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릴리는 대식하는 편이 아니다. 미식하는 편이지. 궁극의 한 조각을 먹고 난 다음에는 일주일은 굶어도 괜찮은 그런 성격인 것이다. 하지만…… 일이 제대로 꼬였다.
녹말을 당으로 분해해 가느다란 실 형태의 수크로스로 합성하는 마도를 통해 피자를 입 안에서 솜사탕으로 바꾸는, 솔직히 반칙이라고 해도 할 말 없는 편법을 써서, 2할 가량을 한꺼번에 먹어 없애는 데 성공했지만…… 갑자기 가쉬가 허기에 미쳐 날뛰지 않는 이상 시간 내에 완식은 불가능하다. 솔직히 말해서, 릴리는 이미 한 달치 식사를 끝마친 기분을 느끼고 있기는 했지만…….
‘쩔쩔매는 가쉬 군을 보아하니 측은하달까…… 보호심이 솟는달까…….’
유일한 해결책은 알고 있다. 시간을 버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건도 알고 있다. 셰프가 만족할 만한 애정행각을 하라는 거지. 알겠어. 하지만 어떻게? 애초에 『애정행각』이란 뭐지? 애정행각이라는 단어 자체가 단어로서 성립하지 않는 것 아니야? 대표적인 애정행각이 도대체 뭐가 있지? 티슈로 입가를 닦으며 생각한다. 틴트와 토마토 소스가 닦여 나갔다.
그 순간, 릴리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 어이, 가쉬 군…….”
어렸을 때, 지독하게 들었던 노래…….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엄마가 안아 줘도 뽀뽀뽀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뽀 헤어질 때 또 만나요 뽀뽀뽀
못 먹겠다. 더이상은 못 먹겠다. 이젠 죽을 때까지 피자라면 거절할 것이다. 이래서 한 달 무료 식권을 건 것이구나 하고 나는 깨달았다. 실패하면 이득이고, 성공해도 한 달 동안은 피자를 먹으러 오지 않을 것이고. 애초에 우린... 아니 나는... '함정'에 빠져 있던 것이다...!
눈 앞의, 평소에 꼬맹이라고 불렀던 소녀는 정말로 위대(胃大)한 속도로 피자를 해치우기 시작했다. 애초에 씹고 삼키는건가? 하고 조금 걱정이 될 정도로 피자를 '흡입' 해갔다. 나는 먹던것을 멈추고 그 광경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쉐프 또한 그 광경을 지켜보는데 표정이 조금 이상한다. 도끼눈을 뜨고 릴리를 응시하는게 무엇인가를 '의심' 하는 것처럼 보인다.
혹시 릴리... 연금술을 사용한 것인가? 가령 입에서 음식이 사라지게 하는 표션이라던가? 그런게 정말 있을까 싶지만, 연금술이라면.... 아니, 지금은 릴리가 부정을 저질렀던 아니던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먹는 것' 이다. 조금이라도 먹어서 그녀를 도와야 한다. 이젠 완전히 릴리가 주가 되었고, 나는 거의 거드는 정도가 되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포지션이 바뀌어 버렸다.
무리다. 이대로 더 먹는다고 해도 시간이... 시간이 거의 끝나갈 즈음, 갑자기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바로 '애정의 증명' 으로 인한 시간 추가!
그녀는 나에게 각오하라고 말하더니, 내가 있는 쪽으로 그 작은 몸을 뻗으며 장갑 낀 손으로 내 앞머리를 걷어 올렸다.
...지, 진짜? 하려는거야?
릴리는 크고 도전적인 목소리로 쉐프를 부른 후, 더욱 몸을 내밀고, 그대로 몸을 더욱 내가 있는 쪽으로 가까이 붙여, 자신의 손으로 걷어 올린 나의 이마로 더욱 다가왔다. 분명 시간을 들여 공들였을 메이크업. 그것이 무슨 이유든, 그녀는 메이크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와 함께 피자를 먹어주었다. 내가 부탁했기 때문에. 오직 단 하나 그 이유만으로. 피자를 먹는 와중에도, 내가 제대로 먹지 못해도 그녀는 그것을 비난하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떻게든 성공하려 했다. 내가 먹지 못해 쩔쩔매더라도, 그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사이 스스로가 지원하여 기회를 벌어들이려 했다.
단순히 이마에 그녀의 입술이 닿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나의 부탁을 불만 하나 표하지 않고, 단순히 나를 돕는것이 아닌 이 상황을 주도하여 어떻게든 성공시키려 했다. 거기에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이 주어질지 어떨지도 모르는 기회를 향해 온 몸을 던져 손을 뻗었다.
반했다.
이젠, 스스로를 속일 수 없다.
그녀는 그 육체의 크기를 뛰어넘는 거대한 정신력을 갖고 있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나따위는 범접할 수 없는 굴하지 않는 강한 정신의 소유자.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답을 갈구하며 불확실한 기회를 향해 온 몸을 던지는 그런, 대단한 사람.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말하는 것이 도돌이표가 되더라도 이해하길 부탁한다. 지금의 내 머릿속엔, 이것 밖에 들어있지 않으니까.
"che bella vista..." 우리의 식사를 지켜보던 쉐프도 그녀의 그 거침 없는 행동에 감명 받았는지 무어라 중얼거리며 눈물을 닦은 뒤 그녀에게 인정한다는 듯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우리, 뭔가, 눈 앞의 적을 쓰러트린다던가 그러고 있었던가?
아, 적. 있지. 피자.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피자든 그렇지 않은, 이 상황은 '어디에서든 똑같이 적용될 것.' 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단순히 작고 귀엽기만 한 아이가 아니다. - 그렇다고 귀엽지 않다는건 아니지만 - 릴리는, 도망치고 주저앉는 나따위와는 달리, 나아가고, 벽을 부수고, 쟁취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그 작은, 귀여운 색의 틴트가 피자 소스와 함께 휴지에 닦여나간 입술이 나의 이마에 닿았다. 부드럽다. 그리고, 따뜻하다. 이대로 시간을 멈추고 싶을 정도로. 의념기를 사용해 시간을 멈추고 되도록이면 가능한만큼 이 시간을 멈추고 싶을 정도로. 그녀의 입술이 내 이마에 닿은 그 순간 만큼은, 온 몸에 온기가 도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저도 가쉬의 생각 그대로 입니다... 릴리는 진짜... 귀여운 것도 귀여운데 너무 멋지다. 뭐 길게 말 하지 않아도 위에 주저리 주저리 써놨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