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자마자 그녀의 표정이 다시금 가라 앉은 것을 보곤, 나는 드물게 울컥하면서 딴죽을 걸었다. 그 심정을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몇번째인가. 계속 반복 되다보면 마치 내가 그녀의 죄책감 스위치라도 된 것 같아서 별로 편하지 않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나는 카페에서 같이 일하면서 얼굴을 마주치는 빈도가 잦았으니, 더더욱 자주 느꼈을 수 밖에.
"그건 다행이다."
확실히, 그 때 다림씨는 조종 당하고 있었으니까. 그 사정을 아는 참가자들은 그녀를 배려해서 최대한 치명적인 상해를 입히지 않도록 주의....했다고는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왠 간부 같은 녀석이랑만 싸웠으니까.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 자체는 지장 없이 하는거 보면 확실히 신체적 상해는 없는 모양이지만.
".....그 얘기 요 최근에 두자릿수는 넘게 들은거 알아?"
결국 인내심의 한계가 온 나는, 정중하게 존댓말 하던걸 관두고 두 허리에 손을 얹은체 혼내듯 얘기했다. 이래보여도 내가 연상이니까. 괜찮겠지.
안녕하지 않은 것 같다는 말에 아..아니에요. 안녕한 거 맞아요. 일단 몸은 멀쩡하니까요. 라고 하지만 몸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 문제고, 반복되는 것 같은 죄책감 스위치스러운 그게 있다는 게 문제다 이 다림아!
"그래도..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서.." 웅얼거리듯 말하면서 마지막에.. 공격을 해서.. 라는 말을 합니다. 사실상 그 일에 대해서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게 처음이라 그런 것도 있을까요?
"...." 인내심에 한계가 온 것 같은 진화가 말을 하자.. 금방이라도 울먹거릴 것 같은 표정으로 괜찮다고 대답했다는 것에 그래도... 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요.. 라고 중얼거리면서 자주 마주치는 분들이 몽블랑에 있는 만큼 죄송해야 한다거나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해야 할 것 같은 그게 있는 모양입니다.
일단 나는 웅얼거리듯 대답하는 그녀의 말을 눈썹을 치켜뜨곤 조용히 들었다. 뭐 실제로 그 때, 마지막 발악처럼 날렸던 기술에 나는 전투불능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별로 물리적으로 치명적인 상해를 입히는 기술도 아니었고, 나 또한 마찬가지로 보건부에서 충분히 완치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녀의 몸 상태를 걱정하는게 아닌 것 처럼, 그녀가 미안해 하는건 엄밀히 말하자면 공격으로 인한 내 몸 상태가 아니란 것이다.
"저기 있잖아, 내가 보기엔 이래서 신뢰가 안갈지 모르지만. 이래보여도 상당히 튼튼하거든? 그러니까 그 공격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던가 그런 일은 없어. 그런걸 받아내는게 내 역할이고, 나는 거기에 충실했을 뿐이야."
나는 볼을 부풀리곤 가볍게 따지고 들었다. 키도 작고 몸도 가녀려서 다들 못 믿음직한 모양인데. 솔직히 말해서 의념기를 발동중인 나는 방어력과 맷집 만큼은 훌륭한 편이다. 즉. 나는 한번 세게 쳤다고 망가지는 장난감이 아니고, 한번 잘못 대했다고 엉엉 우는 아기가 아니다. 아마 그녀가 지나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건 스스로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나를 대하는 태도는 저것과 다를바가 없다.
"확실히 단순히 웃고 넘기기엔 꽤나 요란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고. 다들 후유증도 없잖아. 도대체 왜 그래? 무엇이 그렇게 미안하게 만드는거야?"
그 일이 정말로 그녀의 잘못인지 아닌지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 다만 나는 별로 그에 대한 토론을 할 생각은 없었다. 요점은 이거다.
"용서해달라고 하는데, 이미 내가 알기로 사건의 당사자는 전부 용서 했어. 정말로 다림이를 용서해야되는건, 다림이 본인 아니니?"
중학생 시절 봄이 오면 으레 마음이 들뜬 같은 반 아이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던 적이 몇 번인가? 점심시간에, 창가에서 교단의 벚꽃을 내려다보며 그사이를 즐겁게 웃으며 걷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 있던 적은 몇 번인가? 그리고, 같이 놀자던 친구들의 권유를 거절했던 적은 몇 번인가.
게이트 초창기에 비할 바는 못 되었지만, 여전히 세상은 혼란스럽고 인류는 자신들을 지킬 방패가 필요하다. 그런 세상에 태어나서, 그가 아무런 일을 겪지 않은 것은,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유치원생 때 단짝이던 아이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초등학생 시절 만난 친구는, 게이트로 양친을 잃어 보육원에서 지내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짝꿍이 되었던 학생은, 어렸을 때 의념을 각성하고 나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털어놓으며, 백작의 아들로 태어난 너는 그런 일을 겪지 않았을 테니 정말로 부럽다고 말하였다. 단지, 운이 좋아서.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부모님에게는 게이트라는 불가항력에서 아들을 지킬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일을 피해 간 것이다…. 그렇기에, 소년의 책임감은 해가 지날수록 조금씩 늘어났다. 누군가가 손에 쥐여주지 않은, 죄책감과도 같은 책임감에 부담을 느낄 때쯤, 은후는 비정상적인 자신과 행복한 미래의 가능성을 한데 긁어모아 선물 상자에 집어넣고 뚜껑을 닫았다.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아버지와 누나의 만류에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어 보이며 학원도로 왔다.
이 학원도에 꽃이 만발하는 것과 같은 청춘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터인데.
내년에도 같이 벚꽃을 보러 오자는 말에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얼굴을 가리고 있던 양손이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울상을 짓고 있는 얼굴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눈이, 다시 정훈을 마주하였다.
눈앞의 상대가 학원도의 학생들은, 그들의 생명은, 비가 오면 산산이 흩어져 져버리는 벚꽃과 같이 덧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진 않을 것인데도, 그런데도.