표.
"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
내 세상의 온쉼표를 찢고 걸어오는 음표. 한 걸음 물러나면 거부를 표현하기에 충분할 거리. 팔을 쭉 뻗으면 밀어내기에 충분할 거리. 너의 눈 앞에 손을 내밀어 막아낼 수 있는 거리. 더 이상 팔을 뻗지 못할 거리. 부담스러울 만큼의 거리. 네가 나에게 닿으려 해도 밀어내기 힘들 만큼...
가까운 거리. 그리고 지금, 엇박.
" 그렇구나. "
나와 네가.
" 나도 너를 좋아해. "
엇갈리고 말 오선보. 엇갈리다: 마주 오는 사람이나 차량 따위가 어떤 한 곳에서 순간적으로 만나 서로 지나치다.
" 하지만, 너의 '좋아'가 '나의 좋아'와 다르다고 한다면... "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 순간을 악보로 쓴다면 분명 무수한 숨표가 박혀 있을 것이다. 뜻은 '숨소리만 들릴 만큼 조용하게, 길게'. 길게, 길게. 떠다니는 단어들 속에서 말을 골라내면서, 떨리는 마음은 멈추지 않아도 집중은 흐려진다. 파도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길게.
" 네가 오랫동안 나에게 보여준 모습 중엔 그런 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어. 그렇다면 답은 두 가지겠지. 처음부터 철저히 숨기고 있었거나, 갑자기 생겨난 감정이거나. 어느 쪽이건, 나는... 지금 너의 고백을 받을 수 없어. 그리고 후자라면 더더욱. "
전자일 가능성을 추호도 생각하고 있지 않는 나를 무시하고, 허울뿐인 선택지를 내미면서.
" 난 네 감정이 진심인지 알고 싶어. "
자신 안에서만 고이고 섞여서 탄생한 감정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가끔씩 감정적으로 내뱉은 말을 진실이라던가, 자신의 진심이라고 착각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 친근함을 사랑으로 착각하기 쉬운 열일곱. 유대라는 단어를 거부하면서 좋아한다 속삭이는 너. 나는, 네가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지 무섭다. 그냥 불안해져버린 건 아닌지. 묶이는 걸 두려워하면서 네게 묶여 있을 누군가를 바라는 건 아닐지. "
착잡한 파도소리가. 부글거리는 물거품이.
" 있잖아, 나는. 사랑에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
흩으려 했던 연기를, 너와 나 사이를 유령처럼 떠다니던 추측을 망설임도 없이 태워버려서 남은 잿가루. 연무. 그것에 남은 온기가 어쩔 수 없이 시름다와서.
" 지금은 네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아. " " 하지만 네가 진심으로 날 좋아한다면. "
언제 이렇게 먼저 거리가 좁혀진 건지 가까워진 너의 뺨을 양손으로 감싸며 한 걸음 더 다가선다.
" 한 달, 한 달 후에 다시 얘기하자. "
까치발을 들고, 가볍게 이마를 툭 맞댔다. 그 때 가서, 내가 너를 더 좋아하게 되어버렸다면, 네 쪽의 마음이 식었더라도 다시 이쪽으로 오게 만들어 줄 거야. 그러니까 나를 반하게 만들어 봐. 지훈아.
"그렇죠.. 많이 바빴으니까요. 요즘의 휴식시간이 좀 귀중한 느낌이에요" 편히 앉으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앉습니다. 좌식인지 입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앉아서 과자를 뜯고 디저트도 접시 위에 놓으면 꼭 애프터눈 티를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도?
"분명 에미야님의 상담이 소문이 퍼지면 이런 시간도 줄어들 것 같아서 조금 슬퍼지네요" 느릿하게 말하며 다림은 디저트를 내려놓았습니다. 에미야님이 받을 수 있는 딱 딱 예약제로만 하면 좋겠지요. 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리고는 묘하게 목소리가 비슷한 것 같은 느낌도 있고요... 언젠가는 관련으로 떠봐야 하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처럼 눈을 돌려 봅니다.
"진화 씨의 생각에는 동의하지만요.." 선글라스는 아니더라도 안에서 마스크 정도는 벗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라고 부드럽게 덧붙여도 봅니다.
후후 웃은 뒤 본격적으로 식사 시간이 되자 저 역시 카레 우동을 먹는 데에 집중하고자 하였답니다. 국물이 튀지 않게 수저를 이용하여 후루룩하려고 하였지요. 숙녀에게 옷이란 생명이랍니다! 그건 그렇고 미나즈키 군, 어렸을 때와 똑같이 우동을 좋아하시는 건 여전하셔서 정말 다행이랍니다. 이 에미리는 행복하여요. 미니돈가스를 추가로 주문하셨던데 그럼 제 쪽에서도 뭔가 더 주문하는 게 낫겠지요? 그런 생각으로 점원님께 새우튀김 몇개를 추가로 주문하고자 하였답니다.
"미나즈키 군은 새우튀김 괜찮으신지요? "
주문을 받아 돌아가시는 점원님을 보며 미나즈키 군께 슬쩍 질문해 보았습니다. 그렇지요. 우동 하나만 먹고 가기엔 마도일본의 정이 있는 법이지요!
아이스 유자 스무디 위에 휘핑크림과 초코시럽...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거라고 다림은 생각했지만요. 사실 더 끔찍한 걸로는 봄으로 들어가는데 벚꽃차 위에 휘핑크림과 시나몬 가루 팍팍같은 것도 있겠지만. 그건 아예 아이스조차 아니잖아요. 그게 문제가 아닌데.
"잘 마신다면 기쁘니까요" 제가 만든 걸 잘 마시고 힘내신다면 좋을 뿐이다. 어쩌면 모든 음식에게 맛있어져라. 같은 거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폭탄발언(?))
"춘덕이의 조언을 받아서 만든 거라서 새로 독립하기엔 그렇지만요." 어쩔 수 없어요. 이런 입지 괜찮은 카페를 새로 여는 건 힘드니까요? 라고 말하며 조금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다림입니다. 하긴.. 생활비 정도는 보험 등등으로 있다곤 해도 카페를 열 만큼의 자금이 다림에게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