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에릭이 사이에 들어와 무례한 남자를 밀어낸다. 그 남자가 데려온 사람은 한눈에 보아도 팔이 가벼운 골절을 당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뒤에서 부러진듯한 팔을 부여잡고 있었으니까. 간호사들은 그 와중에도 서둘러 수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 퉤, 더러운 새끼들. 환자도 가려받는다는거냐. "
에릭이 앞으로 나서자 조금 기세가 죽었던 남자는 그나마 하루가 만만하게 보였던 모양인지, 하루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삿대질을 한다. 하루는 침을 맞고서도 그저 말없이 에릭의 뒤에 서있을 뿐이었다. 남자는 침을 뱉곤 행패를 부리며 나가려했고, 따라온 환자도 서둘러 조용히 따라나서려 했다.
" 잠깐만요.. 이리와봐요.. "
침을 맞은 상태로, 창백한 안색을 한 하루가 애써 그 환자에게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린다. 망념을 잠시 계산하던 하루는 이정도면 가능하겠다 싶었는지 부러진 팔에 손을 가져가선 빛을 발하게 한다. 고통에 일그러져 있던 환자의 얼굴이 밝아지고, 팔이 제자리로 돌아간 것을 확인한 하루가 숙였던 몸을 일으키며 숨을 뱉어낸다.
" ... 수술용 장갑 좀 가져다 주세요, 수술 시작합니다.. "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지만, 에릭에게 고마웠다는 듯 눈으로 인사를 해보인 하루는 팔이 부러졌던 환자를 내보내곤 수술대러 돌아가려 했다.
" .. 혹시나 또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려고 하면 막아주세요. 수술 중엔 정말 집중해야하니까.. "
밖의 일까지 신경써가면서 할 수 있을 실력아 아니라서요. 에릭에게 그렇게 중얼거린 하루는 메스를 집어들었고, 그 손과 눈동자에는 다시 의념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그녀를 한번 보았다가, 나는 천장을 올려봤다. 나도 안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묻는 것이 별로 건전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은. 그러나 그녀는 내 동료였고, 나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묻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답지 않다고 스스로를 비웃으면서도, 한발 더 내딛는 것이다. 다만. 아마도 내가 간섭하는 것은 여기까지겠지. 만약 한번 더 거절의 의사가 보이면, 나는 물러날 것이다. 그녀에 대한 실망을 품고.
"괜찮게, 라."
나는 그 말을 곱씹듯 한번 중얼 거렸다. 에릭과 나는 그녀의 처연한 태도와, 이 슬픈 분위기에 압도되서, 여태까지 어리광을 받아줬던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나는 그녀에게로 시선을 되돌리곤, 확고한 말투로 답하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런건 괜찮다고 하지 않아. 괜찮은 척이라고 하지."
이 다음말은 어쩌면 상당히 신랄할지도 모르지만, 난 말해야겠다.
"그리고 더욱 미안하지만, 다림이는 완벽하게 괜찮은 척을 할만큼 능숙하진 않은 것 같아."
그럭저럭 괜찮은 척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요 근래처럼 어딘가 불안정한 모습이, 처연한 태도가, 유심히 보고 있는 사람에겐 밀봉된 그 그릇 어딘가에서 한기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답지 않게 기숙사까지 찾아와서 과거를 캐묻는 지금의 상태가, 그녀의 이번 사태로 비롯된 정신적 불안이 크게 눈에 띈다는 증거 아니던가.
"그러니까 여기서 돌아가게 되면, 내일부턴 서로 괜찮은척 연기하면서 일하게 되겠네."
그런걸 원한다면 그리 하겠다. 나는 말을 짧게 마무리 했다. 그녀는 그럴 의도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마치 얼간이처럼 대하고 있다. 여기서 '아하, 그렇구나. 그럼 내일 무사히 잘 출근해.' 라고 넘어갈 수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아..아니요.." 친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친하기 때문에 말하기 어렵단 것을 말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고민하지만 친한.. 편이라고 생각해서 말을 하기가 어려워요.. 라고 웅얼거리듯 말합니다.
"괜찮은 척..이라뇨. 정말로 괜찮.." 그렇게 말하려 하지만 다음 말을 들으면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정말로 괜찮았다면 처연한 듯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맞을 리가 없지. 그냥 막 사람들과 교류하며 즐거워하며 지금 사태도 미안합니다.. 그치만 온전히 제 책임만은 아니에요. 라고 사과 한 번으로 끝냈겠지...
사실 내일 무사히 출근해~ 로 끝났다면 그렇게 넘어간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요. 다림은 진화의 말에 말을 잇지 못하고 말문이 막힌 채 어물어물한 표정을 짓습니다. 멀어지는 걸 권장하려 하면서도 실망을 안겨주거나 나쁘게 보이고 싶지 않다니. 참... 이상한 반응이겠네요.
"친하게 지낸.. 그런 이들을 공격을 했다는 게.." 용서가 잘 되지 않네요..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피하면서 말을 해보려 합니다. 가끔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분들에 못 이깁니다. 자꾸 말을 하면 안 되는데. 상황이 자신에게 자꾸 입을 열게 만드는 것이었을까요?
"친하게 지낸 이들이나.. 가족처럼 생각한 분이 안 좋게 돌아가셨거든요." "아무래도 저랑 같이 있던 것 밖에 공통점이 없는 만큼.." 저는 친한 이들의 안위에 좀.. 예민한 편이에요. 라고 말을 해봅니다. 그렇게 말에 얻어맞고도 범위를 꽤 줄인 것 같군요. 말만 듣기로는 몇 사람이다.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걸까.
솔직하게 말해서 너무 강경하게 남의 상처를 헤집은게 아닐까, 하는 그런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함께 카페에서 일하게 되면서 여러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 나에게 있어, 기다림이란 인물은 더 이상 남이 아닌 것이다. 사정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그 거리감에 멀리하기 보단, 캐물어서라도 알고 싶었다. 따라서 나는 미안하단 말로 내뱉은 말을 되돌리며 수습하지 않고, 그녀가 입을 열 때 까지 조용하고 진중한 태도로 기다렸다.
"......그런가. 그런 일들이 있었구나."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좀 더 침묵을 유지했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는 자신 주변의 친한 이들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해를 가한 지금의 상황에 크게 흔들리고 있다.....인가. 마음만 같아서는 그런 것은 우연일 뿐이며 네 잘못은 없다, 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그것은 너무 얕은 말이다. 그런 말로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 확신에 가까운 자책감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녀의 과거엔 기구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겠지. 따라서 나는 그런식으로 달래진 않기로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이해는 가. 나도....가끔 참혹한 현장 속에서 스스로만 살아 남은 것에 다른 사람들에게 죄스러운 감정을 느끼고는 하니까."
물론 나와 그녀의 경우는 조금 다르겠지만, 그녀가 아픈 과거사를 얘기했던 만큼, 나도 조금은 쉽게 밝히기 힘든 심정을 얘기하며. 나는 조금 더 고민에 잠겼다. 무엇으로 얘기 해야할까.....이윽고 나는 해답을 내렸다.
"아까 나랑은 친한편이라고 얘기했었지? 그리고 그 말대로면, 나도 언젠간 위험해질지도 모른단거네."
그녀의 불안은 결국 그런 것이다. 사람을 싫어하는게 아니면서도 애매한 거리감을 유지하려는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내릴 답변은 지극히 단순하다.
"그럼 나랑 내기하자. 어차피 카페에서 계속 같이 일하게 될테니까. 눈치보지 말고, 실컷 친하게 지내자. 그 대신 약속할게. 나는 절대 네가 불안해하는, 그런식의 최후를 맞지는 않겠다고."
뭐어, 하고 볼을 긁적이면서 나는 계속 이야기 한다.
"물론, 그런 과거가 있다면 바로 믿기는 힘들지도 몰라. 그래도 계속 지켜봐. 무언가 사악한 운명의 장난 같은 것이 네게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런 것에 꺾일 생각은 조금도 없어."
허세에 가까운 말이다.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잘난 인물이었던가? 나는 울보에 겁쟁이고, 한번 도망쳤던 열등생이다. 그러나, 그래도. 영웅을 꿈꾼다면. 적어도 친한 사람의 불안 앞에서 한심한 소리를 할 순 없다. 사악한 운명 같은 것을 이겨낼 각오가 없다면, 영웅 같은건 애초에 될 수 없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에게,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